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무릎을....
피닉스시의 Thomas Olmsted 주교(USA)는 2005년 2월 17일과 3월 3일 두 번에 걸친 The Catholic Sun 의 기고문에서 장궤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무릎은 힘과 겸손을 상징한다. 미식축구 선수들은 강한 무릎을 사용하여 터치 다운을 향해 달리고, 농구 선수들은 무릎의 힘으로 수비를 하고 슬램덩크를 한다. 반면 가장 높으신 주님의 권능과 위엄을 생각하며,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을 숭배하기에 우리는 성체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
성서 시대에도 무릎은 힘과 겸손의 상징이었다. 하느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숭배의 행위이다. 오직 하느님만이 모든 힘의 원천이기에, 주님이 하시려는 일에 나의 모든 삶과 힘을 바칠 준비가 되었음을 드러내는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인 표현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우리가 무릎을 꿇는 것은 가슴 속에 간직한 믿음의 증명이다. 죽어가는 이의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거나,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기리며 일어서거나,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을 맞으러 나아가 장궤를 하는 일은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할 때 그 어떤 말보다 더 크게 자신을 마음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무릎을 꿇는 행위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관장할 그 어떤 존재에 대한 믿음을 분명히 드러내는 자신의 표현이다.
당연하게도 사순절 기간 중에 장궤를 하는 행동은 성스러운 교회 전례 상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사 중에 무릎을 꿇는 행동은 절대 사소한 행동이 아니다. 이 행동은 우리의 목소리와 귀가 무엇을 해야 할지, 우리의 손과 마음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인도하는 중요한 행동이다.
우리가 성찬식에 모였을 때 우리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경외심과 기도에만 전념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육신이 우리의 육신보다 더 고귀하다는 것을 안다면, 누구나 무릎을 꿇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바티칸 제2 공의회에서 교회가 역설하였던, “신성한 전례에 임하는 완전하고 적극적이며, 의식적인 참여”의 정신과도 일치하며, 인간 육신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
신성한 미사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는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주어 가톨릭 신앙을 얼마나 소중하며, 성체 성사가 우리에게 가중 소중한 보물임을 알게 할 것이다. 미사 중에 합당한 세 가지 자세 중에 장궤는 그 중심에 있다.
▶ 영성체 기도 중에 무릎꿇기
로마 미사 경본에는 영성체 기도를 하는 중에 평신도들이 취해야 할 적절한 자세를 말하고 있다. 42항에 미국 성교회 교구에서는 ‘Sanctus 찬미가 (거룩하시다)에서 영성체 기도후의 아멘 때까지 모두 무릎을 꿇어야 한다. 다만, 건강상의 이유나, 공간의 협소함, 여타 선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는 무릎을 꿇지 아니하여도 된다.’ 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사제가 봉헌식을 끝낸 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는 크게 허리를 굽혀 깊은 절을 하여야 한다. 교구 주교의 다른 지시가 없는 한 ‘하느님의 어린양’ 기도문 후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정하였다.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하느님의 어린양’ 기도문 후 성찬기도 중에는 평신도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장궤를 하여야 한다.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나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만 장궤를 풀고 서 있을 수 있다. 물론 몸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들 중 일부는 무릎을 꿇을 수 없을 것이다. 양로원이나 비슷한 환경의 성당에서는 장궤를 할 수 없을 경우도 있다.
우리의 문제 제기는 장궤를 거부하는 몇몇 교회와 교구에 대해서이다. 장궤틀을 치워 무릎 꿇는 관습을 아예 못하게 하는 곳도 있다.
무릎을 꿇는 행위는 믿는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께 주목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며, 미사때 우리의 목소리와 영혼을 주님께 바치려 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이 갖춰야하는 신앙의 핵심이다. 이미 초기 교회 때부터 그래 왔다. 사도행전에서 성 베드로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9:40) 고 하였다. 그리고 성 바오로는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했다"(20:36). 첫 번째 순교자 성 스테파노가 무릎을 꿇고 그의 원수가 어떻게 용서 받았는지를 보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 남녀 공동체 전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았다.
