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체성사 (Eucharist)/①가톨릭 신자라면 혀로만 성체성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

가톨릭 신자라면 혀로만 성체성사를 받아야 하는 5가지 이유...

성 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2021. 9. 25. 21:25

 

가톨릭 신자라면 혀로만 성체성사를 받아야 하는 5가지 이유...

 

 

되돌려 놓아라

"이 사악한 악마가 나의 집 매우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너희는 나의 집을 고쳐 되돌려 놓아야 한다. 너희의 신으로 나는 너희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이 지시를 내린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76. 8. 21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를 하여서는 안된다. 천국은 절대로 용납지 않을 것이다. 이 행위는 전능하신 성부께서 보시기에 신성모독이다. 계속하여서는 안된다. 전능하신 성부를 화나게 하여서는 너희가 받을 형벌이 더해질 뿐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84. 6. 30

 

 

무릎을 꿇어라

“나의 자녀들아, 성체성사를 모시기 위해 너희 주님 앞에 서면 무릎을 꿇어야 한다. 강당에 서 있듯 아무 의미 없이 서 있지 말고, 너희 주님께 영광과 사랑을 드리며 무릎을 꿇어야 한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9. 7. 14

 

 

 

 

LifeSiteNews.com 2020. 3. 16 기사:

 

존-헨리 웨스튼 John-Henry Westen 작성

 

정부 보건 당국과 심지어 몇몇 주교로부터 혀로 직접 전하는 성체성사를 금지하라는 명령을 받고서 나는 오히려 손으로 성체성사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만약 이 명령을 강제한다면 나는 신령 성체만을 바치며 희생을 각오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라면 손으로 성체성사를 하면 안되는 5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전능하신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에 관한 것이다.

 

혀로 직접 성체성사를 받는 것이 어떤 거짓된 경건함이나 다른 이들과는 다른 거룩한 자세라는 식의 오만이라며 반대하는 이들의 잘못된 생각부터 일축하겠다. 일부 신자들에게서 그런 마음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겠지만, 내가 배우고 익힌 내용에 의하면, 혀로 성체성사를 받는 것은 우리가 이 거룩한 성사에서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께 대한 깊고 경건한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무릎을 꿇고 혀로 성체를 받아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성체 안에 실제로 계시는 주님께 대한 경외심을 더욱 커지게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경건함의 필요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가르침은 성경에 담겨 있다.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처음으로 하느님을 만났을 때를 기억하는가? 모세에게는 불타는 떨기나무에 너무 다가가지 말 것이며, 하느님이 계시는 거룩한 땅이기에 신발을 벗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시편 95장에는 “어서 와 허리 굽혀 경배드리자. 우리를 지으신 야훼께 무릎을 꿇자.”라는 구절이 있다. 신약성서에도 찾을 수 있는데,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타보르산에 오르셨을 때 예수께서 변모하시어 얼굴을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신 영광스런 상태로 변모하신 것을 보고는 제자들은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경의를 표하였다. 우리가 성찬식에서 모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같다.

 

이 주제에 대해 가장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성경 기록은 계약의 궤(the Ark of the Covenant, 십계명을 넣은 궤)에 일어난 일이다. 사무엘 하 6장 1~7, 역대기 상 13장 9~12에 기록되었다. 계약의 궤는 하느님께서 설계하시고 하느님의 지시대로 만든 것이다. 그 궤 안에는 만나와 모세의 지팡이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 들어 있다. 이 궤는 당시 매우 신성하게 여겨져 제사장들인 특정 레위 사람들 외에는 손을 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다윗왕의 명에 따라 이 궤를 옮길 때 제사장들만 만져야 한다는 율법을 어겼다며, 떨어지려는 궤에 손을 대 붙든 웃짜(Uzzah)라는 사람을 하느님께서 친히 진노하시어 치는 일이 벌어지자 다윗왕은 더욱 율법을 강화하였다.

 

자 이를 생각해보자. 웃짜는 옳은 일을 하려 했다. 그는 계약의 궤를 구하려는 선한 일을 행한 것이다. 그 성궤를 욕보일 의도는 없었다. 그와 그의 형제들은 소가 끄는 수레로 계약의 궤를 운반하던 중이었다. 수레를 끄는 도중 수레가 기울어지자 웃짜는 그 성궤에 손을 대 떨어지려는 성궤를 보호하였다. 하지만 그 궤에 손을 댔기에 하느님의 진노를 받아 죽음을 맞았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비하여 손으로 영성체를 받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행하고 있는 오늘날과 매우 흡사하지 않은가?

