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사라 추기경은 그를 비판하는 이들을 두려워하는가...
신앙과 진실: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을 위한 깃발
“성부께서 신앙과 진실의 단어를 선택하셨다. 빛 속에 남아 있는 성부의 모든 자녀들을 위한 깃발이 될 것이다. 너희는 추기경들과 주교들을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 시간이 다 되었다. 나의 딸아, 사탄이 그들 중에 자리를 잡고 있기에, 주교가 주교와 맞서고, 추기경이 추기경과 맞서 싸우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 성모님, 1974. 10. 6
추기경이 추기경에 맞서다
“사탄이 그들 중에 자리를 잡고 있기에, 형제가 형제에 맞서고, 추기경이 추기경에 맞서며, 주교가 주교와 싸우는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전능하신 성부께서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아라. 성부께서는 이를 통해 양과 염소를 구분하실 것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 성모님, 1974. 11. 1
CatholicHerald.co.uk 2017. 6. 22 기사:
매튜 슈미츠 (Matthew Schmitz) 작성
점점 더 많은 군중이 사라 추기경의 머리를 쟁반 위에 올리기를 원한다. 진보적인 가톨릭 정기간행물을 찾아보면 바티칸의 경신성사성의 수장인 아프리카 기니 출신 사라 추기경의 해임을 요청하는 기사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라 추기경을 대신할 인물을 빨리 찾아야 한다.” (Maureen Fiedler, National Catholic Reporter)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지금 경신성사성에 필요한 말이다.” (Christopher Lamb, the Tablet) “프란치스코의 개혁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교황청 관리들은 모두 떠나야 한다. 교황은 그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한다.” (Robert Mickens, Commonweal) “프란치스코 교황은 단호한 결정을 해야 한다. 로버트 사라와 같은 추기경들이 교황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도라도 계속 지켜야 하는 것이 의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황은 그들을 참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The Editors, the Tablet)
사라 추기경이 언제나 전 세계 가톨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취급받은 것은 아니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임명되었을 때, 지금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그에게 찬사를 보냈었다. Mickens는 그를 “큰 욕심을 보이지 않고, 잘 경청하며, 로마에 온 이후로 분명 보수적인 면을 보이지만... 분명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남자이다.’”라고 묘사했다. Lamb은 그의 소식통을 통해 사라를 근대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이다. 그는 교회의 ‘토착화’(가능한 각 지역의 고유문화를 적용)에 동조하는 주교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John Allen은 사라는 “따뜻하고, 유머가 있으며, 겸손하지만” 주목을 거의 못 받는 주교라고 평했다.
이 모든 평가는 2015년 10월 6일 가족을 위한 시노드의 3일째 되는 날에 바뀌게 된다. 시노드의 교부들은 교회의 성(性)적 가르침에 위배되어 낙인이 찍힌 자들에게도 손을 내미는 것에 반대하며, 교회에 적대적인 세상에도 대담하게 진리를 선포하라는 서로 상충되어 보이는 요구에 격노하였다. 사라는 ‘아포칼립스 짐승들’이라고 알려진 연설에서 두 가지 모두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형제 주교들에게 “우리는 피와 육신을 가진 생명체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의 모든 것을 포용하고 환영해야 한다.” 하지만 교회는 두 가지 큰 도전에 직면하여서도 여전히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서구의 자유 숭배,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 근본주의, 즉 무신론적 세속주의 대 종교적 광신주의이다.”
젊은 시절 사라 추기경은 예루살렘의 에콜 성서대학(Ecole Biblique)에서 공부하였으며, “북서부 셈어(우가리트어, 페니키아어, 포에니어)의 관점에서 본 이사야 9~11장”이라는 논문을 썼다. 이런 이유로 그가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성서 시대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시노드에서 그는 서방의 자유와 이슬람의 근본주의는 두 개의 “묵시론적 짐승”과 같다고 말했다. 이 이미지는 두 짐승이 어떻게 교회를 공격하지를 묘사한 묵시록에서 가져왔다. 첫 번째 짐승은 일곱 개의 머리와 열 개의 뿔, 그리고 입술에 신성모독을 담은 채 바다에서 나온다. 두 번째 짐승은 땅에서 일어나 큰 이적을 행하고 세상에 첫 번째 짐승을 숭배하도록 설득한다.
