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 환시 (Visions of Hell)/①저 너머(지옥)로 부터의 경고 PART 1, 2, 3

저 너머(지옥)로 부터의 경고, Part 2 of 3

성 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2022. 8. 27. 21:34

저 너머(지옥)로 부터의 경고, Part 2 of 3

현대의 교회에게

[지옥의 고해성사]

악마들의 폭로로 만들어진 있는 그대로의 교본

베엘제불, 유다 이스가리옷, 아카볼, 그리고 베로바

1975년부터 1978년까지 계속된 엑소시즘 기간 동안

낸시 노울 스미스(Nancy Knowles Smith)가 프랑스어로 된 책 'Avertissements de l'Au'delà à l’Église Contemporaine – Aveux de l’Enfer’

by Jean Marty.을 번역함

이 책은 스위스의 보나벤투르 마이어에 의해 독일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저 너머(지옥)로 부터의 경고, Part 1 of 3

저 너머(지옥)로 부터의 경고, Part 3 of 3

 

 

다음의 연구에서 베이사이드 메시지에서 폭로한 많은 부분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1975~1978년 동안 악마에 홀린 스위스 여인이 한 말과 몸짓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악마 들린 여인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실토한 악마들은 엄숙한 교회의 구마 의식하에서는 성모님의 영향으로 진실을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은 모두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명령에 따라 악마들이 실토한 폭로의 진위는 모두 성직자들의 확인을 거쳐 작성되었다.

 

1. 수도원장 Abbot Albert‑l`Arx, Niederbuchorten

 

2. 수도원장 Abbot Arnold Elig, Ramiswil

 

3. 수도원장 Abbot Ernest Fischer, Missionary, Gossau (St.‑Gall).

 

4. 신부 Pius Gervasi, O.S.B., Disentis

 

5. 수도원장 Abbot Karl Holdener, Ried

 

6. 신부 Gregoire Meyer, ‑ Trimbach

 

7. 신부 Robert Rinderer, C.P.P.S., Auw

 

8. 수도원장 Abbot Louis Veillard, Cerneux‑Pequignot

 

E. Fischer 신부만 독일인이고 나머지 성직자들은 모두 스위스인이다. 악령 들린 여인의 주임신부였던 G. Meyer 신부를 제외한 모든 성직자가 구마 의식(엑소시즘)에 참여하였다. 두 명의 다른 프랑스 성직자도 구마 의식에 참여하였다.

 

 

본 책 1권의 계시에 대한 정당성

 

수많은 신자들이 바친 진정한 기도의 세례 이후, 또 몇 밤에 걸친 속죄를 바친 후 구마사제들의 유일한 바람은 오직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므로, 1977년 3월 13일에 새롭게 구마 의식이 거행되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티 없는 잉태의 이름으로, 모든 천사와 성인의 이름으로, 사제에게 주어진 권능으로 주님의 명령을 받은, 모든 천사의 여왕이시자 교회의 어머니이신 분의 명령을 받아 우리의 영적 양분을 주기 위한 진실만을, 거짓이 아닌 완전한 진실만을 말하도록 악마들은 명령을 받았다.

 

 

2부

1977. 7. 13 (요약본)

 

E= 구마 사제

 

B= 베엘제불

 

악마들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였을까?

 

E: 지금껏 기록된 본문 중에 어느 것이라도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있느냐?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우리에게 말하여라!

 

B: (화를 내며 고함을 지른다. 또 확실히 강요를 받고 있다) 그 말이라면 내가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성모는 나에게 말을 할 것을 강요하였다. 그리고 삼위일체이신... 그분들도 나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명령하신다: 악마들의 입을 통해 너희에게 이렇게 많은 말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슬프다고 하신다. 너희가 성인의 입을 통해 전한 하늘의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성모께서는 이 악마 들린 여인을 통해 너무 많은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많은 은총을 받겠지만, 인간들은 여전히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를 끊임없이 비판하면서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이 하늘에 있는 그분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증오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성모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에 있는 이들이 너희 인간들보다 잘 모른다고 생각하느냐?(1) 이것은 성모가 말하는 것이고, 또한 삼위일체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는 분노와 짜증이 가득 차서 소리 지른다) 성모께서 너희에게 다시 한번 말하라고 시키신다. (분노가 가득한 끔찍한 소리로 외친다) 우리가 너희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말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진실뿐이었다! 모두 진실이다. 진실이 아닌 것은 없다! (숨이 찬 듯 헐떡이며 고함을 지른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강요받았는지 모른다!

 

(1) 이는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가 하늘에서도 땅과 마찬가지로 진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E: 사소한 거짓이라도 끼어있느냐? 그러하냐? 아니냐?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만을 말하여라. 거짓은 안 된다!

 

B: (화가 난 듯 큰 소리로):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도다...” (기도문을 세 차례 반복한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금 진실을 말하여라!

 

B: 완벽하게 오류는 없다. 더러는 약간 불완전한 방식으로 말이 전해졌겠지만, 원래 사전처럼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느냐! 그렇지만 책에 있는 내용만으로 충분하다. (짜증이 난 듯 소리친다)

 

저 위에 있는 분들은 위대한 부인(동정 성모마리아)과 삼위일체이신 분이 나의 입을 강제로 열게 하신다. 그분들은 인간들이 하늘의 자비를 비판하며 믿지 않으려 하는 것을 사악한 배은망덕이라고 하신다. 인간들이 거룩한 성모의 배려를 인정하기를 원치 않는다. 모든 인간은 자신은 비판할 자격이 있으며 자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희 인간들은 이 계시의 절반, 아니 작은 부분에 반항하고 비판하기 전에 적어도 성신께 영광을 돌리는 시편 몇 편만이라도 암송해야 한다.

 

이 기도를 드린 후 각자는 자기 양심을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합당하게 영성체를 영하고, 자신의 양심에 되물어봐야 한다. “내가 이 계시를 계속 부정하고 비판한다면, 혹시라도 내가 하늘의 위대한 여인(성모마리아)과 대척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성모가 나를 통해 이런 말까지 하게 만드는구나! (증오와 분노에 가득 찬 고함을 지른다) 하늘에 있는 분들이나 아주 작은 성인들에 비해도 너희 인간들은 다 추하고 작은 벌레만 못하다. 이 더럽고 작은 벌레들이 성모께서 지시하신 모든 것을 문장 하나하나까지 모두 파괴하는 것을 갈망하는구나! (위를 가리킨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이 아닌 것은 말하지 말아라!

 

B: 우리가 이런 말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느냐? 너희 모두는 우리가 원해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느냐? 우리는 이 말들의 절반, 아니 4분의 1은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너무나 기쁘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이 일은 매우 중대하다! (그의 말이 매우 딱딱하게 끊겨서 나온다) 게다가 성모께서 이 모든 일의 뒤에 계신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우리에게 말하여라. 이 계시의 배후에 성모님께서 계시다는 말인가?

 

B: 성모는(위를 가리킨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있었고, 지금도 배후에 있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만으로 너희가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면, 너희는 모든 것을 들고 가서 창밖으로 던져버리면 된다! (증오로 가득한 목소리)

 

왼쪽 뒤 – 교황 바오로 6세: 긴 코, 귓불의 끝과 일치한다.

오른쪽 뒤 – 가짜 교황: 코가 귀에 비해 훨씬 짧다.

 

가짜 교황 바오로 6세와 바티칸에 관한 계시

 

1976. 01. 16


바티칸에 있는 가짜 교황 바오로 6세의 존재가 분명히 드러났다.

 

베로바: 하느님의 이름으로 너희는 로마에 가짜 교황이 있다고 외쳐야 한다. 그는 진짜 교황 바오로 6세의 얼굴과 비교하면 약간 다른 면이 있다. 그의 눈은 교황만큼 움푹 꺼지지 않았다. 진짜 교황 바오로 6세는 약하고 병약한 모습이다. 그의 눈은 푸른색이지만 가짜는 초록색이다. 가짜 교황은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자기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2) 그는 훌륭한 배우이다. 그만이 죄인이 아니라, 그를 앞에 세운 다른 이들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 바티칸의 외교단은 이 사기를 알아챈 것 같은데, 다른 많은 이들은 관심이 없다.(3) 하지만 평신도들이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4) 분장이 미흡할 때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진짜 교황과 완전히 닮지 않았다. 가짜를 그 자리에 앉힌 몇몇 추기경이 있다. 정말 선한 사람이라도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물론 요즘 사람들이 성경을 그리 많이 보지도 않으니.

 

저자 주

구마 의식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악마들은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를 대신하여 폭로한 가짜 교황에 대한 계시가 반드시 책에 실려야 한다고 끈질기게 요구하였다.

 

(2) 영어판의 주. 프랑스어의 형용사 “ordonne”는 따로 ‘서품받다’라는 의미도 된다. 여기서 가짜 교황이 사제였다면 더 확실히 그렇게 표현되었을 것 같지만. 그러나 이것은 물론 역자의 의견일 뿐이다.

(3) 이에 대한 설명은 마리엔프리드(Marienfried)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의 메시지 (독일, 1945)에 있다. “악마는 실로 교묘하게 인간의 눈을 멀게 하는 법을 알고 있다. 선한 사람도 속아 넘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확실한 증거가 없으므로 아직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설득한다. 신앙심이 깊은 추기경이라면 말을 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단순히 하느님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침묵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야 하나?

(4)“그러나 그들의 눈이 가려져서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였다.” (루가 24:16) 성 루가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길에서 동행하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지금의 이 눈이 먼 현상이 악마가 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하느님의 허락을 받아 일어나는 일이다’라고 할 수는 없을까? 곳곳에서 우리는 사탄이 승리한 것 같은 여러 파괴적 사건이나 진행 중인 “악의 세력‘(2 데살 2:7)이라는 분명한 증거를 마주하게 된다.

