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 환시 (Visions of Hell)/①저 너머(지옥)로 부터의 경고 PART 1, 2, 3

저 너머(지옥)로 부터의 경고, Part 3 of 3

성 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2022. 12. 17. 19:01

 

저 너머(지옥)로 부터의 경고, Part 3 of 3

현대의 교회에게

[지옥의 고해성사]

악마들의 폭로로 만들어진 있는 그대로의 교본

베엘제불, 유다 이스가리옷, 아카볼, 그리고 베로바

1975년부터 1978년까지 계속된 엑소시즘 기간 동안

낸시 노울 스미스(Nancy Knowles Smith)가 프랑스어로 된 책 'Avertissements de l'Au'delà à l’Église Contemporaine – Aveux de l’Enfer’

by Jean Marty.을 번역함

이 책은 스위스의 보나벤투르 마이어에 의해 독일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저 너머(지옥)로 부터의 경고, Part 1 of 3

저 너머(지옥)로 부터의 경고, Part 2 of 3

 

 

지옥으로부터의 경고, 3권

 

 

 

한 동안 이어진 악마 베엘제불과 베르디-가란디우가 한 계시 모음 (1977. 12. 8, 1978. 3. 25, 1978. 4. 5)

 

1977년 12월 8일의 구마의식

 

한 동안 구마 사제와 악마 베엘제불 사이의 끈질긴 싸움 후, 베엘제불이 마침내 할 수밖에 없었던 약속은 다음과 같다:

 

베엘제블: 그들이(하늘을 가리킨다) 말한다: 경배하여라, 경배하여라, 지극히 높으시고 거룩하시며 온 우주의 주인이신 주께 경배하여라. 너희가 믿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시다. 절대로 거룩한 성체 성사를 가벼이 여기지 말고, (숨을 헐떡이며)다른 사람들에게도 지체없이 하느님의 위엄을 보여 경배하도록 권하여야 한다. 이처럼 거룩한 위엄을 갖춘 분 앞에 설 때, 가장 큰 용기와 선함이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 생각해 보라. 또한 이런 위엄 있는 분 앞에 설 때 모든 사람이 먼지 속이라도 어떻게 엎드리지 않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오늘날 고위 성직자, 주교, 사제들처럼 비겁한 자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혐오스럽게 보시는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의무보다는 외적인 것을 향하여, 하늘이 명령한 그들의 사명과 은총이 주는 영감들도 모두 저버렸다. 종종 그들은 은총이 전하는 영감에 응답하지 않고(우리 시대에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위 순명의 길을 선택하는데, 이는 우리가 전에도 말했듯이 하늘에 있는 분들이 보기에 절대로 순명이 아니다.

 

선한 자이든, 악한 자이든, 겸손한 자이든, 교만한 자이든(매우 고통스럽게 숨을 쉰다), 병든 자이든, 건강한 자이든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볼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많은 자들이 이미 많은 은총이 그냥 지나가도록 방치하였고, 이런 행동 때문에 많은 이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되었음을 느끼게 될 것이지만 그것을 알게 될 때에는 이미 늦었다. 정말 그것은 비극이다. 하늘에 있는 분들은 나를 통해 말하신다. 왜냐하면 잃어버린 영혼이 지옥에 가는 것을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영혼을 이미 잃어버렸다면, 그 영혼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안에 죽은 많은 영혼들 중에 사제나 주교, 고위 성직자들의 인도를 잘 받았더라면 구원을 받았을 영혼이 수없이 많다. 이는 끔찍할 정도로 비극적이다. 이 끔찍한 비극은 더 이상 고칠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괴롭게 울부짖는다)

 

하늘의 성모께서는 오늘 성모의 티없는 잉태의 축일을 맞아 당신의 축일을 축하하는 축제에 참석하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도 원죄가 없으시고 조금의 흠결이 없으시듯, 성모 또한 원죄도 조금의 흠결도 없으시다. 성모께서는 아주 작은 흠결도 없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은 흠결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이 흠결을 개선하고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전하고, 다른 이들을 자신의 사상으로 개조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길을 계속 가고 있다. 그런 자들은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가르치고 싶어한다.

 

이런 생각들은 좋지 않다. 그런 자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런 교리적 생각들은 모두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 안 된다… 수십, 수백 년 동안 지켜 온 교회와 미사 그리고 강론을 함부로 버릴 수는 없다. 성직자들이 장님이 되어 버렸다. 성직자들이 이 모든 진실을 보게 될 때에는 이미 늦을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사물을 분명하게 보고 싶어하지 않아서 길을 잃게 될 것이다. 이 원죄 없는 잉태 축일-성모께서는 완전히 티 없는 잉태를 하셨다-에 우리는 이 사실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성모는 언제나 주님에게 복종하였다. 가장 작은 문제에서 가장 큰 문제까지 주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 외에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 성모는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신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였다. 오, 도대체 성모는 위대한 미덕으로 성취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 성모는 하늘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뤄냈다!

 

하지만 너희 성직자들은 당연히 이뤄야 할 것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구나. 너희 성직자들이 원죄 없이 태어났느냐? 그것은 오직 가장 순결한 성모만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너희 사제들, 주교들, 고위 성직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은 여전히 그들이 원한다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은총이 남아있다. 그들이 성신께 더 기도한다면, 그들은 무엇이 옳은 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이 잘못된 길 위에 서 있음을 알게 될 것이기에, 하늘에 계신 분들이 바라는 것을 훨씬 더 잘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너희 성직자들이 교회를 이끄는 방식은 위에 있는 분들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다. 지금 교회의 방식은 저 아래에 있는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이 말 밖에 말할 게 없다! 우리는 오늘 성모님의 원죄 없는 잉태 축일에 말해야 한다. 성모의 숭고함과 순수함은 어떤 인간이라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운다)

 

저 아래에 있는 교만하고, 한 때 천사였던 우리도 성모의 순수함과 숭고함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고, 우리 스스로를 먼지 속으로 낮추어야 했다. 하물며 너희는 얼마나 더 먼지와 재 속으로 엎드려야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여전히 자신을 진정으로 겸손하다고 여기며, 보상을 원하는 다른 인간들과 자신은 다르며, 자신은 거의 성인이라고 여긴다. 많은 인간들이 실제로 악덕을 미덕이라고 여기고 있다. (헐떡이며 신음소리를 낸다)

 

성모가 언제 올지(위를 가리킨다), 언제 올지(소름 끼치는 소리를 낸다)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때는 너무 늦을 것이다. 그때는 많은 인간들에게 너무 늦을 것이다. 인간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많은 인간들이 더 이상 대경고나 대재앙을 믿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많은 인간들은 이 책에서 경고하는 내용과 널리 알려야 할 내용을 믿지 않는다.

 

우리가 돌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더 잘 행동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계속 할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더 열심히 하였을까? (불안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흐느낀다) 만약, 우리가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가 지옥에 던져지기 전 마지막 10초만이라도 다시 가질 수 있다면(하늘을 가리킨다), 마지막 10초를 다시 가질 수 있다면. (절망으로 소리지른다) 주님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우리는 무의미한 자존심으로 주님보다 더 위대해지기를 갈망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위쪽을 가리킨다) 우리를 저 곳으로 데려가 가장 구석진 곳에 머물게 해주십시오… 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늦었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우리는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절망, 이 끝없는 고통… 우리를 둘러싼 영원한 어둠…

 

인간들아, 눈을 떠라! 사제들, 주교들, 고위 성직자들아 눈을 떠라! 다시 돌아와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지만, 너희는 아직 할 수 있다. 너희는 여전히 마지막 몇 시간과 몇 초의 시간이 남아 있다. 너희 중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직 몇 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하지만 너희가 그 시간들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너희는 이 시간을 어떻게 쓰겠느냐? 해서는 안 될 일은 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 시간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알겠느냐? 하지만 우리에게 더 이상 시간은 남아 있지 않다. 더 이상!

 

어둠은 소름 끼친다. 우리를 갉아먹는 그 벌레들도 소름이 끼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피할 수도 없는 불길은 우리를 소름 끼치게 한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소름 끼치는 것은 너희 사제들, 고위 성직자들, 주교들이다. 교만함으로 가득 차 하늘에 계신 분들의 완덕, 메시지, 경고, 간곡한 부탁에는 귀를 가리고 자신을 높이는 일에만 열중하는구나. 자신을 높이기 위해 하늘에 계신 분들이 원하고 정한 일을 하는 것은 꺼리는구나.