이 기이한 역학(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게 만드는 괴물 같은 위협)을 사라 추기경은 우리 시대의 일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종교적 억압에 대한 두려움은 일부 사람들에게 우상 숭배의 자유를 숭배하도록 유도한다. (Ayaan Hirsi Ali가 연설을 마치고 “신성모독에!” 박수를 유도할 때, 유일하게 나만 앉아 있던 것을 떠올린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공격은 ISIS의 검은 깃발 아래 가장 끔찍한 표현을 하는 종교적 근본주의의 잘못된 확신을 받아들이도록 유혹한다. 각각의 악은 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그 반대편에 굴복하도록 유혹한다. 20세기의 공산주의와 나치즘을 떠올리며 이 둘에 다 저항해야 한다.
폴란드 주교 회의 의장인 스타니스와프 겐데키(Stanisław Gądecki) 대주교는 사라 추기경의 연설은 “매우 높은 신학적, 지적 수준”이었지만, 이를 들은 사람들은 그 의미를 완전히 놓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브리즈번의 마크 콜리지(Mark Coleridge) 대주교는 “묵시록의 언어”를 쓴 것은 잘못되었다고 질책했다. (어떤 이는 그가 묵시록의 나머지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관심이 있기도 하다) 사라의 연설 후 한 추기경은 “아이들은 최후의 심판을 떠올리게 하는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저명한 바티칸소식통은 로마에서 나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그는 오늘 묵시록의 두 짐승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주가는 최고로 올랐다.” 제임스 마틴(James Martin SJ) 신부는 사라 추기경이 “성 소수자를 존중하고, 연민하며, 민감하게 대하라”는 교리문답에 위배되는 연설을 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가끔 마틴 신부 같은 생각을 지닌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의 성에 대한 가르침을 대변할 수 있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해하는데, 실상 그들도 그런 이야기를 전혀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 추기경의 연설에 대한 반응은 원칙의 차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지식의 얕음에 있었을 것이다. 더반(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도시)의 윌프레드 네이피어(Wilfred Napier) 추기경은 시노드를 앞두고 유럽인들이 “교회의 가르침뿐 아니라 성서에 대해서도 무지와 외면”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옳았다. 성서에 의한 삶을 살지 않고, 그러한 삶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성서의 언어를 자신과 무관하거나 선동적인 언어로 볼 가능성이 크다.
사라 추기경의 연설 일주일 후인 10월 14일, 월터 캐스퍼(Walter Kasper) 추기경은 시노드에 아프리카 추기경의 개입에 대해 비판을 하였다. “독일에서는 대다수 신자가 교회에서 이혼과 재혼에 대한 자유를 원하고 있다. 그런 요구는 독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도 같은 상황이고 모든 곳이 원한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다르다. 그곳에서 이러한 요구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렇듯 다른데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간섭을 하여서는 안 된다.”
캐스퍼가 사라 추기경을 비판하자 다른 아프리카계의 즉각적인 반발이 일어났다. 낙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나이지리아 가톨릭 신자인 오비아누주 에커차(Obianuju Ekeocha)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 가장 영향력이 큰 시노드 교부 중 한 분의 말을 읽으면서 내가 겪은 충격을 상상해 보십시오... 현재 유럽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 여성으로서 저는 제 도덕적 견해와 가치를 무시당하거나 ‘아프리카 문제’로 치워두는 것에 익숙합니다.”
네이피어 추기경은 이 여성의 글에 공감을 표하였다: “캐스퍼 추기경과 같은 이에게 ‘교황의 신학자’라고 불리는 것은 정말 걱정스러운 일이다. 캐스퍼는 아프리카에 있는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 것 같다.”
캐스퍼의 발언 후폭풍은 마치 댐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그 이후 사라 추기경에게도 엄청난 비난의 물결이 쏟아졌다. 그를 비판하는 자들은 그를 교만하고,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범죄자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매가 약일 수도 있다는 표현까지 했다.
National Catholic Reporter의 마이클 숀 윈터스(Michael Sean Winters)는 사라 추기경에게 자신의 역할을 상기하라고 주문하였다. (교황청 추기경들은 결국 교황청 직원일 뿐이다.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해도 직원일 뿐이다) La Croix의 윌리엄 그림(William Grim) 신부는 사라 추기경을 가리켜 “터무니 없는... 명백히 바보이다... 빨간 모자를 쓴 바보”라고 비난하였다. 이탈리아의 근대주의 전례학자인 안드레아 그릴로(Andrea Grillo)는 다음과 같이 썼다: “사라 추기경은 수년 동안 전례 분야에서 상당한 무지와 무능함을 보여왔다.”