 

 

1977. 4. 25

 

E: 베엘제불아,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성혈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B: 성모가(위를 가리킨다) 나에게 시키셨다: 아! 아! 교황 주위에 있는 몇몇 교황은 늑대와 같은 족속이다.

 

E: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계속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너에게 명하신 진실을, 조금의 거짓도 없는 완전한 진실만을 말하여라!

 

B: .. 만약 저들이 늑대가 아니라면, 이런 교묘한 술책으로 두 번째 교황의 역할, 아니 진짜 교황은 뒤로 물러났으니 첫 번째 교황의 역할이 맞겠구나. 교묘한 술책으로 그를 그 자리를 지키게 할 수 있었겠느냐.

 

E: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네가 해야 할 모든 진실을 계속 말하여라!

 

B: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진짜 교황에게 그가 겪지 않았어도 될 수많은 잔인한 고통을 겪으며 정죄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다.

 

E: 계속하여라, 베엘제불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계속 말하여라!

 

B: 우리는 사람들이 두 번째 교황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 우리는 너희 모든 인간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총명하다. 그런 우리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E: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베엘제불아, 계속하여라!

 

B: 그들이 너무도 교묘히 이 사실을 숨기기에 심지어 ‘전통주의’ 사제들과 일반 신자들도 이를 믿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너희에게 불행하다는 의미이고, 내 말은 사실이다.

 

E: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명한다. 계속 말하여라!

 

B: 저들은 말한다 “가짜는 없다. 불가능하다. 교황은 오직 한 분뿐이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덧붙일 말은 없나?

 

B: 이건 반드시 말해야 한다: “신중하라. 그리고 뱀처럼 교활하라!”

 

E: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베엘제불아, 계속 말하여라!

 

B: 신중하라. 그리고 뱀처럼 교활하라. 거짓을 밝히려 급하게 서둘지 말라... (말이 전해오지 않는다)

 

E: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오직 진실만을 말하여라!

 

B: 실제로 거짓 교황(5)이 군림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 있으니 사람들을 계속 깨우는 것이 중요하다.

 

E: 베엘제불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아직 우리에게 무슨 할 말이 남았느냐?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원하시는 진실을 말하여라!

 

B: 우리는 지금 평신도, 사제, 주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아니 모든 이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우리는 모든 이들의 귀에 속삭이며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우리는 바티칸에 드나드는 추기경들의 눈도 멀게 할 수 있다. 인간들은 처음부터 알아채지 못할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날 성형 의학 기술이 너무나 많은 발전을 이루었기에 이제 곧 인간을 다른 이와 똑같게, 느낌마저 똑같게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6) (호흡이 가빠지면서 숨쉬기 힘들어한다) 가짜가 바티칸에 있으면 추기경들은 틈이 날 때마다 진짜 교황의 습관과 버릇을 가르친다. 가짜가 진짜 흉내를 내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가짜는 가끔 아주 작은 실수를 저지르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5) 그는 1974년 말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성년(Holy year)에 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후 그는 1975년 9월부터는 계속 바오로 6세를 대신하고 있다.

(6) 분위기까지 똑같게 만들 수 있을까? 한계가 있다. 태우고, 상처를 내 지문을 바꿀 수는 있으나, 완전히 똑같은 지문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옛 지문은 항상 남아 있다) 다른 이의 지문을 닮게 할 수도 없다.

 

 

1977. 6. 10

 

E: 가짜는 아직 살아 있는가? 진실을 말하여라!

 

B: 그렇다, 그는 아직 살아 있다. 운이 좋은 건지 그는 아직 살아 있다. 만약 그가 암살당한다면, 아마도 그건 우리 소행일 것이다. 그래야 모든 일이 잠잠해지지 않겠느냐? 우리는 복되신 성모의 명에 따라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너희에게 밝혀야 했다. 우리가 이미 말했듯이 교황은 큰 고난을 겪고 있다. 만약 그가 자기 의지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교회는 지금의 상황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황은 자신의 거처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다. 그는 교회로 다시 돌아갈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직무를 돕고, 교회가 처한 엄중한 상황에서 그를 지원해야 할 가까운 수하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말 그대로 고통을 받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데, 우리는 그를 무능한 자로 만드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그는 대중들에게 아무 말도 전할 수 없다. 그는 순교자이다.(7) 이전에도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순교자 스테파노보다 더 나쁜 상황에 있다. 그는 저위의 분들에게(위를 가리킨다) 매우 사랑받고 있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순명하지 않는 추기경들과 거짓 교황에 대해 다시 한번 말한다. 그들에게 순명하여서는 안 된다.

 

(7) 1977년 11월 7일 베엘제불은 구마 의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좌에 앉아 있는 저 늙은이를 보아라. 그가 발을 뻗을 수 있도록⋯ 독에 죽지 않도록⋯ 몰래 해독제를 주어라. 팔순 생일 후에도 죽지 않도록 약을 주어라. 언젠가 죽겠지만, 그것이 그에게 최선의 길이다. 그는 교회를 매우 경건하게 이끌어 가겠다는 따위의 호기를 부려서는 안 되었다. 저 추기경들에게 굴복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더 나았을 것이다.”

 

E: 교황 바오로 6세는 자신의 대역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B: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것이다. 그는 알고 있다...(8) 추기경들의 음모로 하늘의 뜻이나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말들이 출판되어 세계 각지의 주교들에게 전해지는 사실만으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이 죄수의 처지임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큰 고통을 받는 것도 잘 알고 있다.(9)

 

(8) 테오도르 콜버그(Theodore Kolberg)의 저서이며, 후에 악마가 구마식 도중에 추천하였던 책 “바티칸에서의 음모?”에서 적어도 1975년 9월 후반부터 교황 바오로 6세가 연금되고 가짜 교황이 대신하였다고 주장한다. 이 주제에 대한 악마들의 폭로가 불완전하며 미완성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구마식을 하는 동안 악마들이 증언하기를 거부하는 것도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9) “진짜 교황은 마인드젠티 추기경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 그는 몹시 고통받았고, 그 추기경을 가엾게 여겼다. “저 불쌍한 마인드젠티에게 일어난 일은 진짜 교황 바오로 6세를 통해서 일어난 것은 아니다. 지옥(아래쪽을 가리킨다)에 있는 우리조차 이 불쌍한 추기경을 도대체 어떻게 해서 가장 낮은 장소⋯ 그만큼 불유쾌한 장소에 배치하는 데 성공했는지를 모를 정도다. 어떻게 쿤이나 하그 같은 혐오스런 족속들보다 낮은 곳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1978년 1월 23일 구마식에서 가롯의 유다의 증언).

 

 

일부 추기경들은 교황에게 순명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이 아닌 일들을 많이 저지르기 때문에 1975년 8월 17일 가롯의 유다는 이제 더는 그 추기경들에게 복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때 유다는 말했다: “아무도 늑대를 따를 필요는 없다. 늑대의 입속에 자진해서 들어갈 어린 양은 어디에도 없다.” 지붕 위에 올라가 크게 외쳐라. 모든 주교는 어떤 추기경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진리가 아니므로, 모든 추기경에게 순명하는 것이 필수는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의 눈도 멀었으므로, 완전히 눈이 멀었기에 이런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요인이 있다. 세 명의 고위 추기경(조종자들)이 있다.(10) 그들 중에 섞여 있는 몇몇은 정말 최악의 인간이다. 그들은 우리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으므로,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조직하고 위장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정말 행운이었다. 그들이 하는 짓을 그들이 잘 몰라서 행복했다. 만약 이 세 명의 추기경이 벌이고 있는 지옥의 게임이 밝혀진다면...!

 

(10) 1977년 3월 7일 베엘제불이 구마 의식 동안 인용한 그들의 이름은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고, 특히 그들 중 한 명은 유명하다.

 

예전 같으면, 15세기 정도라면 그들은 마법사로서 불에 타는 화형을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는, 시대의 잘못된 현상이지만, 선한 설교를 강조하고 선한 자의 삶을 사는 이들이 차별과 괴롭힘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반면 악행을 일삼고, 동료 성직자들과 말다툼이나 하며, 사악한 방식의 삶을 사는 이들, 잘 드러나지 않는 음모에 연루된 이들이 훨씬 나은 대접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자들이 선한 자이며, 매우 유능하다고 받아들여지며, 그렇기에 그들에게 순종하며,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완벽하다고 받아들여진다.

 

이 미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저 밑에 있는(아래를 가리킨다) 우리는 종종 사악하고 인위적인 것을 만들고, 순명을 가장하여 배교하게 만들거나, 선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당연한 우리의 일이다. 또 선한 것에 불순명하게 하거나, 고의로 반종교적인 것이나 겸손의 결핍으로 몰아갈 수 있다. 르페브레(Lefebvre) 몬시뇰도 그런 경우이다.

 

공산주의자와 프리메이슨(11) 중에 우리에게서 낮이건 밤이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강한 힘을 받은 자들도 있다. 그들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기에 우리와 연합하는 이들에게는 지상의 어떤 책에도 실리지 않은 그런 방법으로 그들에게 교회를 파멸시킬 힘을 주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프리메이슨이나 몇몇 추기경들이 무슨 일을 꾀하는지에 대해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는 이유이다.

 

(11) 공산주의자, 프리메이슨- 초자연적 힘을 지닌 파괴적인 야누스의 두 얼굴: 가난한 자들을 위한다는 공산주의, 부자들을 위한다는 프리메이슨

 

E: 교황은 그런 추기경들에 대해 알고 있는가? 교황은 그들을 조사했었나?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어서 진실을 우리에게 들려다오!

