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모 발현 말씀 (Marian Apparitions)/① 리첸 성모 발현

리첸의 성모발현

성 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2020. 8. 9. 21:09

"폴란드 리첸Lichen의 성모님"

슬픔의 성모님, 폴란드의 여왕 (1813, 1850)

 



 

시간대별 요약


 

토마즈 클로소프스키Tomasz Klossowski18세기 후반에 태어났으며, 웅장한 저택과 넓은 농장을 소유한 지방 신사였다. 그는 자신의 농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무척 친절하였다. 나라가 침략을 당해 독립을 상실하자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군에 입대하였다. 그의 재산은 모두 몰수당하였고, 그는 침략자들에 붙잡혀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였다.

1813

토마즈Tomasz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그의 지휘관인 조제프 포니아토프스키Jozef Poniatowski 왕자의 죽음을 목격하였다. 토마즈 또한 오른 다리와 오른쪽 옆구리에 총상을 입었고, 머리까지 다쳐 전장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도움을 구하려 성모님을 불렀다.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못 보고 죽는 것이 너무도 슬퍼 자신을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였다. 죽음에 직면하여 그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죽게 하지 말도록 간절하게 성모님을 불렀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성모님께서 왕관을 쓰시고, 아마란드꽃의 색(자줏빛) 드레스에 황금빛 망토를 입으셨다. 성모님의 오른손에는 황금빛 독수리가 들려 있었다. 성모님께서는 그 군인을 위로하고, 자신과 함께 고향으로 갈 것을 약속하였다.

 

성모님께서는 그에게 가장 닮은 그림을 찾아 조국에 성모님의 발현을 널리 알릴 것을 부탁하셨다. 토마즈는 성모님께서는 나에게 다가와 내가 건강을 되찾을 거라고 약속하셨다.”라고 말하였다. “성모님은 내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을 약속하셨고, 나는 성모님과 닮은 그림을 꼭 찾을 것을 약속하였다.” 성모님께서는 지금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이 나와야 한다. 잘 보거라.” 그리고 그렇게 만든 성모님의 성화를 공공장소 곳곳에 게시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나의 자녀들이 나의 성화 앞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걸어두거라. 나는 그들이 가장 어려운 시련의 때에 그들에게 많은 은총을 내릴 것이다.”치유된 병사는 리첸Lichen 인근의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매년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기적의 형상을 찾으러 온 나라 곳곳을 돌아다녔다.

1836

그는 98일 복되신 성모마리아의 탄생 축일을 맞이하여 체스토코바Czestochowa를 순례하기로 한다. 그는 지난 23년 동안 어디에서도 어느 교회에서도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그 모습을 닮은 성화를 찾지 못하였으며 비슷한 성화도 보지 못하였다고 성모님께 한탄하듯 기도하였다. 그는 99일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길을 나서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리고타Ligota 마을에 이르렀다. 그 마을 작은 성당에서 나무에 못으로 박아 놓은 조그만 그림을 발견하였다. 이 그림이 그동안 그토록 그가 찾으러 다녔던 그림이었다. 그의 기도에 성모님께서 대답하신 것이었다. 이 성화 속 성모님께서는 전쟁터에서 죽어가던 그를 구하러 오신 그때의 모습처럼 흰 독수리를 내려보시는 반쯤 감은 눈이 같았다. 성모님은 슬픈 얼굴을 하시고 계시지만, 평온하고, 위엄을 잃지 않고 아름다우신 모습 그대로였다. 게다가 위안과 희망이 가득하신 모습이었다. 황금빛 망토에는 모든 고난의 상징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가시면류관, 채찍, 주님의 손과 다리에 박혔던 못 들,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던 창. 성화의 위쪽에는 폴란드의 여왕이시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라는 문구가 새겨진 황금 왕관이 있었다.

처음에 그는 이 성화를 집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모든 영광과 경배를 바치며 그 앞에서 기도하였다. 성화에서는 매일같이 눈물이 흘렀고, 토마즈는 그 눈물을 닦아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숲-푸스즈카 글라빈스카puszcza grablinska에 있는 노송에 성화를 걸어두었다.