 

이 때문에 많은 평신도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평신도들은 성직자를 믿고,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성직자를 따른다. 그리고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그것이 옳다. 하지만 세속에 물든 성직자들이라면 그들은 더 이상 그들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유다가 1975년 7월 17일에 “이제는 더 이상 순종하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 이유이다. 그리고 오늘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님의 축일에 우리가 다시 이 말을 반복하는 이유이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면서, 선한 권고에 귀를 기울여라. 의심의 여지없이, 은총을 받고도 선하게 되지 않은 자들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이제 곧 분명해진다. (고통스러운 숨소리)

 

오른쪽도 왼쪽도 앞쪽도 뒤쪽도 동쪽도 서쪽도 아닌 위만 바라보라. 비록 하늘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의 뜻을 실행하기 어렵더라도. 하늘 높은 곳에서 온 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따르지 말아라. 우리가 전능하신 하느님께 불순종한 형벌의 표본이다. 우리는 불순종하였고 이제 그 형벌을 영원히 치러야 한다. 우리가 돌아올 수 없듯이, 많은 성직자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님의 축일에 우리가 할 말은 모두 하였다.

 

 

1978. 3. 25 구마식

 

악마 베엘제불의 경고와 저작물 ‘지옥으로부터의 경고, Warnings from the Beyond’의 출판과 관련하여 제기된 문제에 대한 답변과 조언.

 

“나 베엘제불은 ‘지옥으로부터의 경고’라는 책에 대해 계속해서 했던 말을 반복하여야 한다. 수태고지의 축일인 오늘도 했던 말을 되풀이해야 한다.”

 

(악마는 우리에게 성신을 불러 달라고 요구한다.)

 

 

출판 허가

 

“.... 출판 허가는 이 경고의 책을 널리 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출판 허가(주교로부터 나뭇잎이 흩날리듯)는 무수히 가해지는 방해를 뚫고 얻어진 것이다. 이 책은 너희에게 큰 득이 될 것이다. 너희는 이 책을 널리 전해야 한다. 이 일이 어렵다 하더라도 꼭 해야 한다. 이는 하늘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의 뜻이기 때문이다.

 

 

악마들이 이처럼 하늘의 경고를 전하는 이유

 

너희는 모든 선한 이들을 위해 이 책에 쓰인대로 행동하고 싶을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사탄을 본 사람이라고 너희를 꺼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특히 지금 교회의 한탄스러운 상태에서 선한 이들을 돕기 위해 하늘이 악마를 통해 이런 식으로 말하도록 준비하신 것은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하여 아무런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근거가 부족하다고는 하나 이 모든 것은 하늘의 계획에 속하기 때문이다.

 

 

규칙을 정당화하는 예외 - 직무에서의 자비

 

RITUALE ROMANUM (1614년 바오로 5세의 교회 공식 예식서, 구마자는 그 직무에 수반하여 관련성 없는 말을 하거나 헛되거나 무익한 질문을 하거나 해서 분별을 잃지 말아라… 만약 악마가 성인이나 죽은 사람, 혹은 천사의 영혼과 같이 보인다면 구마자는 악마가 말하는 것을 믿지 말아라…)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고 대답할 수 있다. 만약 우리(악마)가 사악한 귀신들림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진실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귀신들림이 일반적으로 사악한 것이었다면, 만일 그 귀신들림이 죄악의 결과라면 그때는 RITUALE ROMANUM의 규칙에 따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악마는 계속해서 복음서의 비유를 들면서 ‘지옥으로부터의 경고’의 상황이 실제 RITUALE ROMANUM의 규칙에서 정당한 예외가 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너희도 알다시피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었음에도 안식일에 짐승이 구덩이에 빠졌을 때 끌어내라고 가르치셨다. (마태오 12:10-13) 이처럼 우리의 “경고”는 교회가 구덩이에 빠졌을 수천 마리의 짐승과 같은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아직도 자신을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로 여기고 있다!

 

구덩이에 빠진 이 짐승들을 어째서 구원하지 말라는 것이냐? 인간성이 점점 더 피폐해진다면, 하늘에 계시는 가장 높으신 분은 인간들을 흔들어 깨울 방법을 찾으실 것이다. 하지만 누구든지 믿기를 거부하면, 하늘의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 책은 그분들의 자비의 결과이다.

 

자신이 배웠다고 생각하여 교서를 확신하는 이들과 이 책에서 자비의 수단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비를 얻지 못할 것이다. 자비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이웃에 대해 자비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비의 은총을 받을 방법을 모를 것이다.

 

 

우리는 판단할 권리가 없다 (관용의 실천)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마태오 7:1)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 말씀을 가벼이 여기며 자신은 다른 이들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 인간들은 눈이 가리워져, 아무것도 판단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판단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먼지 덩이로 화산을 만든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알아보지만,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알아보지 못한다. 그들은 속부터 썩어 들어가지 않도록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그들을 위협하는 들보에 두들겨 맞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스스로 먼지나 잔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뱉는 비난은 자신들이 받아야 할 비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자선을 설교하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의 구원을 숙고하여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느님께서 심판하시는데, 우리가 다른 사람을 심판할 필요가 있겠는가? 정의롭지 않은 이들을 누가 벌하며, 정의로운 이들은 누가 상을 주겠느냐?”

 

심판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가 아니다. 특권을 가진 영혼을 판단하는 것은 너희의 의무가 아니다. 자신의 평판을 무시하면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주장하는 것이 너희의 임무가 아니다. 확실히 거짓 선지자들을 경계하는 것은 옳지만, 현명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들이 해야 할 일과 해야 할 것들을 판단할 수 있다. 훌륭한 판단과 선한 것을 알아내는 인식을 가진 사람은 잘못된 것이 있을 때 빠르게 알아차릴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쁜 것은 그런 자들이 악한 자들을 대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선한 자들과 대적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고발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들보를 내리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mea culpa(내 탓이오)'를 하여야 한다. 바리사이파는 하느님의 계명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전통주의자’라는 가면을 쓴다 해도 여전히 바리사이파이다...

 

 

지체없이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행동하여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저 아래의 우리도 이것을 느낀다. 우리는 숨이 끊어질 정도로 바쁘게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이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하늘의 성모께서는 우리에게 이 책을 이탈리아어, 영어, 스페인어 등 모든 언어로 번역하여 가져오라고 명령하신다. 이 책은 교회의 암울한 상황에 빛이 되어야 하고, 하늘에 계신 분들이 보는 방식으로 교회의 상태에 대한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황 또한 그렇게 행동하여야 한다.

 

또한 프랑스어 번역본에서는 가능한 모든 것을 추가하여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은 교회를 위한 것이며 조금의 거짓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너희는 가능한 이 책을 널리 퍼트려야 한다.

 

이 “대경고”는 전 세상에 퍼져야 한다

 

(베엘제불이 갑자기 소리친다): 성모가 저곳에 있다. 성모는 별로 된 왕관을 쓰고 저기에 계신다! 성모는 언제나 너희 뒤에 있고, 너희를 강하게 만들고 지켜주고 있다. 너희가 성모를 느끼지 못해도, 보지 못해도, 성모는 여전히 너희 뒤에 계시다.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출판 승인을 받으라고 성모가 말하고 있다. 세상 다른 언어로도 지체없이 출판하여야 한다. 적어도 우리가 언급한 세 가지 언어는 반드시 출판하여야 한다. 성모께서는 이 일들이 좀 더 빨리 진행되기를 원하신다. 조금 지체하면 너무 늦을 수 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지 말고 서둘러라. 하늘에 계신 분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듯이, 그분들이 원하고 결정한 것을 행하는 너희에게 성모께서 특별한 축복을 내릴 것이다.

 

우리는 다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이 모든 것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가라반달 경고

 

우리 생각에 지금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세상 곳곳에서 끔찍한 짓들을 서둘러 하는 이유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보기에 경고를 기다리는 것이 오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도 정확한 시간은 모른다.

 

 

 

1978. 4. 5 구마식

 

구마사제: Ernest Fischer 신부은퇴 선교사 Gossau (Saint-Gall, 스위스)

 

악마베르디-가랑듀 악마가 된 인간.

 

사제에게 전한 메시지 – 복음의 삶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다

 

17세기 타르베 교구의 사제이자 수도원장이었던 베르디-가랑듀는 인간이었지만 악마가 된 자로서 귀신 들린 여인을 통해 지극히 거룩한 성삼위일체와 성모마리아의 명령에 따라 지상의 형제들에게 복음의 좁은 길로 돌아가 자신들을 막아 달라고 권고하기 위하여 이 메시지를 전한다그는 지상의 형제들에게 은총에 대하여 불충실한 탓에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된 자신처럼 되지 않도록 이 비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피셔 신부가 사용한 교황 레오 13세의 구마 기도는 14-15세기 스페인의 도미니코 수도회의 위대한 선교사 성 빈첸시오 페레리오(Vincent Ferrier)가 널리 퍼트렸다성인은 스페인이탈리아스위스 그리고 프랑스 전역을 걸어서 돌아다니다 1419년 Vannes에서 사망하였다성인은 사랑과 고행의 삶과 감동적인 설교를 통해 많은 영혼을 구원하였고수많은 악마와 씨름한 악마의 무서운 적수였다성 빈센치오 페레리오는 따라야 할 모범이었고수도원장 베르디-가랑듀는 따르지 말아야 할 예인 것이다.

