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체성사 (Eucharist)/①영성체 난간

2-1. 제단 장궤틀이 다시 사용되고 있다...

성 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2020. 7. 25. 21:12

 

2-1. 제단 장궤틀이 다시 사용되고 있다...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를 하여서는 안된다. 천국은 절대로 용납지 않을 것이다. 이 행위는 전능하신 성부께서 보시기에 신성모독이다. 계속하여서는 안된다. 전능하신 성부를 화나게 하여서는 너희가 받을 형벌이 더해질 뿐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84. 6. 30

 

 

National Catholic Register 2011. 7. 2 기사:

 

미국 로드 아일랜드 주의 티버톤Tiverton시에 있는 가톨릭 성당인 거룩한 성신의 교회는 제단에 장궤틀을 설치하자는 몇몇 교구 신자들의 요청을 받은 제이 피넬리Jay Finelli 신부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007년 베네딕트 교황은 자의교서motu proprio인 Summorum Pontificum에 미사를 특별하게 기념하기 위한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코네티컷 주 노르워크Norwalk에서는 교구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성 마리아 성당의 복원을 원한 교구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렉 마키Greg Markey 신부는 성당을 원래의 19세기 풍 네오 고딕 양식으로 복원하였다. 그러면서 성전 제단에 장궤틀을 재건하였다.

 

건축가 던컨 스크로익Duncan Stroik이 설계한 몇몇 교회에는 현재도 제단 앞 장궤틀이 설치되어 있다. 그중 캘리포니아 주 산타 파울라Santa Paula에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 공소, 위스콘신 라크로스La Crosse에 있는 과달루페의 성모님 성소 공소, 그 외 세 곳의 다른 성당들의 도면에 장궤틀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제단 장궤틀이 복원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마키 신부의 답변: “​첫째 이유, 교황께서도 자신에게 성체성사를 받는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기를 원하신다. 둘째로 무릎을 꿇고 성체성사를 받아 모시는 것은 수 세기 넘게 지켜온 가톨릭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셋째 이유는 이 행위는 복되신 주님께 바치는 우리의 경의를 표하는 아름다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신성함의 부활’의 저자이자 교수인 제임스 히치코크James Hitchcock는 장궤틀의 복원은 좋은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로 경배를 들었다. 그는 “장궤의 목적은 경배를 보이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한다.

 

​스트로익은 과달루페의 성모님 성소 공소에 장궤틀을 설치하려는 생각을 설명하였을 때 레이몬드 버크Raymond Burke 추기경은 그 생각을 좋아하였으며, 장궤틀이 제단과 성찬식에 경외심을 더욱 가지게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가톨릭에서 제단과 신자들을 구분하는 제단 장궤틀을 설치하는데 반해 동방정교회는 제단과 신자들 사이에 각종 종교적 회화와 상징들로 장식된 벽을 세우고 있다. 제단 장궤틀은 대략 60cm정도의 높이지만 제단의 대부분을 분리하는 벽의 역할을 한다.

 

​“제단 장궤틀은 동방정교의 성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동방정교 역시 같은 뿌리를 나누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

 

 

제단 장궤틀의 역사

 

치워진 제단 장궤틀은 다시 복구되어야 한다.

 

가톨릭교회 건축과 미사의 정신의 저자이자 일리노이주 문데레인Mundelein에 있는 호수의 성모대학 전례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이자 교수인 데니스 맥나마라Denis McNamara는 “바티칸 제2

 

공의회나 어떤 공의회 문서에도 장궤틀을 제거를 명하는 문서는 없다”라고 말한다.

 

​프란시스 아린제Francis Arinze 추기경은 2008년 바티칸 경신성사성의 책임자의 자격으로 화상회의에서 이 점을 강력하게 말하였다: “로마에서는 어떤 교회에도 제단 장궤틀을 없애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히치콕은 말한다 “안타깝게도 바티칸 2차 공의회 이후 교회 안에 민주적인 사고방식이 유입되었다.”

 

스​트로익은 이러한 사상의 몇 가지 점을 지적한다: 과거를 부정하는 일반적인 전통타파, 개신교처럼 신자들을 모으고 싶어하는 교회의 욕구, 그리고 무릎을 꿇는 것은 복종의 표시라는 가르침을 현대인들은 무례한 것으로 치부하였다- ‘우리는 왕과 여왕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는다. 무릎을 꿇는 것은 “민주적”인 행위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유입되었다.

 

​ 맥나마라는 덧붙인다: “어떤 이들은 제단 장궤틀을 성직자와 평신도를 가르는 장벽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 “물론,” 그는 말한다, “신학적으로 제단과 신자석의 구분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당시 서품받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역할에 대해 다소 혼란이 있었다. 이러한 역할의 혼란이 건축학적으로도 나타난다”

 

제단 장궤틀에 대해 “제단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마키Markey 신부는 말한다. “‘제단sanctuary’이라는 말은 ‘거룩함holy’에서 유래되었으며, ‘나누다set apart’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성전은 거룩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강화시키기에 교회의 나머지 부분에서 나누어진다. 제단은 상징적으로 교회의 으뜸이며, 으뜸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맥나마라는 솔로몬의 신전에서 교회 건축의 뿌리를 찾고 있다: 넓은 방은 교회의 본당에 해당하며; 천국의 형상인 성역은 오늘날의 제단과 일치한다. 이들은 거대한 장막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 장막은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실 때에 찢어졌다.

