성령 세미나의 위험성...
“나의 딸아, 많은 이들이 성신을 찾아 부르지만, 저들이 부르는 것은 하늘과 빛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저 깊은 지옥 밑바닥에서 올라온 것들이다. 달아나거라! 너희는 이런 목적의 모임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저들은 빛에서 온 것이 아니다. 나의 자녀들아, 때가 되면 너희가 이 모임들이 일으키는 재앙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더 많이 아는 자들이 이 거짓 성신을 쫓아 악마의 모임에 자신을 바치고 있구나. 너희에게 이런 거짓 성신은 필요가 없다. 성체성사를 통해 성자는 언제나 너희에게 임하실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많은 이들이 거룩한 성사를 외면하고 ‘사랑, 사랑!’을 외치며 새로운 세상을 찾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누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아느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사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겠느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세속의 사랑보다 진정한 사랑에 굶주림을 느끼겠느냐? 이 진정한 사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마저 바칠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4. 6. 15
다음의 기사는 존 베나리 John Vennari의 ‘성령 세미나의 광풍 Charismatic Extravaganza’이라는 기사이다:
“당신이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악마의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에서 보이는 증상이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 로날드 녹스 몬시뇰의 “열정, Enthusiasm”
몇 달 전에 요청하지도 않은 대용량 메일이 도착했다. Steubenville의 프란치스코 대학의 책자는 ‘가톨릭 성령 운동자’들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던 피츠버그에서 30주년 기념행사를 치른다는 안내문이었으며, 69달러의 참가비를 내면 나도 참가할 수 있다는 안내였다. 1997년 6월 27일 나는 이 성령의 대축제에 참가하려고 여행길에 올랐다. 나는 순전히 관찰의 목적으로 참여했다. 관찰할 것이 무척 많아 보였다.
나는 약 2년 전에 “토론토 블레싱”교회에 갔었다. 그 무렵 Catholic Family News의 실비아 맥아헌 Silvia McAhern 기자가 쓴 가톨릭교회 내의 새로운 운동에 관한 기사가 실렸으며, 나는 이 새로운 성령 운동을 직접 보고 싶었다. 이 “토론토 블레싱”교회는 성령 운동에 관해서는 10번째 안에 들 정도로 명성을 지닌 개신교 종파이다. 그들은 미사 중에 (피츠버그의 가톨릭 성령 세미나에서도 똑같았다) 성령이 임하였다고 믿는 순간 혀와 온몸이 뒤틀려 꼬이며, 비명과 함성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고, 미친 듯이 웃거나, 개처럼 짖어대고, 돼지 같은 소리를 내며 성령이 임하셨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토론토 블레싱” 교회는 1997년 6월 성령 대운동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는다. 가톨릭의 성령 대운동의 선구자인 케빈 라나간 Kevin Ranaghan은 자신의 연설에서 이 “토론토 블레싱”을 가리켜 성령 대운동의 진정한 모범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이 “기름 부음을 받은 설교자”는 7,500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듣는 가운데, 저 미사에서처럼 개처럼 짖고, 돼지 소리를 내며 눈웃음 짓는 것은 성령의 진정한 표현이라고 하였다.
가톨릭의 성령 세미나 선구자인 케빈 라나간은 7,500명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개처럼 짖고, 돼지처럼 눈웃음 짓는 것은 성령의 진정한 표현이라고 하였다.
그 자리의 어떤 누구도 이런 급진적인 설교를 들으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이 주말이 끝날 무렵에 그 자리에 있던 사제와 주교들이 무대에서 부기 우기 춤을 추는 것을 목격할 수도 있으며, “성스러운 음악”처럼 연주되는 로큰롤 음악을 견뎌야 할 수도 있다. 나는 개신교를 찬양하는 찬미의 기도를 들을 수도 있으며, ‘전통주의’비평가들로부터 성령 세미나를 옹호하려는 Steubenville의 스캇 한 Scott Hahn의 궤변을 들으며 경악하게 될 것이다.
이단의 정원에서 자란
이 성령 세미나가 가톨릭교회에 침입한 지는 불과 30년에 불과하지만, 사실 이 성령운동주의는 그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영국의 존 웨슬리 John Wesley를 성령운동의 아버지로 보고 있다. 웨슬리는 성령의 세례(또는 두 번째 축복)는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임재와 직면할 때 느끼는 강렬한 경험이라고 주장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웨슬리의 감리교파는 더욱 주요 종파로 성장하였고, 성령부흥회는 점차 다른 종파로도 퍼져나갔다. 저명한 반개혁주의자인 L. 럼블(L. Rumble) 신부는 자신의 저서 “하느님의 집회 Assemblies of God”에서 19세기 성령 부흥 운동을 기반으로 한 늦은 비 운동(the Latter Rain Movement)과 하느님의 집회 등으로 “거룩한 교회”로 거듭나며 성령부흥회를 급속하게 팽창시킨 일을 추적하였다. 본 책자는 세계 기독교주의의 혼란이 오기 전에 작성된 것이기에, 럼블 신부는 성령부흥운동을 가톨릭 신자들이라면 반드시 피해야 할 이단 종파라고 분명히 명시하였다.
럼블 신부는 방언을 떠드는 것과 감정이 폭발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런 흥미로운 표현이 강한 종교적 감정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새로운 발견이었다. 선지자로 불리는 이들이 이런 비정상적인 표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일어나 독려한다.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이 선택된 영혼들에게 성령이 특별히 부어졌다는 증거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런 감정적 체험은 은총을 받은 모든 이들에게 거룩함을 부여하는 ‘두 번째 축복’이자, ‘영적 세례’의 증거로 해석되었다.” [1]
이 점이 소문을 합리화시킨다. 개신교 내에서 하느님의 임재의 증거로 강렬한 개인적 체험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개신교도들은 그리스도가 세상 끝날 때까지 “주님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다스리며, 거룩하게 하는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라는 거짓 진리를 믿고 있다. 성경의 사적 해석에 뿌리를 둔 개신교는 성경을 하느님의 신성한 예언의 유일한 근원으로 받아들이는 느슨한 신자들의 연합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주님께서 세우신 가톨릭교회의 성사는 항상 합당한 이들에게 은총을 내려준다는 하느님께서 세우신 절대적인 가르침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으로 증명하여야 하는 이러한 필요성은 개신교가 가톨릭교회 교리의 권위와 거룩하고 은총을 내려주는 성사들을 부정하였기에 초래된 결과이다. 이러한 감정의 욕구는 신앙에 대항하는 치명적인 대죄에 기반을 두기에, 이런 감정적 표현(아마도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신앙에서 비롯됨)은 본능적 원인이나 악마의 영향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 이런 표현은 또한 개신교도가 신을 믿지 않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성령부흥론자들은 자신이 이미 성령을 받았으며, 지니고 있다고 믿기에(신호에 따라 보여줄 수도 있다고 함) 가톨릭교회가 필요하기나 하겠는가?