 

하지만 성궤에 손을 대 보호하려는 행위가 일견 적절해 보였지만,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옳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듯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체에 손을 대는 것은 성궤를 해악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선의의 마음으로 행해진 것이리라. 더욱이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교회와 형제자매들을 보호하려고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를 받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런 선의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성궤에 손을 댄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하느님의 진노를 본 다윗왕은 당혹스러웠고, 이 일로 다윗왕은 주님의 성궤를 자기에게 가져오는 것이 두려웠다.

 

성체 안에 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약속의 궤를 비교하면 과연 그 약속의 궤가 비교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 성궤는 성전 안에 봉헌되었다. 의식에 쓰였고, 신성한 것으로 받들어졌다. 하지만 그래 봤자 하느님에 비하면 발등의 때 정도 할 것이다. 우리가 거룩한 성찬식 때 받아 영접하는 성체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임하시며, 보이지 않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매 아내는 교회에서 미사에 사용되는 제단과 사제가 성찬식에 사용된 성배, 성작 등 기물들을 봉헌하는 관습을 고려할 때 어떻게 손으로 성체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우리는 사제와 주교 심지어 교황까지도 거룩한 성찬식 축복 기도 중에는 휴머럴 베일 Humeral veil이라 불리는 의복으로 손을 덮는 것을 본다. 이 모든 행위는 성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신성함을 경외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성체를 손으로 만지도록 허용했다면, 이런 휴머럴 베일 같은 의식이 정말로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최근 교황들에 의해 알려지고 존경받는 독일의 가톨릭 철학자이자 종교 작가인 디트리히 폰 힐데브란트(Dietrich von Hildebrand)의 글을 인용하여 성찬식 때 주님에 대한 경외심에 대한 글로 이 주제를 마무리하겠다. 교황 비오 12세는 그를 “20세기 교회의 박사”라고 칭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폰 힐데브란트의 철학적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의 미망인인 앨리스 폰 힐데브란트에게 “당신의 남편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윤리학자 중 한 분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베네딕토 16세 또한 폰 힐데브란트를 특별히 존경하였으며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베네딕토 16세는 젊은 사제였을 때 뮌헨에서 그를 알게 됐다. 교황 베네딕토의 폰 힐데브란트에 대한 존경은 그의 글에도 잘 표현되었다: “20세기 가톨릭교회의 지혜에 대한 역사서가 쓰인다면, 디트리히 폰 할데브란트의 이름은 우리 시대의 인물 중 가장 두드러질 것이다.”

 

폰 할데브란트는 그의 저서 ‘황폐한 포도원(The Devastated Vineyard)에서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를 주제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불행히도 많은 곳에서 손으로 성체성사를 나누고 있다. 이 관습을 어떻게 거룩한 성찬식의 개선과 깊이 있는 심화 행위라고 주장하는지? 우리가 이 가늠할 수도 없는 선물을 받으며 떨리는 경외심이 제사장의 선택받은 손이 아니라, 주께 봉헌되지 않은 손으로 받는 이 행위로 더 커질 수 있을까? 축성된 성체 중 일부분이 땅에 떨어질 위험이 비할 데 없이 증가하고, 성체를 모독하거나 참으로 끔찍한 신성모독의 위험이 매우 커진다고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도 않다. 세상은 이런 행위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손으로 성체를 만지게 되면 더욱 그리스도와의 교감이 더욱 현실적으로 된다는 주장은 확실히 말도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한 요점은 성체의 물질적인 접촉이 아니라, 믿음으로서만 얻을 수 있는 신앙 의식, 즉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제사장의 선택받은 거룩한 손에서 우리의 혀로 그리스도의 성체를 경건하게 영접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받지 않은 더러운 손으로 영접하는 것보다 이 신앙을 고취하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 (The Devastated Vineyard, pp. 67/8.)

 

 

#2 교회의 권위

 

우리가 코로나 19 대유행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를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교회가 현대에 이런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먼저 혀로 직접 받는 성체성사를 금지하는 문제를 우선 고려하였다는 점이다. 2009년 H1N1 인플루엔자가 대유행하던 시기에, 대유행으로 인해 혀로 성체성사를 받는 것을 제한받은 영국의 교구에서 한 평신도가 이 문제에 대해 바티칸에 서신을 보냈다.

