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불길은 지옥에서 온다
커다란 고난
“나의 딸아, 정화의 장소인 연옥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곳에서 받는 고통은 심연의 지옥과 같으나, 곧 구원받을 줄 아는 곳이다. 영혼들은 성부를 기다리기만 하는 황량한 갈망을 품고 있다. 나의 딸아, 뜨거운 불의 고통을 견디게 해주는 이 마음의 갈망은 기다리는 모든 영혼의 존재를 품는 위대한 것임을 명심하여라.”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 성모님, 1975. 3. 29
기도
“나의 딸아, 속죄의 기도를 계속하여라. 참고 기도하여라. 너희의 기도하는 시간에 연옥의 많은 영혼이 풀려날 것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 성모님, 1975. 4. 5
SOCIETY
“나의 딸아, 네게 연옥의 말을 전할 것을 원하였다. 많은 하늘의 군대는 정화의 장소를 지나 천국으로 오는 영혼들로 채워지고 있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 성모님, 1973. 4. 14
LOOK
“나의 딸아,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연옥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너희는 지상에서의 매 순간 속죄와 고난으로 자신을 정화하는 길을 찾으려 할 것이다. 지상에서의 시간을 얼마 되지 않으나, 장막을 넘으면 시간은 영원하고 끝이 없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 성모님, 1974. 5. 22
OnePeterFive.com 2018. 10. 30 기사:
라라미 히르쉬 Laramie Hirsch 작성
성 미카엘 대천사 축일부터 할로윈으로 알려진 모든 성인의 축일까지의 시간은 나에게 항상 지옥을 생각하며 나를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가을이 북반구를 뒤덮을 때면, 해가 짧아지고 어둠은 짙어진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은 내세를 한 번쯤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지옥의 형벌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시지 않았나? 미카엘 대천사 축일 이후에는 블랙베리를 먹으면 안 된다는 속설이 있는데, 그 날 이후에 악마가 하늘에서 떨어져서 블랙베리 덤불에 내려앉아 가시를 저주하고 그 위에 똥을 뿌렸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이다.
할로윈이 다가오고 만성절을 준비하다 보면 연옥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제 연옥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리 쉬운 곳이 아니다. 이곳은 보속의 공간이다. 지상과 천국의 중간쯤에 있는 연옥은 세상에서 지은 모든 죄악을 깨끗이 씻어 하느님 앞으로 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곳이다.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은 결국에는 천국에 가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옥이 무슨 대기실처럼 마냥 기다리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불길로 뒤덮여 있다. 연옥의 영혼들은 불길 속에서 타게 된다. 너무도 고통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그곳의 영혼이 어떤 기도를 하더라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구할 수 없다. 불길 속에서 모든 죄악을 정화할 때까지 갇혀있어야 한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연옥의 불길은 지옥의 불길을 같이 쓴다는 점이다. 이 점을 같이 생각해보자. 지옥의 불길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태워버리기 위해 쓰인다. 우리가 죽어 천국에 직접 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격이 없다면, 우리 영혼은 하느님과 함께하기 전에 지옥의 불길로 우리가 지닌 모든 죄악을 씻어내 깨끗해 져야 한다.
지옥과 마찬가지로 연옥에서도 상실의 고통과 감각의 고통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상실의 고통은 우리의 눈이 빛을 바라보듯이 우리 영혼이 존재하는 최고의 목적인 지선하신 천주님의 시야에서 잠시 동안 벗어나는 것이다. 이는 영혼을 괴롭히는 정신의 갈증이다. 감각의 고통, 즉 고통의 감각은 우리가 육체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같다는 것이다. 그 고통의 본질이 교리로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이 고통이 불로 인한 것과 또 다른 종류의 고통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교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교부들은 연옥의 불은 지옥의 불이라고 말하면서 부유한 식탐꾼이 “Quia crucior in hac flamma (나는 이 화염 속에서 잔혹하게 고통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성인들의 삶과 전설로 설명되는 연옥 제9장: F.X. Schouppe 신부 저
이 슈페(Schouppe) 신부의 의견은 위대한 신학자들과 교부들에 의해 공유되지만, 신부는 이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이 만장일치는 아님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도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다음의 증언들은 연옥의 불이 지옥에 의해 공유되고 있음을 증언하는 성인들의 말이다.
연옥의 가장 큰 형벌은 암흑의 첫 번째 층에 있다. 악마들은 그곳까지 올 수 있다. 열기와 냉기, 어둠과 혼란이 있으며, 모두 지옥의 형벌에서 비롯된다. – 성 브리짓(St. Bridget)의 계시
가장 낮은 곳은 맹렬한 불길이 가득하지만, 지옥만큼 어둡지는 않다. 그 광경은 거대한 화염을 내뿜는 광활한 불타는 바다와 같다.
– 로마의 성 프란치스코가 본 계시
“같은 불이라도 저주받은 자는 괴롭히고, 선택받은 자는 정결케 한다.”
– 위대한 성 그레고리우스 교황
그 고통은 지옥의 것과 같다.
– 제노아의 성녀 카타리나
거의 모든 신학자들은 지옥에 있는 저주받은 영혼들이나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같은 불의 고통을 겪는다고 가르친다.