 

B: 그는 오래전에 그들 무리와 함께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가 말했듯이 그의 손과 발은 묶여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저들은 교황에게 주사를 놓고 있다. 잘 들어라. 교황을 진료하는 그 의사는 교황의 머리와 정신에 해를 가하는 특정한 독을 주사하며 교황을 조종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지만 교황은 아직 옳고 그름을 완벽히 분별할 정신이 있다. 예를 들어, 복되신 성모께서는 그가 “르페브레 몬시뇰을 파문한다”와 같은 말을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하였다.

 

언제나 육신이 마비되어 있고, 힘은 점점 빠져나가기에 그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맞서 홀로 설 힘이 없다. 그것이 그의 순교인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 힘든 시련이겠지만, 하늘은 이를 허락했다. 우리가 말했듯이, 그는 순교자 교황이다. 지금 이 말을 믿지 않는 자들은 앞으로 보게 될 것이다. 너희들의 눈이 열릴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유리한 바람이 불고 있구나. 그렇지만 이런 사실이 밝혀지지 않도록 밤낮으로 애쓰고 있다. 많은 자들이 이미 알아챘지만, 아직 대다수 인간은 모르고 있다.

 

E: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너희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에 밝혀질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B: 진실은 언제나 드러난다. 진실은 항상 맨 마지막에 등장하지. 하지만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많은 사람이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진짜 교황이 지금 고통받고 있는 것처럼 인간들도 똑같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동시에 다시 한번 말한다. 모든 일은 언제나 저 위에 있는 높은 분들의 뜻대로 일어나고, 이 책 ⋯ 중요한 계시, 그리고 일반적으로 계시에 관한 책을 만들려 하는 것은 저 하늘에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현재 하늘이 바라고 있고, 과거에 하늘이 바란 대로, 다시 말해 가장 높으신 분의 뜻대로 만들어지고 쓰여지지 않은 계시의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사소한 계시조차도. 하늘의 높은 분들은 이 계시에 조금의 거짓이라도 끼어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이 책의 내용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뻐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복되신 성모는 언제나 우리와 맞서는 적의 지휘관이다. 성모의 힘이 조금만 빠진다면 너무나 좋겠는데! 성모는 우리를, 우리의 일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다. 성모는 이 중대하고 무서운 혼란의 시기에 당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게 하고 있다. 그것은 선한 이들은 적어도 서로 뜻을 모아야 하며, 가능한 한 같은 방향으로 말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가짜 교황은 없다. 나는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가짜 교황은 있다”라고 다른 말을 하여서는 안 된다. 뜻을 모아야 한다.

그렇기에 성모는 이 책이 반드시 출판되기를 원하신다. 가짜 교황은 존재한다.

 

E: 어떻게 가짜를 알아볼 수 있겠느냐?

 

B: 우리가 이미 너희에게 알려줬다. 책을 읽어라. 우리가 말한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이 적혀있다. 콜베르크(Kolberg)의 책 “Conspiracy in the Vatican?(바티칸에서의 음모)”에서 가짜 교황에 관한 내용을 찾아 읽어라.

 

E: 콜베르크가 정확히 쓴 것이 맞느냐?

 

B: 정확하다.

 

E: 콜베르크가 진실을 썻느냐? 그의 책 “바티칸에서의 음모?”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냐?

 

B: 콜베르크의 책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의 책에는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은 몇 가지 사소한 것들은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E: 음성 녹음은 진짜인가?(12)

 

(12) 목소리의 진동에 대한 녹음(분석 후)으로 구성된 음성 녹음은 개인마다 특징이 달리 나타나며, 이런 점에서 지문처럼 위조할 수 없다.

 

음성 녹음 (똑같은 단어, 다른 성문의 특징):

사진은 신분을 구분하는 물리적 증거의 한 종류이다. 다른 물리적 증거로는 지문, 음성지문(성문), 의학적 소견 등이 있다. 그의 저서 “바티칸에서의 음모?”에서 콜베르크는 가짜 교황에 관한 추가적인 증거를 제시하였다. 교황의 연설 중에서 라틴어 한 문장 "Urbi et Urbi" 연설의 음성 녹음은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두 개의 녹음분은 미국 뉴저지주의 파인브룩에 있는 케이 엘레메트릭스(Kay Elemetrics)에 전달돼 음성주파수 분석기의 분석을 거쳤다. 교황이 두 차례에 걸쳐 발음한 동일한 단어에 대한 B/65형 소나그램 성문분석 결과는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낸 단어라는 것을 보여줬다.

 

B: 저 빌어먹을 성문분석은 진짜이다.(13) 그 증거가 의심받고 부정된 것은 우리 악마들의 노력이다. 협력자의 대다수는 다른 쪽보다 우리와 더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교황의 말을 지우기 위해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자들도 있다.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이야!

 

(13) 콜베르크는 자신의 책 말미에 진짜 바오로 6세의 1975년 부활절 음성과 그의 대역의 1976년 크리스마스 때의 음성 녹음본 비교를 게재하였다. 1975년 9월 이후 진짜 바오로 6세는 대중 앞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1975년 크리스마스 기념사는 가짜였다. 그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바오로 6세가 이 비밀을 폭로하였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미스터리다. 여러 계시와 베엘제불 자신의 증언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교황이 살아 있게 하는 것을 원하신 것 같다. “그는 순교자이다.... 그것은 하늘 높은 곳의 허락을 받은 것이다.”

 

E: 더 할 말이 있느냐? 아니면 이것이 전부인가?

 

B: 성모께서는 오늘은 그만해도 된다고 하신다. 하지만 오늘 나온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신다.(14)

 

 

 

1977. 7. 13 – 베엘제불

 

E: 구마 사제

 

B: 베엘제불

 

THE DOUBLE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가짜 교황에 관한 것은 어떻게 되었느냐?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더냐? 그러하냐?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이 아닌 것은 하나도 하지 말고 진실만을 말하여라!

 

B: 이 일은 매우 중대한 계시이다. 나중에 우리가 진실을 말할 것이라는 보증과 확신을 가지기 위해 너희는 먼저 묵주기도를 한 꾸러미 하여라!

 

E: (묵주기도를 5단 바친 후에)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이는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세상의 끝날에 하늘과 땅,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교회의 어머니 이름으로 너에게 명한다. 너희가 말한 가짜 교황에 관한 것은 진실이더냐? 교회의 모후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이 아닌 것은 하나도 하지 말고 오직 진실만을 말하여라!

 

B: (끔찍한 소리를 낸다) 이건 진실이야! 그는... 정말... 있단 말이다! (계속 무섭게 악을 쓰고 오싹한 절망의 소리를 낸다)

 

 

1977. 9. 15

 

가롯의 유다의 맹세 (발췌)(1)

 

I. 많은 주교, 성직자, 평신도들이 종종 불완전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의 거짓도 없고 완전한 사실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은 운명의 장난이다. 그들은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르페브레 몬시뇰은 트리엔트 전례 미사를 믿고 분명히 선포하고 있다. 그는 완벽하게 거짓 없이 하느님의 나라를 찬양하고 있다. 그는 저 위에 있는 분들이 바라는 대로 진실하게 행동하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조차 가짜 교황이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반대로 가짜 교황이 있다고 믿는 사람 중에도 트리엔트 전례 미사가 합법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

 

(1) 이 구마 의식 동안 유다는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지시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 (경고)의 책은 온 세상으로 퍼져야 한다. 가능하면 교회의 인가(imprimatur)가 있어야 한다.

 

II. 진짜 교황(바오로 6세)은 사람들을 껴안거나 포옹한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매우 내성적인 성격이다. 진짜 교황은 행동거지에 있어서 매우 조심스러웠고, 결코 그런 방식으로 누군가를 환대하지는 않았다. 가톨릭의 자비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안아주고 포옹하는 저 사람은 가짜 교황이다. 진짜 교황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를 도운 경험이 있는 보좌관에게 물어보라. 그를 잘 알고 있는 다른 보좌관들에게도 진짜 교황이 과거에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있는지, 아니면 지금도 예전 그대로의 행동을 하는지 물어보아라. 하지만 진짜 교황이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에 이 점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차츰 연구하면 드러날 일이고, 앞으로도 캐내야 할 일이다.

 

 

1977. 7. 13 (결론)

 

E: 구마 사제

 

B: 베엘제불

 

전대사

 

E: 전대사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는가? 교황이 준 전대사를 다른 교황이 제거할 수 있는 것인가?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만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여라!

 

B: 아무리 그 전대사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말해봐야 소용없다. 그 전대사는 언제까지라도 유효하다.

 

E: 어떻게 언제까지라도 유효할 수 있는 것인가? 교황은 묶을 수도 있지만 풀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B: 만약 풀려는 자가 완전히 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풀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성모께서 나를 통해 전하는 말이다.(2)

 

(2) 교황이 전대사를 완전히 무효로 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그 전대사는 유효한 채 남아 있다.

 

E: 진실을 말하여라!

 

B: 이건 전부 진실이다.(3)

 

(3) 대사에 관한 계시를 보완하여 “대사란 죄에 대한 징벌이 하느님 앞에서 면제하는 것이다. 죄는 이미 용서받았다. 신심이 깊은 신자들이 합당한 처분을 받고 규정된 조건으로 교회의 개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대사는 그리스도와 모든 성인의 만족에 대한 은총으로 나누고 베푸는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헌장 중

 

오해

 

E: 우리는 하느님의 뜻,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뜻을 수행하려 한다. 우리는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려 한다.

 

B: 그래, 그것이 너희가 원하는 것이구나.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말해주마.

 

E: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어떤 오해도 받아들일 수 있다.