1844

그가 병에 걸려 도움이 필요하게 되자 사제와 의사가 그에게 갔다. 토마즈가 방에 혼자 남게 되자 성화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토마즈야 나를 이 집에서 들고 나가 숲으로 가자꾸나.” 그가 지금은 너무 아파 움직일 수 없다고 하자, “너는 다 나았다고 하였다. 그는 즉시 다 나았고,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그의 집에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이 놀랐다. 그는 숲에 작은 예배당을 지었고 그곳에 기적의 성화를 모셨다. 그는 매주 일요일엔 숲속 예배당을 찾았고, 그곳에서 그림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1848. 8. 7

토마즈 클로소프스키Tomasz Klossowski 사망하다.

1850. 5. 13

성모마리아가 숲속 예배당 근처에서 소를 돌보고 있던 목동 미콜라지 시카트카Mikolaj Sikatka(1787년 그라블린에서 태어나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셨다. 그는 정직하고 성실하며, 진중하고 진실한 사람이었으며, 신앙심도 깊었다. 그는 토마즈가 세운 숲속 작은 예배당을 지날 때마다 들러 그곳에서 기도를 바치곤 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하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 처음으로 나타나셔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아멘이라고 답을 한 후,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침묵 속에서 성모님을 바라보았다. 성모님께서는 미콜라지야, 인간의 죄에 대한 주님의 징벌이 닥쳤음을 사람들에게 전하여라. 전염병이 모든 곳에서 인간들을 괴롭힐 것이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집과 들판에서 갑자기 죽어갈 것이다. 그들에게 회개하고 기도하라 전하여라. 만약 회개한다면 징벌을 면할 것이다. 묵주기도를 바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을 묵상하여라.” 성모님께서는 15단의 신비가 담긴 긴 묵주를 보여주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인간들이 타락하였구나. 만약 저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곧 끔찍한 전쟁(크림전쟁)이 일어나 많은 이들이 고통받게 될 것이며, 전염병(콜레라)이 창궐하여 많은 이들이 죽게 될 것이다. 인간들을 위하여 이 성화를 걸어두었으니, 이 앞으로 모이라 일러라. 이 성화를 통해 너희에게 은총을 내릴 것이다.”

이 지시를 내린 후에도 성모님께서는 그곳에 계셨다. 미콜라지는 성모님께서는 매우 슬퍼 보였다. 고통으로 가득 차서 거의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 같은 모습이었다. 슬픈 모습으로 나를 한번 쳐다보시고는 사라져갔다.” 그 순간 성모님의 발이 땅에 닿아있지 않고 금빛 구름을 밟고 계시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과 대화를 나눈 귀부인이 성모님인 것을 알아채고는 무릎을 꿇었다. 미콜라지는 성모님께서 지시한대로 회개하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에 참여하였지만, 사람들의 악의적인 태도와 조롱을 두려워하여 성모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1850. 8. 15

미콜라지에게 주신 메시지를 통해 성모님께서는 인간들을 탐욕과 방탕함에서 건져 회개시키려 하셨다. 성모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치고, 주일 미사에 꼭 참석하여야 함을 강조하셨다. 성모님께서는 성직자들에게 가치있는 미사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셨다. 마지막으로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성화를 조금 더 어울리는 곳으로 옮길 것을 지시하셨다. 회개하지 않는 인간들에 대한 징벌이 될 전염병에서 열심히 기도한 이들은 죽음에서 구원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더불어 성모님께서는 리첸Lichen에 수도원이 생길 것이며 성지가 될 것이며, 성모님의 영광이 미치는 모든 곳에 알려질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가난한 목동이었던 미콜라지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곧 러시아의 침략자들에게 붙잡혀 투옥되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1852

성모님께서 예언한대로 전염병인 콜레라가 창궐하여 기승을 떨치자 사람들은 성모님의 경고를 기억해내기 시작하였고, 기적의 성화 주변으로 몰려들어 병든 자와 죽어가는 자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교구 사제인 코신스키 신부에게 이를 알렸고, 신부는 자신의 교구에 속한 숲속 작은 예배당에 몇 해 전부터 성모님의 성화가 모셔져 있다고 공식 선언하였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 지역의 한 농부에게 몇 해 전에 다른 세상에서 온 듯한 한 귀부인이 나타났으며, 부인은 이 농부를 통해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려 하였다. 인간들이 진심으로 통회하고, 자신의 삶을 바꿔야 하며, 미사에 참석하여 임박한 주님의 징벌을 멈추고 악한 자들에게 떨어질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기를 미사 때마다 주님께 간청하여야 한다.’ 농부는 당국에 여러 차례 체포되고 조사받았지만, 그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는 그 부인이 여러 차례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기를 원하였고, 강조하였다고 말하였다.