– 성 로베르트 벨라르미노
성 벨라민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겪는 고통과 연옥에서 겪는 고통을 비교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더 나아가 연옥에서 받는 가장 작은 고통이 지상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합한 것보다 크다고 말한다. 성 요한 보스코는 지옥의 가장 바깥쪽 벽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손에 화상을 입었다고 하였다. 이러한데 지옥의 불에 타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일까?
지옥의 불은 지상의 어떤 불과도 다르다. 사실 지상의 불은 지옥이나 연옥의 불에 비하면 차갑다. 지옥의 불은 분명 고통을 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지옥에서 우리는 물속의 물고기처럼 불의 심연에 빠지고, 불길은 우리 안으로 들어가서 내면까지 바짝 태운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이다. 지옥에 간다면 영원히 이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이처럼 강렬한 불일지라도 우리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불길은 어떤 빛도 내뿜지 않기 때문이다.
빛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아마도 최초의 선물일 것이다. 하지만 지옥에는 어떠한 선물도 주지 않으셨다. 볼 수 있다 할지라도 지옥의 열기와 유황 연기가 눈을 찔러 차마 눈을 뜨지도 못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는 버려진 맹인과 같다. 그러나 연옥에는 미약하나마 약한 빛이 있다. 이 빛이 연옥과 지옥을 구별하는 것 중 하나이다.
연옥에는 지상의 어떤 삶보다도 훨씬 더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연옥의 영혼은 언젠가는 하느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보장에 위안과 위로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혼은 하느님과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완전히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그들의 뜻이 하느님의 뜻으로 바뀌어 하느님의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천국이 그들 앞에 열리면, 자신의 더럽혀진 오점을 지닌 채 하느님 앞에 서기보다는 오히려 지옥 불에 스스로를 던지려 할 것이다. 그들은 기꺼이 사랑의 마음으로 자신을 정화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이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
그들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있으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때까지 스스로 그곳에 머무를 것이다. “그들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어떤 깊은 평화로 위안 삼는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지옥의 고통과 같다. 하지만 사랑으로 마음에 간직한 기쁨을 생각하면 그곳은 그들의 낙원이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지옥보다 강력하다. 사랑은 모든 불꽃과 불길을 빛으로 만든다. 행복한 상태! 그곳의 불꽃은 사랑과 자비의 불꽃이기에 섬뜩하기보다 오히려 원하게 된다.”
– 살레의 성 프란치스코의 성신 제9장 중에서
천국에 있는 성인들이 느끼는 평화를 제외하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평화와 비교할 수 있는 평화는 없으며, 이 평화는 이 영혼이 하느님께로 더 가까워질수록 늘어나며, 죄악이 씻길 때마다 더 늘어난다. 죄의 찌꺼기가 장애물이며 연옥의 불길은 이 찌꺼기를 씻긴다.
– 제노아의 성녀 카타리나
많은 사람들은 결국 어느 시점에 가서 지옥 불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많이 불안해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 영원한 지옥 불의 형벌을 피하는 이들 중 대부분은 먼저 연옥의 불을 지나야 한다. 하지만 성 브리짓이 말했듯이 천국이 그 영혼들이 다다를 최종 목적지임을 아는 것은 마치 병상의 환자가 손님의 방문과 위로를 받는 것과 같은 위안이 된다.
더불어 연옥에 있는 영혼이 이승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도가 올라와 갑작스레 은총을 받는다면 얼마나 더 기쁘겠는가? 누군가의 기도로 갑자기 짊어진 짐의 무게가 덜어지고, 연옥에서의 시간이 단축된다면 얼마나 놀랍고 경이롭겠는가? 지상에서 살아 있는 자의 기도는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을 도울 수 있다. 우리는 연옥 영혼들이 고통받는 시간을 줄여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다. 연옥에 갇힌 가여운 영혼들은 하느님께 직접 기도할 수 없다. 하지만 지상에 있는 연옥 영혼들의 대리인들이 하느님께 자비를 청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이미 죽은 사랑하는 이들과 연옥에서 고통받으며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을 기억하여야 한다. 연옥은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의 불을 공유한다. 만성절 동안 여러분은 당신의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자. 그들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마침내 천국의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도록 그 고통에서 그들을 영원히 풀어주시기를 하느님께 기도하자.
“나의 자녀들아,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너희의 참회와 시련을 바치는 것을 잊지 말아라. 아주 작은 수의 이들만 천국으로 직접 들어가며, 장막 너머로 온 많은 이들이 연옥에서 정화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저들은 너희의 도움밖에 의지할 데가 없구나. 너희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 그러면 다가올 사순절에 그들을 위해 많은 은총이 내려질 것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78. 2. 1
천국으로 인도
“연옥은 추방에 대한 상실감과 큰 고통이 있는 곳이지만, 마지막에 천국으로 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마음이 편한 곳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76. 8. 5
커다란 고난
“나의 딸아, 정화의 장소인 연옥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곳에서 받는 고통은 심연의 지옥과 같으나, 곧 구원받을 줄 아는 곳이다. 영혼들은 성부를 기다리기만 하는 황량한 갈망을 품고 있다. 나의 딸아, 뜨거운 불의 고통을 견디게 해주는 이 마음의 갈망은 기다리는 모든 영혼의 존재를 품는 위대한 것임을 명심하여라.”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 성모님, 1975. 3. 29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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