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ert Francis Vasa (1951년 5월 7일 생)는 미국 가톨릭 교회 고위 성직자입니다. 2011년 1월 24일 월요일, 바사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산타 로사 교구의 Daniel F. Walsh 주교의 부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오레곤 주에 있는 베이커 교구의 다섯 번째 주교였습니다.
바사 주교: 복장, 태도, 규율은 우리가 미사를 어떻게 소중히 여기는지 보여줍니다...
“주님의 집인 교회가 안에서 더욱 깨끗이 정화되어야 한다. 여인들이 이교도 복장을 하고, 혹은 거의 벌거벗은 채로, 고해성사도 보지 않은 채 성자의 성체를 영해서는 안된다! 많은 자들이 성자의 성체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구나! 저들이 보속도 없이 성자를 영하러 오고 있다! 나의 딸아, 이는 신성모독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4. 12. 31
로버트 바사(Robert Vasa, 오레곤 주 베이커 교구) 주교의 다음 게제문은 Catholic Sentinel지 2000년 6월 30일자에 게재되었다:
수 년 전 저는 워싱턴 DC를 방문해서 알링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 묘에서 근위병 교대식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교대식의 단순하면서도 계산된 우아함에 너무나 충격을 받아 몇 분이지만 더 머물면서 그 젊은이들이 같은 동작으로 단순하고도 계산된 우아함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제복은 먼지 하나 없이 완벽했고, 구두는 빛이 났고, 경비병들의 얼굴은 화강암처럼 엄숙하게 굳어 있었으며, 걸음걸이는 정확하게 들어 맞아서 보는 모든 이들이 집중해서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위의 모든 것을 생각해보면, 그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매우 심각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가톨릭 교회에서 하는 일과 알링턴에서의 경험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거룩한 미사 성제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입니다. 사제와 성직자들이 교회 안의 중앙 통로를 따라 제단으로 갈 때 알링턴의 경비병들을 흉내 낼 것이라는 기대는 없지만,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행동일 것입니다. 알링턴의 경비병들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무덤 앞이기에 더욱 엄숙하게 의식을 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그 행위에 마땅한 위엄이 깃들게 된 것입니다. 모든 가톨릭 교회의 모든 제단은 불변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국립묘지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큰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제가 기쁨이나 인류애가 결여된 종교적 엄숙함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지만 알링턴에서는 가톨릭 교회에 필요한 무언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경비병이 보여주는 위엄은 그 장소의 위엄을 가리킵니다. 국립묘지에서는 침묵이 필요한 곳입니다. 침묵은 장소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자 그 장소의 의미에 대한 존경의 표시입니다. 침묵은 그 장소에 맞게 강력하게 지켜집니다. 질서가 지켜지는 것입니다.
일상적이고 변덕스럽지 않은 예식 도중 한 경비병이 갑자기 줄에서 오른쪽으로 두 걸음 비스듬히 빠져나왔습니다. 그 경비병은 어깨에서 소총을 풀어 손에 쥐고 힘차게 외쳤습니다. “방벽 뒤로 물러서 주십시오!” 그 경비병은 더 나은 사진을 찍기 위해 금지된 지역으로 넘어간 한 여성 방문객에게 지정된 구역으로 물러나라는 명령을 반복하였습니다. 경비병은 다시 대열로 돌아와 예식을 재개했습니다. 사과도 설명도 없었습니다. 그곳 표지판에는 “무단침입 금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금지”의 어떤 부분이 이해되지 않나요?
세속일지라도 신성한 땅으로의 침입은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장소의 존엄성은 질서와 그 질서의 준수를 요구합니다. 다시 한 번, 저는 이런 엄격하고 철저한 집행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의 존엄성은 더욱 함양되고 지켜져야 합니다. 이 신성한 장소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없다면 묘지 주변 지역의 신성함은 금세 상실될 것입니다.