항상 불변인 가톨릭 교리와 전례에 비추어, 성령의 역사와 같은 이러한 보여주기식 행사를 나는 신성모독이라고 주장한다. 여기 가톨릭 내의 성령 세미나에 있는 충격적인 곤란함이 있다.
토피카의 혀
가톨릭 내의 성령 부흥 운동자들은 근대의 위대한 성령의 빗줄기는 실제로 찰스 파햄 Charles F. Parham이 이끄는 캔자스 주 토피카의 작은 개신교 교회에서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Peter Herbeck(Ralph Martin의 새로운 사목운동 소속)과 같은 일부 가톨릭의 성령주의자들은 파햄의 성령 부흥 운동을 극적인 면과 신성한 현상 면에서 파티마에서의 성모님 발현과 동등하게 취급한다. [2]
William J. Whalan은 자신의 저서 ‘미국의 소수 종교’에서 현대의 성령주의에서 이 종파의 중요한 역할을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1901년 방언의 출현이 보고되었다. 성령 부흥 주의자인 Charles F. Parham은 자신의 영적 삶이 메마른 것을 생각하며 낙담에 빠졌다. 그는 캔자스 주 토피카에서 화이트 엘리펀트 맨션을 임대하고 약 40 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성경학교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함께 성경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고 결국 방언을 말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는 하나의 증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1900년 새해 전날 오후 7시 경 같이 성경 공부하던 학생 중 하나인 Agnes N. Ozmen 양이 갑자기 방언으로 기도를 시작하였다. 이 광경을 본 다른 학생들은 모두 놀랐다. 며칠 되지 않아 다른 많은 이도 방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퍼햄은 이후 휴스턴에 또 다른 성경학교를 열 때까지 5년가량 순회설교자로 각지를 돌아 다닌다. 그의 학생 중 한 명인 W.J. Seymore라는 흑인 목사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완전한 복음’이라는 메시지를 전파하였다. 그 캘리포니아의 한 도시에서 시작된 3년에 걸친 부흥 운동은 전국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이 사람들이 많은 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 성령 부흥 운동의 씨를 뿌렸다. 댑분의 기존 개신교 교파에서는 방언을 강조하는 것을 거부하였지만, 수십 개의 성령주의 교회가 곧 조직되었다.” [3]
“토론토 블레싱”같은 정신 나간 교파의 열렬한 홍보자인 Vincent Walsh 몬시뇰은 이들을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다: “퍼햄과 세이모어의 전도 덕분에 현대적인 세계 성령 운동이 시작될 수 있었다.” [4] 개신교 집회의 한 모습으로 이 운동은 눈부신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의 중 하나였던 ‘세상에 문을 활짝 연 교회(aggirornamento)’ 덕에 교회는 방어선이 무너지고, 뉴욕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개신교 목사의 이러한 성공담에 심취하자 교회는 1967년에 “새로운 사고”를 채택하였다. 이 새로운 사고의 영향으로 성경을 연구하며 이단의 품에 깊숙이 파묻혀 버렸다.
“피츠버그의 충격”
‘가톨릭의 성령 부흥 운동’이라는 책에서 케빈과 도로시 라나한 Kevin and Dorothy Ranaghan(가톨릭 성령 세미나의 창시자)은 이 운동의 시작에 대해 이런 설명을 한다. 라나한고 듀케인(Duquesne)대학의 동료들은 당시 유행하던 다양한 활동(민권 등)에 참여하였다. 이런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였지만, 그들은 영혼의 무미건조함을 크게 느꼈다. 이에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더 큰 하느님의 힘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주장하였다.
1966년의 그 날은 전례 없이 교회의 격렬했던 격변의 시기였다. 토마스 머튼 Thomas Merton은 곧바로 티베트로 떠나 달라이 라마와 함께 기도하면서 힌두교의 ‘하나됨’과 같은 화합을 선보였다. 뉴에이지 작가 떼야르 드 샤르뎅 Teilhard de Chardin은 많은 가톨릭 지식인들에게 제5 복음의 전도사로 존경을 받기도 하였다. 교회 역사에서 격렬한 변화의 바람이 수많은 가톨릭의 상징들을 뿌리 뽑고 파괴한 격동의 시기였다. 익숙한 교회의 상징들이 너무 많이 휩쓸려 사라졌기에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길을 벗어나 잘못된 곳에서 하느님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라나한과 동료들은 꾸르실료 위원회의 랄프 마틴과 스티브 클라크라를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뉴욕의 10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개신교 지도자 데이비드 윌커슨 David Wilkerson의 성공담을 엮은 ‘The Cross and the Switchblade(십자가와 단검)’라는 책을 전했다. 라나한과 동료들은 이 책에 서술된 성령 부흥 운동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이 활동에 참여한 두 친구의 변화된 삶에 고무되어 자신들도 비슷한 경험을 얻고자 하였다.
라나한은 자신의 그룹이 감리교회 목사의 조언을 구하였으며, 이단 종파와 긍정적인 종교적 교류를 금하는 당시 가톨릭의 가르침을 무시하였다고 말하였다. 이 목사는 그들에게 개신교의 성령 부흥 모임을 소개하였다. 그들은 부흥회에 참석하였으며, 그들과 함께하는 성경공부에도 참여하였다.