▶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심
예수님 스스로도 사랑하는 아버지께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음을 기억하자.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에 올라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천주님께 기도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루카 22:42)
장궤를 교회 전례의 기본으로 만든 유명한 성서 구절은 성 바오로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 있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필리 2:10~11)
무릎을 꿇는 것은 믿음을 표현하는 몸짓 이상의 의미이다. 이는 신앙의 근본적인 행동이며, 나의 삶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 모든 피조물의 중심에 계시는 이가 누구 인지에 대한 강한 표현이다. 예수님의 이름아래 무릎을 꿇는 행위는 건강한 영혼과 겸손한 마음을 지닌 이들의 분명한 자기표현이다. 겸손과 흠숭에 수동적이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에 이끌려 무릎을 꿇을 때, 지구의 표면을 바꿀 정도의 강한 힘이 나온다. 은총의 이름으로 이 힘이 전해 질 것이다.
▶ 악마는 무릎을 꿇지 않는다
1700여년 전에 살았던 사막의 아버지 Abba Apollo는 악마는 무릎을 꿇지 않는다고 했다. 악마는 무릎을 꿇을 수가 없다. 악마는 신을 숭배할 수도 없고, 기도를 바칠 수도 없다. 악마는 경멸스레 자신의 코를 보듯 눈을 내리 깔 뿐이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으려 하는 것은 악마의 본질이다.
▶ 왜 우리는 미사 중에 무릎을 꿇어야 하나
무릎을 꿇는 행위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고, 주님을 공경하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전례적 행위이다. 무릎을 꿇는 행위는 성교회에서 바치는 기도에서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다.
이제 우리는 서있는 행동과 무릎을 꿇는 두 가지 다른 행동 중에서 어떤 것이 경건한 미사 중에 맞는 행동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성찬식에서 중요한 점은 성체를 향한 우리의 사랑과 공경 그리고 성체를 대하는 우리의 세심한 마음가짐을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축성된 성체가 보존된 성당을 드나들 때 인사를 한다. 주님의 몸과 피가 실제로 성체와 성혈로 현존함을 알기에 그리스도를 직접 뵌 듯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어 인사를 한다.
감실 안에 계시는 주님을 향한 이 행동은 성당에 들어갈 때 기도하도록 준비시키고, 성당을 나설 때 그리스도의 증거자로서 만들어 준다. 감실 안에 계시는 주님께 무릎을 굽히고 인사를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계획에 순종하고 기꺼이 따르겠다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을 드러내다
미사 시간중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성서 독서 중엔 앉아 있다가도, 복음을 선포 할 때는 모두 일어선다. 찬미의 노래를 부르거나, 종종 향과 복음서를 앞세운 행진을 하면서 복음의 말씀을 새겨듣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서서 복음의 선포를 듣는다. 중보기도 중에도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실 거라는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 서있는다.
사제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하는 성체 기도동안은 가톨릭 교리문답서에서 말하는 “가장 위대하고 거룩한 순간”인 것이다. 서 있는다는 의미는 요한묵시록에 거론되어 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다.” (묵시록 7:9) 큰 환난을 겪어내고 어린양의 피로 자신의 긴 겉옷을 빨아 희게 한 이들이야 말로 서서 하늘의 어좌에 계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님을 찬양하며 기쁜 마음으로 큰소리를 칠 수 있다. 사제가 바치는 두 번째 성체 기도문의 다음 구절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저희가 아버지 앞에 나아와 봉사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분명한 점은 신성한 경전이던, 전례 전통이던 하느님을 대하는 우리의 신앙과 주님께 바치는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경건한 자세로서 장궤를 다른 여러 자세를 비교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해왔다. 영성체를 영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 서 있는 동안 허리를 굽혀 경배를 표현함과 더불어 주님께 대한 순종을 드러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신중히 생각하여야 한다.
여러분은 사제가 성체를 영하기 전에 머리를 숙이는 것보다 먼저 무릎을 꿇는 다는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어째서 평신도들에게는 고개만 숙이라 하고 사제들은 무릎을 꿇을까? 사제는 누구보다도 성체 안에 깃든 그리스도의 현시를 믿고, 경배하기에 자연스레 취해지는 행동인 것이다.
평신도중 소수는 아직도 성체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성체를 주지 않을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장궤를 장려하는 많은 선한 움직임에 감사드리며, 성스러운 성찬 전례동안에 서 있는 자세의 본성과 우리 그리스도 공동체의 통일된 표현의 참된 가치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 줄 것을 바란다. 전례 규범에 예외를 두는 것은 다른 이들을 흩어지게 할 것이며, 우리 구세주와 연결되는 가장 성스러운 순간을 방해 할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 정신을 가장 집중하여야 할 때이다. 성체를 받는 다는 것은 개인의 경험일 뿐 아니라, 교회 전체와 일치되는 상태이다.
번역 : 성미카엘회 회장 송바울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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