 

이 악마는 거의 두 시간 반을 계속해서 말하였다우리는 여기에 하늘의 명령으로 우리 시대의 사제에 대한 악마의 간절한 소망을 재현하였다.

 

베르디-가랑듀는 자신은 악마 중의 악마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내가 은총에 응답하지 안고 은총이 이끄는 삶을 살지 않은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던가!”

 

V (그런 후 슬픈 탄식을 내뱉으면서악마는 귀신 들린 여인을 일어서게 만든다): “내가 왜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뒀을까어째서 나는 성직자가 되는 것에 그리 쉽게 동의했을까자신을 이 위대한 이상의 높이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성직자가 될 자격이 없음을 알지 못했다나는 어째서 오늘날 수많은 사제들 앞에 자신의 본분대로 행동하지 않는 나쁜 본보기가 되었을까마땅히 해야 할 교리문답을 어째서 가르치지 않았을까?

 

나는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기 보다는 여자들의 옷매무시를 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이 모든 일의 진실은 내가 뜨겁지도 않고차갑지도 않고 미지근하여 주님께서 나를 토하여 내치신 것이다그래도 젊었을 때에는 나는 나름 선한 자였고은총에 응답했었다.”

 

(그가 말하는 동안우리는 귀신에 홀린 여인을 통해 그의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미지근해졌다더는 은총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고 넓고 쉬운 쾌락의 길에 들어서고좁디 좁은 완덕의 길은 버렸다그때부터 나는 점점 더 아래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나도 내 죄를 고백하곤 했다나는 자신을 바꾸고 싶었지만올바르게 기도하는 방법을 더는 알지 못했기에 바꾸지 못했다이런 미지근함 때문에 은총에 응답하지 못하고 냉랭함의 단계까지 내려갔다이런 미지근함과 냉랭함의 간격은 양파 껍질 정도의 간극밖에 없다만약 내가 열정적이고 따뜻하였다면나는 지금의 비참한 운명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사제들처럼 힘을 다하지 않는다면아마도 그들도 나와 같은 운명이 되리라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나처럼 나쁜 모범을 보이고 미지근하여 더 이상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지 않는 사제들이 수천수만 명이 있다스스로 바뀌지 않는다면모두 나 베르디-가랑듀보다 나을 것이 없는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지옥이 나를 기다리는 운명이란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만약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지상으로 돌아가고 싶구나나는 밤과 낮 동안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지극히 높으신 분을 부르면서 살고 싶다나는 천국의 천사들과 성인들에게 내가 영원한 멸망의 길에서 떠나 올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하였고 앞으로도 할 것이지만 나는 내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나는 내가 지은 죄에 맞는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소리는 비명처럼 들렸다)

 

아아사제들은 지옥의 선고가 무엇인지지옥이 어떤 곳인지 모른다지금 지상의 모든 인간들은 반발이 가장 적은 길 만을 택하고 있다그들은 삶의 즐거움만을 누리고 싶어 한다그들은 인본주의를 실천하는 지금 시대의 사고방식이 이제 영원히 굳어진 것이라고 확신한다.

 

주교추기경수도원장은 그들의 제자들이 보여준 것보다 나을 것이 없는 본보기만 보이고 있다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식사 때 실행하셨던 청빈함과 그리스도께서 먹던 음식의 종류를 알고 따르려는 삶을 살고 있는가복음서의 기록에 의해도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사람의 청을 받아 잔치에 참석하셨지만그 자리에서는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았다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 잔치들이 진행되는 동안 조금의 음식을 먹었다면그에 상응하여 여러 번 배고픔의 고통을 스스로 선택하셨다는 것도 강조되어야 한다.

 

거룩한 성가정과 사도들 또한 많은 금식을 하였다그렇지 않으면 그들 또한 그 많은 축복의 은총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그리스도께서는 은총의 창조자이기에 은총을 얻을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사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기의 사제와 주교와 추기경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를 원하셨다하지만 우리 시대의 추기경들주교들사제들은 호화로운 환경에서 식사를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즐겼다.

 

저들은 이런 생활 방식을 취하면서 심지어 건강을 망치기까지 하지만이런 생활 방식이 주교나 추기경이나 관구장으로서 자신의 지위에 걸맞다고 여겼다가엾은 요리사들은 자신이 주교나 중요한 이들을 섬기기에 식탁에 더욱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구나가엾은 영혼들만약 그들이 이런 화려한 요리들을 더 이상 식탁에 올리지 못하게 된다면 자신에게 큰 불명예가 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구나그들의 이런 수고가 주교들의 이런 식탐 때문에 그리스도를 본받는데 사제들보다 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잊게 만들었다이 요리사들이 고위 성직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셨으면 훨씬 더 단순하고 청빈한 음식으로 사셨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과 일치하는 것은 무엇이든 소중히 여긴다반면 지금 지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된다많은 인간들이 유행과 사치와 풍요 속에서 지나칠 정도로 심지어는 죄악에 이를 정도로 분별없이 살고 있다종종 죄악은 식탁에서부터 시작된다죄악은 금욕을 실천하여야 하는 곳에서 시작된다지금 이 금욕이 거부되고 있다.

 

희생 정신을 거부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 죄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어버린 것이다금욕의 부족이 서서히 죄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이 둘 사이의 간격은 불과 양파 껍질 정도이다만약 사제가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려 한다면우리는 사제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우리 길로 이끈다우리가 붙잡아 당기는 것은 그의 옷자락 작은 끝일뿐이다.

 

오랫동안 나는 선한 성직자가 되려 애써왔다하지만 성직자들은 평신도들보다 훨씬 더 우리(악마)에게 공격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하지만 평신도들 중에서도 특히 의인이 되려 최선을 다해 살고 있고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도 우리의 공격을 훨씬 더 받는다하지만 사제의 축복의 힘이 매우 크기에 우리는 사제를 최우선으로 공격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애가 사제라는 사실을 분명히 명심하고 있었고처음에는 주께서 주신 사제의 권능을 책임감있게 행사하였다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단조로운 생활에 빠지게 되었고기도도 잊고 금욕의 생활도 잊어버렸다우선은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를 끊었고가끔 다시 기도하려 마음을 잡지만 결국은 완전히 포기하였다나는 성무일도의 그 긴 기도문이 지루하고 쓸모없다고 생각했고결국에는 기도의 맛을 잃어버렸다.

 

성무일도의 기도를 끊으면서 나는 불결의 죄악을 저지르기 시작했고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미사를 올리는 것마저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이 모든 것은 연쇄적인 반응이었다내가 더럽혀졌을 때물론 이것도 연쇄반응이지만나는 더 이상 은총의 상태에 있지 않았기에미사도 경건하게 바칠 수 없었다이런 상태에서는 특히 성경과 복음의 말씀을 읽는 것과 하느님의 계명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큰 꾸짖음으로 다가왔다.

 

그곳에는 나에 대한 경고들이 있었고나는 그 경고들이 보기가 싫었다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또한 나의 의무였는데이 복음을 보기가 싫어서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기로 결심했다나 자신이 선을 실천하지 않는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선에 대해 가르칠 수 있겠느냐오늘날 스스로를 휴머니스트이자 모더니스트라 불리는 자들은 나만큼이나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어떻게 자신도 믿지 않고 행하지도 않는 일을 평신도나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까자신의 가르침이 스스로의 내적 생활과 일치하지 않지만그들은 자신이 맡은 대로 가르치는 것을 계속하고 있다이는 그들이 엄청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지금 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양심은 죽음의 깊은 심연과도 같아지고 있다이런 상태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그런 사람들은 썩은 사과이다썩은 사과가 어떻게 좋은 냄새를 풍길 수 있겠느냐영혼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완덕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성직자일 뿐이다.

 

만약 사제들이 특히나 젊은 이들에게 완덕의 모범을 보인다면우리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너희는 지금 너희가 보고 있는 세상보다 천 배는 더 나은 세상을 갖게 될 것이다하지만 너희 안에 선함이 없으면서 어떻게 선함을 전파할 수 있을까나 스스로도 성신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행복한데 어떻게 성신에 대해 가르칠 수 있겠느냐자신도 떠났으면서 어떻게 따라야 할 길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이런 일들은 너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비극이다.

 

비극은 사제가 완덕의 길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에 많은 영혼들을 자신의 길로 끌어들이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맛도 없이 말하는 미사의 거룩한 희생으로 시작된다결과적으로 그것으로부터 개인적인 이득은 얻지 못한다어쨌든 그것이 나에게는 그랬고나는 미사와 그 문구에 대한 혐오감을 키웠다그것들은 나쁜 행동을 하는 누군가에게는 끊임없는 비난이었다.

 

나나 수천 명의 다른 성직자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한 성직자의 마음 깊은 곳을 알 수 없기에신자들이 미사에서 진정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성찬의 성변화(화체설)가 있다하지만 미사가 유효함을 확인하기 위해 해야 할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고미사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재앙이 있을 것이다.

