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체성사 (Eucharist)/①버나드 스튜어트 주교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를 반대하는 버나드 스튜어트 주교

성 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2020. 2. 9. 19:12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를 반대하는 버나드 스튜어트 주교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는 하여서는 안되며, 천국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는 전능하신 성부께서 보시기에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이기에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전능하신 성부께서 싫어하는 길을 너희가 고집한다면 너희에게 떨어질 징벌만 더해질 뿐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84. 6. 30

 



Bernard Stewart. 대학 최우수 학생 기념사진. 1916

SOURCE: St Josephs Christian Brothers College North Melbourne 1916 An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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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성체성사를 나누고 받는 방법에 대한 사목보고서에서 발췌한 것이다. (1976년 그리스도 성체 대축일에 호주 샌드허스트 Sandhurst 교구의 버나드 D. 스튜어트 Bernard D. Stewart 주교가 주도하여 만든 보고서이다.)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의] 거부와 폐지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는 거의 9세기 무렵까지 사용되었다. 하지만 성찬식이 성교회로 제한되고, 성체성사를 행하는 이들도 사제와 부제로 제한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많은 신자들 사이에서 성체 속에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교리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이 손으로 행하는 성체성사를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는 그 순간에 평범한 빵과 포도주가 그 맛과 향은 그대로지만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로 변한다는, 그리하여 단순한 빵과 포도주가 아니게 된다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보이지는 않지만 성체안에 실제로 계시는 우리 주님에 대한 경배와 숭배의 믿음을 기르기 위해 손으로 거룩한 성체를 만질 수 없음을 가르쳐왔다.

 

     이 중요한 전례를 단순히 실수에 대비하는 정도의 안전장치라고 오해하여서는 안된다. 교황청에서 명시하듯 이는 성체에 대한 믿음과 경배 그리고 겸손을 키우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나중에 그 안에 우리 주 그리스도가 현존해 계신다는 성체의 신비에 대한 진리의 이해가 깊어지고, 이 가장 거룩한 성체성사에 대한 경건한 인식과 이를 영하는 이의 겸손함이 강하게 요구되는 지경에 이르러, 성체를 분배하는 성직자가 신자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신자들의 혀로 봉헌된 빵을 나눠줘야 한다는 관습이 확립되었다. (Memorial of the Lord, 서문, 1969. 5. 29).

     이런 이유로 입으로 영하는 성체성사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손으로 영하는 성체성사를 완전히 대체하여, 성체를 영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신성하고도 변함이 없이 내려왔다.

 

     ​400여년전 서방의 일부 극단적이고 저항적인 종파에서 가톨릭교회의 모든 성체에 관한 신앙을 버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저들은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가 거룩하신 우리 주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로 변화한다는 믿음을 버렸다. 저들은 거룩한 성체성사를 경배하는 것을 버렸다. 저들은 미사를 버리고, 서거나 앉아서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를 들여왔다.


충격적인 신성모독 행위들

 

     교리상 오류는 빠르게 성체에 대한 신성모독의 남용을 들여온다. 교황청은 잘못된 성체성사의 교리가 많은 곳에서 많은 이들에게 퍼져가고 있다고 말한다.

 

     성체 안에 그리스도가 실제 계신다는 신앙에 의심이 자리 잡으면서, 봉헌된 성체에 대한 공경이나 숭배의 마음이 사라지는 심각한 현상이 빠르게 그리고 넓게 퍼져나가고 있다. (성체성사의 공경에 관한 해설, Instruction on Worship of the Eucharist, 1969. 5. 15).

 

     축성된 성체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식사시간이 끝나면 주님은 여기 머물지 않는다.”라고 변명한다. 그리고 때때로 이 성체들은 다시 봉헌되어 나눠지기도 한다. 성직자들이 성찬례 때에는 성체앞에 무릎을 꿇지만, 봉헌때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는 성찬례 때만 머무신다.”고 대답한다. 어떤 이들은 감실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것은 단지 상자일 뿐이다. 상자를 공경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한다.

 

     아이들은 손에 전해준 성체를 영하지 않고 들고 장난을 치기도 한다. 어른들은 봉헌된 성체를 들고 뒷줄로 넘겨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보았다.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이 진실로 그리스도께서 성체 안에 현존하심을 믿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짓인지를 물어보고 싶다.

 

     봉헌된 성체가 악마를 숭배하는 검은 미사에 옮겨져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신성모독을 당하여도 침묵하고 조용히 묻어버리려 하고 있다.

 

     신성모독은 과거에도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 저들이 곳곳에 넓게 그리고 수도 없이 많이 벌어지고 있음을 교황청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성찬례 방식이 신성모독과 뒤섞여 더럽혀진 교리에 맞서 성체를 지키는데 더 나은 안전장치라고 교황청은 인정하고 있다.