1852

특별 감독 위원회가 이 발현을 조사하였다.

1852. 9. 29

교구 사제인 플로리안 코신스키Florian Kosinski 신부의 요청에 따라 위원회는 성모님의 성화를 리첸에 있는 교구 성당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였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성당과 사제관은 모두 압수되어 나찌에 의해 사용되어 졌다. 그동안 성화는 잘 숨겨져 보관되었다.

1949

리첸 교구는 성모마리아 수도원에 맡겨졌다. 그들은 전쟁 동안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 시작하였다.

1965

교황 바오로 6세는 리첸의 성모님의 자애로우신 모습의 성화를 기적이라고 확인하는 칙령을 선포하였으며, 교황의 왕관을 씌우라는 명령을 내린다.

1967. 8. 15

스테판 위친스키Stefan Wyszynski 추기경은 브로클라스카Wroclawska 교구의 교구장인 안토니 파블로프스키Antoni Pawlowski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성모승천대축일에 리첸의 기적의 성모님 성화에 왕관을 씌웠다. 기념식에는 그 외 많은 주교들과 10여명의 사제들 그리고 150,000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하였다.

1999. 6. 7

리첸의 성모님 성소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 2000주년을 감사하고 기념하여 지어졌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초석을 축복하였으며, 폴란드 최대의 성당으로 봉헌되었다.

2007. 9. 16

이 성소는 스타니슬라우스 파프친스키Stanislaus Papczynski가 세운 원죄없이 잉태하신 마리아의 성직 수도회the Marian Fathers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200672일 이 성화는 대성당 주 제단에 놓여졌다.

 

 

성모마리아에 대한 묘사

토마즈는 당시 벌어진 일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도와달라는 나의 울부짖음을 들었는지, 성모님께서는 급하게 나에게 다가오셨다. 주님의 수난을 상징하듯 검붉은 가운과 황금 망토를 입으시고 전장을 가로질러 내게 다가오셨다. 그리고 성모님의 머리에는 아름다운 황금 왕관이 씌여 있었다.” 성모님의 오른손에는 하얀 독수리가 들려 있었다. 성모님을 바라본 그 순간 너무도 아름답다고 느꼈으며,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성모님의 황홀하게 아름다운 얼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있었다; 슬퍼 보이는 반쯤 감긴 눈은 하얀 독수리를 내려보고 있었으며, 주님의 어머니께서는 그 독수리를 품 안에 꼭 안고 계셨다.”

 

메시지

1813년 성모님께서는 전장에서 부상당한 병사 토마즈 클로소프스키를 찾아가 회복시켜줄 것과 고향인 폴란드로 되돌려 보내줄 것을 약속하며 위로하였다. 성모님께서는 자신과 닮은 성화를 찾아 고향에 전하라 부탁하셨다. 지금 보이는 나의 모습을 그대로인 성화를 찾아야 한다. 잘 보아라.” 그에게는 성화를 찾아 공공의 장소에 걸어두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나의 자녀들이 나의 성화 앞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걸어두거라. 나는 그들이 가장 어려운 시련의 때에 그들에게 많은 은총을 내릴 것이다.”

 

1850513일 성모님께서는 목동 미콜라지 시카트카에게 발현하셨다. 그는 토마즈가 성모님의 명에 따라 작은 숲속에 성화를 걸어두기 위해 만들어 놓은 예배당을 지나가는 길이었으며, 그는 수시로 예배당에 들려 기도하고 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하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 처음으로 나타나셔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아멘이라고 답을 한 후,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침묵 속에서 성모님을 바라보았다. 성모님께서는 미콜라지야, 인간의 죄에 대한 주님의 징벌이 닥쳤음을 사람들에게 전하여라. 전염병이 모든 곳에서 인간들을 괴롭힐 것이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집과 들판에서 갑자기 죽어갈 것이다. 그들에게 회개하고 기도하라 전하여라. 만약 회개한다면 징벌을 면할 것이다. 묵주기도를 바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을 묵상하여라.”