 

2009년 7월 24일 바티칸 경신성사성의 응답이 Rorate Caeli에 의해 온라인에 게시되었다. 언제나 권위 있는 답변을 내는 경신성사성에서는 교회법을 인용하여 “모든 신자는 언제나 혀로 성체성사를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답했다. (n. 92, 교회법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그리스도의 신자들에게 성찬식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

 

바티칸은 응답에 “이 중요한 문제를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합당한 조치가 취해질 것을 확신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교회법 쉽게 풀이하기(Canon Law Made Easy) 블로그에서 교회법 전문가인 캐시 카리디(Cathy Caridi)는 적절한 접촉에 대한 규정선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카리디는 “경신성사성은 이 서한을 공개한 후 가톨릭 신자들이 부당하게 혀로 직접 받는 성체성사를 받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교구의 성직자들에게 연락하여 그 규제가 교회법에 위반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라고 밝혔다.

 

카리디는 계속해서: “만약 신자들이 지금 자신의 교구 혹은 성당에서 혀로 직접 받는 성체성사를 금하고 있다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경신성사성에 연락을 취한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경신성사성이 이 같은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의 세워진 율법에 따라 혀로 구세주의 성체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교회의 최고권위자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축소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세균의 위험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위계질서에 관한 문제이다. 지상의 어떤 주교도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본당 사제는 더욱 그렇다!) 모든 교회에 적용하도록 의도된 바티칸의 율법이나 특정 지침을 반박할 수 없다. 누구에게도 그런 권한을 주지 않았다!”

 

 

#3 성인들과 교황들 그리고 천사들의 증언

 

교회의 가장 위대한 박사로 누구나 인정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1200년대에 그의 저서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성사에 대한 경외심에 근거하여 축성된 것 이외에는 그 어떤 자의 손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 성찬에 손을 대는 성직자의 손도 축성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성체가 땅에 떨어지거나 다른 긴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이가 성체를 만지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다.” (16 ST, III, Q. 82, Art. 13)

 

2008년 교황 베네딕토는 신자들에게 손으로 성체를 나누는 것을 중단시키며, 무릎을 꿇고 혀를 내미는 신자들에게만 성체를 나누어 주기로 하였다. 이 결정은 2009년 바티칸 웹페이지에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도 웹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바티칸 웹페이지에는: “초기교회 때부터 손으로 나누던 성체의 분배 관습이 점점 혀로 직접 받는 관습으로 바뀌는 경향이 생겨나며, 결국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의 관습이 더욱 제한을 받게 되었다. 이 관습으로 굳어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a) 첫째, 가능한 한 성체의 입자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b) 둘째, 성체성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실제 현존하신다는 진리에 대한 신실한 신앙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여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칙령 Sacramentum Caritatis (사랑의 성사) 66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성체에 먼저 경배하지 않고서 입으로 가져가지는 않는다. 우리가 성체를 숭배하지 않고 취한다면 우리는 죄를 짓는 것이다.” 무릎을 꿇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체를 영접하기 전에 필요한 경배를 나타내며, 이 행위는 경배하는 마음을 더욱 높인다.

 

교황 베네딕토가 추기경이었을 때 이러한 관점을 매우 확신하였다: “성체성사는 경배로 둘러싸이고 지지되어야 진정한 깊이에 도달한다.” [전례의 정신, The Spirit of the Liturgy (이그나시오 판, 2000), p. 90] 이런 생각 때문에 라트징거 추기경은 “성체를 영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 관습은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전통이며, 이는 축성된 성체 안에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임하시며 계신다는 진리를 생각하면 완전히 적절한 숭배의 표현이다.”라며 말하였다. [cited in the Letter "This Congregation" of the Congregation for Divine Worship and the Discipline of the Sacraments, 2002. 7. 1]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의 마지막 칙령 Ecclesia de Eucharistia (교회는 성찬식에서 온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체성사에 걸맞는 합당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성사의 규모나 요구사항을 축소하지 않도록 주의하여, 우리는 이 하늘의 선물의 위대함을 진정으로 의식하여야 하며, 보여주어야 한다. 1세기 초기 기독교부터 그리스도 공동체는 이 ‘보물’을 지키는데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고 전통을 이어받아 지킬 것을 촉구받았다. 사랑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교회는 성체성사의 신비와 관련하여 신앙과 가르침을 잃지 않고 다음 세대의 공동체에 전수하려는 의무감이 있다. ‘이 성체성사 안에 우리 구원의 모든 신비가 요약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신비를 과도하게 지키려 한다는 우려와 위험은 있을 수 없다.”

