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령쇄신 운동...
“나의 딸아, 많은 이들이 성령을 찾아 부르지만, 저들이 부르는 것은 하늘과 빛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저 깊은 지옥 밑바닥에서 올라온 것들이다. 달아나거라! 너희는 이런 목적의 모임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저들은 빛에서 온 것이 아니다. 나의 자녀들아, 때가 되면 너희가 이 모임들이 일으키는 재앙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더 많이 아는 자들이 이 거짓 성령을 쫓아 악마의 모임에 자신을 바치고 있구나. 너희에게 이런 거짓 성령은 필요가 없다. 성체성사를 통해 성자는 언제나 너희에게 임하실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많은 이들이 거룩한 성사를 외면하고 ‘사랑, 사랑!’을 외치며 새로운 세상을 찾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누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아느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사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겠느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세속의 사랑보다 진정한 사랑에 굶주림을 느끼겠느냐? 이 진정한 사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마저 바칠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4. 6. 15
돔 피터 플루드 Dom Peter Flood, O.S.B., M.D., M.Ch., B.A., B.Comm., J.C.D. 작성
창시자 몬타누스(Montanus)의 이름을 딴 몬타니즘(Montanism)은 서기 2세기 말부터 다양한 명칭과 형태로 이어져 왔다. 서기 175년경 몬타누스가 받아들인 최초의 프리지아 이단으로 남아 있다.
여러 시대와 여러 장소에서 이 이단은 교회에 많은 해를 끼쳤고 지금도 끼치고 있다. 참된 교회에 대한 계속된 공격을 일삼는 순수한 영인 사탄은 인간들에게 경험을 통해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닌 자연스레 쉽게 성령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미끼를 던져 선택받은 자들도 잠시 현혹될 수 있게 유혹한다.
성 제롬은 몬타누스가 키벨레(Cybele)의 제사장이라고 생각하였다: 몬타누스는 프리지아의 아르다바우(Ardabau)에서 왔다. 그곳에서 제사장들은 광란의 춤을 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여인 프리실라와 막시밀라는 그에게 끌려 남편을 버리고 따라나섰다. 두 여인 모두 예언을 하였다. 막시밀라는 자신은 프리실라와 함께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였지만, 프리실라보다 몇 년을 더 오래 살다 죽었다. 몬타누스는 계시의 새로운 시대, 즉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하였다. 처음에는 자신을 성령의 대변인으로 칭하다, 나중에는 결국 자신을 성령이라고 칭하며 다녔다. 이 분파는 교회에 많은 해를 끼쳤으며, 가장 주목할 만한 개종자는 테르툴리아누스이다. 이 영향력이 큰 신학자는 곧 자신의 분파를 만들었다. 그는 베드로의 열쇠의 권한과 교황권을 대부분 부정하였다. 스스로 테르툴리안주의자라 칭한 이 분파는 한동안 북아프리카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히포(Hippo)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누스 때에 테르툴리안들은 카르타고에 자신들만의 대성당을 가지게 되었는데, 성인이 중재하여 그들을 교회와 화해시켰다. 이 감상주의자들의 초기 결과물에 대해 많은 글을 쓸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들의 이교도적 행태로 발작적인 상태에서 예언과 같은 징후들을 보였다는 사실만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예언이란 보통 이상한 형태의 강론에 불과할 뿐, 미래에 대한 실제적인 예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막시밀라의 예언이 대부분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종종 에로티시즘을 동반하기도 하고, 건전한 교리에서 벗어나기도 하는 이 이교도적인 히스테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교회 역사 거의 모든 단계에서 등장한다. 일루미나티는 가장 잘 알려진 예로 알룸브라도스의 성 데레사(St. Teresa the Alumbrados) 시대에 보인다. 실제로 성인의 기도방법에 대한 거룩한 가르침으로 그들을 몰아낼 수 있었다. 후에 발작적 경련을 동반하는 얀센주의자들과 미국에서 발생한 홀리 롤러 같은 광란의 단체들은 모두 역사의 한 편에 숨어 슬픈 일탈에 대한 그들의 부흥주의적 표현을 추가하고 있다.