성모님께서는 15단의 신비가 담긴 긴 묵주를 보여주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인간들이 타락하였구나. 만약 저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곧 끔찍한 전쟁(크림전쟁)이 일어나 많은 이들이 고통받게 될 것이며, 전염병(콜레라)이 창궐하여 많은 이들이 죽게 될 것이다. 인간들을 위하여 이 성화를 걸어두었으니, 이 앞으로 모이라 일러라. 이 성화를 통해 너희에게 은총을 내릴 것이다.” 이 지시를 내린 후에도 성모님께서는 그곳에 계셨다. 미콜라지는 성모님께서는 매우 슬퍼 보였다. 고통으로 가득 차서 거의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 같은 모습이었다. 슬픈 모습으로 나를 한번 쳐다보시고는 사라져갔다.” 그 순간 성모님의 발이 땅에 닿아있지 않고 금빛 구름을 밟고 계시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과 대화를 나눈 귀부인이 성모님인 것을 알아채고는 무릎을 꿇었다. 미콜라지는 성모님께서 지시한대로 회개하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에 참여하였지만, 사람들의 악의적인 태도와 조롱을 두려워하여 성모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해 815일 미콜라지가 기도하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 두 번째로 발현하시었고, 사람들에게 회개와 기도할 것을 전하지 않는 그를 꾸짖었다. 성모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인간들이 너무도 악해지고 있구나; 저들이 엄한 죄를 지어 주님을 노하게 하고 있다. 성자께서 매우 노하셨다. 성자께서는 너희의 죄를 엄하게 징벌하실 것이다. 너희가 성자께 자비를 간구하지만 성자의 분노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들은 묵주기도를 바치며 주님의 자비를 청하여야 한다. 미콜라지야, 너희는 속죄의 미사가 되기 위한 제물을 모아야 한다. 모든 인간들이 속죄의 제물을 모아야 한다. 가장 가난한 이들 또한 속죄의 제물을 모아야 한다. 미사는 죄인을 구하기 위해 바쳐져야 한다. 인간들이 자신의 사제의 말을 따르며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다 길을 잃고 영원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성직자들을 위해 매우 특별한 메시지를 주신다. 오 나의 사제들이여, 기도하고 인간들을 축복하여라. 언제나 인간들을 축복하여야 한다. 용기를 잃어서는 안된다. 나는 모든 사제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어머니이다. 너희가 기도하고 회개한다면 나는 너희를 일으켜 세우고, 너희를 깨끗하게 정화할 것이다. 너희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고 너희를 지키는 방패가 될 것이다. 나는 너희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줄 것이다. 많은 사제들이 이곳에 와야 한다. 나는 이곳에 오는 너희들에게 특별한 은총을 내릴 것이다. 너희는 이곳에서 변함없는 정신을 회복할 것이고, 순결한 열정을 되찾게 될 것이다.”

 


 

토마즈 클로소프스키 Tomasz Kłossowski

이 기적의 성화에 관해서 두 명의 인물이 연관된다: 토마즈 클로소프스키와 미콜라지 시카트카이다.

클로소프스키(1780-1848)는 귀족 출신이다. 러시아 침략자들은 독립운동에 참여한 그의 재산을 몰수하였다. (18세기 후반 폴란드는 세 곳으로 분할되었다. 러시아와 프러시아 그리고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는 지역으로 분할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에 있던 리첸Licheń지역은 1815년부터 프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 클로소프스키는 리첸Licheń에서 코닌Konin방향으로 6km 떨어진 이자벨린Izabelin으로 이동하였다. 나폴레옹 군의 군인으로 1813년 라이프찌히Leipzig 전투에 참여해 큰 부상을 입었다. 그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기도하자, 황금 왕관과 하얀 독수리를 품에 안은 성모님께서 그의 앞에 발현하시었다. 성모님께서는 토마즈에게 부상당한 것을 치유해주고 고향에 돌려보낼 것을 약속하셨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모습이 잘 드러난 성화를 찾아 대중에게 공개하기를 원하셨다. 그는 이자벨린으로 돌아와 대장장이 일을 하였다. 1836년 성화를 찾아 순례길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체스토코바Częstochowa 부근 리고타Ligota에 찾는 것과 유사한 성화가 있다는 소문을 듣는다.