 

신자들을 오류의 길로 인도하는 자에게는 재앙이 있을 것이다이런 사제들은 강론대 높이 올라 공개적으로 외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나는 더 이상 미덕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내가 회개하고 다시 미덕의 길을 가르칠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이렇게 공개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그들이 겸손하게 행동했기에 우리 악마들은 이런 성직자들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러는 이런 말을 하는 사제에 대해 경멸의 마음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그의 말을 듣는 대부분의 신자들은 그의 겸손에 감동할 것이며그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대부분의 신자들은 이런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제를 존경할 것이다이런 행동이 거짓과 위선의 길을 계속 가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신자들을 향하여 미사를 거행하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가까이 오세요당신의 모든 죄를 사합니다빛의 아버지께로 나아 오십시오주님은 여러분을 이해하십니다만일 여러분이 어둠속에 있다면 주님께서는 당신을 다시 은총 속으로 데려올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이런 인간들을 다시 당신의 품으로 데려가서 은총의 상태로 되돌아오게 하려면 반드시 어떤 준비가 취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자녀들을 다시 품에 품는 것은 사실이지만이 일이 일어나려면 먼저 자녀들이 회개하고 자신의 잘못된 삶의 길을 바꾸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파멸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사제들은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나부터 다시 시작해야 돼그래야만 신자들의 모범이 될 수 있고우리 공동체에 성신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어이것은 나의 사명이야지극히 높으신 분은 내가 백성들 가운데서 설교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할 거야.”

 

이웃 사랑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자주 강조하면서 이 사랑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고 있다가장 중요한 계명인 첫번째 계명을 잊으면서어떻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온 마음을 다하여온 영혼을 다하여온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그 다음에 나오는 계명이다.

 

사제가 먼저 높은 곳에 계신 분들과 평화를 이루면(위쪽을 가리킨다이웃에 대한 사랑은 즉시 흘러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서로 돕고서로 이끌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은 프리메이슨의 가면극일 뿐이다이런 말들이 모두 어디로 이어지는지 아느냐자선용서와 화해상호 부조를 아무리 외치더라도 결과적으로 오늘날 자살하는 이들의 수를 줄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있지만이는 먼저 하느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라는 계명 다음에 오는 것임을 잊지 말아라이 십계명의 맨 처음에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더냐사실 이 속에 이웃 사랑도 포함된다모든 계명이 이 첫 번째 계명안에 있다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이웃을 사랑하고그들을 지지하더라도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말을 쉬지 않고 계속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그들은 본당에서주교 회의에서심지어 로마에서도 언제나 이웃 사랑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다그들이 수다를 떨고이에 관해 토론하며무언가를 결정하지만그들은 지극히 높은 것에 계신 분들을 잊고그 분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싶어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은 자비일 뿐 아니라 정의이기도 하다나 베르디-가랑듀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만약 내가 덕을 행하고기도하고참회했더라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이렇게 힘들게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내 양들이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고나 자신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십자가를 질 것을 요구했어야 했다하지만 나는 그것을 잊고 살았다.

 

지금 시대의 대다수의 사제들은 십자가의 길을 실천하고자기 희생을 하고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자신을 버려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지금 시대의 성직자는 지금 그 시궁창속에서 뒹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보속하고시궁창에서 꺼내 일으켜 세우기 위해 보속을 해야 한다고 강단 높은 곳에 서서 신자들에게 선포하여야 한다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실천 방법이다.

 

모든 것은 그 중요성이 있지만특히 물질적인 것들이 조직적으로 분배되는 지금 시대에하느님께서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기에 너희가 소중히 여기는 이 모든 것들은 사실 먼지와 함께 사라진다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우리 사랑의 주요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우리가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하지만 그 일을 과대평가하여 하느님께 대한 의무를 제쳐 두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강론대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잘 인도하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할 것이다.

 

자신이 큰 영적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발견하고따라서 큰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청하고그들을 위해 축성받은 촛불을 켜 달라고 요청하며죽은 자를 위한 십자가(죽음을 앞둔 이를 돕기 위해 대사가 주어져 있는 십자가)와 성수를 사용하고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요청하라.

 

위의 모든 것들은 평신도가 하여도 축복을 가져온다이것들은 신중함과 침묵 속에서도 번성한다우리(악마)는 이러한 것들에 직면하게 되면 그 일에 관여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종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서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론대 높은 곳에서 신자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그리하여 인간들이 완덕의 길로 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평신도들도 자신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서 보호받고마귀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의 성직자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이 짊어진 모든 책임을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평신도들은 사제들이 신자들을 잘 인도할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여야 한다나 또한 사제였다그래서 나는 지옥에서 나에게 심겨진 거룩함의 표식 때문에 더 고통을 받는다.

 

사제들은 또한 강론대 높은 곳에서 신자들에게 기도를 청해야 한다신자들에게 악마들이 그들이 믿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공격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그들은 사제를 위하여 죽을 때까지 사제의 사역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또한 평신도들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이는 그들이 가끔뿐만 아니라 언제나 모든 선함의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수많은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연한 풀잎처럼 자란 것은 정말 비극이다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신 대로 경고도 없이 유혹의 순간에 그들은 마귀에게 짓밟힐 것이다그들은 연약하여 햇볕이나 물이 부족하여도 시들고뜨거운 햇볕에 타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그 전에 행해졌던 일이 오늘날에는 필요 없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제들에 의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고 있는 신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그들(사제들과 평신도들중에는 큰 덕을 행하던 사람들도 있었는데좋은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탓에 갑자기 시들어 버리기도 하였다.

 

나 베르디-가랑듀는 사제와 평신도가 계속해서 인내하며 완덕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를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성직자들은 강론대의 높은 곳에서 지금 시대에 기도가 점점 더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십자가의 길을 인내하며 따르는 것이 행복의 길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인내하는 자만이 자신을 천국의 길에 놓는다.

 

특히 가난한 사람은 나중에 천국에서 크게 행복할 것이니 지금의 불행을 감당하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새겨야 한다가난한 이들이 궁핍을 견뎌야 한다 하더라도, Ars의 Curé 신부나 다른 위대한 성인들이 받아들인 금식과 희생에 비하면 여전히 많은 차이가 있다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기에그들을 그런 상황에 두신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좋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라너희가 가지고 있는 가난 때문에 항상 일해야 하며이로 인해 유혹에 굴복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줄어드는 것을 감사해라대가족을 거느리고 그들을 가르치고 먹일 일을 걱정하는 많은 이들은 하루에 세 번씩 좋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한다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세상의 쾌락에서 벗어날 수 있고그들의 자리가 예약된 천국에 갈 준비를 더 잘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 아이가 어떤 가정에 들어오면주변 사람들과 가족들 모두를 위한 드라마가 펼쳐진다무슨 일이 벌어질까네 번째에 해당하는 것은 두 번째 또는 세 번째에도 해당한다불행하게도 사제들은 이러한 불만이 들려올 때마다 신자들이 아이를 안 가질 생각으로 피임약을 사용할 수 있다는데 암묵의 동의를 하게 된다신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위험을 깨닫지 못한다약을 복용하는 것(이미 심각한 잘못)과 낙태 (더 심각한 잘못사이에 간격은 그리 크지 않다.

 

낙태는 살인이며 매우 중대한 죄악이다. 우리 시대에 인간들이 수천년 전부터 믿어 온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기를 꺼린다하느님께서 오난의 죄를 벌하신 것처럼오나니즘(피임 비정상적 성교 행위를 말한다)등 같은 것을 바로 벌하지 않더라도 산아제한의 수단으로 행해지는 일은 어떠한 것이라도 심각하게 여기신다낙태를 하느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긴 했느냐이런 행위는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계획에 위배되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베르디-그랑듀는 모든 신자와 성직자주교추기경들에게 강론대 높은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다: “주의 길을 따르십시오인내와 희생이 있는 곳에 은총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희생도 금욕도 없는 곳에서는 은총도 불가능하다그리고 금욕이나 희생이 없는 곳에서는 가장 작은 틈이 우리(악마)의 교활한 수단으로 너무도 간단히 너희의 주인이 될 가능성을 준다우리는 이 작은 틈으로 온 집안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지금 너희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이미 말한 것처럼 너희는 성가대가 아니라 강론대위에서 너희 신자들을 가르치고 설교하여야 한다심지어 제단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게 끔 만들어진 교회도 있는데사람들의 시선이 위를 향하지 않고아래로 때로는 아주 먼 아래에 있는 우리 자리까지 향하기에 신자들은 산만해진다대중에 대한 복음의 사명은 재정비되어야 한다완덕의 길이 이렇게 제시되어야만 신자들에게 돌아갈 은총이 소나기처럼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율법에 따라 사는 사제의 영향력은 막대하다아르스의 주임신부의 삶에서 이를 알 수 있다아르스의 주임신부는 다른 사제들처럼 여행을 다니면서 아주 좋은 음식을 먹고온갖 종류의 회의에 참석함으로써 영혼을 구한 것이 아니라소박한 자기 방에 남아 성체 앞에 머무름으로써 영혼들을 구했다나 베르디-가랑듀도 그리 했어야 했는데나는 그리 하는 대신에 본당에 대한 사목의 사명도 소홀히 하여 본당을 이런 길로 이끌었다지금 시대에는 아르스의 주임신부 같은 이가 수천 수만명 있어야 하고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사제는 본받아야 할 인물로 여겨져야 한다.