 

B: 너희는 너희가 받을 그 오해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너희를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위해 그리고 성모마리아의 티 없는 성심을 통하여 교회를 위해 봉헌되어야 한다. 너희는 그것을 성교회를 위해 바쳐야 한다. 너희에게 이보다 더 큰 보상은 없을 것이다. (짜증을 내며 중얼거린다)

 

E: 복되신 성모께서 너를 통해 그 일을 알게 해준 것을 감사하고 있다.

 

B: 성모께서는 그것이 어떤 감사보다 낫다고 말씀하라 하신다. 그런데 무엇이 어떤 감사보다 낫다는 것인지 아느냐? 그것은 아마도 십자가에서 맞은 그리스도의 죽음 아니었겠느냐? 그리스도의 죽음을 너희가 감사할 수 있겠느냐? 그리스도께서 온갖 모욕을 당하고 오물로 범벅이 되었을 때, 그것도 그리스도를 향하여 “호산나”라고 찬양하던 인간들에게 그런 수난을 겪었는데도 너희는 이 일에 감사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그리스도와) 비교도 안 된다.

 

성모께서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겪으신 그 모든 것들, 너희도 그리스도의 이런 발자취를 따라 이러한 오해도 참고 견뎌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상황이 일어날 때까지 저 위에 있는 분들이 바라는 지점, 즉 위대한 여왕께서 바라시는 지점에 도달하여야 한다. 이것을 성모께서 나에게 말하라 하신 것들이다. (고통스럽게 숨을 쉰다)

 

 

화강암처럼 단단해져라

 

E: 복되신 성모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모님께서 너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남았으면 말하여라.

 

B: 다시 한번 성모께서 나에게 이 말을 하라 하신다: 화강암처럼 단단하고 강철처럼 굳고 대리석처럼 완강하라 하신다! 선함만을 쫓아라. 오른쪽도 왼쪽도 동쪽도 서쪽도 앞쪽도 뒤쪽도 곁눈질하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오로지 위만 바라봐라. 다시 말해 성모쪽만을 바라보라는 말이다. 거룩한 부인께서 이를 말하라 하신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계속하여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B: 성모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이 책에 참여하였고 관여한 이들이 갑자기 나라를 버리고 적의 품에 안기는 반역자처럼 깃발을 버리고 “이 책의 내용은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이 내용을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하여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4)

 

(4) 요한 20:29

 

E: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은 모든 것을 말하여라!

 

B: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5)

 

(5) 마태오 11:25

 

이것은 성모가 나에게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 말씀은 아이의 믿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지금의 많은 사제들... 그리고 평신도들이 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을 믿고 내일은 저것을 믿는 식의 믿음은 안 된다. 누군가가 “이걸 들어봐, 그럴 리가 없다. 나는 방금 이런 말을 들었다. 그리고 저런 거룩한 영혼에 의하면 그것도 좋다. 또 저렇게 훌륭하고 박식한 성직자가 이런 말을 했니, 저런 말을 했니 하며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이리저리 흔들려서는 안 된다.” 모든 믿는 사람은 참나무처럼 굳건하여야 한다. (숨을 헐떡인다)

 

성모는 우리를 통해 말하게 한 모든 계시, 우리가 강요로 마지못해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에 대해 너희가 감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이런 말을 해야 했던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짜증스레 말한다) 그녀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아주 정확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우리 악마들은 일을 애매하게 해 두는 것을 좋아하는 데)... 그 책의 발행이 진행될 수 있도록. 그러나 인간들은 모든 것을 더럽히고, 무디게 하고, 품위를 떨어뜨리고, 의심을 품고, 짓밟으려 한다. 이런 생각은 하늘의 성모의 뜻과는 다르다. 성모의 뜻이 아니다. 성모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는다. 훌륭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고, 용기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비록 지금 이 시대에 가짜 교황에 대한 진실이 묻히고 증명되지 않을지라도 용기가 필요하다. 성모께서 나에게 말하게 한다...

 

이 내용이 진실이며, 하늘의 성모께서 나를 통해 한 말이라고 몇 번이나 다시 말해야 하느냐? (분노와 증오가 가득한 목소리로 외친다) 마지막 한 사람이 동의하여 모든 사람이 마땅히 행동해야 할 바를 행동할 때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느냐? 너희는 이것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성모가 바라시는 대로 행동하여야 한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다. 마지막 기회 중 하나이다. (분노하며 으르렁거린다)

 

E: 이제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우리에게 들려주라 하신 말씀을 모두 말하였느냐?

 

B: (분노와 원한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친다) 우리는 성모(위를 가리킨다)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말했다. 그리고 성모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라고 하신다. 제발 너희 인간들은 아직도 무엇을 더 기다리는 것이냐? 너희 인간들은 세상의 종말을 봐야만 믿을 것이냐? 이것을 성모는 너희에게 들려주려 하신 말씀이다!

 

우리는 말했다. 우리는 다 말했다. 우리 악마들은 성모가 원하시는 것을 다 말했다. (증오와 절망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1977. 6. 18

 

E = 구마 사제

 

B = 베엘제불

 

교황 요한 23세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6)

 

(6) 이 장은 베엘제불이 계시를 전함에 있어 많이 주저하고, 숨기고, 악마의 나무로 매 맞는 등 자신의 말에 올바른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지만, 완전히 열린 마음으로 읽는다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베엘제불의 계시로부터 우리가 도출하는 결론은 공의회의 주제가 나쁘지 않더라도 아직 열리고 있는 공의회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이다.

 

E: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우리에게 말하여라!

 

B: 요한 23세는 1958년부터 교황직을 맡았는데, 이 교황은 특별히 총명하지도 박식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더는 그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E: 그렇다면 그는 지금 천국에 있는가?

 

B: 아아, 성모는 우리가 그와 빌어먹을 공의회에 대해 말해주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너희도 공의회에 관한 계시는 듣지도 말고 그냥 넘어간다면 지금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원하시는 것만 말하여라!

 

B: 아아, 성모는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 (한숨을 쉰다)

 

E: 성모님께서 원하는 것을 말하여라!

 

B: 1958년에 요한은 교황직을 맡았다. 일종의 긴급 조치였는데, 그가 가장 먼저 도착하였었다. 비록 일이 언제나 그가 생각한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경건하고 의로운 뜻을 가지고 있었다.(7) 그가 공의회를 열었다는 것은 사실이고, 만약 그가 공의회를 열지 않았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7) 요한 23세가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전임자였던 비오 12세와 동일하며, 요한 23세의 경우 그 가능성이 크다. 콜버그의 책 “The Deception of the Century” 중에서) 요한 23세의 경우 현재로서는 추정에 가깝다. 교황 바오로 6세의 경우 주님의 뜻이 있어 기적적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 교황이 공의회를 소집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면에서 좋았다는 것이냐?

 

B: 저 위의 관점을 보면...(위를 가리킨다)

 

E: 진실을 말하여라!

 

B: 우리는 이것을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가르치고 싶지 않다.

 

E: 아래의 관점은 어떠하냐?

 

B: 좋아 말해주마! 이러하다. 위쪽의 사람들은 최종적으로는 갓난아이가 목욕탕 물과 함께 내던져져 버리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8) 위쪽의 사람들은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공의회가 소집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9) 개혁이 필요한 부분은 더러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태는 아기가 목욕물과 함께 완전히 버려졌고, 욕조에 남아 있는 것은 갓난아기의 오물과 흙뿐이다. ...하지 않았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8) 추가 내용- 이 계시에서 “위쪽”은 천국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 23세 및 관련자들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9) 여기서 악마들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도록 몰아붙일 수 있는 구마 사제들은 전문 심문관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공의회 개최는 이미 1922년에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표명되어 있었다. 교황 비오 12세도 (1948년에) 같은 일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요한 23세에 이르러 소집하게 된 것이다.

 

 

E: “아기”란 성교회를 말하는 것이냐?

 

B: 그렇다, 교회와 공의회를 말한다. 공의회는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다. 내 말은 교황 요한 23세는... 그가 공의회를 소집한 것은 정당한 이유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말이 끊어진다) 하지만 그 결과를 그가 본다면 그는 지금 무덤 속에서 번민하고 있을 것이다.

 

E: 교황 요한 23세는 몰랐는가?

 

B: 물론 그도 알고 있었다. 그는 임종 시에 그것이 그리 현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목격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는 이 공의회가 이토록 개탄스럽고, 파괴적이고, 재앙적이고,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다. 그는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뜻은 의로웠다. 그는 자신이 교회에 큰 이득을 가져다줄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개혁할 필요가 없는 것을 개혁하려 한 것이다.

 

그가 훗날 그 추기경들이, 추기경이라는 가면을 쓴 저 사기꾼들이 그의 손에서 교황의 홀을 빼앗아 모든 것을 이 끔찍한 상태에 빠뜨릴 것을 알았겠느냐? 그가 이런 일들을 예상했겠느냐? 그는 의로운 자이며 천국에 이르렀다. 어쨌든 그는 구원받았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오직 진실만을 말하여라!

 

B: 교황 요한 23세는 겸손하고 의로웠지만, 능력은 그리 특출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교회를 잘 통솔할 수 있는 매우 능력 있는 교황이 세워졌어야 한다. 남에게 잘 속아 넘어가지 않으며 자신의 권능을 끝까지 유지할 그런 교황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가 그런 것을 이해하였을 때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10) 하지만 이 모든 일을 고려하여 생각해보면 성경의 말씀이 모두 이루어지기 위한 저 위에 있는 분들의 계획으로 이루어진 일이다.(11) 모든 것은 저 윗분들의 계획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의 분들이 보기에 지금의 상황은 개탄스런 광경이다.