성화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슬픔에 찬 눈으로 가슴에 있는 하얀 독수리를 지긋이 바라보시는 성모님의 모습이다. 성모님이 입은 겉옷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상징들이 새겨져 있다. 이 성화는 가로 9.5cm, 세로 15.5cm 크기의 낙엽송 판에 유화로 그려져 있다. 이 성화는 18세기 후반 비엘코폴스키에주의 블레드쥬Bledzew 지역에 있는 시토 수도회에서 로키트노Rokitno의 성화를 카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성화는 토마즈 클로소프스키의 집에 보관되었다. 죽기 직전에 그는 그라블린Grąblin 숲의 소나무에 이 성화를 걸어두었다. 교구 기록보관소에 그의 부모(조제프와 로잘리아)와 그의 아내(아폴로니아 니 로즈코프스키)의 이름을 알려주는 사망증명서가 남아있다.

이자벨린Izabelin에 있는 예배당은 그의 예전 집터에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유산은 이제 리첸 성소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점령군들은 교구 공동묘지의 많은 무덤을 파헤쳤다. 그때 토마즈의 무덤도 파헤쳐졌다. 하지만 교구민들은 그의 무덤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현재는 그 자리에 그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적과 징표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병사 토마즈 클로소프스키는 오른쪽 다리와 옆구리에 관통상을 입었으며, 머리에 부상까지 입어 고통 속에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 리첸의 성모님께서 발현하시어 그를 치유해주었다. 1844년 그는 다시 임종을 앞두고 사제와 의사가 그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토마즈가 혼자 방에 남겨졌을 때 성화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토마즈야, 나를 이 집에서 데려 나와 숲으로 가자꾸나.” 그는 너무 아파 움직일 수 없다고 하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다 나았다.” 그는 즉시 다 나았고,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그의 집에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이 놀랐다. 그는 숲에 작은 예배당을 지었고 그곳에 기적의 성화를 모셨다.

가난한 목동인 미콜라지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려 하자 러시아 침략군들에게 잡혀 박해받고 투옥되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불과 2년 후에 성모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콜레라가 창궐하여 기승을 떨자 사람들은 성모님의 말씀을 기억해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성화 주변으로 모여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쳤다. 많은 이들이 치유되었다. (1939년까지 기도가 이루어졌다는 3000여 건의 답변이 있었으며, 그중에는 기적적인 회복도 많았다.)

 


 

 


교회의 승인

 

발현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주교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교구 사제 플로리안 코신스키의 요청에 위원회는 성화를 리첸의 교구 본당으로 옮겨 보관하기로 결정하였다. 1852929일에 교구 본당에 옮겨졌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리첸 성모님의 자애로우신 모습의 성화를 기적이라고 확인하는 칙령을 선포하였으며, 교황의 왕관을 씌우라는 명령을 내린다.

스테판 위친스키Stefan Wyszynski 추기경은 브로클라스카Wroclawska 교구의 교구장인 안토니 파블로프스키Antoni Pawlowski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1967년 성모승천대축일에 리첸의 기적의 성모님 성화에 왕관을 씌웠다. 기념식에는 그 외 많은 주교들과 10여명의 사제들 그리고 150,000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하였다.

 

리첸의 성모님 성소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 2000주년을 감사하고 기념하여 지어졌다. 199967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초석을 축복하였으며, 폴란드 최대의 성당으로 봉헌되었다.




특별 주교회의는 발현에 대한 조사를 거친 후 성화를 리첸의 교구 성당으로 옮겨 보관하기로 결정하였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성당과 부속 건물은 나치에 몰수되어 사용되었지만, 다행히도 성화는 잘 숨겨져 보관되었다.

1949년 리첸 교구는 성모마리아 수도원에 맡겨졌다. 그들은 전쟁 동안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 시작하였다. 이 복구는 1967년에 완료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탄생 2000년을 기념하고 봉헌하는 마음으로 리첸의 성모님의 성소가 새로 지어졌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본떠 만든 리첸의 성모성당은 폴란드에서 가장 큰 성당이며, 유럽에서 7번째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성당이다. 길이 120m에 너비 77m의 크기로 1994년에 시작하여 2004년에 완공되었다. 이 성당은 성모마리아께 봉헌되었으며, “슬픔의 성모님, 폴란드의 여왕으로 알려진 리첸 성모님 성화가 보관된 성당이다. 이 성전은 비엘코폴스키에Wielkopolska 주의 리첸이라는 마을에 있다. 이 마을은 폴란드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Jasna Gora (체스토코바의 성모성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폴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순례지이자 발현장소이다.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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