 

웹페이지에는 다음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8년 성체 대축일을 기점으로 하여 전임 교황들의 가르침에 따라 무릎을 꿇고 혀를 내미는 신자들에게 주님의 성체를 나누어 주기 시작하였다.”

 

성체성사의 문제를 다루는 바티칸 부서의 현재 수장은 로버트 사라 Robert Sarah 추기경이다.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오늘날 현존하는 가장 거룩한 추기경 중 한 명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사라 추기경의 저서 침묵의 힘(The Power of Silence)의 출간에 즈음하여 공개적으로 “침묵과 내적 기도의 대가인 사라 추기경이 있어 전례의 관습이 잘 진행되고 있다”라고 하면서 추기경을 강력히 지지하였다.

 

베네딕토 교황은 덧붙여: “사라 추기경은 영혼의 스승이며, 주님과 침묵의 깊은 곳에서 교감하여 우리 각자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성사를 관리하는 교회의 직무를 맡은 이 거룩한 아프리카 출신 추기경은 사제들에게 무릎을 꿇고 혀로 성체를 영접하기를 원하는 신자들에게만 성체를 나누어줄 것을 청하였다.

 

2018년 경신성사성 장관인 추기경은 성찬식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책을 펴냈으며, 그 서문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왜 우리는 꼿꼿이 몸을 세운 체 손으로 성체를 받기를 고집하는가? 어째서 하느님의 기척에 복종하지 않는 태도를 고집하는가? 어떤 성직자라도 무릎을 꿇고 혀를 내밀어 성체성사를 거룩히 영접하려는 신자들을 거절하거나, 박대하여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와서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무릎을 꿇고 혀를 내밀어 겸손히 영접하여야 한다. 성인들이 이미 우리에게 거룩한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성인들을 따라 할 것을 원하신다!

 

사라 추기경은 강하게 경고한다. “가장 교활한 악마의 공격은 온갖 잘못된 오류들을 뿌려두고, 인간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부적절한 방법을 퍼트리고 조장함으로 성찬식에 대한 신앙을 소멸시키려는 것이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과 루시퍼와 그의 무리 사이의 전쟁은 실로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탄의 목표는 미사의 희생과 봉헌된 성체에 임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지우는 것이다.”

 

이제 실제로 성체에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임하신다는 신앙이 우리가 영성체를 받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살펴보자. 손으로 성체를 받아 영하는 방식은 여지없이 많은 성체의 파편을 흩뿌리는 결과를 수반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반대로 가장 작은 부스러기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신성한 성반을 깨끗이 관리하며 땀에 젖은 손으로 성체를 만지지 않게 하는 것은 모두 봉헌된 성체의 가장 작은 부분에도 예수님께서 실제로 임하신다는 신앙을 고백하는 표현하는 방법이다: 예수님께서 성체에 임하신다면, 그 빵의 크기나 조각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성체의 본질은 똑같다! 성체가 곧 주 그리스도이시다! 떨어진 성체 조각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로 하여금 중요한 교회의 가르침을 놓치게 만든다. 조금씩 조금씩 다른 생각과 가르침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어느 본당 사제가 떨어지는 성체 조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방관하여 미사를 집전한다면, 그는 예수께서 성체 안에 임하신다는 교리를 믿지 않거나, ‘어느 정도 큰 성체 조각에만’ 임하신다는 그릇된 신앙을 가졌음을 의미할 것이다!”