 

(10) 교황 바오로 6세도 “진보”라는 아젠다에 의해 움직였다. 1976년 8월 1일 프랑스의 자넷은 팜플렛 “Parce Domine”의 다른 발췌문과 함께 엮어 1976년 10월에 발행된 별도의 인쇄물에서 “교황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의 문을 열었지만, 그는 피눈물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11) 신비의 열쇄는 거기에 있다. “그때가 바로 성서의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다”(루가 21:22) 그리고 성 바오로가 성경에 적어 경고하고 있는 “악의 세력은 이미 활동하고 있습니다.” (2 데살로니카 2:7) 이미 그 일들이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B: 그는 임종 때에 그 일로 몹시 괴로워했다. 그래서 교황은 친한 친구들, 아니 자신에게 충실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내가 이 공의회를 소집하지 않았더라면!”이라고 세상에 외치고 싶다고 그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때쯤 그는 이 공의회가 가져올 끔찍한 결과를 보았지만,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는 지금 임종의 침대에 누워 있기에 이 모든 것을 멈출 수 있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 소위 그가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런 의지를 세상에 그리고 다음 교황에게도 알릴 수 있도록 기대를 걸었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원하시는 진실을 말하여라!

 

B: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그가 믿는 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교황은 임종을 맞이하고 있다. 그의 정신은 완전히 정상은 아니다.” 공의회가 소집된 이상, 마치 수도꼭지를 틀고 잠그듯 필요하면 틀고,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잠그는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아무도 “이제 잠급시다”라고 하며 공의회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공의회는 더 이상 통제할 수 있거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수단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상황은 이미 진전되어서 누구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12) 통제수단은 없다. 요한 23세가 사망했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게 되어 있었다.

 

(12) “우리는(악마들) 최선을 다했다...”라는 설명에 비추어 볼 때 이 말은 진실이다.

 

당연히 우리가 이 음모에 끼어있었다. 우리는 어디에서건 우위를 차지하려 노력해 왔다. 당연히 우리는 이 홍수를 막을 수도꼭지가 작동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너희는 치명적이고, 재앙적이며, 무서운 그리고 악마가 만들어 낸 온갖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교황 요한 23세가 믿은 사람들도 이렇게 말했다: “지금 교황은 동맥경화인지 무엇인지 하는 병이 깊어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말했다: “지금 교황이 한 말이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 상황은 많이 진행되었고, 추진되고 있는데, 지금 발을 뺄 수는 없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B: 그 뒤를 이은 교황 바오로 6세는 지적이고 능력이 있는 교황이었다. 하지만 능력이 있다고 전임자가 시작한 일을 멈추거나 되돌리기 위해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바오로 6세도 초반에 몇 가지 실수를 하였다. 바오로 6세는 교황 요한 23세가 임종 때 한 말을 알지 못했다. 나중에 전해 들었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 어쨌든 바오로 6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오히려 재앙을 가중시키는 몇 가지 조치를 취하였다.(13)

 

(13) 모든 것을 고려할 때, 가능한 한 로마의 독립언론기관의 책임자인 랄프 윌트겐(Ralph Wiltgen) 신부가 공의회 전반을 취재한 출판물 “Le Rhin se jette dans le Tibre. Le Concile inconnu.”(라인강은 티베르강으로 흐른다. 미지의 공의회)를 읽을 것을 권한다.

 

그의 재위는 이제 거의 14년 차에 이르고, 그로서 이 14년은 실망스러웠다. 공의회가 파괴적인 성격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으나 이미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14) 그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오래전이었지만, 그래도 이미 늦은 후였다. 다른 악마들이 이미 말했겠지만, 그는 끔찍한 순교자의 길을 가고 있다. 현재의 혼돈 상황에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14) “공의회 문헌의 모호성은 이 문헌이 효력을 발생하는 순간부터 온갖 배신이 교회를 가득 채우는 것을 허용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적들이 하지 않은 일은 속기 쉬운 자들이 실행에 옮겼다.” (1975년 2월에 출간된 소책자 “Le pouvoir occulte a l'assaut de l'Eglise”)

 

사람들은 언제나 말한다. “그것은 성신이 하신 일이다. 성신이 하신 일이 분명하다.”(15) 예를 들어, 외교관이나 온갖 정치인이 가짜 교황을 알현하면서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오게 될 때, 또는 추기경들이 원하는 대로 받아들일 때, 세상은, 혹은 적어도 교황에게 충실하다고 자부하는 세계는 말한다: “성신의 숨결이다! 이것은 성신께서 하신 일이 틀림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성신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

 

(15) 공의회의 교부들이 승인한 문헌 전부가 만일 성신이 하신 일이라면 대단히 놀라웠을 것이다! 우리는 1975년 초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법학자들이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1963년 12월 4일)의 본문을 주의 깊게 조사하였을 때, 그 헌장에는 정확성이 떨어지고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그래서 당연하게도 법학자의 관점에서 이들 모순의 원인이 무엇인지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공의회의 중심에 감춰진 음모에 ‘배신한 추기경들과 불충실한 고위성직자들’이 찬동하였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E: 말하고 싶지 않으냐? 베엘제불아, 네가 해야 할 말은 모두 하였느냐? 공의회에 성신은 함께 하시지 않은 것이냐?

 

B: 시작은 함께 하셨지만, 언제나 계셨던 것은 아니다.(16)

 

(16) 이 말은 단순히 성신이 부재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하느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신다. 성신의 고유한 영감이 주는 긍정적이고 본질적인 역할 대신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존중 때문에 인간에 맡겨두고 너무 심각한 실수로부터 보호라는 외적인 역할에 머무르신다.

 

 

 

 

천사의 목격

 

예비기도: 모든 성인의 호칭 기도(악마들이 반응한다); 레오 13세의 구마기도 (독일어로 기도하였다)

 

E: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오늘 그 축일을 맞는 티 없는 성모 성심의 이름으로 네게 명한다.

 

B: 너희 모두는 신덕송, 망덕송, 애덕송, 통회의 기도를 바쳐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진실이 아닌 것은 말하지 말아라!

 

B: 우리는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루시퍼는 우리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루시퍼는 성모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를 원치 않는다....

 

E: 하지만 지극히 복되신 성모마리아께서 원하시는 대로...

 

B: 루시퍼는 하늘의 거룩한 여인을 증오한다. 루시퍼는 위대한 여인이 원하는 것을 얻거나, 머리에 왕관을 쓴 모습을 볼 때마다 언제나 크게 화를 낸다.

 

E: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B: 성모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당연하게도 성모는 높은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오늘은 티 없는 성모 성심 대축일이다.

 

E: 지극히 복되신 성모마리아께서 그곳에 계시느냐?

 

B: 성모가 어떻게 그곳에 있는지! 성모가 나를 짓누르고 있다. 나 베엘제불을 짓누르고 있다! 성모가 오는 것을 알아챘어야 했는데! 처음엔 분명 안 계셨지만, 성모께서 우리에게 오실 것만 같았다.

 

E: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성모마리아께서 바라시는 대로 진실이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오직 진실만을 말하여라!

 

B: 그녀가 우리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언젠가 위대한 공동 구속자가 되실 것을 알 수 있었다. 위대한... 위대한 여인...

 

E: 성모님께서 티 없으신 잉태의 모습대로 너희에게 보이셨느냐?

 

B: 우리의 장엄하고, 천사의 웅장함이 있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성모보다 훨씬 더 높고 위대하다고 믿었기에, 우리는 한 명의 예외적인 존재가 우리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이것은 우리가 아래로 내던져진, 우리의 타락의 강력한 동기이기도 하였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극히 복되신 성모마리아께서 명하신 모든 말을 다 하여라!

 

B: 매일 매일 우리는 더 우울해지고 있다. 날짜로 셀 수 있는 것이 아닌 영원이라는 기준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데, 비유적으로 너희의 기준에 맞춰 설명하면, 우리는 날마다 더욱더 우울해지고, 위엄을 잃어가고 있다. 그전에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천사였던 미카엘이... 아! 미카엘, 미카엘! 이 이름이 우리를 미치게 만든다. 우리가 보기에 보잘 것 없었던 미카엘이 이제 큰 권능을 행사하여 우리는 거의 짓밟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잃은 모든 것이 다 미카엘의 것이 되었다.

 

E: 대천사 미카엘이 지금은 가장 위대한 천사인가?

 

B: 아아, 그렇다! 그때 이후로 계속.

 

E: 미카엘이 천국에서 너와 루시퍼의 지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냐?

 

B: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 바라는 대로, 명하는 대로 천사를 이끌도록 높은 권능을 그에게 주는 것은 매우 합당한 일이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성사에 대해 말하여라!

 

B: 그래야 하지만 루시퍼가 허락하지 않는다. 난 말할 수 없다.

 

E: 말하여라!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원하시는 말을 어서 말하여라!!

 

B: 루시퍼가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입 다물고 있는 것이 나을 것 같구나!

 

E: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너에게 무엇을 말하라 하였느냐?

 

B: 우리는 성모가 말하는 것, 바라는 것을 듣는 일은 정말 싫다. 게다가 성모는 언제나 너무 많은 것을 원하고, 언제나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 성모는 언제나 위에 머물러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아래에 있을 것이니까. 제발 성모는 있는 곳에 계속 머무르라고 전해다오. 우리를 설득하고 지시를 내리기 위해 언제든 오는 것을 제발 멈추라 전해다오!

 

E: 하지만 이 세상에도 악마들이 활개 치며 다니지 않느냐?

 

B: 네 말이 맞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우리에게는 썩어빠진 열등한 곳이다. 성모는 우리를 설득하고 우리에게 지시하기 위해 계속 와서는 안 된다.

 

E: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지시를 받은 진실을, 우리에게 말해야 할 진실을 말하여라.

 

B: 그것(성사)은 우리에게 저주이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다. 저 위에 있는 성모가 바라는 것은 우리의 일도 아니고 우리의 영역도 아니다. 성모는 우리의 계획을 망치려 언제나 지상을 찾아온다.