Tablet 지에서 안소니 러프(Anthony Ruff)는 사라 추기경을 비꼬는 글을 기재하였다. “그가 개혁을 더 깊이 연구하였다면, 예를 들어 가톨릭 신학에서 ‘신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을 연구하여 이해시켜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로마의 아이스크림 가게에 자주 나타나는 바티칸 전문가 마시모 파지올리(Massimo Faggioli)는 사라 추기경의 묵시록에 등장하는 동물을 비유한 연설을 ‘일부 국가에서는 아마 형사 고발 대상이 될 것’이라고 순진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세쿠 투레의 잔혹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독재 아래 수년 동안 사역한 사라 추기경이 ‘기독교 신앙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것이 범죄가 될 수 없다’라는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작년에 사라 추기경은 사제들이 미사를 집전할 때 전통 전례 방식인 ad orientem (동쪽을 향하여, 즉 사제와 회중이 모두 제단을 향하는 미사 방식)으로 바칠 것을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건의하였으나 교황이 이를 거부하였고, 이 일 이후 사라 추기경에 대한 비난은 극에 달한다. “교황청이 공개적으로 교회의 왕자를 책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지만, 사라 추기경이 그동안 어떻게 행동하였는지를 고려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Christopher Lamb, Tablet) “교황은 사라 추기경을 아주 세게 때렸으며, 아주 조금의 체면만을 세워줬을 뿐이다.”- (Anthony Ruff, Pray Tell) “교황이 사라 추기경을 치다.”- (Robert Mickens, on Twitter)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를 쳤다.”- (Mickens again, in Commonweal) “추가 타격”- (Mickens, 수 개월 후 La Croix 지에) 덧붙여서, 이 일은 꽤 큰 타격을 주었다.
무감각하다는 비난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 교리의 논쟁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겠지만, 사라 추기경을 비난하는 자들의 논리는 오늘날 가톨릭 신자의 삶에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드러낸다. 즉 교리, 도덕, 전례의 논쟁에서 진보주의적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 민족주의자가 되어 자유를 앞세운다.
전통주의적 가톨릭 신자들은 국경에 관계없이 일관된 교리의 적용과 사목적 접근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라틴 전례 미사를 선호하지만,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모국어 번역이라도 최대한 라틴어 전례와 똑같이 되기를 원한다. 그들은 아프리카인들이나 이슬람 영향권의 중동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에 대해 비판하는 것에 대해 분개하지 않는다.
반면 진보주의적 성향의 가톨릭 신자들은 자연스러운 구어체 방식의 문체를 선호하고, 로마가 아닌 지역 주교 회의의 승인을 받은 자국어 번역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역주의의 현실은 국경을 넘을 때마다 진실을 다시 다듬어진다. 가톨릭교회의 교리 문구는 사목적으로 미묘한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즉 교육 수준이 높은 부유한 서구의 감성에 가깝다.
교회 민족주의의 장점 중 하나는 교회 개혁주의자들에게 “엄격한 전통주의자”들이 우위를 점하는 직접적인 교리적 근거에 대한 논쟁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진리가 지역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면, 로마나 아부자(나이지리아의 수도)의 그 누구도 브뤼셀과 슈투트가르트의 신앙에 관해 조언이나 비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캐스퍼가 아프리카인 추기경을 비난한 근거이다)
Commonweal의 Rita Ferrone 같은 작가에게서 이런 점을 볼 수 있다. 그는 영어권 사용자들은 사라 추기경에게 관심을 주기보다는 “우리 민족과 모국어로 기도하는 것에 관한 우리 자신의 지혜를 믿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의 의미 속의 우리는 세계적이고 가톨릭적인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적이고 미국적인 것이다.
만약 사라 추기경이 서구의 언어 습성을 어겼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자리에서 내쳐지고, 뺨을 맞고 구금되는 것보다 교황에 오른다면 어떨까? 이 상황은 그를 비판하는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Mickens는 “비오 13세 (사라 추기경을 의미한다)라는 암울한 가능성”에 대해 적었다. Lamb은 사라 추기경이 “최초의 흑인 교황”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아프리카 기니의 외딴 마을 Ourous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라의 부모는 백인 남성만이 신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어느 날 사라가 신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하였을 때 웃음을 터뜨렸다.)