 

나 베르디-가랑듀는 다음을 반드시 말해야 한다사제는 여성과의 상습적인 접촉을 피하고 성무일도 전체를 암송하여야 한다사제가 성무일도를 바치지 않는다면 유혹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는 것은 사실이다또한 사제들이 성무일도를 바친다면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그 유혹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실 것이다왜냐하면 사제들이 이 성무일도와 관련하여 큰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특히나 기억해야 할 것은 사제가 죄악에 빠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성무일도를 바친다면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그에게 직무를 계속할 기회를 주고유익한 도구가 되게 할 것이라는 점이다.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그들은 주님의 희망 안에서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견뎌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주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시험하시는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이다특히 재정적인 수단을 통해 인간들이 고통과 시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이 시대에도 그렇다이런 시련과 시험에 맞서 싸우며 감당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을 믿고 맡겨야 한다는 강론을 강론대 높은 곳에서 자주 반복하여야 한다.

 

지금 시대에 이는 매우 강조되어야 한다재정적 수단은 특히나 교구 공동체에 취약한 점으로 작용되며사제들과 주교들의 쉽고 쾌락으로 가득 찬 삶이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영혼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만일 사제가 사람들에게 죄악에 대한 분별을 주지 않고죄악에 대한 회개나 보속을 가르치지 않고이 모든 죄악은 매우 쉽게 용서받을 수 있다는 그릇된 희망을 그들 앞에 내민다면성신께서 어떻게 영혼에게 임할 수 있겠는가하늘은 십자가의 길을 요구한다는 것을 지붕 위 높은 곳에서 크게 외쳐야 한다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이 이웃을 구원하는데 가장 도움이 된다좋으신 하느님께서도 이 보속을 사용하라고 하시기 때문이다아니 오히려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께서 이 보속을 사용하고 계신다사람들이 하느님의 계명의 첫 부분을 수행하면 사랑의 계명 두번째 부분도 자연스레 행해지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아닌 인간들에게 바쳐지는 것처럼 사람들을 마주보고 바쳐지는 지금의 미사가 정말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인가사제들은 이 미사가 오직 하느님께 바쳐지는 봉사이며이 봉사에서 바라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공경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보고 깨달을 수 있도록 미사를 바쳐야 한다그 외 나머지는 모두 보완적이거나 보충적일 뿐이다사제들은 일상생활과 이웃의 사랑에 대해 너무 많이 강조하려 한다참된 이웃 사랑과 사랑의 실천으로 인도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이런 마음가짐과 행동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금욕과 보속의 실천으로 이끌며 이를 통해 수천 명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너무 많은 영혼들이 눈송이처럼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특별한 영혼들이 너희에게 자주 상기시켰듯이 말이다.

 

주교들과 사제들이 이 참담한 상황을 계속 이끌고 간다면 수천수만 개의 교회가 더 이상 교회가 되지 못할 것이며이런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신앙심 깊은 수많은 신자들에게 오늘날 교회의 강론은 주님을 섬기는 일에 형식적인 것만 겨우 남아 있음과 이를 정당화하려는 변명뿐이다결과적으로 지금 교회의 강론은 천국으로 이어지지도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생각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죽음의 도구가 되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사제가 부주의한 길로 들어서 더 이상 하느님을 사랑하는 첫번째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그런 사제는 벌레가 들어 있는 사과와 같아서그는 더 이상 길을 인도하는 안내자가 아니다만약 주교들사제들수도원장들이 주님께서 주신 계명대로 살았다면지금 로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저들이 계명대로 살았다면하느님께서는 교황 바오로 6세가 아닌 다른 자가 그의 이름으로 군림하는 것을 용납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바티칸에서 외부로 퍼진 이 상황은 프리메이슨의 소행이다하지만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수백만 명의 신자들이 철야 기도회를 통해 연합하여 기도하고 보속하고 동시에 주님께 우리를 이 상황에서 구해 달라고 청했다면 하늘은 이 재앙이 벌어지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기도의 십자군이 있었다면 로마는 여전히 로마로 남았을 것이다.

 

이 말을 꼭 해야 한다지금의 수많은 사제들에게 경고한다여성이 사제들을 파멸시킬 수 있으며기도로 무장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만일 사제들이 성무일도서를 들고기도의 결과로 그토록 뛰어난 지혜를 갖게 된 교회 박사들의 가르침에서 자양분을 얻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오늘날 대죄 가운데 살고 있는 수천 명의 사제들에 속할 뿐이다.

 

수천 명의 사제들이 은총 밖에서 살고 있으며그들은 더 이상 성무일도를 말하지 않는다최소한 나는 수호천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야 했다하지만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거부했고죄악에 물든 생활을 하면서도 실제로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소홀히 하였다그럼에도 오늘날 사제들과 젊은이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만큼 나쁘지는 않구나이 경고가 파멸의 길을 가고 있는 사제들에게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자신의 거룩함을 위해 깨어 있는 성직자들이 많았지만오늘날 성직자들은 넓은 길이면서 동시에 멸망인 길을 선택하였다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보속하는 영혼들이 일어나 그들을 변호하고 그들을 위해 은총을 구하지 않는다면 그 성직자들은 끝내 파멸될 것이다이런 일들을 믿기 어렵고너무 비극적이라 해도 나는 이를 있는 그대로 말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의 하느님은 부드러운 하느님이 아니기에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하느님께서 만드신 율법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율법을 만들고 다듬는 것은 성직자가 아니라 전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며하느님의 율법은 영원히 유효하기에 모든 인간들은 복종하여야 하며신앙심이 깊은 이들은 변화를 부르짖는 성직자들의 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애꾸눈이 되더라도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는 성경의 말씀이 있지 않더냐(마르코 9:47). 주님께서 아무 이유없이 복음에 이 말씀을 남겼을리 없지 않겠느냐.

 

확실히 주님의 시각에서 보면 지금 세대의 성직자들이 점점 더 길을 잃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지금의 성직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전혀 억누르려 하지 않는다그들의 내적 생활에 해악이 되는 너무 많은 이미지들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이런 이미지는 텔레비전에서 시작하여 교구에서 활동하는 많은 여성들로 인해 계속 이어진다예전에 교회에 있는 모든 여인들은 머리를 가리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이런 관습은 거의 없어진 듯하다어째서 지금 시대에는 제단을 신자들을 향하였을까나 베르디-가랑듀 시대에는 신자들에게 등을 돌린 채 미사를 올렸는데그때에도 여인들의 유혹은 여전히 있었다하지만 오늘날 신자들을 바라보고 올리는 미사에서는 어떻겠느냐?

 

주님께서 복음서에 두 눈과 두 손과 두 발이 다 있은 채 지옥의 끔찍한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한쪽 눈이나 한 손한 발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하신 말씀은 허튼 소리가 아니다사제들은 복음서는 자금의 시대와는 많이 차이가 있다고 믿고이제는 우리들의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까우리 주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그 시대 사람들만 위해서 말씀을 주셨다고 생각하느냐주님의 시대에 사람들은 모두 긴 옷을 입고 있었다.

 

예수께서 타락이 점점 더 기술적으로 다양해지고그 깊이마저 깊어진 채 확산되는 것을 모두 예상하시고이런 타락을 저지할 어떤 수단도 가지지 못한 지금 시대의 인간들을 위해 오히려 이런 말씀을 남긴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 성직자는 없을까이 시대의 타락은 몇몇 선한 성직자들의 모진 박해를 견디며 애써 온 노력의 빗줄기에도 조금도 꺼지지 않는 파멸의 용광로와 같다.

 

주님은 언제나 각자 개인의 자유에 대고 말씀하신다게다가 거기에는 복음이 있다이 모든 메시지들은 주님께서 결정하신 지시들이기에 끊임없이 상기하여야 한다. 만약 사람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여도 하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특히나 사람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복음을 수정하여 자신들을 즐겁게 하고 있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하늘의 이 모든 자비로운 준비들을 모두 바람에 날려버린다면하늘은 어떻게 할까거룩한 복음의 말씀이 더 이상 읽혀지지 않거나성인들의 삶에 관한 책예를 들어 캐서린 에머리히의 삶아르스의 치유의 삶 또는 위대한 모범을 보인 파드레 비오의 삶이 더 이상 인간들 사이에서 읽혀지지 않는다면 은총은 어떻게 올 수 있을까이 각각의 성인들은 모두 타인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해서같은 금욕과 같은 희생을 위해 같은 사랑을 가진 것이다이 성인들의 보속을 하늘의 가장 높으신 분들은 기쁘게 받아들였다.