 

E: 네가 말할 필요가 없는 말은 하지 말아라!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원하시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B: 성모는 언제나 이 교회만 생각한다. 내가 굳이 원하지도 않는 이 말을 큰소리로 하는 것은... 너희들은 결국 성수와 축복으로 우리에게 모든 말을 다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E: 우리가 성수와 축복을 사용할 것이라는 네 말이 옳다.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계속 말하여라!

 

B: 성모가 말하기를... 그것은 우리를 위해 준비한 마지막 빨대이다. 성모가 이제 그것을 원하는구나! 성모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무릎을 꿇고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를 세 번 바치고, ‘눈물의 묵주기도(Rosary of Tears)’를 바치라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말한다. 너희는 기도해서는 안 된다. 너희가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를 화나게 하므로 우리가 너희와 싸우게 될 것이다. 기도 같은 것은 하지 말고 자기 원하는 대로 살면 너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삶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한다.

 

B: 그리고 너희는 박해만 받을 것이다. 엄청난 불행만 겪게 될 것이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세 번 바치고, ‘눈물의 묵주기도’를 함께 바친다.)

 

B: 우리는 그것(‘눈물의 묵주기도’를 말한다) 없어도 쉽게 할 수 있다. 사실 “피의 눈물”이 “눈물”보다 낫겠지만, 그냥 “눈물”이라고만 말해도 된다.

 

E: “눈물과 피눈물을 위하여”라고 말하여야 하느냐?

 

B: 둘을 함께 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사제에게 돌아서서) 너는 거기서 발 좀 떼면 안 되겠니? 우리는 그 신성한 발과 더 이상의 장미를 원치 않는다! (1)

 

(1) 묵주기도를 말한다

 

 

거룩한 영혼 / 연옥 / 대사

 

E: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와 모든 성인의 이름으로 그리고 우리가 부르는 모든 수호천사의 이름으로 명한다!

 

B: 연옥 영혼도 기도를 바칠 수 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게 없으면, 그들은 기도를 바칠 수 있다. 그들은 또 교회를 위해 무언가를 조용히 기도할 수도 있다.(2) 그리고 너희가 이런 이유로 그들을 부른다면, 그들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한다. 그들은 지금 무엇이 위험에 처해 있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특히 더 높은 단계에 있는 영혼들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2) 베엘제불은 거룩한 영혼의 기도를 조롱하고 싶어 한다.

 

E: 그 말은 연옥의 영혼들이 우리를 위해,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를 원한다는 소리인가?

 

B: 연옥에도 많은 단계가 있는데, 우리가 있는 곳에서도 보이는 제일 낮은 단계에 있는 영혼들은 실제로 아무런 힘이 없다. 그들은 대부분 끔찍한 고통 속에 있다. 여기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영혼들은 지상에서 많은 죄를 지어 그들 중에는 자신이 죽어 지옥으로 떨어진 건지, 구원을 받아 연옥에 있는 건지조차 모르는 영혼들도 있다.(3) 우리는 지금도 맨 밑에 단계에 있는 연옥 영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수 있다. 그들은 이곳을 ‘밑바닥 호수’라고 부르고 있다.

 

(3) 연옥 영혼들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내린 심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가장 낮은 층의 연옥에서는 고통 속에 마음이 어두워지는 과정을 겪게 되면서 베엘제불의 이러한 말이 정당한 듯 보이게 한다. 하지만 베일제불이 즉시 이를 바로잡는다: “그들은 하느님이 이곳에 보내신 것에 완전히 복종하며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다.”

 

E: 그들은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B: 셀 수 없이 많은 기도와 희생을 통해서만....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 머무르게 될 것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만족하고 있다. 그들은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완전히 복종하며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다. 그곳은 지옥과 연옥의 경계라 할 수 있다.

 

E: 하지만 여전히 그곳은 연옥이 아니더냐?

 

B: 여전히 연옥이다. 그곳에서 특별히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마땅할 영혼들도 보인다. 그들은 그들을 위해 바쳐지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 덕분에 마지막 순간에 구원된 영혼들이다.(4)

 

(4) 다른 이들의 희생은 이들 구원받을 영혼에게 자유롭게 “예”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한다. 희생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우리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등의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정말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천국에 있는 이들은 말한다: 이 말은 유다가 이미 1976년 10월 31일에 말했었다. 연옥 영혼들이 지금 몹시 실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고통받든, 굶주리든 내버려 둬라! 우리의 일이다. 더 이상 그들을 위한 기도로 교회가 허락한 대사를 그들이 받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굶주리게 놔두어라! 우리는 지옥에서 더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네게 묻겠다. 모든 성인과 죽은 자의 날에는 아직 전대사인TOTIES-QUOTIES를 받을 수 있느냐?

 

B: 한 교황이 세운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단순하게 고쳐지거나 폐지되지 않는다. 전대사는 너희들이 헌 신발이 더럽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발가게에 되돌려 주듯이 간단하게 없앨 하찮은 대상이 애초에 아니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진실만을 말하라!

 

B: 우리는 정말 이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너희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고 할 때, 이 전대사는 매우 큰 선물이다. 전대사는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선물이며,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에게는 최고의 보물이다. 전대사는 엄청난 보물이다.(6)

 

(6) 이 보물 중에 연옥 영혼에게 유익한 6개의 거룩한 미사, 즉 우리 주 그리스도의 수난, 예수 그리스도, 구세주 이자 구원자와 관련되어 있는 미사에서 나오는 은총이 적용된 것이 전대사이다.

 

큰 선물을 누군가에게 주었을 때, 받은 이는 크게 기뻐하며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고, 그 선물로부터 어떤 이득을 계속 얻고 있다면, 준 사람이 “너에게 선물을 한 것은 실수였다. 넌 이미 충분히 놀았으니 이제 그 선물을 나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선물을 받은 자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안돼, 농담하지 마! 너는 나에게 준 선물을 내가 돌려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벌써 몇 년이 흘렀다. 네가 나에게 이 선물을 준 지 10년이 넘었다. 나는 이 선물을 계속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나를 법정에 데려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 선물을 주기 전에 미리 생각했어야지.”

 

대사도 마찬가지이다. 저 위에 있는 분들이 분명히 말한다. 한 교황이 세운 대사를 다른 교황이 간단히 그리고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예수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또는 “거룩하신 예수 성심이여, 당신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라는 기도 뒤에는 ‘100일’ 또는 ‘300일’ ‘7년’과 같은 조건이 달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 교황이 이런 대사를 삭제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이를 교황이 직접 그런 식으로 계획하고 명령한 것은 아니었다.(7) 그들이 하고자 했던 것은 대사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었다. “인간들은 더 이상 이런 대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300일, 7년 완전한 대사... 그것이 연옥에 있을 날 수에서 300일이 단축된다고 믿던가, 이 300일은 고대 관습으로부터 내려온 교회의 징벌에 대한 강론의 주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일수는 대죄를 속죄해야 하는 기간에 해당하며, 대죄를 범한 인간은 교회에 들어갈 수 없고 문밖에 기다려야 하는 기간이다. 그들이 했던 참회, 그들이 견뎌야 했던 고난이 대사가 의미하는 것이다.

 

(7) 사실 교회에서 더는 대사를 언급하지 않는다. 대사가 붙은 기도를 바치던 관행은 이제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 말을 덧붙여야겠다: 이 300일 또는 7년의 대사(8)는 모두를 위한 것이며, 죄인들이 교회의 보속 행위를 통해 겪어야 할 고난에 비하면 아주 적은 것이다. 하지만 이 대사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과 인간들에게 아주 값진 선물이다.

 

(8) 이 숫자는 세상의 시간을 가리키며, 우리는 이 숫자에 상응하는 ‘연옥의 시간’은 알지 못한다.

 

E: TOTIES – QUOTIES(5) (죽은 이를 위한 전대사)도 마찬가지이냐?

 

(5) 죽은 자를 위한 전대사인 TOTIES-QUOTIES는 모든 성인과 영혼의 날 이틀 동안 교회나 묘지를 방문하여 죽은 자를 위해 특정 기도를 바치면 주어진다.

 

B: 모든 대사가 가치를 산정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선물이다. 한 교황이 묶은 것을 다른 교황이 그것을 풀려는 분명한 의지를 드러내지 않는 한 풀 수 없다.(9) 그(바오로 6세)가 이일에 관여하였지만, 교황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이일에 가담하였다. 오히려 그는 다른 사람들만큼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더 이상 기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일이 진행되었고, 조작되었다.

 

(9) 1975년 2월에 발간된 새로운 미사 전례에 대한 소책자와 팸플릿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성하께서는 여전히 유효하게 남아 있는 성 비오 5세의 전례를 제한하려는 어떠한 의도도 표시하지 않았고, 이 비오 5세의 미사 전례는 원하는 어떤 성직자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순종의 이름으로 이를 금지하는 것은 배임이며 양심의 배반이다. 왜곡된 주교 권위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신성한 의무의 결정적인 경우다. 이것이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E: 성 비오 5세의 미사 전례도 그런 식으로 진행된 것이냐?

 

B: 제발! 성 비오 5세의 미사 전례로 돌아가지 말자.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B: 젠장! 어떻게 우리가 진실만을 말해야 되는 것이냐! 정말 말하고 싶지 않은 쓸데없는 이야기이다. 너희는 어째서 진실이라든지 그 비슷한 말들만 가져오는 것이냐?

 

E: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지극히 복되신 동성 성모마리아께서 그러셨듯 진실만을 원한다. 예수와 성모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만을, 진실이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진실만을 말하여라!

 

 

성사

 

B: 성사.... 우리가 정말 말하고 싶지 않은 주제이다. 우리가 말하고 싶지 않은 주제이다. 상황은 너희가 보는 그대로이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원하시는 말을 우리에게 하여라!