시노드 기간에 사라 추기경의 주가가 폭락했다고 비웃던 바로 그 바티칸 관측자는 이제 그의 운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사라 추기경에게 가해진 모든 공격을 지켜봤고 그의 적절한 대응을 봐버렸다.”
사라 추기경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비난과 모욕을 은총으로 견뎌낸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가 새로 출간한 저서 ‘침묵의 힘, The Power of Silence’에서 우리는 그의 숨 막히는 고뇌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
“나는 험담, 중상, 공개적 굴욕에 의한 암살을 고통스럽게 경험하였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려 결정하면, 그에게는 말, 독설, 위선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거짓은 모래에서도 논쟁거리를 만들며, 증거를 만들고 진실을 만들어내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다. 이것이 교회에 있는 사람들, 특히나 주교들의 소행일 때, 고통은 훨씬 더 깊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원한과 증오, 무가치한 감정에 굴복하지 않는 은총을 구하며 침착하고 침묵하여야 한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교회에 대한 사랑을 잃지 말고 굳건히 서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 추기경은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라 추기경은 이 책에서 ad orientem 방식의 미사와 “개혁을 개혁”하자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전례에서도 개혁을 개혁하여야 한다. 교회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이루어야 한다.”
만약 사라 추기경이 로마를 통치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거부하였다면, 마찬가지로 다른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않을 것이다. 이 놀라운 사적인 저서에서 그는 오래된 이슬람 민간 설화를 들려주며, 그가 고통받는 자와 약자에 진한 애착을 보이며, 군사적 개입은 경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라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시리아에서 행한 미국과 서방 정부의 군사적 행동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분개하지도 공포를 느끼지도 않을 수 있는가?” 사라는 이런 서방 정부에 의해 행해지는 폭력을 “민주주의 여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서방의 또 다른 여신인 자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맹목적인 피의 향연으로 보고 있다. 그는 “국경이 없는 종교와 새로운 글로벌 윤리”를 세우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만약 그의 주장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면, 토니 블레어(영국 총리)가 바그다드를 공격한 지 6일 때 되는 날에 조지 부시에게 보낸 메모를 생각해 보자. “우리의 야망은 크다. 우리가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글로벌 의제를 구축하는 것...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와 관용의 가치를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다.” 사라는 이 계획을 신성모독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현대 경제에 대해서도 신랄한 견해를 보인다: “교회가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만든 현대 세계에 사회에 비칠 교회의 모습을 꾸미는 것에 모든 힘을 쓴다면 이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전쟁, 박해, 착취: 이 모든 종류의 폭력은 끊임없는 선전 선동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교회의 존엄을 떨어뜨리는 “소음의 독재”의 일부이다. 이에 저항하다 최근 죽은 빈센트 형제의 예를 든다. 빈센트는 사라 추기경이 무척 아끼던 청년이었다. “우리가 빈센트처럼 사랑하고 기도하여야 천사들이 십자가의 요한에게 들려준 침묵의 음악인 ‘la musica callada’를 들을 수 있다.” 그렇다, 이 책에서 사라 추기경은 할 말이 무척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비로운 삶, 교회 그리고 세계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그는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
마지막 날까지 인내하여라
“사탄이 그들 중에 자리를 잡고 있기에, 형제가 형제에 맞서고, 자매가 자매에 맞서며, 주교는 주교와 대적하며, 추기경은 추기경과 맞서게 될 것이다. 마지막 날까지 인내하여라. 그러면 너희가 구원받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성자를 안다고 하는 이들은 성부 앞에서 성자께서 안다 하실 것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 성모님, 1976. 12. 28
성직자들 사이의 전쟁
“영원한 도시 로마는 큰 고통을 겪을 것이다. 투쟁으로 거리는 피로 물들 것이다. 너희 성직자들 사이에도 이 전쟁이 있을 것이다. 666이 로마에 들어가 주교는 주교와 싸우고 추기경은 추기경에 맞서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한다. 나의 자녀들아, 잠에서 깨어나거라! 666과 사탄의 무리들이 로마에 들어가고 있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6.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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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러 정자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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