나이 어린 네 다섯 살된 아이들이 이 경비병처럼 분장을 하고 경비병 뒤에서 함께 앞뒤로 행진한다면 정말 귀엽지 않겠습니까? 귀여울 수는 있겠지만 장소의 품격이나 행사의 엄숙함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귀엽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행동들을 우리 교회에 들여 놓으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귀엽다”라는 것은 맞는 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알링턴 국립묘지는 거기에 맞는 장소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영혼과 신성을 모시고 있는 우리 교회도 맞는 장소가 아닙니다.
수 년 전 교황(요한 바오로 2세)은 자신의 교구인 로마 교구에서의 복장 규정을 다시 제정하셨습니다. 반바지나 민소매 셔츠를 입은 신자는 누구라도 교회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미국인들은 자신만의 자유와 권리 의식으로 이런 규칙들을 부조리하다고 반항하며 반대합니다. 하지만 그 규칙들은 제정되었고 시행되었습니다. 교회를 보기 위해 바다를 건너 온 관광객들은 복장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문 앞에서 되돌아 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전례 활동이 진행되지 않는 시간에 다시 방문해야 했습니다. 교황께서는 매우 구체적인 방법으로 하느님의 집에 대한 올바른 공경심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셨습니다.
교회 관리자들 사이에서 신자들 옷차림이 어떻든 교회에 오는 자체를 기뻐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신자들에게 합당한 말과 올바른 성향 및 자세를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무명용사 묘역의 경비병이 체크무늬 반바지와 탱크톱을 입고, 테니스화를 신고 예식을 치른다면 미국 국민은 당연히 분노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만일 그들이 그런 옷을 입고 행사를 치르러 왔다면, 그 행사에 임하는 적절한 내면적 자세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전례는 신성한 행사입니다. 우리가 그 행사를 어떻게 치르느냐는 아마도 우리가 그 자리에 참석했다는 사실만큼이나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행사, 신성한 미사를 위해 교회에 온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이는 수행하는 일의 품위에 걸맞은 예의를 요구합니다. 비록 그 일이 사적인 기도를 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적절한 예의를 요구합니다.
알링턴의 병사들은 그들이 하는 일의 신성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복장, 품행, 규율은 모두 그들이 그 신성한 행사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나는 그들이 대표하는 것이 자랑스럽고, 그들의 규율이 말하는 가치가 자랑스럽고, 명예와 충성심이 수호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알고 있는 이 나라가 자랑스럽습니다.
이러한 가치를 위해 사람들은 살고, 이러한 가치를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바칩니다. 이들 병사들의 복장과 자세는 무명용사 묘역에 묻힌 모든 병사들의 삶과 죽음을 진정으로 기리고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톨릭 신자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바치는 전례의 신성함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옷차림, 태도, 규율은 모두 그들이 전례의 신성함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교회에서 가톨릭 신자들의 복장과 태도를 보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신자들은 교회에 현존하는 예수님과 가톨릭 교회의 가치에 대해 진정한 공경심을 보여야 합니다. 이러한 가치를 위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든 그렇지 않든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 가치를 위해 가톨릭 신자들은 인지와 존경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기꺼이 합당한 복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교도처럼 너희가 거룩한 희생 제사 동안 통로에서 춤을 주고 있구나! 나의 자녀들아, 너희는 주님의 제사에 나올 때에 이교도처럼 입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공경도 사랑도 없이 행동하고 있구나!"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7. 4. 9
"나의 딸아, 다시 말한다. 보다 많은 자제가 필요하다. 우리가 보기에 너희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허락한 옷차림새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혐오스런 것이다. 아이들이 죄를 짓고, 품위를 떨어뜨리며, 다른 사람들을 죄악으로 이끌고 있다. 너희의 육신은 거룩하신 성신께서 기거하시기에 가려야 한다.
"남자는 여자처럼 입어서는 안 되며, 여자 또한 남자처럼 입어서는 안 된다. 반바지나 헐렁한 운동복을 입고 성자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
"이런 불순한 행동에 대한 어떤 핑계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4. 7. 25
"부모들아, 감히 너희 딸들을 음란한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느냐? 부끄럽지 않느냐? 너희는 어떤 본보기를 보이고 있느냐? 너희가 이교도이더냐? "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2. 5. 30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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