 

​“제단 장궤틀은 천국과 지상이 만나는 곳에 대한 표시이다. 아직 완전하게 결합하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상징의 의미가 있다.” 맥나마라의 설명이다.

 

“하지만 동시에 장궤틀은 매우 낮고 투과성이 있으며, 문이 있어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것을 막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장궤틀이 단순한 울타리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천국과 지상이 만나는 표식이라는 장궤틀의 교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제의 모습을 빌어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전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땅으로 손을 뻗어 성찬례를 나눠주신다.”

 

 

미사의 경건함

 

피넬리Finelli 신부는 제단 장궤틀은 혀로 직접 받는 성체성사에 맞춘 형태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는 대림절과 사순절 동안 그리고 연중 매달 이 방식으로 성체성사를 나눈다.

 

​성체를 모시는 이들은 전문 목수인 신자가 만든 오크나무로 만든 장궤틀에 무릎을 꿇는다. 교구민들은 그 장궤틀에 금박을 입히기도 한다. 그들은 부속성당에도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 대성당의 제단 장궤틀과 유사한 장궤틀을 만들어 설치하였다.

 

​2000여 가구의 교구민들이 장궤틀의 설치를 간곡히 요청하였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제단 장궤틀의 설치를 요청하였다. 그래서 나는 제단 장궤틀을 설치하여 사순절이 시작될 때 장궤틀을 사용하여 성체성사를 나누어 주기로 결정하였다.” (모든 주일과 특별한 축일 미사에도 또한 장궤틀을 사용하여 성체성사를 나눈다.)

 

​무릎을 꿇거나 서서 성체성사를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을 신자들에게 주면 많은 이들이 무릎을 꿇는 성체성사를 선택한다. 신자들에게 혀나 손으로 받는 것의 선택권을 주면 많은 이들이 혀로 받는 성체성사를 택한다.

 

​피넬리 신부는 말한다. “현존하시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공경의 강한 표현이 필요하다. 우리가 받는 빵과 포도주는 실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피넬리 신부는 서서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는 교황청에서 특별한 사유로 허락받은 것일 뿐 원래 교회법에 인정한 성체성사 방식은 무릎을 꿇고 혀를 내밀어 받는 방식뿐이라고 단정해서 말한다. (이 특전도 미국 주교들이 요청하여 허락받은 것이다)

 

코네티컷의 성마리아 성당은 주 3회 특별한 형태의 성찬식(손으로 받는 성찬식)을 행하고, 다른 모든 미사에는 장궤틀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형태의 성찬식(혀로 직접 받는 성찬식)을 행한다고 마키Markey 신부는 말한다. 1000여 가구의 교구민들은 무릎을 꿇고 성체성사를 받거나 서서 성체성사를 받을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는 로마의 승인을 받은 것이다. 그는 바티칸의 지시를 잘 행하고 있다: “2003년 바티칸의 경신성사성은 ‘무릎을 꿇고 혀로 성체성사를 영하려는 자에게 성체성사를 거부해서는 안되며.... 불복종이라고 비난해서도 안된다...’”

 

​스트로익은 마키 신부가 펜실바니아의 폐쇄된 교회에서 구입한 황동 문을 이용하여 손으로 조각된 대리석으로 네오 고딕풍의 제단 장괘틀을 디자인하였다. 원래 있던 고정형이던 하얀색 대리석 제단과 새로운 이동식 대리석 제단이 아름답게 잘 어우러져 전례적 상징성에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 “우리가 제단 장괘틀로 모여들 때는, 우리가 제단에 모여드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라고 스트로익은 말했다.

 

같은 재료로(이 경우는 대리석) 제단과 장괘틀을 만들면 그 관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

 

​성전 건축전문가인 맥나마라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일부 오래된 교회 건축 서적에서 장괘틀을 “인간의 제단”이라 부르며 제단과 같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음을 말한다.

 

상징적 관계를 강조하고자 일부 교회에서는 성찬식 동안은 제단과 같은 린넨천으로 장괘틀을 장식하곤 하였다.

 

 

기도에 이끌리다

 

제단 장괘틀을 복원하여야 하는 이유는 더 많이 있다. 스트로익은 제단 장괘틀이 철거된 성당, 대성당, 유서 깊은 성당 건축물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는데, 너무도 많은 이들이 어떤 경외심도 없이 얼마나 신성한 곳인지를 모른 채 제단 위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어떤 교회는 제단 장괘틀의 역할을 박물관처럼 표지판과 밧줄로 대신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분리된 이곳이 특별한 장소이고 신성한 장소임을 구별할 수 있도록 실제적인 장벽이 필요하다.”

 

스트로익은 말한다. 제단 장괘틀은 “사람들에게 감실이나 성모상 혹은 성인들의 성상 앞으로 모여 무릎 꿇고 기도하라는 하늘의 초대장이다.”

 

​마키 신부는 제단 장괘틀의 설치는 대성공이었다고 말한다.

 

성 마리아 성당에 50년 이상 다닌 교구민들은 1960년대에 웅장한 제단 장괘틀이 철거된 것을 너무도 아쉬워하였다. 그들이 이제 말한다. “신부님 돌려주셔서 너무도 감사합니다.”

 

​그는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도 미사에 훨씬 집중한다고 하였다: “어린아이들이 부모가 성체성사를 받아 모시는 동안 그곳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을 본다.” “장괘틀은 거의 모든 것을 포용한다. 내가 목자로서 내린 결정 중 가장 인기 있는 결정 중 하나이다.”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바울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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