참석자 중 한 명인 랄프 키퍼Ralph Keifer는 이 성경 모임의 마지막에 “팻과 나를 성령의 세례로 이끌어 줄 것을 기도해 달라고 모임의 사람들에게 요청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섞여 여러 조로 나뉘었다. 그들은 성령의 힘이 나에게 작용할 수 있도록 단순한 믿음의 행동을 하라고 요청하였다. 나는 다소 빠르게 방언으로 기도하였다.” [5] 나중에 랄프 키퍼 같은 이들이 다른 두 명에게 손을 얹었고 그들 역시 ‘영적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다.
케빈 라나한이 30주년 기념식의 첫 연사로 나온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였다고 잔뜩 자랑을 늘어놓은 후, 자신은 초기에 “성령으로 성장”하기 위해 자신과 친구가 개신교 기도 모임에서 영적 조언을 구했다고 말하였다:
“처음에 우리는 우리 지역에 있는 개신교 성령 부흥 교인들과의 만남은 우리가 은총을 이해하고 경험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순복음교파의 사업가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 사업가는 가톨릭 신자들이 방문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자신을 도울 성령 부흥 교인들을 모아 방을 가득 채워두고는 격렬한 전투를 대비하였다. 그들이 제일 먼저 놀란 것은 그들에게는 충격적이겠지만 너무도 간단한 우리의 기도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미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였지만, 그들은 결국 우리가 가톨릭 신자라며 믿지 않았다.” (그 자리의 청중들은 가톨릭교회의 배타적인 구원의 교리를 큰 웃음으로 조롱하며 웃었다) 그는 계속 말했다. “우리는 단지 하늘의 선물을 사용하고 전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도움과 조언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손을 올리고 방에 가득 찬 교인들이 모두 기도하며 방언으로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전투는 없었고, 승리의 환호만이 있었을 뿐이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이런 연설을 하는 이 ‘기름 부음을 받은 설교자’는 가톨릭 신자에 대한 개신교의 승리를 성령의 승리와 연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잊은 듯 보였다.
그리고 나서 라나한은 그곳에 모인 군중을 종교적 무관심으로 더욱 세뇌하여 이단 종파의 찬양과 축복을 노래하게 하였다. 그는 “예전의 오순절과 그 시대에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을 찬양하자... 그렇다, 처음부터 성신강림은 성령 세미나의 행사였다.”
가톨릭 신자들이 그리스도께서 만드신 거룩한 은총의 통로가 아니라, 이단 집단과 협력을 통해 ‘성령의 세례’라는 개신교의 가짜 성사를 받는 “가톨릭의 성령 세미나”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이 운동은 피츠버그에서 노트르담으로, 그리고 미시간 주립대학과 미시간주의 뉴먼 센터로 퍼져나갔다. 가톨릭의 성령 세미나 운동은 시작된 지 4년 만에 미국과 캐나다의 수십 개 지역으로 퍼졌다. 이 운동은 전염병이 퍼지듯 퍼져나갔고, 이는 독특한 캐릭터들에 의해 연기된 기괴한 에피소드로 상징된다. 새로운 유형의 순회 성령 세미나를 따르는 무리 중 하나인 평신도 랄프 마틴은 다른 사람들(사제와 수도자를 포함)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자칭 소명을 수행하면서 전국을 다녔다. 코놀리Connolly 신부는 자신의 교구에 있던 트라피스트 수도원과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사들이 랄프 마틴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마중을 나와 그 지역 성령 부흥 지부를 찾은 것을 말하면서, 어떻게 저들이 자신의 지역에 이런 “성령”을 전파했는지에 대해 설명하였다. [6]
이 외지인들의 “성령”이 실제로 퍼졌다. 이제 저들은 30주 년 기념행사에 전국에서 7,500명의 가톨릭 신자들을 모을 힘을 지닌 전 세계적인 조직이 되었다.
“영광이 뿜어져 나오는 곳에서 살아가라”
피츠버그의 데이비드 로렌스 컨벤션 센터는 7,5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도록 넓은 좌석과 공간을 갖춘 극장 스타일로 되어있다. 무대는 설교자들의 연단, 임시 제대, 그리고 밴드들의 자리가 있었다. 아름답고 큰 십자가, 은총을 뿜고 계시는 거룩한 예수님 성화와 과달루페의 성모상, 그리고 현수막들로 단상을 장식하였다. 왼쪽 무대에 있는 밴드는 가수, 전자 악기, 드럼으로 이루어졌다. 밴드의 구성은 토론토 블레싱 교회 때와 비슷하였다.
연주되는 락 스타일의 ‘찬양 음악’은 ‘음악 사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전혀 위엄있지 않았다. 밴드의 리더는 현대 대중 음악의 특징인 여성스럽고 감미로운 스타일로 성가를 연주하였다. 주말 내내 연주하던 무거운 스타일의 음악 프로그램 중간에 약간의 전통적인 성가가 연주되기도 하였다. 한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레고리안 성가는 없었다.
이들의 연주 중 많은 것들이 발라드 스타일이었지만, 몇몇 곡은 청중들이 벌떡 일어나서 팔을 휘저으며 춤을 추게 만드는 로큰롤 드럼 비트가 연주되기도 하였다. 이들이 연주하는 동안 꽉 끼는 청바지를 입은 어린 소녀들이 음악에 맞추어 뛰어다니고, 비치 보이스 페스티벌에서 뛰어노는 것처럼 미소를 띠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연주가 끝날 때 큰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열띤 분위기에서 사회자는 “예수님을 찬미합시다.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를 외치며 더 큰 호응을 유도하였으며, 청중들은 대부분 순순히 따랐다. 때때로 사회자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방언 기도”를 하였다. 마찬가지로 청중들도 따라 하였다. 그리곤 다시 새로운 음악이 시작되었다. 분위기는 개신교의 부흥회나 록 콘서트의 무대, 궐기 대회를 연상시켰다. 이러한 열기는 모든 가톨릭의 정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한가지 눈에 띄는 예외는 한 가수가 그레고리안 성가 중 아카펠라로 Veni Creator Spiritu를 노래했을 때 발생했다. 그 순간 그 행사장은 가톨릭의 상징인 경건함과 엄숙함으로 가득 찼으며, 이번 주말을 통틀어 유일한 순간이었다. 이 한 순간 만큼은 청중 중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공중에 손을 휘두르는 사람도 없었고, 복도에서 춤을 추던 사람도, 성가가 끝나고 박수치는 사람도 없었다. 참으로 거룩한 성가에는 세속적인 환호나 열광하는 것을 막는 힘이 있음을 알았다. 이 평화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성령 운동하는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차분히 앉아서 조용히 있는 것을 참으로 어려워하는 것 같다.