 

하늘의 지극히 높으신 분은 영혼의 구원을 위한 더 많은 보속과 희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좋으신 하느님께서는 종종 인간들이 당신께 이런 말을 하기를 원하신다: “저는 주님께서 저에게 보낼 고난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이 사람 그리고 저 사람의 회개를 위해 이 고난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은총을 저에게 내려주소서.” 하지만 대체로 주님께서 인간들에게 고난을 보낼 때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인간들도 종종 두려움에 떨며 온 힘을 다하여 고난을 거부한다고 울부짖곤 한다인간은 너무나 자주 고통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사제들은 이런 관점으로 사물을 관찰하고신자들에게 설교해야 한다.

 

고난을 거부하고모든 고통을 없애려고만 하는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첫째 계명에 따라 살지 않는 것이다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나의 뜻이 아니라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이렇듯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통과 결합하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고난을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인지한다면그 고난은 매우 큰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어떤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결합함으로써 거룩함의 수단이 되고 다른 이의 죄를 대신 보속하는 수단이 된다나는 가끔 결혼 생활에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고통과사람들이 일상에서 배우자와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때문에 거부해야만 하는 모든 고난에 대해서 생각해본다이런 상황에서도 닥친 고난을 참고 견디어 내면 이러한 고난은 큰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다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쁘게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면 그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가톨릭교회에서 이런 고난과 희생은 완전히 잊혀졌다어느 성직자의 강론에서도 언급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이것이 현실이다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이웃의 구원을 위해 애쓰는 것이 중요하다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이며이런 행동이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다시 인간들에게 가신다면수많은 인간들이 그리스도를 혁명가이자 미치광이로 여길 것이다지금 시대에 그리스도를 본받기로 서약한 모든 사람들은 모두 바보로 여겨진다인간들이 자신을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는 대신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많은 사제들은 더 이상 진리를 강론하지 않는다진리는 그들에게 생생한 책망의 소리로 들려오기 때문이다그들은 더 이상 진리를 따라 살지 않기 때문이다만약 사제들이 완덕을 얻는다면신자들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은 원한다고 생각할 수나 있겠느냐?

 

지금 시대에 가톨릭 교회에 머물고 있는 이들은 참으로 비극적인 상황이다사제들부터 로마의 추기경에 이르기까지 적용된다사제들이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보여준 대로 살려 한다면 훨씬 더 빛나고 안전한 길로 영혼들을 이끌고 있을 것이다세례자 요한이 그 시대에 가르친 대로그들은 회개하고 속죄하여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제들이 스스로 악의 편으로 돌아섰기에 노력과 선행에 맞서 싸우고 있다그들은 이미 깊은 심연으로 가는 넓은 길 위에 서 있다이러한 내용들을 사제들에게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말해야 하는 것이지만심리학의 방식을 빌려 그들을 존중하면서 그들의 안녕에 큰 관심이 있는 것처럼 말해야 한다사제들에게 너희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보다는그들이 돌아와야 할 곳(그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심리학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들 앞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주 조심스럽게 질문을 하여 그들이 기도를 중단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영혼의 구원에 대한 걱정 등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하느님의 것들이 명확해진다는 이해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비난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이런 하느님의 것들을 잘 이용할 것이고주님께 의지하면 그들을 다시 데려올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본성은 다 다르다파드레 비오가 예전에 했던 방식으로자신이 직면한 것에 따라 자신을 적응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사제들 중 더러는 아마도 무지의 희생자들이겠지만대다수의 사제들은 자신이 얼마나 영혼의 결핍상태인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그런 사제들에게 자신의 소명을 상기시키는 것은 아마도 그들을 좁은 길과 주님께로 다시 데려가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자신을 금욕의 길로 이끈 사제라면예외 없이 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영혼들을 훨씬 더 나은 길로 이끌 것이다내가 비록 절대로 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지옥에 있지만하늘에 계신 분들은 나에게 드러내고 기억하라고 명령한 것을 제외하고는 내가 침묵하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다시 지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면 내게 맡겨진 양 떼를 보호하기위해 무릎을 꿇거나 수많은 고통이 닥친다 해도 기쁘게 참고 인내할 것이다그 고통이 하늘의 뜻이라면 나는 스스로 그리고 최고의 경건함으로 모든 고통을 받아들일 것이다나의 제 일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첫번째 계명을 지키고그 계명을 존중하며 나 스스로 그 계명에 합당하게 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나는 좋으신 하느님께 나에게 주신 하느님의 뜻을 깨닫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여야 했다.

 

의심스러울 때는 가장 희생이 큰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사제들과 신자들은 이 원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물론 이 말은 속담에 불과하다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니지만 상황에 꽤나 적합하다수천 명의 사제들이 가장 쉬운 길을 선택했기에 그들이 파멸의 길 위에 서게 되었다그렇다 그들은 가장 저항이 적은 방법을 택했다이런 행위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사도 성 바오로에 귀를 기울여 가능한 해결책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최선의 길을 어떻게 선택하는지 깨달아야 한다바알제불과 가롯의 유다와 다른 악마들이 이미 말한 것처럼 성신께 기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주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정확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진정한 소명을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사제라는 소명을 선택받았기에 사제는 이미 주님께 큰 인정을 받았기에사제는 사람들 앞에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사제가 자신이 받은 소명대로 잘 따르고 있다면사람들에게 진실로 다가가 그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신자들은 그들 중에서 자신을 파멸로 인도할 사람이 아니라 그들에게 모범을 보일 사제를 알아보아야 한다어떤 성직자의 경우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을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다사제와 신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어야 한다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언제나 그것을 원하셨다사제는 축복의 보고이기 때문이다사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해야 하며이를 통해 신자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한다일생동안 그는 신성이 얼마나 위대한 위엄을 나타내는지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며언제나 신성을 숭배하고 그 명령대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음을 믿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한다아주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감실 앞을 지날 때면 가장 큰 공경으로 무릎을 꿇는 습관을 들이도록 교회로 인도되어야 한다그들은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침으로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를 흠숭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지극히 거룩한 제대위의 성체를 찬양하고 흠숭하라!” 아이들은 하늘 가장 높은 곳에서 신성한 삼위일체와 그 위대함을 찬양하는 것을 도와줄 거룩한 천사들을 불러야 한다.

 

더 이상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 마음을 드높일 수 없는 교회는 무엇을 의미할까더 이상 모든 면에서 하느님을 인간 위에 존재하는 것으로 규정하지 않는 교회더 이상 천국에서 전능하신 분을 기쁘게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키지 않고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숭고함을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 교회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겠느냐사제들이 이 일을 게을리하여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다면적어도 부모들이라도 자신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그를 둘러 싼 모든 영혼의 상태가 매우 나쁘고 괴로울지라도사람들은 하느님을 흠숭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을 절대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

 

각 개인이 주님께서 주신 자신의 고통을 기쁘게 받아들일 때이 어려움에서 우리를 꺼내 주실 방법을 아시고승리를 주실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주님께서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고 완덕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우리에게 보내시는 고통에 대해 무릎을 꿇고 감사해야 한다어려움과 고통을 피하는 사람은 완덕을 잃을 운명에 처한다지난 세기 동안언제나 자신의 소명에 대해 절정에 있었던 성직자들이 있었다지금 세대에도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며 살고 있는 성직자들이 있다하지만 그들은 주님의 평화를 가슴에 품고 있기에 땅 위의 모든 사람을 능가한다. ''인간이 우주를 얻는다 해도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나 베르디-가랑듀는 이 시대에는 이 주제에 대해 매우 나쁘게 계몽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다이웃 사랑이 없는 시대에 교회는 오로지 이웃 사랑만을 전하기 시작했다참된 이웃 사랑은 육신의 염려가 아니라 영혼의 염려에서 시작된다인간이 전염병과 전쟁과 온갖 고난을 겪으며 멸망하더라도 영혼을 구원하여 영광을 얻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더욱이 사치와 세속적 쾌락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영혼을 잃을 위험이 크다프리메이슨 식의 관용은 썩은 냄새를 풍긴다그것은 진정한 이웃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위선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너무나 많은 영혼의 파멸을 불러올 것이다만약 사제들이 프리메이슨이 어떻게 신자들을 타락에 빠지게 하는지를 안다면그들은 프리메이슨 식의 관용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르게 말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물질적으로 도와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특히 그들이 많은 고통을 겪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켜야 할 교리에 충실하고 영혼을 팔지 않는 것이다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이웃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아아주교들과 추기경들의 지시를 받은 수천 명의 사제들이 교회에 이런 자선 생활을 강요했다이렇게 함으로써그들은 완덕의 형태를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변화시켰다.