 

     성체성사에 대한 신앙이 깊고 단단할수록 이 모든 죄악에 대한 보속은 매월 첫 번째 금요일 그리고 매년 예수성심대축일의 참례이다.

 


성찬례식에서 비난할 수 밖에 없는 태만

     신앙이 흔들리면 경건함은 약해지고 성스러워야 할 예식은 우스꽝스럽게 비친다. 성체성사의 경건함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행동과 말과 몸짓 외에, 교회의 권위가 없이 만들어진 예식이 끼어 들어와 종종 올바른 신자들의 분개를 부름에도 자리를 잡고는 한다.

 

     주교의 허락이 필요함에도 허락없이 감실이 제대 위의 합당한 장소에서 치워지기도 한다.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 합당한 장식으로 꾸며져야 할 감실이 기둥 한구석에 위태롭게 배치되거나, 방해받지 않는 한적한 곳으로 옮겨져 있기도 한다. 신성한 미사를 올릴수 있게 합당하게 배치된 공소에서만 가능한 미사의 봉헌도 이제 구내식당, 도서관, 성당 안의 공동장소에서 마구 이루어지고 있다. 원래 성직자들의 거룩한 공간임에도 이제는 사람들을 제대 주변에 세우고 있다. 성찬기도 끝에 원래는 집전 사제가 올릴 수 있는 영광송을 이제는 모든 참가자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성체를 받아야만 하는 참석자들이 이제 성체를 분배하는 일에 배치되고 있다. 성직자가 신자를 바라보며 드리는 미사만이 공인된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런 공인은 없었다. 성체를 받을 때 최대한 경건한 태도를 취하라는 교회의 가르침은 자주 무시되고 있다. 평화의 인사에 대한 종교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더러는 지극히 세속적이거나, 유행하는 인사를 하거나, 로맨틱한 인사를 한다. 최신 음악이 성가를 대체하기도 한다. 교회에서의 행동이 종종 기도의 집에서 하는 행동이기보다는 시장이나 커피숍에서나 할 법한 행동들을 하기도 한다.

 

     ​위에 열거한 일들을 읽는 것이 고통스럽겠지만, 모든 이들이 같은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런 일들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기분이 상할 일은 없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상처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속도에는 놀랄 것이다. 되돌아보면 이런 변화로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생긴다.

 

     이런 새로운 성체성사에 대한 변화는 교황이 많은 것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2차 바티칸공의회로부터 시작하였다. 또한 신자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계산된 아이디어들이 의도적으로 글과 단어로 전파되었으며, 여기에는 홍보자료, 세미나, 워크숍 등의 현재 사용되는 기법이 포함되어 있다고 교황은 말했다. 일단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제한적이고 통제가 가능한 범위에서 실험을 하였다. 그리곤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도록서둘러 문을 활짝 열어 제쳤다.

 

     어떤 이들은 그렇다면 이러한 행위들을 중단시킬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 어째서 중단시키지 않는지 물어본다. 인간에 대한 존중 의식 때문에 이를 막으려는 의지가 약해졌거나, 이들이 고립되거나 둘러싸여 자기의 소리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두가지 방법의 비교

     위에서 인용한 교황청의 공식 문서에서 특히 언급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고려 사항이 있다.

 

첫째, 전통적인 방법은 교회의 모든 교구에서 행해지는 오래된 관습의 법이며, 새로운 방법은 이 관습법의 예외적인 사항이며 합당한 이유로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합당하다.

 

둘째, 교황은 모든 주교와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전통적인 방법을 따르라고 간곡히 제안한다. 더불어 특별한 상황으로 사목활동의 어려움을 들어 주교회의에서 허락하면 새로운 방법을 허용할 수 있다. 또한 주교들은 어려운 상황이 해소되었다고 판단하면 새로운 방법을 폐지하고 전통의 방법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이러한 경우가 이탈리아와 미국 그리고 북아일랜드 교구이다.

 

셋째, 새로운 방법이 불법적으로 도입되었지만 이미 정착되어 거두기 힘든 경우에는 특별히 허락되었다.

 

넷째, 어느 주교도 그의 교구에서 전통적인 방법을 불허가할 수 없다. 하지만 교황의 훈령에도 불구하고 주교는 자신의 교구에서 새로운 방법을 거부할 수는 있다. 주교는 특정한 장소와 특정인들에게 한하여 새로운 방식의 승인을 보류할 수 있다. 이미 행하여졌다면 철회하여야 한다.

 

다섯째, 전통적인 방법은 장려할 수 있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관습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적인 방법을 장려할 수는 없다.




 

성자의 성체를 손으로 받아서는 안된다! 너희가 성자의 성체를 더럽히기 위해 들어가려는 악마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합당하게 서품된 주님의 사제들의 봉헌된 손가락으로 성자의 성체가 너희 입으로 전해져야 한다. 그리고 너희는 선함과 사랑으로 성자의 성체를 받아들여야 한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5. 3. 22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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