 

B: 지금 우리가 성사에 대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상황은 이제 굳어졌고 너희가 그것을 바꾸기 위해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E: 그 상황은 우리가 정한다!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냐?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이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진실만을 말하여라!

 

B: 너희 모두 집에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E: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따르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복되신 성모마리아께서 성사에 관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여라!

 

 

고해 성사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진실을 말하여라!

 

B: 고해 성사... 정말 대단한 성사이다! 그 합동 고해와 참회 예절(판공성사)은 교황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이런 대체 고해가 참된 고해 성사를 대신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이런 대체 고해는 우리(악마)가 만들어 낸 것이다. 참된 고해가 없으면 성사를 받지 않는다면, 인간들은 도덕적 양심을 모두 잊어버릴 것이다. 그 결과 인간들은 훨씬 많은 죄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생각한다: “고해소에서 무릎 꿇고 수단을 입은 나이 든 사제와 얼굴을 마주할 필요도 없이, 개인적 비밀 얘기까지 모두 말하지 않고 고해 성사를 볼 수 있다면, 삶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작은 실수 정도는 쉽게 용납되고, 기혼자의 뺨에 한두 번의 애정 담긴 키스 정도는 훨씬 쉬워질 것이다. 더 이상 ‘까마귀’에게 내 죄를 모두 말할 의무는 없어진 것이다.” 저 위의 분들은 ‘까마귀’라고 사제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우리에게 그들은 짜증 나는 쓰레기이자 ‘까마귀’이다.

 

사람들은 또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겸손하게 무릎 꿇고,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또 똑같은 죄를 되풀이했습니다. 나는 이 여인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한 여인과도 살고 있습니다’라는 이런 비밀까지 모두 고백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이렇게 단순하다. “오늘은 이걸 할 수 있겠다.” “사제들도 합동 참회 예절(판공성사)에 참석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그동안 왜 우리에게 큰 보속과 큰 겸손이 따로 부과되었을까? 요즘은 우리도 쉽게 죄를 짓는 경향이 있어. 앞줄에 있든, 뒷줄에 있든 마음대로 무릎을 꿇고 합동 참회 예절(판공성사)에서 각자의 죄의 몫만큼 용서를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신부가 죄의 사함을 말할 것이기에 우리는 모든 죄를 씻을 것이다.”

 

사제는 이제 합동 참회 예절(판공성사)이 고해 성사를 대신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사제들은 합동 참회 예절에서 사람들이 진실한 고백을 하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할 것이라고 믿는다. “Beten – Besinnen –... ”과 같은 5개인가 6개의 “B”가 지금도 행해진다고 믿는다. 아!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E: “Beten - besinnen - bereuen - bekennen - buszen” (기도 – 양심의 성찰 - 뉘우침 - 고해 - 보속 (또는 희생)

 

B: (“Buszen”) 보속: 신자는 보속을 수행해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의 보속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많은 대사를 사용하여 이를 수행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 교황이 인정한 300일이라든가 7년 그 외의 여러 대사를 적용받는다. 이 대사들은 현재도 유효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잘 모른다. 이 소중한 보물은 제단 높은 곳에서 다시 선포되어야 한다.

 

E: 전능하신 성부의 이름으로 명한다.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원하시는 진실을 계속 말하여라!

 

B: 성모는 (위를 가리킨다) 이런 합동 참회 예절(판공성사)은 고해 성사를 절대 대신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진작에 말했어야 했는데. 절대로 고해 성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진실하고, 완전하고, 진심의 고해 성사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야 한다. 이 또한 제단위 높은 곳에서 다시 선포되어야 한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원하시는 진실을 너는 모두 말하여야 한다! 고해 성사에 대해 더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여라!

 

B: 인간들은 고해 성사를 보기 전에 훨씬 더 잘 준비하여야 한다. 준비하는데 꼬박 한 시간을 쓴다 해도 많다고 할 수 없다. 고해 성사에 관한 것이라면 우리 악마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인간들을 유혹한다. 우리는 인간들이 진실한 뉘우침을 하지 않도록 애쓴다.

 

만약 우리가 성공하지 못하여 한 인간이 진정한 회개를 한다면, 우리는 세 명의 악마를 더 데려와서 그가 회개하고자 하는 의욕을 없애려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회개하는 자들이 자신의 죄를 완벽하게 인지하지 못하도록 살핀다. 이를 위해 우리는 특정한 악마를 배치한다.

 

이 모든 단계를 거치고 회개한 사람이 성령께 잘 기도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신의 양심을 성찰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면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우리는 통회의 단계에서 그가 제대로 통회하지 못하도록 하며, 최대한 작은 은총을 받도록 애쓴다. 인간이 자신의 대죄에 대해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통회한다면, 그는 특별한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겸손의 행위이며, 겸손이 있는 곳에는 겸손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 특별한 은총이 오게 된다.

 

그 인간이 우리에게 벗어나 막바지에 이르러 굳은 결심을 하고 통회를 하고 고해소에 들어가... 자신의 죄를 모두 고하려 할 때, 우리는 마지막 악마를 데려와 그에게 큰 두려움을 가지게 하여, 자그마한 죄악이라도 고백하기 싫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대죄의 경우 고백하지 않으면 훨씬 더 치명적이다. 만약 중대한 죄악을 범하였음에도 침묵하면, 그는 절대로 은총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작은 죄일지라도 알면서 고백하지 않으면 그가 받을 은총은 작아진다. 또 그런 고해를 한다면 삶을 바꾸거나 고치려는 경향도 줄어든다.

 

우리가 열심인 사람들과 함께 이 단계에 이르렀을 때- 특히 열심하고 매우 경건한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리고 참회자가 고해소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영혼과 양심에 따라 사제에게 진심으로 모든 것을 고해할 때, 그가 ‘하느님께서 아시는 무엇’이라는 부분을 덧붙이면 훨씬 좋은 고해가 된다.

 

‘하느님께서 아시는 무엇’이라는 부분을 덧붙이는 것은 그런 일들이 죄인지 확실치 않을 때라도 그것이 자신의 죄인 양 자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가 그런 일들을 사제에게 고백하면, 실로 많은 겸손이 필요한 행위이며, 그렇게 하면 더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러한 겸손과 열린 마음을 통해 그들은 더 많은 은총을 얻는다. (한심하다는 듯 투덜거린다) 이런 고해 성사는 훌륭하다. 고해 성사라는 이름에 걸맞다. 그때에 참회자는 거룩하고 (우리 악마들에게) 치명적인 용서를 받는다. EGO TE ABSOLVO (너의 죄를 사하노라)... 아! 우리가 얼마나 듣기 싫어하는 말인가!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 말을 증오한다!

 

(차분한 목소리로)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개인의 죄의 사함을 그렇게 두려워 하지 않는다. 이제 합동 참회 예절(판공성사)이 고해 성사를 대체했고, 고해 성사는 이제 예전만큼 일반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다. 아!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이야!

 

하늘의 성모는 (위를 가리킨다) 모든 제단 가장 높은 곳에서 진정한 고해 성사를 되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선포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합동 참회 예절(판공성사)은 고해 성사가 아니다. 함동 참회 예절은 대규모의 시위인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용서받는 듯한 착각을 주는 일종의 무대 장치이다.

 

(그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우리는 말한다)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님의 성체를 영접하라. 너희의 영혼은 평화롭다. 너는 평화롭다.’

 

이는 하늘에 있는 분들에게는 끔찍한 손실이다. 이런 행위는 인간들에게 큰 해악을 가져온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연히 경건한 마음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우리는 더 많이 기뻐한다.

 

 

 

1977. 4. 25

 

이 내용은 성체성사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여기에 넣었다.

 

고해 성사 없이는 첫 영성체도 없다

 

E: 베엘제불아 예수의 이름으로 네게 명한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진실만을 말하여라!

 

B: 성모는(위를 가리킨다) 거룩한 성체성사, 특히 첫영성체에 관해, 절대적으로 개탄스러운 사실에 관해 나에게 말하도록 지시하셨다. 어린아이가 첫 영성체를 받기 전에 고해 성사를 하지 않으면 상상 이상으로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슬픈 표정으로 한숨을 짓는다) 이처럼 위대하고 가치 있는 일을 치르기 전에 고해 성사를 보아야 한다... 이 말을 하도록 지시받았다!

 

E: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이 아닌 것은 입 밖으로 꺼내지 말고 진실만을 말하여라! 지극히 복된 제단 위 성사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만을 말하여라!

 

B: 이처럼 대단한 성사를 앞두고, 특히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영혼 속에 들어와 하늘과 교감할 수 있는 결합을 세우는 이 거룩한 성사를 앞두고 고해 성사를 보는 것은 필수적이다. 유효하고 완전하며, 온전한 고백 성사가 필수불가결하다. (고통스러운 듯 깊게 숨을 쉰다) 고해 성사를 보지 않고 성체를 모시게 되면, 성찬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지고, 천국에 대한 믿음도 사라진다. (단어가 잘 나오지 않는다. 숨을 잘 못 쉬는 것 같다)

 

E: 베엘제불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계속 말하여라!

 

B: ... 그리고 모든 거룩한 것에 대한 신앙도 사라지게 된다. 모든 경건함과 존경심은 거의 완전히 사라진다. 성모께서 말하길, 훨씬 한탄스러운 것은 이런 잘못된 첫 영성체는 성체를 받는 아이에게 제대 위 성사와 관련하여,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거룩한 성체성사와 관련하여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그들이 원하는 만큼은 허물과 죄를 지어도 성체성사를 받을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질 것이며, 그것이 허용될 것이기에 성체성사를 거리낌 없이 받게 될 것이다.