 

성체성사를 공격하는 사탄 무리의 두 번째 목표는 성체를 영하는 신자들의 마음에서 경건한 마음을 없애는 것이다. (...) 거룩한 ‘변환’이라는 용어가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존재의 실체를 가리키지만, 경건한 마음은 우리가 그 변환에서 절대적인 유일성과 거룩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가장 성스러워야 할 성사에서 경건한 마음을 잃는다면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특별한 생명의 양식을 받는 것을 보통 양식을 받는 것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 (…)

 

전례는 많은 작은 예식들과 행위들로 이루어졌다. 각 예식은 행위들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자식으로서의 순종,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경배로 채워진 마음을 표현한다. 이런 이유로 교회에서 오랜 기간 전통 전례로 자리 잡았던 무릎을 꿇고 혀를 내밀어 성체를 영접하는 관습의 아름다움과 적합성, 그리고 사목적 가치를 다시금 높이는 것이 적절한 방향이다. 창조주에 대한 인간의 가장 높은 사랑의 표현은, 위대하고 고귀한 인간일지라도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직접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음을 명심하자.

 

이 책이 베네딕토 16세의 모범적 행동에 감명받은 많은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용기를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베네딕토 16세는 재임 말기에 무릎을 꿇고 입을 벌려 혀를 내미는 전통 관습대로 성찬식을 시행하였으며, 이는 성체성사에 훨씬 더 적합한 방식이라는 확신으로 시행하였다. 나는 이 전통 관습의 아름다움과 사목적 가치의 재발견과 증진이 있기를 희망한다. 나는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반성하여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관습은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께 바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경배와 사랑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또 무릎을 꿇고 혀를 내밀어 경건하게 주님을 영접하는 길을 선택한 많은 젊은이들을 보게 되어 매우 기쁘다.

 

사라 추기경의 저서에 담긴 또 다른 내용은 파티마 발현에 대한 회고와 세 명의 파티마 아이들이 성모님을 보기 전에 만난 천사에 관한 것이었다.

 

파티마에서 아이들에게 평화의 천사가 나타났을 때, 천사는 아이들에게 성체를 가져왔다. 천사는 성체에 계시는 주님 앞에 엎드렸으며, 아이들에게도 따라 하라고 가르쳤다.

 

 

#4 성체 모독 혹은 신성모독

 

앞선 교황과 추기경들의 논평에서 보듯, 성찬식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임하신 성체의 작은 조각들을 잃는 것이다.

 

2012년 ‘Dominus Est – 여기 주님이 계신다!’라는 영성체에 관한 책을 저술한 선한 주교 아타나시우스 슈나이더 Athanasius Schneider의 주장이 있다.

 

그는 말한다:

 

초기 교회의 교부들은 성 베드로가 가르친 대로 누구라도 성찬 빵의 가장 작은 부스러기조차 잃지 않아야 한다는 적극적인 우려와 방식을 보여주었다.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의 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주님의 성체를 조금이라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성체의 부스러기라도 떨어진다는 것을 자신의 몸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생각하여야 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금 한 덩이를 주었다면, 당신은 조금의 부스러기라도 잃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하고 열심히 지키려 하지 않겠는가? 주님의 성체가 금이나 보석보다 훨씬 더 소중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주님의 성체 부스러기라도 땅에 떨어뜨려 잃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신비로운 교리문답, 5, 2)

 

일찍이 테르툴리아누스(서기 230년 사망)는 성체의 조각을 잃어버려서 벌어진 교회의 근심과 슬픔에 대해 증언하였다: “우리는 성반과 빵에서 나온 부스러기가 땅에 떨어질까 노심초사한다.” (De Corona, 3)

4세기경 성 에프렘(Ephrem)은 이렇게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성신으로 빵을 가득 채우고 그것을 살아있는 육신이라고 칭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이제 너희에게 준 것을 빵이라 생각하지 말 것이며, 부스러기라도 발로 짓밟아서는 안된다. 이 빵의 가장 작은 조각으로도 수백만 명의 인간들을 거룩하게 할 수 있으며, 이것을 먹는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주기에 충분하다.” (Sermones in Hebdomada Sancta, 4, 4)

 

1980년에 이르러 손으로 성체를 받는 관습이 널리 퍼졌으며, 이 관습으로 성체를 모독하는 성찬식이 되어가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0년 2월 24일 ‘주님의 만찬(Dominicae Cenae)’이라는 서한을 발간하였는데, 거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손으로 성체를 받는 관습이 생겨났다. 이 관습은 단위 주교회의를 통해 요청이 들어왔으며, 바티칸에서는 이를 승인하였다. 하지만 성체에 대한 한탄스러울 정도로 공경심이 결여된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는데, 이는 그러한 행위를 한 개인 신자뿐 아니라 이런 사태를 충분히 예견하고 경계하지 않은 교구의 사제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또 손으로 성체를 받는 것이 허락된 곳에서는 혀로 성체를 영하는 기존의 관습을 계속 원하는 신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이 거부되는 경우도 있다.