개막일 오후 7시 30분경 사회자는 마이크를 잡고 “가톨릭의 성령부흥회를 축하합시다”라고 외쳤다. 청중들은 비틀즈의 광팬들처럼 광란의 환호로 응답하였다. “오늘 밤 올드타운은 뜨거워질 겁니다”라며 사회자가 열광하는 군중들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주말 내내 성령이 넘친다는 기도와 미사, 춤, 방언, 예언, 그리고 청중들에게 “영광이 뿜어져 나오는 곳에서 살아가자”라고 격려하는 연설로 진행되었다.
“예언하기”
성령 세미나 중 가장 특이한 것은 ‘예언을 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청중들 중심에 서 있으며, 그를 통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는 말한다. 꽤 많은 성령 세미나 관계자들이 마이크를 이용하여 이 의식을 수행하였다. 군중들은 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 앞에 있는 것처럼 모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고 있었다. 항상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내용은 종교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앞에서 지어낼 수 있는 그런 상투적인 표현이었다.
그런 예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너희가 어디를 가든지, 어디에 있든지 나의 성령이 너희에게 갔으니 너희 안에 나와 같은 성령이 깃든 줄 알아라.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하여라. 전하고 외쳐라. 너희가 경험하는 이 능력이, 너희가 이곳에서 나와 함께 경험하는 이 모든 능력이 너희에게 하라고 시킨 모든 일에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하게 할 것이다.”
이 ‘예언의 과정’이 끝나고 사회자는 황홀경에 빠져 청중들에게 박수를 유도하며 “주님께 찬양하자, 하느님께 찬양드리자, 예수님께 감사드리자”
그 순간 소위 ‘예언자’ 중 한 남자가 말한다: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자 또한 너희의 종이다.” 사회자인 짐 머피 Jim Murphy는 “굉장하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방금 우리에게 스스로 주님이 우리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머피는 청중들에게 하느님이 우리의 눈앞에서 성령이 충만한 예언자를 통해 방금 말씀하셨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천주교의 가르침과 너무도 다른 말이었다.
연설자들의 말 중에서 교리, 도덕 또는 영혼에 도움이 되는 확실한 가르침의 말은 많지 않았다. 모든 가톨릭 교리는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온갖 향신료로 범벅되어 버렸다. 이 행사에서 진심으로 무언가 배우려 하던 이들은 실망하고 모두 떠났다. 토론토 블레싱의 행사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연설자의 지혜는 얕고 비어있으며 시끄러울 뿐이다. 이 행사의 주요 목적은 “주님 안에 살고 있는” 기쁨을 축하하는 것이며, “성령에게로 전진하자”라는 구호와 격려였다.
묵주 기도도 없고 / 이상한 미사만
60년대 선구적인 성령 세미나 추종자 중 한 명인 패티 G 맨스필드 Patti G. Mansfield가 생 루이 드 몽포르 (St. Louis de Montfort)의 성모님에 대한 진정한 헌신의 주제로 강연했다. 그 강연의 내용은 성모님께 대한 헌신과 함께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선함’을 적당히 섞어 놓은 잡탕 강연이었다. 맨스필드 부인은 성모마리아께서는 기적의 메달이나 묵주 기도 등의 전통적 신앙의 도구를 일부러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함으로 강연의 가치와 신빙성을 심각하게 깍아내렸다. “당신이 어떻게든 성모님께 가기만 하면 되며, 성모님께서는 절대로 당신이 어떻게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면서 거룩한 묵주 기도의 중요성을 경시하였다: “만약 성모님께 헌신하는 길이 매일 묵주 기도를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길을 잃어버릴 것이다.”
1917년 파티마에서 성모님께서 “성부께서는 나의 티 없는 성심에 봉헌하기를 원하신다”라고 하신 분명한 천국의 말씀을 이토록 당당하게 부정하는 이 여성(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서 천국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주장함)이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께 어떻게 봉헌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시를 주셨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치라는 성모님의 요청이다. 그 자리에서 성모님께서는 신약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태양의 기적을 행하셔서 이 말씀을 증명하셨다. 이 행사에서 ‘성령을 충만히 입은’ 어떤 연사도 파티마에서 하늘이 주신 긴급한 메시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 행사에서 파티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행사가 치러지는 주말 내내 공개적으로 묵주 기도를 바칠 시간은 없었지만, 성령 세미나 참석자들이 통로에서 춤을 추며 기괴한 ‘미사’를 드릴 시간은 넘쳐났다.
행사 중 미사는 새로운 미사 전례 방식으로 뼛속까지 성령 부흥론자인 샘 제이콥스 주교를 주례자로 하여 진행되었다. 여기서도 미사의 진행이 개신교 와 더 많이 닮아갔다. 복음 이후에 진행된 미사는 가톨릭의 강론이라기보다 암웨이의 동기부여 세미나에 더 가까웠다. “주일 강론”에서 제이콥스 주교는 성령 세미나 스타일로 제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중간중간 “아멘”을 외치고서는 미사 참석 신자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 강론 도중 제이콥스 주교는 예수님께서 =--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신 말씀을 인용하며 외쳤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면 신자들이 “예수님!” 이라고 환호성을 질렀다. 다시 주교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 [7]
강론은 큰 박수 소리에 종종 중단되었다. 이것이 주일 미사 중에 벌어진 일이다! 다른 날의 강론도 아마 비슷한 전개였을 것이다. 로마 가톨릭의 주교가 오랄 로버츠(Oral Roberts, 개신교의 성령부흥회 전도사)의 값싼 흉내를 내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다.
미사는 주기도문 전 “거룩하시다”를 기도하는 동안 잠시 멈추고 “방언으로 하는 미사”의 순서를 끼워 넣었다. “평화의 인사”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이 모든 성령 세미나의 미사가 치러지는 동안에 가장 섬뜩한 순간은 봉헌종을 대신하는 “방언”의 윙윙거림이었다. 성체 봉헌을 하면서 성체와 성작을 높이 드는 순서에 제이콥스 주교는 높이 들어 올린 자세로 전체 참석자들이 다 들릴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흠 데 야 하이 다 샴 마 룸 야다... Hum de yah hay dah sham a lum yada ..." 알아들을 수 없이 횡설수설하는 웅얼거림은 마치 힌두교 미사의 무시무시한 웅얼거림으로 들렸다. 그리고 다들 손으로 성체를 받았다.