 

진정한 이웃 사랑은 이웃의 영혼에 대한 염려 없이는 결코 존재하지 않기에이웃에게 진실을 말하고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고통받더라도 그것이 이웃 사랑인 것이다후에 그들은 이것이 참으로 올바른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강론대 높은 곳에서 사제는 핵심을 찌르는 단호한 말로 외쳐야 한다더 이상 그들이 믿지 않는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라정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그들은 더 이상 천국이 최고의 실재임을 믿지 않는다만약 성직자들이 천국이 실재함을 믿었다면 천국으로 인도해야 할 수천 명의 신자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악마)는 어떤 유형의 성직자들과 맞서고 있을까내 시대 때에는 오늘날처럼 경멸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그들은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지옥에 그들의 자리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악마가 마지막 말에서 크게 외친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평신도이든 사제이든 주교이든 추기경이든 누구에게나 똑같이 말하는 것이다이 모든 이들이 자신들이 지금 얽혀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안다면그들은 내 탓이오, mea culpa'를 천 번 또 천 번 말할 것이다그들은 스스로 목덜미를 움켜 잡고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이 벌레들을 뜯어내야 할 것이다이 벌레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벌레들을 뜯어내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그들은 영혼을 아주 심각하게 파괴하는 이 벌레들을 박멸하기 위해 시뻘겋게 달군 집게발이라도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사랑의 계명 첫 부분을 즉시 실천하고그 다음에는 합당한 이웃 사랑을 실천하여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선물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이러한 선물로도 이웃이 지옥으로 가는 길에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말해야 하는 것이었고이것이 그토록 오랫동안 내가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하지만 하늘 높은 곳에 있는 분들은 내가 이런 운명을 살았기 때문에 말을 하도록 명령하였다내가 마땅히 해야 할 사제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번째 계명(간음하지 마라)은 사치와 더불어 많은 성직자들의 파멸의 수단이 되었다그들이 이 엄청난 비극을 알았다면 그들은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자신을 희생할 것이다그들은 일어난 모든 일 때문에 엄청난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고처음의 원점으로 바로 돌아갈 것이다그들은 모든 성인들과 천사들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참된 길을 다시 찾도록 도움을 청하게 될 것이다그러는 동안에도 지옥의 영원한 불은 계속되고벌레는 너희의 영혼을 영원히 먹어 치울 것이기 때문이다나 베르디-가랑듀는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어마어마한 고통지옥의 끔찍한 비극은 영원하다.”

 

 

 

추신

 

1978. 5. 1 구마의식 성 요셉 축일

 

천사에서 악마가 된 자알리다(Allida):

 

참된 교황이 없었다면 바티칸은 이미 완전히 파괴되었을 것이다그렇다교황이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교회는 엉망으로 난파되었을 것이다온 교회가 바닥으로 고꾸라져 허우적거렸을 것이다이 교황은 그의 큰 거룩함으로 교회가 가라앉지 않도록 그 자리에 올려졌고운명 지어졌다.

 

교황 바오로 6세가 없었더라면 너희 교회는 더 이상 교회라 부를 수 없을 지경에 빠졌을 것이다교황 바오로 6세는 이 시대를 대비해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예정되었다그래서 교황은 교회를 침몰시키지 않도록 교황 한 사람이 그것을 수행하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이 때문에 교황은 아직도 자신의 십자가와 고난을 겸손히 짊어지고 있다매일 매일을 교황은 위대한 순교의 삶을 살고 있다교황은 바티칸 내의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슬픔을 짊어지고 있다.

 

그리고 더러운 입들이 무모하게도 이런 교황을 공격하고 있구나교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한 것은 교황이 아니라그의 주위에 있는 가짜 교황과 그의 조력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가련한 자들은 교황의 영혼에 고난을 입힌 책임 때문에 지금 그들이 지옥으로 향하고 있고 반드시 정죄의 대상이 됨을 알지 못하고 있다.

 

복음에 이미 여러 번 반복된 것을 알려주는 것이 우리(악마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명령으로)이다지옥은 끔찍한 곳이다복음도너희에게 전해줄 수 있는 모든 설명도 지옥이라는 소름 끼치는 곳을 너희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그리고 우리는 사제이든평신도이든 모든 사람에게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짓을 뿌리고 다니는 자들이다.”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바치는 기도

성 미카엘 대천사님싸움에서 저희를 지켜 주소서.

사탄의 악과 간계에서 저희를 보호해 주소서.

 

간절히 청하오니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사탄을 쫓아 버리소서.

천상 군대의 영도자 미카엘 대천사님,

영혼들을 멸망시키려고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사탄과 모든 악령을

하느님의 힘으로 지옥으로 쫓아 버리소서.

 

아멘.

 

이 경고를 결론 지으면서…

 

질문오늘날 교회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어째서 악마의 고백이라는 특별한 과정을 들어야 하는가?

: (1977년 9월 15일 구마의식 동안 가롯의 유다가 말한 답) “인간의 기억속에서 교회는 어떤 악마적 권력이나 힘프리메이슨이나 그들과 관련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지금처럼 이렇듯 미묘하게 수행된 붕괴를 본적이 없다그렇기 때문에 하늘에 계시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용 가능한 모든 방법을 쓰려 하신다.” 후에 자세히 설명하겠다높으신 분의 발현 방법 즉 케리지넨(Kerizinen), 가라반달(Garabandal), 산 다미아노(San Damiano) 등등 모두 실패하였다특별한 소명을 받은 선택받은 영혼들을 이용위트레흐트의 사제 필리올라(Filiola), 프랑스의 자넷(Jeanette, 'Parce Domine')와 그밖의 수많은 이들을 보내셨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제 남은 수단을 모두 사용하여도 실패한다면남은 유일한 방법은 징벌뿐이다.

 

 

프랑스 전통주의자에게 전하는 말

 

(프랑스- “교회의 장녀”)

 

1977년 6월 18일 악마 바알제불은 전통주의자에게 하늘이 보내는 경고를 전하여다음과 같이 반성하도록 자극하였다:

 

목청껏 소리질러라네 소리나팔처럼 높여라내 백성의 죄상을 밝혀 주어라야곱 가문의 잘못을 드러내어라.” (이사야 58:1)

 

같은 주제에 대한 다른 경고와 마찬가지로 이 경고에서 악마는 통합주의자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으로 부여된 경멸적인 의미 외에도 이 용어는 참된 현실을 포함하고 있다게걸스러운 늑대 앞에서도 계시와 사도의 전통에서 비롯된 교리의 무결성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악마는 진보주의자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는다복음에서 영감을 받은 단어 중 하나인 진보라는 단어를 암시하기 때문이다이 신기루 같은 말은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사용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진보라는 용어는 종종 이교도의 정신적 야만성으로 되돌아가게 한다근본적으로 인간의 권리가 하느님의 권리를 대신하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그것은 매우 간단하고 무조건적으로 첫번째 반역자인 루시퍼의 논세르비암(non serviam)” 즉 나는 복종하기를 거부한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반역 정신을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가장 중요하고 광범위한 영향은 1789년 8월 26일 제헌 의회에서 표결된 인권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이다이는 여전히 유효하며 18세기 이교의 신론과 자연주의 철학자들의 사상에 직접 영향을 받았으며 프리메이슨의 논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이 악마적 원칙은 인간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권리라는 이름으로 보편적인 지위를 얻었으며전쟁 후에 자기 결정권이 되었다그것은 High American Masonry의 이번 회기 공식 작업이 되었으며프리메이슨 성향의 UN공식 기구에서 공식 번역을 맡았다. 140개 이상의 국가 또는 지역이 다른 곳보다 더 크게 노래하는 UN의 불협화음 새장 속 같다!

 

이 행성에서 번지는 것만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미국의 금권 정치와 소련 제국주의라는 두 명의 관련 거장이라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첫 번째는 자유주의 체제를 견인하였고두 번째는 공산주의 정권이었다정상에서 그들을 지휘하는 것은 루시퍼이다.

 

미셸 서번트(Michel Servant)는 이 모든 것을 앞서 언급한 그의 저서 보고 기도하라…에서 설명하고 있다그의 이 논문은 자연계의 현실과 초자연계의 예언으로 확인할 수 있다이 두 세계는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운명 지워진 고통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판된 지옥으로부터의 경고, Warnings from the Beyond”는 이 연결에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며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예언적이어서 놀라운 입체감을 보인다. “이 경우처럼 진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악마를 이용한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하느님의 교회가 사악한 무리들에게 점령당했고유린당하고 있으며인류는 노예로 전락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이는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악마의 유일한 주인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교회를 더럽히고 온 세상을 더럽히는 모든 죄악이 단순히 인간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아무리 타락한 사람이라도 내면에서 그들을 몰아내는 것은 악마의 작업인 것이다그것을 소유감염포위집착유혹이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근본적으로 평화와 자유를 되찾기 위한 영적 수단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다오직 하느님만이 진리의 안주인인 교회를 사악함에 물든 고위 성직자들로부터 구출하고 해방시키는 방법을 아시기 때문이다교황 바오로 6세는 감금되었고 희생당하고 계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신실한 교인들은 서로 사랑의 용기로 결합하여야 하며 소명에 대해 서로 존중하여야 한다.