 

2014년 슈나이더 주교는 영국과 웨일즈의 라틴 미사 모임(the Latin Mass Society of England and Wales) 간행물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지식과 경험에 의하면, 교회의 현재 위기상황에서 가장 깊은 상처는 성체의 모독이 행해지는 성찬식의 상처이다...

 

“거룩하여야 할 성찬식이 불경하게 치러지는 것이 문제이다. 소위 손으로 받는 새롭고 현대적인 방식의 관습은 그리스도를 엄청난 더러움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에 매우 심각하다.

 

“성체 부스러기의 손실에 대한 심각한 사실이 있다. 아무도 이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거룩한 성체의 조각들이 발에 짓밟히고 있다. 이는 끔찍한 일이다! 우리의 교회에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 발에 짓밟히고 계신다! 이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런 일이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다.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이들에게 이 사실은 너무도 심각한 현상이 틀림없다.”

 

“우리는 성체 속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고 오로지 빵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이 관습을 계속할 수는 없다. 이런 손으로 성체를 받는 현대적 관습은 고대 교회의 관습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성체를 손으로 직접 받는 이 현대적 관습은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임하신다는 가톨릭의 신앙을 지우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이 현실이다.

 

“성직자와 주교는 이 관습이 괜찮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지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가장 신성하며 가장 단단하여야 할 신앙이 걸려 있다.”

 

 

#5 역사

 

성찬식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물론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사도들에게 친히 자신을 내어주셨던 성경의 말씀이 있다. 일부에서는 특히나 요한복음의 최후의 만찬 이야기에 나오듯 사도 유다에게 그리스도께서 빵을 포도주에 적셔서 주었다는 기록을 두고 예수께서도 친히 사도들의 입으로 직접 주셨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내기도 하였다.

 

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만찬을 손에 전해주셨을지라도 사도들은 모두 평신도가 아닌 모두 주교급이었다.

 

하지만 초기 교회에서는 손으로 성체를 전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4세기에 살았던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손을 앞으로 내밀되 손가락을 펴거나 벌리지 말 것이며, 왼손은 오른손을 받쳐 보좌하여라. 이 손이 곧 왕을 영접할 것이다. “아멘”이라 답하며 손바닥 위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으라. 그런 다음 거룩한 성체를 들어 눈에 대 눈을 거룩히 하고, 눈동자를 조금이라도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물론 성 치릴로도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성체의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에 관한 충고도 하였다.

 

이제 다시 슈나이다 주교의 저서 ‘Dominus Est’를 인용하여 혀로 받는 성찬식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영성체 순간의 거룩함을 인식한 2000년 전통의 교회는 믿음과 사랑과 공경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전례 관습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유기적 발전의 결과 적어도 6세기부터 교회는 성체를 입으로 직접 전하는 방식의 관습을 채택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대한 문헌은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교황 그레고리의 전기와 교황 아가피투스와 관련된 대화록(Dialogues, III) 등; 839년 코르도바 종교회의에서는 입으로 영하는 성체성사의 관습을 거부한 이른바 ‘카시아니(Casiani) 종파를 비난하였다. 878년 루엥(Rouen) 종교회의에서 입을 벌려 혀로 직접 영하는 성체성사의 관습에 관한 교회법을 확인하였으며, 성직자들이 신자들에게 손으로 전하는 관습을 사용한다면 직무를 정지할 것임을 경고하였다.

 