마이클 스캔론 Michael Scanlon 신부
잡지 ‘Sursum Corda!’ 1997년 여름판에는 스튜벤빌 대학 Steubenville University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인 기사를 실었다. 이 잡지에서 스튜벤빌 대학의 스캘론 신부는 “대학 당국이 대학 내에서 성령 세미나 운동의 중단 및 근절을 허용하고 심지어 부추겼다”라고 증언하였다.
우호적인 기사에 대해 말했지만, 스캔론 신부가 피츠버그 성령 세미나에서 강연할 때 전한 메시지는 분명 아니었다. 스튜벤빌 대학은 1998년 성령 세미나 리더십 대회를 주최하였을 뿐 아니라, 스캔론 신부는 성령 세미나 찬성론자들에 대한 스튜벤빌 대학의 봉헌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말했다: “스튜벤빌에 있는 프란치스코 대학에 대해 확실히 할 것이 있다. 이것이 성령의 힘이고, 이것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이 대학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성령 세미나를 통한 쇄신이다. 이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이 강연에서 스캔론 신부는 자신의 “세 번의 회개”에 대해 말했다. 첫 번째는 그가 가톨릭교회와 성경의 진리를 온전히 확신하게 된 때였다. 두 번째는 하버드 로스쿨에 다닐 때 모든 것을 버리고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일원이 되었을 때이다. 이때까지는 잘 되었다.
세 번째 회개는 1973년에 그가 성령 세미나에 입문한 것이다. 그는 170명의 프란치스코 신학생들의 교장으로서 자신의 제자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였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전혀 길을 못 찾고 헤메고 있었다. 그 무렵 한 갈멜수도원 소속 한 수녀가 그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보세요”라고 하였다. 그는 그때 “성령이 나를 휘몰아쳤다”라며 회상하였다. “그 후에 나의 강연이 바뀌었고, 고해성사 중에 사람들이 치유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고해성사를 보러 일부러 나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경험하였던 육신과 영혼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다시 외쳤다. “나는 지금 그때보다 더 큰 성령의 권능과 더 큰 성령의 돌진을 경험하고 있다.” (1973년 경험)
이런 강연을 듣는 동안 나는 성 비오 신부, 성 돈 보스코, 성 요한 비안니 같은 겸손한 성품의 성인들이 7,500명의 군중 앞에서 그들이 얼마나 “성령으로 충만한지”를 자랑하며, 그들이 품은 성령의 힘으로 입증되지 않는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자랑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다양한 연사들이 이런 식의 증언을 반복해서 들려주었고, 나는 내가 3일간 성령이 넘치는 정보 광고의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캔론 신부와 같은 성직자들이 “성령의 세례”와 같은 개신교의 전통을 거룩함에 이르는 마지막 길인 것처럼 찬양하는 것을 듣는 것은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특히나 유서 깊은 수도원의 신학교 총장이라면 거룩함에 이르는 길로서 개신교의 가짜 전례를 구하기보다는 순교자로서의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기에 더욱 어리둥절하였다. 가톨릭의 전례만이 합법하고 진실한 유일한 길이다. 나는 이 사람들이 어째서 성 이냐시오의 영신 수련같은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영신 수련은 성령의 배우자이신 복되신 성모님께서 성 이냐시오에게 직접 전하신 것으로서 수 세기 동안 교황들과 성인에 의해 수행되고 승인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가톨릭 전통 전례가 아닌 타 종교의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신앙에 대한 중대한 대죄이다. 성령 세미나는 이처럼 금지된 종교 활동에서 시작되었다.
가톨릭 신자라도, 심지어 성직자라 할지라도 눈을 크게 뜨고 죄악에 뛰어들어 이단의 관습들을 계속 수행할 것을 고집한다면, 악을 선으로 오판하는 영적인 맹목에 대해 징벌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성직자들이 어떤 벌을 받게 될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알고 계신다.
또 가톨릭 신자들은 성령 세미나 예찬론자들 사이에서 보고되고 있는 기적에 대해서는 쉽게 감동을 받지 않는다. 이 세미나에서 언급된 어떤 것도 문서화되지 않았다. 성령 부흥론자들은 자신의 운동을 인증하기 위해 기적이나 회개을 크게 떠들어대지 않는다. 실제로 기적과 회개를 소리 높여 주장하는 수많은 성모님 발현(일부는 “성령 세미나는 지옥에서 왔다”라는 성모님의 경고 메시지를 주장함)과 관련한 모임이 있다. [8] 자신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로 칭하며 치유와 회개를 주장한 스페인의 클레멘스Clemente와 같은 자생적인 현시자도 있다.
기적은 다른 자연적 원인이 전혀 없을 때 진정한 기적으로 인정된다. (루르드에서는 1989년 현재 오직 65개 만이 교회에 장신 승인된 기적이라고 발표하였다)
또 기적 진정 하느님께서 일으킨 기적이 되려면, 기적이 전하는 메시지가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일치하여야 한다. 이 부분에서 성령 세미나가 설 자리를 잃는다. 이단적이고 거룩하지 않은 종파로부터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가톨릭적인 것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교리나 잘못된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특별한 현상을 이용하려 한다면 가톨릭교회는 이를 “거짓된 경이로움”으로 판단한다. 이런 거짓된 경이로움을 인간이 만들어내거나 악마에게서 오는 현상이다. 빈센트 미셀리 신부가 적그리스도The Antichrist라는 연설에서 지적했듯이 “이러한 것들은 진정한 종교가 아닌 거짓된 종교로 이끌기에 거짓된 경이로움이라고 불린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이런 발현들을 분간하는데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전통적인 수덕신학과 신비신학에 포함된 “영혼의 분별”에 관해서는 2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우리의 교리와 반대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평신도가 다른 개인에게 손을 얹고 뭔가 부산을 떨고 난 후 그가 소리치며 선언한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다.” 가톨릭의 교리에 따르면 이런 행위는 형편없는 시건방진 행위이다.