현재는 주로 미국의 대학 단체들로부터 파생된 이처럼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새로운 운동이 생겨났고 가톨릭교회 전체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부흥운동으로 표현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스칸디나비아와 네델란드의 단체들로부터 강력한 조력이 주입되었다. 영국도 비켜 가지 않았고 아일랜드에 모습을 감추고 있다. 로마조차 이들의 집회에서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이상의 내용이 개인주의와 감상적 자유를 숭배하는 이교 관습에 대한 짧은 역사 이야기이며, 이들은 합법적 요소를 포함하여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교도권을 거부하게 하고 있다.
지역 가톨릭 공동체에 가장 온순하게 보이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감추고, 어느정도 자리잡은 후 자신들의 진짜 성격을 공개하는 것이 이 단체들의 관행이다. 이들의 기만행위에 주교도 속고, 순진한 수도자들도 속으며, 특히 여성들이 쉽게 속아 넘어가고 있다. 사탄은 본성이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어떤 이름을 사용하든 상관없이 이들 부흥 운동가들의 집회에서는 온갖 종류의 히스테리적 발작 징후들이 나타난다. 이런 갖가지 징후들은 참가자들의 인종, 성별, 감정적인 특성에 의해 다양하게 발현된다. 처음에는 조용한 기도로부터 시작하여 곧 누군가 큰 소리를 내며 노래하거나 외치기 시작한다. 잠시 후 이런 큰 소리로 외치는 행위는 집회 전체에 퍼지지만, 그러면서도 전체가 같은 노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여인들은 흥에 겨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뛰어다니며 춤을 추기도 한다. 이 행위들은 확산되고 상호 작용으로 전체 집단에 퍼진다. 순수하면서도 민감한 감정은 에로틱하거나 관능적인 자극에 쉽게 휩쓸리기 때문이다. 누군가 기도나 안수를 청하면, 참석자 중 누군가 요청에 서둘러 응할 것이다. 격정적인 사람은 히스테리가 더욱 심해지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방언을 이용해 말하거나 노래 부를 것이다. 이 방언이라 불리는 것은 사실 횡설수설에 불과한 것이지 기적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참석자 중 통역자나 의장 또는 어떤 이는 이 히스테리 환자가 주절거리는 방언이라는 것을 해석하기도 한다. 신앙치유도 일부 집단에서 시행하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다. 이 집회에 모인 이들의 신앙에는 진리가 없다. 이들의 모든 주장은 성경의 잘못된 해석에 근거하고 있다. 가장 흔한 오류는 방언을 말하는 것인데, 오순절 이후 사도들이 방언으로 말한 것을 근거로 이를 재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도들은 자신의 말로 강론을 하였으며, 여러 나라에서 온 군중들이 자신의 언어로 들었다는 것이 성경의 진실이다. 이들이 방언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의 구조도 갖추지 않은 횡설수설에 불과하다. 이 감성 집회를 주도하는 자들조차 악마가 개입하는 위험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주의를 주고 있다. 이는 예상치 못한 위험이 아니다.
