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티마의 세번째비밀(The Third Secret of Fatima)/①루치아 수녀-1970년대에 제3의 비밀 징벌은 이미 시작되었다

3-1. 앨리스 본 힐데브란트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을 새롭게 조명하다....

성 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2023. 9. 29. 14:17

 

3-1. 앨리스 본 힐데브란트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을 새롭게 조명하다....

 

 

"나의 딸아, 저들이 파티마에서 내가 전해 준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구나. 그 비밀은 무척 간단하다. 내 메시지의 성질상 그 비밀을 완전히 드러날 수는 없다. 나는 사탄이 로마의 가장 높은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경고하고 또 경고하였다. 나의 딸아, 세 번째 비밀은 사탄이 성자의 교회에 들어가는 것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8. 5. 13

 

 

OnePeterFive.com, 2016. 5. 12 기사:

 

브라이언 W. 해리슨 신부의 소개 해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도적 권고 ‘Amoris Laetitia (AL)’ 챕터 8의 명확성과 구체성 결여로인해 객관적으로 죄 많은 관계 속에서 공적으로 살아가는 가톨릭 신앙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상호 모순적인 해석들이 돌고 있다. 지금의 교황은 이 사람들 중 누구도 성찬을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그의 전임자들과 결별하였는가? 누군가는 그렇다고, 또 누군가는 아니라고 말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친구인 저명한 가톨릭 철학자 로베르토 스파만(Robert Spaemann)은 최근 인터뷰에서 AL의 공포와 함께 “혼란이 펜촉에 의해 원칙으로 격상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미 예측이 가능하게 되었다. 주교회의에서부터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작은 교구까지 불확실성과 큰 혼란이 있을 것이다.”

 

이 중대한 상황은 파티마의 성모님이 포르투갈 양치기 아이들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낸지 100주년이 되는 이번 주 금요일(2016년 5월 13일)을 시작하면서 성모님의 메시지에 대한 더 깊은 성찰을 불러 일으킨다. 1980년에 당시까지 생존했던 루시아 수녀는 카를로 카파라(Carlo Caffarra) 몬시뇰(현 추기경)에게 중요한 편지를 썼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결혼과 가족에 대한 연구를 위해 교황청에 새로운 연구소를 맡을 것을 요청하자, 카파라 몬시뇰은 루시아 수녀에게 편지를 써서 이 연구소를 위한 기도를 요청하였다. 몬시뇰은 최근 “루시아 수녀의 서명이 담긴 매우 장문의 편지”를 받은 것에 대해 놀라움을 알렸다. … 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주님과 사탄의 시대 사이에 벌어질 마지막 싸움은 결혼과 가족에 관한 것이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결혼과 가정의 거룩함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항상 모든 면에서 논쟁과 반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결정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나서 수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성모님은 이미 그 머리를 짓밟으셨습니다.’

 

루시아 수녀가 그 편지를 쓴 지 15년 후, 다섯 명의 교황에게 개인 신학 고문을 맡은 루이지 치아피(Luigi Ciappi (1909-1996)) 추기경이 바티칸이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파티마 비밀의 일부에 대해 놀라운 폭로를 했기 때문에 이러한 확신은 고무적이다. 이것은 분명히 성모님의 메시지의 출판된 부분에서 수수께끼의 단어 ‘등등’에 의해 분명히 언급된다. 파티마의 완전한 비밀을 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인 치아피 추기경은 잘츠부르크의 바움가르트너(Baumgartner) 교수에게 보낸 1995년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제 3의 비밀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교회의 큰 배교가 꼭대기에서 시작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충격적인 예언은 왜 루시아 수녀가 이 예언으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는지, 왜 교황 요한 23세가 1960년에 이 예언서의 예정된 출판을 취소했는지, 교황청의 알프레도 오타비아니(Alfredo Ottaviani) 추기경이 기자의 질문에 과민하게 대응했는지 그 이유가 모두 설명이 된다. 제 3의 비밀은 바티칸 기록 보관소의 가장 깊은 곳에 계속 감춰져 있을 것이다. (1960년에 젊은 시절 로마에 살던 한 사제는 신문 기사에서 추기경의 이 말을 읽은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교회의 최고 교리 수호자로서 오타비아니는 이 끔찍한 메시지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를 세운 반석인 베드로좌에 있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의 믿음을 동요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위의 관찰은 내가 약 20년 동안 알고 지낸 앨리스 폰 힐데브란트(Alice von Hildebrand) 박사의 다음 증언을 그들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치아피 추기경이 그 비밀에 대해 말한 것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제공하지만, 그 비밀은 이미 치아피 추기경이 오스트리아 교수에게 편지를 쓰기 30년 전에 교수와 그녀의 고인이 된 남편인 저명한 철학자 디트리히 폰 힐데브란트(Dietrich von Hildebrand)에게 알려졌다. 5월 초 개인 이메일에서 폰 힐데브란트 박사는 1965년 피렌체에서 나눈 대화에 대해 말했다. 나는 박사에게 이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허락할 것이지 물었고, 박사는 영적인 스승과 상담한 후 허락을 했다고 대답하였다. (여기서 우리의 대화를 기록한 마리오 보엠 몬시뇰은1930년대와 40년대 주세페 달라 토레 백작 시절 바티칸 신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의 편집부의 주요 멤버였다. 보엠 몬시뇰은 은퇴후에도 로마에서 고위급 접촉을 계속 했다.)