가톨릭교회는 어떠한 명백한 초자연적 징후도 절대로 보는 그대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가르친다. 절대로! --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기에 너무 쉽기 때문이리라. 성 마가렛 마리아 알라코크Margaret Mary Alacoque와 교회로부터 공인을 받은 다른 진정한 현시자들이 하늘이 보내준 현상의 진위를 결정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며 고통받았는지가 그 증거가 될 것이다.
이 성령 세미나에서는 이러한 기준에 일치되는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 사실 성령 세미나는 이러한 가르침이 존재하지 않거나 아예 배제된 것처럼 행동한다. 이 세미나에 참석한 대부분의 성령 세미나 주의자들은 이러한 가르침이나 지혜로운 규정에 따른 “영적 시험”을 하여야 하는 의무에 대해 전혀 모르는 단순하고 무지한 사람들 같다. [9]
자녀를 스튜벤빌 대학에 보내려는 부모는 스캔론 신부가 “스튜벤빌에 있는 프란치스코 대학의 모든 학부 학생의 75%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기 위해 기도를 받았다”라고 큰 자부심으로 떠들며 자랑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또 버스 한 대당 한두 명의 스튜벤빌 학생들이 이 세미나를 위해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를 감안하면 스튜벤빌 학생들은 이 대학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성령 세미나에 언제나 노출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리지어 돌다
스캔론 신부의 가치도 없는 원리를 하늘을 찌를듯한 높이로 들어 올린 터무니없는 강연이 끝나고 이 성령 세미나는 토요일 밤의 댄스 대회로 이어졌다. 물론 이 “토요일 밤의 열기”의 종교적 접근은 ‘사목활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위엄있게 진행되었다. 이 시간은 성령 세미나의 디바, 밥시 블리스델Babsie Bleasdell이 한 시간 동안 마이크를 잡고 “그녀의 일을 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이 시간은 블리스델의 강연과 기도의 시간이었으며, 성령 부흥 주의자들이 침례교회 스타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두려움과 의심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라지게 하시고, 주님의 성령을 기쁨의 성령을 내려주옵소서!”라고 기도를 선창하면 듣고 있던 청중들은 소위 “거룩한 몸짓”이라 칭하며 열광하고 미친 듯 몸을 흔들어댄다. 그리고 밴드는 격앙된 분위기에서 에너지가 느껴지는 록 스타일의 찬양가를 연주하였다. 어느 순간 좋아하는 록 밴드에 열광하는 팬들처럼 청중들은 홀 앞으로 몰려들어 열광하며 춤을 추는 록 밴드의 콘서트를 방불케 하였다. 블리스델은 흥을 부추기며 재미있게 놀기를 부추기고 있다. 하긴 이런 상황에서 제임스 브라운의 "Papa's Got a Brand New Bag" 정도를 연주하는 것도 조용하게 느껴질 정도다.
블리스델은 계속해서 널리 알려진 성령 세미나의 방법을 사용했다: “이제 여러분 중 두통이 사라진 경험을 한 사람들은 손을 들어 주세요... 등등” 그리고 어느 순간 종교적 황홀경에 빼진 스캔론 신부는 무대 중앙에 올라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군중들에게 말한다: “나는 초자연적 발현을 본 적은 없지만, 지금 이 세미나에 참석한 많은 이들의 몸속으로 내려가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안의 더러운 더미를 움켜쥐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더러운 더미를 움켜쥐신 것을.” (점점 절규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님 끌어 올려주세요! 지금 제거해 주세요! 없애 주세요. 성령으로 그 빈 곳을 채워주세요! 쓰레기는 버리고 성령을 그 속에 채워주세요!!” 군중들은 외치고 있다. “주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을 찬양하라. 알렐루야, 알렐루야.” 그 자리에 모인 모든 군중이 모여 “치유기도”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성령 세미나의 간부들을 매우 유치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세미나를 지켜보면서 이런 인상은 더욱 굳어졌다. 블리스델은 군중들을 향해 열기를 더욱 부추기며 외친다. “주님 앞에서 사랑하고 춤을 추자... 주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스캔론 신부를 포함한 그 자리에 온 사제들과 주교들도 인생을 허비하며 춤판에 뛰어들었다. 7,500명의 성령 세미나 참석자들은 샘 제이콥스 주교가 여성(아마도 사복을 입은 수녀로 보인다)과 팔짱을 끼고 다소 서툴지만 캉캉 춤의 발올리기 같은 춤을 주는 광경을 보고는 환호하며 열광하였다. 어느 순간 블리스델 오른쪽에는 제이콥스 주교가, 왼쪽에는 또 다른 주교가 서서 온몸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가슴에 달린 십자가가 춤을 추는 사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그 모양에 맞춰 손을 흔들고 있다.
저기에 있는 주교들은 종교지도자라기보다 다이아나 로스 같은 팝스타처럼 보였다.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할수록 교회의 존엄성을 떨어뜨리는 것 같다.
성령 세미나의 문제점
실제 사용되는 주요 활동에 대한 충분한 자료는 회의장에 비치되어 있었지만, 각각의 난해한 섹션에 대해 설명하는 카탈로그는 없었다.
하지만 이 활동과 관련하여 다양하고 수많은 신학적 문제를 완벽히 다루는 것은 본 기사의 범위를 많이 벗어난다. 이미 언급된 것 이외에도 가톨릭의 성령 세미나 활동의 더 두드러진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전반적으로 이 활동은 신앙에 맞서는 죄악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가톨릭교회 바깥에는 구원이 없다고 가르치는 세 가지 ex cathedra(성좌선언, 교황이 공포한 교회의 공식 교리) 교리 선언이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주님이시자 구세주의 소리로 세워진 신성불가침의 로마 교회가 굳게 믿고, 고백하며 설교한다.... 가톨릭과 함께 살지 않는 사람들, 이교도뿐 아니라 유대인들과 이단자들과 분리주이자들 또한 영생의 참여자가 될 수 없으며, 준비된 영원한 불길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선포한다. 악마와 그 천사를 위하여 생명의 종말이 오기 전에 양 떼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첫째,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피를 흘리더라도 그가 가톨릭교회의 품과 일치 안에 머물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10]
이러한 완전한 가르침에 더해 S.T.D.의 Louis LaRavoire Morrow 주교에 의해 요약된 가톨릭 도덕 신학에는 “가톨릭 신자가 비 가톨릭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신앙에 대적하는 대죄를 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거짓이라고 믿고 있는 종교에 믿음을 고백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11]
하지만 가톨릭 성령 세미나의 선구자인 케빈 라나한의 도입으로 들어온 이 운동은 가톨릭 신자들이 개신교의 시체에서 영적 수혈을 구하는 기괴한 의식을 수행하고, 그렇게 한 것에 대해 하느님이 “성령이 넘치도록 가득 채웠노라”라고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파문된 이단으로부터 성령의 거룩함을 찾고 협력하는 짓(트렌트 공의회의 파문에 어떤 개신교도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은 진실된 하느님의 종교 활동일 수 없다.