이들 집회의 전체적인 설정은 자기 최면을 선호하듯이 참석한 저명인사의 호의적 제안을 선호한다.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환희는 단지 감각적 흥분일 뿐이다. 뇌의 하부 중추의 특정 부분이 자극되어 통제를 벗어난 큰 자극을 얻기 때문이다. 이러한 흥분상태는 뇌 시상하부 중심에 연결된 전극을 자극하는 쥐의 실험에서도 관찰된다. 언어를 관장하는 기관이 흥분상태에 빠져 횡설수설하거나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르는 등 일탈 행동으로 분출된다. 한마디로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해리 경험에 불과하지만, 희생자는 히스테리적이고 더 이상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Samarin은 이 집회에서 수집한 방언 녹음을 상당한 연구를 수행하였는데, 그는 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은 항상 같은 것임을 밝혀냈다. 즉 어떤 주제와 관련된 소리로 만들어진 음절의 나열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방언이라는 것이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확신하였다. F. D. Goodman에 의해 보다 기술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그는 이 현상을 발성 패턴, 즉 초 흥분상태에서 만들어진 발성 오토마티즘(의식적인 사고를 피하고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화법) 이라고 칭하였다. 즉 이는 히스테리의 발작과 아직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기분을 주체못하고 되는대로 지껄이는 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제되지 않은 발성의 사용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성령의 직접적인 개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성모독일 뿐 아니라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이다. 이런 종류의 세례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사 중 어떤 것에 더해지거나 대체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성경이나 다른 어떤 기록에서도 찾을 수 없다. 자기 환영은 모든 형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분명 기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녀 데레사가 보여 준 것은 의지의 행위이다. 성인은 전통적인 영적 기도는 초심자들에게 자기 환영의 위험을 주기도 한다고 경고하였다. 무의식 상태에서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신에게서 온 것이라고 믿기 쉽다. 불행하게도, 모든 형태의 순수한 감성적 착각이 그렇듯, 이 감정적인 흥분은 쉽고 빠르게 관능의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 한 작가는 많은 부흥회 집회에서 기독교적 사랑이 ‘아가페’보다 ‘에로스’로 빠질 경우가 훨씬 많으며, 이런 부적절한 관계마저도 헌신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이 성령 쇄신 운동의 실질적인 위험은 신앙을 약화시키고, 가톨릭교회의 성사를 부정하거나 싫어하게 만드는 것에 있다. 처음에는 그들이 신실한 기도행위라고 믿던 것에서 감각적 쾌락을 발견하고, 많은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심에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의 경건한 전례 방식에서 만족을 찾지 못하고 다시 자극적인 부흥회를 찾아다니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 다른 가톨릭 신자들보다 신앙적으로 더 높은 위치에 있으며, 성령과 직접적인 접촉하는 은총을 받아 교회의 그리스도의 대리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교만에 빠질 위험이 훨씬 더 커진다. 이 문제를 연구한 한 미국인 개종자는 성령 쇄신 운동에 빠진 이들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멈추고, 피임을 일상화하면서, 개인적인 열정에 기대는 이 사악한 행위를 합리화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위이다! 이는 계몽주의자들과 전통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있었던 일원론적 분류와 다를바 없다.
때때로 주교들은 이 운동을 규제하고 비난하며 심지어 운동가 중 이름있는 자들을 추방하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교회 측이 단합되지도 않았고 확신도 부족하여 그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 성령세미나 운동가 사이에서 일종의 준성직 주의가 확산하여, 오로지 서품받은 사제들에게만 주어진 권리와 의무를 자신들도 부여받았다고 믿게 된다. 이런 신념은 빠르게 퍼져 가톨릭 신앙에 대해서는 말뿐인 순종을 하면서 곧 신앙에서 멀어져간다. 실제로 그들 사이에는 단체 수만큼 많은 신앙이 있다. 불행하게도 다른 통제되지 않는 감정과 마찬가지로, 감각적인 흥분에 대한 사랑은 수도원과 수녀원을 포함한 모든 가톨릭 공동체에서 자라나고 있다. 감정과 기괴한 것에 대한 열망에 호소하는 이 운동은 그 모양이 어떻든 교회에 큰 해를 끼친다. 이런 이유로 교회와 신자는 모두 이에 대한 위험을 인식하여, 교회가 승인한 전례와 기도에 충실하여야 한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가 잘못에 빠져있구나. 성자는 당신의 집, 교회에서 너희 구원을 위해 간결하고 직접적인 계획을 너희에게 주었다. 온갖 새로운 것과 변화를 당장 멈추어라. 더러운 것과 타협해서는 영혼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성령을 부르짖는 자들아, 암흑의 왕자가 너희에게 암흑의 영을 보내라 명령하고 있구나. 나의 자녀들아, 너희가 천사조차 가기 두려워하는 곳의 땅을 밟고 있다. 너희는 성신에게 오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성신은 전능하신 성부의 뜻대로 전해지는 선물이다. 이제 당장 너희는 어둠의 지역에서 방황하는 것을 멈추거라.”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6. 6. 18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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