 

폰 힐데브란트 박사와 그녀의 남편이 1960년대에 전직 공산주의 공작원 벨라 도드(Bella Dodd) 와 나눈 또 다른 유사한 대화를 이곳에 첨부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파티마의 메시지와 관련된 이러한 증언이 교회의 혼란이 심화되고 교회의 최고 권위 단계에서 나오는 변화가 심히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깊은 위안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늘이 이 큰 위기를 예견했을 뿐만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리스도는 여전히 공격할 수 없는 교회의 수장이시며, 예수의 티없으신 성심은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 거룩한 로사리오의 여왕이시며, 사탄에게는 “준비를 마친 군대처럼 무서운” 분은 결국 승리하실 것이다.

 

90대인 폰 힐데브란트 박사는 이제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워 졌음을 느꼈기에 나는 좀 더 그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 박사의 원본 이메일에 약간 수정을 했다. 박사는 내가 수정한 수정본을 승인했으며 웹사이트 OnePeterFive 에 게시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2016. 5. 6, Brian Harrison 신부에게 보낸 이메일):

 

친애하는 신부님,

 

제가 1960년대부터 잘 기억하고 있는 다음의 두 가지 대화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심각한 문제의 시대에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모님의 파티마 비밀 중 일부는 교회의 거대한 배교가 “높은 곳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언이었다는 치아피(Ciappi) 추기경의 말을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대화는 1965년 6월이었습니다. 우리는 피렌체에 있는 남편이 태어난 집에서 첫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제 남편이 마리오 보엠(Mario Boehm) 몬시뇰을 집에 초대했습니다. 몬시뇰은 로세르바토르 로마노(L’Osservatore Romano) 의 최고 편집자 중 한 사람으로 갓 임명되었는데 이후 오랫동안 편집자를 지냈습니다. 대화 중에 파티마에 대한 주제가 나왔습니다. 제 남편이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은 어째서 밝혀지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1960년에 모든 신자들에게 비밀을 공유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돈 마리오: 내용 때문에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남편: 무엇 때문에 그리 두려워 하시죠?

보엠 몬시뇰(익숙한 이탈리아어로)은 자신은 그 비밀을 읽었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두려운 내용이 있었다고 암시했었습니다: “교회의 가장 높은 곳까지 침투”. 그 말이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해석되는 방식이 교회를 끔찍한 위험에 노출시킬 것이라는 남편의 두려움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아아, 이 두려움은 근거가 충분했습니다.

 

두 번째 대화는 내가 이전에 이미 이야기했던 벨라 도드와의 대화입니다. 우리는 1965년 가을에 그녀를 만났고 그녀는 1966년인지 1967년인지 뉴욕주의 뉴로셸(New Rochelle) 우리 집에 방문을 왔습니다. 그녀는 공산주의의 산실인 헌터 칼리지에서 학생 시절부터 공산주의 교육을 받은 열렬한 공산주의자 였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저의 책 “행복한 실패의 기억(Memoirs of a Happy Failure)”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제가 그곳에서 조직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이유입니다.) 벨라는 헌터 칼리지에서 이 사악한 이념의 씨앗을 뿌렸지만 1952년 풀턴 쉰(Fulton Sheen) 대주교의 영향으로 회개하였습니다. 그녀와 제 남편 사이의 대화를 재현해 보겠습니다:

 

남편: 나는 교회에 침투할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벨라: 교수님께서 그 점을 두려워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열렬한 공산주의자였을 때, 저는 바티칸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는 네 명의 추기경들과 밀접하게 접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추기경들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수: 그들은 누구입니까? 내 조카 디터 새틀러가 교황청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쉰 대주교의 영적 인도 아래 있던 벨라는 남편에게 이 정보를 주는 것은 거부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수단은 기도와 지옥의 문은 결코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고한 확신입니다. 성 마태오 복음사가께서는 복음서 24장에서 경고하셨습니다.

 

열렬한 기도의 연합으로.

 

친애하는 신부님,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께 존경을 드립니다.

 

Alice von Hildebrand

 

 

 

"두 차례에 걸쳐 너희에게 세 번째 비밀을 밝혔듯이, 나는 루시아에게 시한부로 계시를 주었다. 이 모든 것을 지상에 있는 모든 우리 자녀들에게 전하기 위해 노력하여라. 고위 성직자들은 우유부단함과 노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의 조언을 듣지 않는구나. 많은 사람에게서 신앙이 산산조각 났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92. 4. 29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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