교황 비오 11세는 종교 간의 교류 프로젝트를 심하게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사도좌는 이러한 모임에 결코 참석할 수 없으며, 가톨릭이 이러한 행사에 격려나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어떤 이유를 대더라고 적법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지지한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와는 전혀 다른 거짓된 기독교를 지지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2) 성령 세미나는 비오 11세와 비오 12세가 규탄한 원칙을 따라 결성된 운동이다.
교황 비오 11세와 비오 12세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진보적인 창작물보다는 교회의 변하지 않는 전통에 근거하여) 종교 간의 교류 활동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였다.
교황 비오 11세는 교황 칙령 Mortalium Animos를 통해 성 요한은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는 주님의 기도와 “서로 사랑하라”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언급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요한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훼손되고 타락한 형태를 공연히 설파하는 사람들과의 어떠한 교류도 엄하게 금하였으며, “누구든지 이 교리를 가지고 너희에게 오지 않으면 그를 집에 들이지 말고, 어떤 말도 듣지 말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얼른 집에서 떠나라고 하여라”라고 하셨다.
교황 비오 11세는 더 나아가 종교 간의 교류 프로젝트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사도좌는 이러한 모임에 결코 참석할 수 없으며, 가톨릭이 이러한 행사에 격려나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어떤 이유를 대더라고 적법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지지한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와는 전혀 다른 거짓된 기독교를 지지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12]
이미 언급하였듯이 가톨릭의 성령 세미나는 이런 금지를 비웃고 생겨난 산물이다.
또 교황 비오 12세는 1949년 에큐메니즘(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 운동)에 관한 지침에서 가톨릭과 비 가톨릭 사이의 어떤 교류가 필요하다면 (비 가톨릭 신자를 하나의 참된 신앙으로 개종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만) 모든 활동을 인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충만히 보유하고 있다”라며 진리, 즉 다른 교파로부터 기독교를 구성하는 어떤 것도 가져와야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였다. [13]
가톨릭의 성령 세미나는 그 추진력을 얻기 위해 거짓 종교의 모의 성사(성령의 세례)를 “반드시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비오 12세의 엄한 가르침을 거만하게 경멸하는 행위이다.
3) 종교에 무관심한 자들을 선호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이 운동은 개신교와의 불법적인 협력을 통해 탄생하였다. 오늘날까지 설립자 케빈 라나한은 여전히 초기 교회의 성령 부흥 신자들을 위해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으며, ‘토론토 블레싱’과 같은 개신교 분열단체를 진정한 성령의 운동이라고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30주년 기념 성령 세미나에는 초대손님으로 2개의 개신교 단체가 참석하였다. 성령부흥회의 책들을 출판하는 비 종파적인 출판사 Destiny Image Publications가 ‘토론토 블레싱’을 홍보하는 책자 등 관련 도서를 한쪽에 전시, 판매하고 있었다. 개신교의 성령부흥회 전문 잡지인 Charisma magazine은 “다음 달부터 우리 잡지에서는 매 호마다 ‘가톨릭 성령 세미나’에 관한 내용이 실릴 것”이라는 약속을 하며 군중들에게 자신들의 발간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실제로 성령 부흥 운동과 에큐메니즘은 서로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 성령 부흥 운동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신교를 기독교의 또 다른 유효한 종파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64년 경애하는 교황 비오 9세께서는 수 세기 동안 변치 않을 교리와 완벽한 논리를 갖춘 그의 기념비적 ‘오류 교과(Syllabus of Errors)’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개신교를 다른 형태를 지닌 참된 그리스도교와 동일하다고 믿는 것은 오류이다...” [14] 이제 가톨릭의 성령 세미나는 기원과 실천에서 이 오류에 빠졌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4) 성령 세미나의 지속적인 성장은 전통적인 트리엔트 라틴 전례 미사의 부재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의 성령 세미나 운동은 트리엔트 라틴 미사가 쇠퇴하고 개신교 스타일의 새로운 미사 전례인 Novus Ordo가 도입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이 전례 형식은 새로운 것에 대한 실험과 즉흥적 임기응변에 유리한 형식이다. 이 글에서 언급된 전례의 축약은 트리엔트 라틴 전례 미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타비아니 Ottaviani 추기경은 트렌트 공의회의 교리주의적 가르침과 일치하는 트레엔트 라틴 전례 미사가 가톨릭과 맞서는 이단이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다고 언급하였다. [15] 가톨릭 성령 세미나에 깃들어 있는 ‘트리엔트 라틴 전례 미사는 세상 곳곳에 성령의 강림에 방해가 된다’는 그릇된 관념을 보면 추기경의 말이 맞음을 추측할 수 있다.
5) 성령 세미나는 성령의 분별에 대한 가톨릭의 가르침을 무시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하였지만 성령 세미나는 “예언하기”나 “방언으로 말하기”와 같은 특이한 현상을 조장한다는 점에 더 주목하여야 한다. 위대한 신비주의 작가이자, 교회의 박사인 성 요한은 영혼들은 그러한 징후들을 찾으려 하는 곳으로부터 멀리 도망쳐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이 위대한 성인이 사적인 계시에 대해 말한 것은 모든 현상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어떤 점에서 악마는 항상 (이례적인 현상에) 너무도 자유롭게 개입하므로 인간이 악마에게 속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이 저들을 거부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진리와 안전에 대한 모습은 악마가 주어진 대로이다.” [16]
그리고 녹스Knox 몬시뇰은
“여러분이 배운 적이 없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악마에서 온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에 드러나는 현상이며, 지금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17] 그런 위험에 자신을 무방비하게 방치하는 것은 광기에 가깝다.