 

이는 악마의 목소리를 통해 전통주의자들에게 전달된 천국의 염려가 부정적이고 비참한 소리를 취하는 이유는 겸손을 갑옷으로 취하여야 그들의 연합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실패하게 되면 곧장 징벌이 지상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에게 합당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세상이 이 경고를 믿지 않는다면이것은 또한 전통의 빛과 진리에 비추어 선한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의 잘못이 되지 않을까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 (요한 17:21)

 

그렇다면 자존심이 커져 벌어지는 그들의 분열의 범죄행위는 언제 끝날 것인가?

 

이들 경고에서 하늘은 에코네 신학교와 고위 성직자들에 대해 그토록 강하게 경고한 이유는 구원을 향한 유일한 길인 참된 미사를 유지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3년 전 프랑스의 자넷 Jeannette을 통해 전달된 주님의 메시지에서 요구한 것이며우리가 팜플렛 'Parce Domine'에 발표한 것이다: “부당하게 대체되어 감춰지고 있는모든 시대에 걸쳐 바쳐진 전통 전례를 다시 가져와야 한다.” (1972. 6. 26) “로마는 사실상 진정한 미사를 다시 세우기 위해 지배권을 넘겨야 한다” (1973. 6. 23)

 

미사의 거룩한 희생골고타의 부활은 세상의 모든 은총의 최고 중심이며은총을 되살리고 대체할 수 없는 근원이며모든 전례의 정점이며 교회의 모든 생명력의 근원이며교회를 통해 세상의 모든 생명력의 원천이다.

 

교회의 수호자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교회를 중심으로 단결하여야 하며최전방에서 전통주의자는 그들의 소명의 정도와 책임에 따라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교황 바오로 6세가 지난 3년 동안 준비한 그의 문서를 인터넷에 게시할 수 있을 것이며자신이 갇힌 유배지에서 벗어나 진짜 조서 URBIS ET ORBI선포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오늘날 하나의 진정한 희생 미사인 트리덴트 미사 전례의 확립도 얻게 될 것이다.

 

동시에 예수 성심께서 요구하시는 보속과 공적 참회의 위대한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이 운동은 베즐레이(Vézelay, 프랑스 남부의 마을)에서 교황에 의해 행해지는 공적 참회에 의해 시작되어야 한다교회의 큰 딸인 프랑스가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그리고 이곳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퍼져 나가야 한다. (1967. 1.31, 1967. 4. 6, 1967. 4. 23의 메시지 중-'Parce Domine)

 

그때에 하느님께서는 행동하실 것이다하느님께서는 혼자서도 하실 수 있겠지만우리 없이는 하지 않으실 것이다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전복시키려는 무리와 그들의 추종자들과 함께 교회를 점령한 유다와 같은 추기경들과 불충한 고위 성직자들을 모두 쓸어버리실 것이다.

 

그러면 징벌을 피하게 될 것이며모든 그리스도인의 단결과 모든 선한 이들의 진리에로의 귀환을 통해 그들의 운명을 굽히지 않고 고통받는 자들을 통해 거룩한 교회의 승리이자 하느님의 승리가 될 것이다그리고 그 후에 지상은 황금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성자와 어머니이신 예수님과 성모님의 시대

 

진 마티 JEAN MARTY

프랑스 협회 회장

“TOUT RESTAURER DANS LE CHRIST”

 

 

P.S. 1

 

우리는 1978년 1월 23일자 엑소시즘의 본문에서 유다의 경고를 발견하였다: “너희는 서로를 지지하여야 하며다시 뭉쳐야 한다하지만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형제가 형제와 아들이 아버지에 맞서 봉기하는 때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그리고 그것은 여러분의 교회심지어 전통주의자” 진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는 정말 말하고 싶지 않다!”

 

 

P.S. 2

 

1977년 11월 7일에 열린 엑소시즘에서 베엘제불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현재로서는 어떤 장애물도 우리(악마)를 막지 못한다모든 장벽에 높아졌다 해도 우리는 마음대로 넘을 수 있다.”

 

그것은 분명하게도 아아사실이다악마들은 더 이상 그들의 길을 가로막는 어떤 장애물도 만나지 않는다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어떤 장애물도 없게 되었다. 1972년 6월 29일 바오로 6세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사탄의 연기가 하느님의 성전에 들어왔습니다.” 따라서 사탄이 교회 안에 있다면 그가 다른 어떤 곳에도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베엘제불은 덧붙인다: “어리석은 전통주의자들이 문을 열어 젖히고 있다그들은 똑바로 서 있을 용기가 없고틈을 만들고 있다그리고 우리는 그 틈을 통해 쉽게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결론은 우리에게 분명히 보인다거룩한 고백성사와 성체성사를 자주 구해야 한다더해서 1884년부터 레오 13세가 사제와 평신도 모두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묵주기도와 구마기도를 자주 행해야 한다.

우리는 이 기도문(묵주와 구마기도)의 매일 암송이 인간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져다주는 놀라운 결과를 목격할 수 있다.

 

결론

 

우리는 신비주의에 정통한 신학자 베르나르도(Bernard) 신부에게 이 경고를 읽은 후 자신의 생각을 물었다.

신학자로서 이러한 계시에 직면했을 때 제기할 수 있는 반론은 우선 빙의된 사람의 진술을 신뢰할 수 있는가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말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의 영일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악마의 영이라면 그들이 거짓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거짓말은 지옥의 영혼이 밥 먹듯 하는 것이니까.

 

우선 첫 번째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이 경우에 빙의된 여인의 정신으로는 저주받은 영혼처럼 말하는 방법을 알지 못할 것이며또한 그녀의 능력 밖의 수천 가지 구원의 진리를 끊임없이 주장할 수는 없다빙의와 엑소시즘 특유의 현상을 자연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두 번째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악마들은 언제나 거짓말에 능통하다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들이 하느님에 의해 추방을 당했듯이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도록 강제하실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느님의 명에 의해 행동하고 있는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첫째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살펴보아 진정한 신앙에 부합되는 것은 모두 진실이며신앙에 반대되는 것은 거짓말이다마지막으로 그들이 강요받고 있다는 상황을 보여주는 정황에 있다특히 그들이 신의 심판과 기도에 저항할 수 없다는 사실과 그들이 빙의하여 차지하고 있는 인격의 신성함그들이 다시 떠나기 전에 말해야 하는 필요성을 계속 반복하는 점즉 그들이 모든 것을 다 말한 후에야 떠날 수 있다는 상황이 그렇다.

 

이 두 가지 경우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특히나 그들 자신이 계속 반복해서 말하듯이그들 자신의 이익에 가장 해를 끼치는 진실을 악마로서그리고 신의 큰 뜻을 위해 가장 유용한 것을 계시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강박에 쫓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 책이 모든 그룹에서 어떤 사람들에 의해 격렬하게 거부될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이 경고의 내용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오직 이점만을 말하려 한다이러한 계시들에 직면했을 때 각 개인이 취하게 될 입장즉 전반적인 입장은 정확히 그 개인이 하느님 앞에서 취하게 될 것이다그것은 바로 교회의 가르침이고여기에 있는 증거에 포함된 진정 2000년 된 교회의 진정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특히 교황을 가두고 고통을 주는 사기꾼에 관한 주제는 너무나 민감해서 많은 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그 문제에 있어서도 진정으로 진리를 찾을 마음이 있다면진정한 신앙의 논리는 적이 가장 쉽게 눈을 가리고 이용하는 자유사상가의 안이한 회의론보다 훨씬 더 진리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볼 때 여기에 나오는 많은 경고들은 다양하고 중요한 출처에서 확인할 수 있고실제로 확인되었다그리고 실제로 많은 선한 영혼들이 이를 이미 알고 있거나 적어도 이 경고의 본질적인 부분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이 경고를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사람들 사이의 구분은 대부분 신에 맞서는지 아니면 순응하는 지의 선택에 달렸다.

 

결국 마지막으로 진정으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본문에 들어 있다무릎을 꿇고 겸손과 열정과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십시오특히 성신께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거기에 단 한가지를 추가하고 싶다여러분의 남은 시간이 몇 시간 밖에 없고이제 곧 하느님 앞에서 심판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긴박함과 진심으로 하느님 앞에 여러분을 놓으라우리 주님께서 사악한 부자’(루가 16:19-31)의 교훈을 주신 것은 사물을 명확하게 보기 위한 근본적인 전제 조건으로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기를 원하셨다이런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는 견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사악한 부자와 같으며그가 사물을 명확히 바라보게 되었을 때에는 너무 늦었고그때는 이미 돌이킬 수도 없는 잔혹한 상황이 되며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이 교훈을 마무리하신다: “저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돌아오더라도 여전히 믿지 아니하리라.”

 

 

 

 

 

번역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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