초대 교회에서도 봉헌된 빵을 받기 위해서는 손을 씻어야 했다. 신자들은 주님의 성체를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받았으며, 또한 오른손을 들어 영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깊이 숙여 오른손에 올려진 성체를 입으로 영하였다. 여성들은 손바닥에 린넨천을 덮고 성체를 올렸다. 아를Arles의 성 캐새리우스(Caesarius, 470-542) 의 설교를 읽어보자: “성체성사를 하려는 모든 남성은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여인은 린넨천을 가지고 다녀야 하며, 그 위에 그리스도의 성체를 올려야 한다.” (Sermo, 227, 5) 전통적으로 비잔틴 전례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성직자들 또한 성찬 빵을 전한 후에 정화의 의식으로 씻었다. 칼데아Chaldean 교회의 고대 교회법에는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라도 손가락으로 성찬 빵을 집어 입에 넣는 것은 금지되었다. 성직자도 손바닥으로 주님의 성체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 이유는 이 성찬 빵이 평범한 음식이 아니라 하늘의 양식임을 나타내려는 의도이기 때문이었다: John Bar-Abgari의 교회법에 따르면 “사제들에게는 거룩하게 구분된 빵 조각을 손바닥에서 직접 영하여야 한다. 성직자는 이 성체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어서는 안 되며, 손바닥을 입으로 가져가야 한다. 이 성체는 천국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의 관습은 1500년대에 특히 그리스도의 변환에 대한 신앙을 지우려는 목적으로 개신교 개혁가인 마틴 부세르 Martin Bucer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부세르는 역시 이단이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크랜머 Thomas Cranmer 에게 혀로 받는 성체성사를 금지하도록 설득하였다. 부세르는 이렇게 가르친다: “나는 신자들의 손에 맡기지 않는 이 관습이야말로 두 개의 미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우선 첫 번째는 그들이 성체성사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거짓된 명예이며, 두 번째는 서품의 기름 부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백성보다 더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성직자들의 사악한 오만의 결과이다.”

 

하지만 성체성사를 손으로 받는 관습은 가톨릭에서 이미 1000년 전에 폐기된 관습이었기에 이 관습은 설 자리가 없었다. 1908년 성 비오 10세의 교리문답서에는 성체성사를 받을 수 있는 방식을 하나만 설명하고 있다. 47장 Q: 영성체를 모실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 A: 영성체를 모실 때 우리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약간 들며, 눈은 겸손하게 거룩한 성체에 고정하고, 입은 충분히 벌리며, 혀는 입술 위로 약간 내밀어야 한다.

 

마이클 데이비스의 질문에 대한 심층적이고 많이 참조된 연구로부터 우리는 다음의 것들을 배운다.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는 바티칸 제2 공의회 직후부터 가톨릭교회에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이 관습은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어 인근 독일, 벨기에 그리고 프랑스로 확산되어 합법적인 교황청의 권위에 맞선 반란행위로 시작되었다.

 

이 반란의 파장이 너무나 심각해져 교황은 세상의 주교들에게 자문을 구했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1969년에 칙령 Memoriale Domini를 공포하였다. 이 칙령에 포함된 주요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주교 중 압도적인 다수는 이 혁신에 반대하였다.

2. 성찬식을 분배하는 전통적인 관습은 유지되어야 한다.

3. 전통 관습은 성체를 받는 자의 존엄성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존경의 표시이다.

4. 이 혁신은 불경과 성체 모독, 그리고 올바른 교리를 변질시킬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거룩한 전례 관습은 다수의 가톨릭 주교의 판단에 따라 유효함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으므로 사도좌(교황)는 주교, 사제 그리고 신자들에게 이 관습을 준수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Memoriale Domini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특히 주교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현재 교회 전체의 상황에 비추어 (혀로) 성체를 나누는 방식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이 방식은 수 세기의 전통에 기초할 뿐 아니라, 이 방식은 성사에 충실하며 하나이신 주님을 공경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이 위대한 성체 앞에 다가서는 신자들의 인격적 존엄성을 전혀 손상시키는 것이 아닌 주님의 성체를 가장 잘 영접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이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그 후 끔찍한 해석 남용이 뒤따랐다고 말한다. “어느 곳이든지 관습이 이미 자리 잡은 곳”이라면 주교 회의에서 3분의 2가 찬성하면 교황청에 자리 잡은 관습을 합법화하기 위한 청원을 할 수 있도록 동의하였다. 분명히 “이미 자리 잡은”이라는 말은 1969년 5월 28일을 기점으로 잡았다는 의미였다. 그 날짜까지 관습이 자리 잡지 않은 나라는 명백히 허가에서 제외되는 것이었다. 또 모든 영어권 국가들은 이 범주 안에 속한다.