6) 그것은 세 가지 면에서 주술적인 뉴에이지 운동과 현저하게 유사하다,
a) 비 가톨릭적인 원칙을 통합 요소로 하는 모든 교회의 일치 운동이며, 이 경우 표면적인 요소는 “성령의 세례”이다.
b) 성령 세미나는 경험의 종교이다. 성령 세미나 주의자들은 결코 “성령의 세례”에 대한 완전한 신학적 설명을 하지 않으며, 이것은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런 모습은 뉴에이지의 경향을 따른다.
c) 저들은 자신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전통적인 가톨릭의 교리를 비웃는다.
이런 이유로 ‘가톨릭 성령 세미나’의 문제는 현실이며 심각하여 가볍게 넘길 수 없고, 교회가 항상 단죄하던 것을 갑자기 축복해야 하는 새로운 “유기적인 전통”에 기대 호소함으로써 교회 법정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아타나시오 신경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으려면 가톨릭 신앙을 지켜야 하며, 가톨릭 신앙을 완전하게 지키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을 받으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가톨릭 내 성령 세미나의 거칠게 뒤섞여버린 진리와 오류, 그리고 이단적 관행에 연결된 모든 것은 자신의 신앙을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마음을 빼앗긴 백성
가톨릭 사학자인 존 라오John Rao 박사는 역사를 통틀어 피정복자들은 종종 정복자의 특성을 띠게 된다고 하였다. [18] 가톨릭의 성령 세미나에 대한 보다 적절한 묘사를 정형화하기는 어렵다.
성령 세미나는 구세주께서 주신 귀중한 유산을 버리고, 개신교에서 건너온 관습을 정신 사납게 베껴 거룩한 교회의 선조들의 무덤에서 광란의 춤을 추는 정복당한 이들의 모습이다. [19]
현재 우리의 거룩한 교회를 장악하고 있는 성령 세미나와 에큐메니즘(교회 일치 운동)은 “루터의 정복”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런 움직임에 저항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일 뿐 아니라 전통적인 가톨릭 교리와 전례의 목을 죄며 기도하는 가톨릭 성령 세미나 주의자들을 대신해 하늘에 기도하는 것도 우리의 의무이다.
각주
1) Rev. Dr. L. Rumble, M.S.C., "Assemblies of God" and other "Pentecostal Churches", p. 18
2) Peter Herbeck, "The Titanic Battle", Renewal Ministries Newsletter, Ann Arbor, MI, May, 1997
3) Whalen, op. cit. pp. 179-180
4) Msgr. Vincent M. Walsh, What is Going On?, (Wynnewood, PA, Key of David Publications, 1995), p. 31.
5) Kevin and Dorothy Ranaghan, Catholic Pentecostals, Paulist Press, New York, 1969, p. 15.
6) James Connelley, O.S.C., "The Charismatic Movement," in As the Spirit Leads Us, (Paulist Press: New York, 1971).
7) I want to make it clear, in case anyone misunderstands this format, that Bishop Jacobs was not trying to induce the crowd to proclaim HIM (Bishop Jacobs) as Jesus, this is simply the emotional charismatic way of eliciting from the audience some sort of act of faith.
8) It should be here stated that I (and Catholic Family News) do not follow or promote any of the unapproved apparitions of recent history or before. -- [J.V.]
9) Two excellent sources of Catholic theological treatment on Extraordinary Phenomena can be found in The Spiritual Life by Fr. Adolph Tanquerey (out of print) and The Three Ages of the Interior Life [2 volumes] by Fr. Reginald Garrigou-Lagrange, OP -- available from Catholic Family News.
10) Pope Eugene IV, Exbulla, "Cantate Domino", Feb. 4, 1441.
11) Most Reverend Louis LaRavoire Morrow, S.T.D., Bishop of Krishnagar, My Catholic Faith, (originally published in 1949), p. 193.
12) Pope Pius XI, Mortalium Animos, On Fostering True Religious Unity, Jan. 6, 1928.
13) "Instructions on the Ecumenical Movement," A.A.S., Jan. 31, 1950, cf. Romano Amerio, Iota Unum, (Sarto House, Kansas City, 1996), p. 549
14) The full quotation of Proposition #18 reads that it is an error to say that "Protestantism is nothing more than another form of the same true Christian religion in which form it is given to please God equally as in the Catholic Church", Pope Pius IX's Syllabus of Errors as written in Dogmatic Canons and Decrees, Tan Books and Publishers, Rockford, IL
15) The Ottaviani Intervention, (Tan Books & Publishers, Rockford, IL), p. 27
16) St. John of the Cross, Ascent of Mount Carmel, Chapter 27
17) Msgr. Ronald Knox, Enthusiasm,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50), p. 551.
18) Dr. John Rao, "Why Catholics Cannot Defend Themselves" -- An address given by Dr. John C. Rao (D. Phil, Oxford University, Associated Professor of History, St. John's University) on the occasion of the first anniversary of the Dietrich von Hildebrand Institute, Feb. 18, 1993, and printed in the book Americanism and the Collapse of the Church in the United States, p. 42
19) When I say Protestant practice, I really mean Pentecostal-Protestant practice, since I know many sober Protestants would never go anywhere near Pentecostalism.
“나의 자녀들아, 너희가 잘못에 빠져있구나. 성자는 당신의 집, 교회에서 너희 구원을 위해 간결하고 직접적인 계획을 너희에게 주었다. 온갖 새로운 것과 변화를 당장 멈추어라. 더러운 것과 타협해서는 영혼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성신을 부르짖는 자들아, 암흑의 왕자가 너희에게 암흑의 영을 보내라 명령하고 있구나. 나의 자녀들아, 너희가 천사조차 가기 두려워하는 곳의 땅을 밟고 있다. 너희는 성신에게 오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성신은 전능하신 성부의 뜻대로 전해지는 선물이다. 이제 당장 너희는 어둠의 지역에서 방황하는 것을 멈추거라.”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6. 6. 18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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