 

1977년 미국 가톨릭 주교 회의에서 이 문제가 다시 논의되었을 때, 블랑셰트 Blanchette 주교는 바티칸에서 승인한 관습과 반대되는 관습의 사용이 우세할 경우 교황청에 새로운 관습의 허가를 요청할 수 있다고 이 칙령의 자의적 해석을 통과시키려는 주교 회의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러면서 첫 번째 단계도 거치지 않고 어떻게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가는지 이의를 제기하였다.

 

1977년 6월 12일 자 미국 가톨릭 기록소에 다음과 같은 말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주장합니다. 우리는 지금 교황청에 청원할 것인지 여부를 논의하고 투표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반대되는 관습이 우세하다는 것에 대한 결론을 확립하지 못했습니다. 각 교구에서 반대되는 관습이 우세한 지 여부를 직접 조사하여 자료를 모으는 방법이 가장 간단합니다. 평신도들은 자신의 교구 성직자를 알 것입니다. 성직자뿐 아니라 평신도 역시 순종의 미덕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반대되는 관습이 우세하다고 결론 나면 모두 따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의제를 수정하여, 첫 번째 단계, 즉 반대되는 관습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하며, 그리고 결론이 난 후 나머지 의제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첫 번째 단계도 검증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블랑셰트 주교의 제안에 5명의 다른 주교들이 서면으로 지지하였으며, 의장에 의해 채택되었다. 규정에 따르면 모든 주교의 서면투표가 있었어야 하지만, 개혁 지지자들은 이에 반대하며 거수 투표를 통해 결정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시행되었다.

 

따라서 지금 이 질문이 매우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 투표는 얼마나 합법적이었나? 투표를 거친 다음 새로운 관습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특별한 조치가 취해졌다. 투표에서 이기기 위해 개혁 지지 주교들은 특별한 수단을 사용하였다. 은퇴한 주교는 투표권이 없었으며, 필요한 과반을 얻지 못하자 저들은 필요한 수를 맞추기 위해 참석하지 못한 주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로써 성체를 손으로 받는 새로운 관습이 늑대와 같은 일부 고위 성직자들의 기만과 배신, 협잡으로 생겨났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가톨릭 신자들은 손으로 성체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 외의 다른 관습이 부정당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신령성체 만을 바치고 해당 당국에 연락할 것이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 당시 이 문제에 대해 바티칸이 공개한 편지를 해당 사제나 주교에게 보내자. 오늘날 많은 교구에서 쓰는 절충안이 있다. 미사 중에 입으로 받는 성체성사를 할 수 없다면, 미사 후에 성체를 나누어 주도록 성직자들에게 요청하자. 만약 성직자들이 여전히 우리 주 그리스도를 입으로 영접하는 관습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증거를 모아 바티칸의 경신성사성에 조정을 신청하고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하자.

 

 

거룩한 성체성사의 기회를 빼앗겨 힘들지라도 그리스도의 희생을 생각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는 미사에는 꼭 참석하도록 하자.

 

 

 

"이제 많은 자들이 주님께서 내리신 그들의 지도자, 교황에 맞서게 될 것이다. 신앙과 도덕의 문제는 그것이 주님께서 베드로의 자리를 통해 인간들에게 주신 율법이라면 바뀌어서는 안 된다. 특히나 이 잘못된 율법이 성자의 교회를 통해 지상에 전통으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9. 10. 6

 

“내가 보낸 성직자들은 지상에서 천국을 대신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린 자들이다. 그런 너희에게 경고한다: 너희는 지금 당장 전통적인 의식들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 너희는 무너져가고 썩어들어가는 나의 집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 너희는 파괴되고 있는 것들을 찾아 되돌려 놓아야 한다! 지금 당장!

“내가 간택한 자 중 많은 자들이 안에서부터 멸망을 택하고 있다. 너희의 행위를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모른 척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신성함과 경건함을 가장한 잘못과 속임수와 기만들이 판을 치고 있다! 전능하신 아버지 앞에서 너희의 가면이 모두 벗겨질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기반부터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안에서부터 멸망하고 말 것이다.

“나는 나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종류의 신성모독 행위를 보고 있다. 너희가 얼마나 오랫동안 징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잠에서 깨어나거라, 나의 성직자들아! 너희는 그 누구도 속여서는 안 된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75. 11. 22

 

"이 사악한 악마가 나의 집 매우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너희는 나의 집을 고쳐 되돌려 놓아야 한다. 너희의 신으로 나는 너희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이 지시를 내린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76. 8. 21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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