 

E: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이 아닌 것은 빼고 진실만을 말하여라!

 

B: 성체성사 전 고해 성사가 빠진다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요소가 빠진 것이며, 이는 대개의 경우 결코 회복될 수 없는 피해가 될 것이다. (고통스럽게 숨을 쉰다)

 

E: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네가 해야 할 말을 모두 말하였느냐? 네가 해야 할 말만, 진실만을 말하여라!

 

B: 성모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어린아이가 고해 성사를 보기도 전에... 또 아이가 죄와 그에 대한 용서, 죄의 사함에 관해 이해하지 못하는 단계에서 사제가 그런 아이에게 첫영성체를 줄 정도로 분별력이 없다면 그 첫영성체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저 아래에 있는(아래를 가리킨다) 우리들 조차 인정하는 것이며, 아이에게는 은총을 잃게 하는 짓이다.

 

이 아이들은 아직 허물이 없고 순결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너희가 믿는 것보다 더 많은 허물과 죄가 있다. 저 아래의 우리에게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어린 영혼들이 있다. (신음한다)

 

E: 베엘제불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어린아이들에 관해 더 할 말이 남았으면 계속하여라. 거짓이면 말하지 말고 진실만을 말하여라! 베엘제불아,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계속 말하여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룩한 십자가의 이름으로, 보배로운 성혈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지시하신 모든 것을 말하여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계속 말하여라!

 

B: 성모께서 말씀하신다. 사제들에 의해 충분한 준비가 되지 못한 아이들, 고해 성사에 대해 가르침을 받지 못한 모든 아이들은 하느님의 사랑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예를 들면 다른 교구에라도 옮겨야 한다.

 

그조차 여의치 않으면 부모가 직접 교리문답을 손에 들고 아이가 첫영성체같이 거룩한 선물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아이와 함께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결코 좋은 길로 들어설 수 없다. 나중에 아이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흥! 나는 고해 성사 없이도 성체를 받았지만 참 좋기만 하던데.” 이때부터 정말 많은 아이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이제는 더 말하고 싶지 않다!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

 

E: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너에게 지시하신 모든 말을, 진실을 말하여라!

 

B: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젊은 사람들은 대죄를 지은 상태에서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생각 없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영성체를 받게 되는 단계에까지 나아간다. (슬픈 듯 한숨을 쉰다)

 

E: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우리에게 들려주려 한 모든 말을 다 하여라!

 

B: 그렇기에 성모는 모든 부모와 교리교사, 교사들에게 합당하고, 값지고, 완전한 고해 성사를 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성체를 받으러 나가서는 안 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라고 요청하시는 것이다. (고통스럽게 숨을 쉰다) 만일 너희가 그리 가르치지 않았다면, 성체성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물론 많은 은총이 있는 성체성사지만, 고해 성사를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성체를 영하는 경우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대로 합당하고 올바른 고해 성사를 보고 난 후 그리스도의 성체를 영접하면, 고해 성사 없이 성체를 영할 때보다 훨씬 많은 은총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B: 각 고해 성사에는 너희가 영원한 존재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즉, 천국에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이 주어진다. (한숨을 쉬며 위를 가리킨다)

 

E: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진실이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오직 진실만 말하여라! 베엘제불아,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너에게 말하라 명하신 말을 빠짐없이 말하여라!

 

B: 성모(위를 가리킨다)는 그리스도의 성체가 합당하지 않게 영해져, 거룩한 성체가 어떤 것인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마치 한 조각의 떡, 또는 음식물처럼 입속에 넣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큰 고통과 큰 슬픔을 겪는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고해 성사를 보지도 않은 체, 성체성사에 대한 충분한 준비도 없이 성체를 영접하는 것을 훨씬 더 고통스러워하신다. 그래, 맞어... (말하기 힘들어 보인다) 저들은 좋은 것을... 가지지 못 한다...

 

E: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계속 말하여라!

 

B: 제대로 준비조차 없이 성체를 영접하고 있다. 고해 성사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첫영성체를 받는 아이 중 많은 아이들이 신덕송, 망덕송, 애덕송을 바쳐야 한다는 것조차 모른다. 그들은 단순하게 말한다...

 

E: 예수의 이름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계속 말하여라!

 

B: 그들은 간단하게 말한다: “자 이제 성체를 모시러 갑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아이를 사랑하시고, 당신 품에 품으십니다. 여러분은 아직 순수합니다. 예수께서는 여러분 같은 아이들을 사랑하십니다. 주님께 나아가서 마음을 열고 원하는 만큼 몇 번이라도 자주 찾으십시오. 그렇게 하면 예수께서는 너무나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께서 모든 아이들을 기뻐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한숨을 쉰다)

 

E: 진실을 말하여라. 베엘제불아,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이 아닌 것은 말하지 말아라!

 

B: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많은 죄를 지은 마음속에, 그중 일부는 대죄를 지은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시는 것이 혐오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제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 더는 안돼!

 

E: 예수의 이름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만을 말하여라.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기를 원하시는 진실만을 말하여라! 베엘제불아, 계속 진실을 말하여라!

 

B: 성모께서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려 한다. 성모께서는 다른 모든 것보다도 먼저 성체를 받아 모실 준비가 지금보다 더 진지하고 완전하고 합당해야 한다고 말하신다. 우리가 이미 말했듯이, 무엇보다도 고해 성사가 절대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신중하게 준비시켜야 하며, 더욱이 매일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여야 한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질문을 하고 아이가 합당한 고해 성사를 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야 한다. 부모들이 사제를 찾아가 이런 교육을 하지 않은 것에 책망하거나 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 부모들이 (사제에게 이렇게 따질) 절대적인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할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스스로 마음을 평안히 하며 아이를 스스로 가르쳐, 첫 번째 고해 성사를 잘 볼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도시에는 여러 교회가 있다. 그리고 만약 시골에 산다면, 부모들은 사제가 이런 준비를 방해한다면, 아이를 다른 곳으로 데려갈 수 있고 데려가야 한다. 아이의 영혼을 깨끗이 준비한다면, 아이는 더 큰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아이가 첫영성체를 받을 때, 순수한 마음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그리스도께 합당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남은 생애 동안 엄청난 은총을 잃어버릴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운다) 다시 말해야 했다. 꼭 다시 말해야 했다! 너희가 준비하는 싸구려 볼품없는 책자에 이 내용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신중한 판단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B: 많은 성실한 신자들은 이런 것들이 교황에게서 나온 것으로 믿으며, 그가 거짓 교황인 줄은 모르고 있다. 그들은 또 손으로 성체성사를 받는 것이 죄악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눈에 띄거나 주목을 받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들은 책 “경고...”에서 말한 것이나, 선택받은 영혼들을 통해 이전부터 말해 온 것, 즉 성체를 손으로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심각한 대죄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제가 그런 식으로 일을 한다고 그것이 신자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 많은 교회에서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입으로 영성체하기를 요구하면 사제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권위가 떨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경우 신자가 손으로 영성체를 받게 되더라도 신자들의 죄는 크지 않다. 하늘의 그분께서는 각각의 경우 개별적으로 판단한다. 그가 이렇듯 손으로 성체를 받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상황에서 손으로 영성체를 받은 것 때문에 지옥에 간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이 사람들은 이런 전례의 변화가 교황에게서 나왔다고 믿기에 아무 의심도 없이 순종하는 것이다. 그들은 거짓 교황이 있다는 것과 교황에게 충성하지 않는 추기경들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순종의 깃발 아래 모여 나아갈 뿐이다. 만약 교인들이 진정으로 하늘의 선택을 받은 영혼이나 사제로부터 이 책자를 알게 되어 얻게 된다면 저들에게 아무런 권한도 없으며 해서는 안 될 일을 벌였다는 경고를 듣게 될 것이다. 이 경고는 정말로 하늘에서 오는 내부의 빛이다.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늘의 경고를 부정하면서 스스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입으로 영성체를 영하든 손으로 영성체를 영하든 모두 똑같은 일이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상황은 반대로 바뀐다. 그때 손으로 영성체를 영하는 행위는 당연히 죄악이 된다. 이점을 너희에게 말하고 싶었다. 언제나 개별적인 상황이 다름을 알아라.

 

같은 논리가 미사성제에도 적용된다. 성 비오 5세의 미사 전례는 하늘에 계신 분들이 선호하는 미사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제가 이렇게 말함으로써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거나 문제를 일으킬 권리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성 비오 5세의 미사 전례가 아니니 성당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집에서 혼자 미사를 바치십시오.”

 

이런 태도는 좋지 않다.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그런 사제는 선한 목자가 아니다. 이미 전에 말한 적이 있다. 미사에 가지 않는 것은 엄청난 은총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선한 마음을 갖고 주교에 대한 순종으로 미사를 봉헌한다면, 새로운 전례를 따르는 미사일지라도 많은 은총을 받을 수 있다. 비록 새 전례 미사가 비오 5세 전례 미사만큼 풍족한 은총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떤 은총은 똑같이 받게 된다. 새로운 전례의 미사라고 집에서 자신만의 미사 예절을 행하면 된다고 믿으며, 그런 자신이 남들보다 훨씬 선한 신앙을 가지고 우월하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절대로 좋지 않다.

 

가끔 모더니스트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떠드는 ‘전통주의자’도 있다. 하늘에 계신 분들은 그런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런 생각은 성신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늘에서는 바리새인의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며, 아무도 그런 생각을 가질 권리가 없다. 성모께서 나에게 세상에 교만으로 마음을 가득 채운 ‘전통주의자’도 많이 있다고 말하라 하신다. 이제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

 

 

전통주의자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B: 성직자뿐 아니라 평신도 중에도 많은 ‘전통주의자’가 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도 독선으로 가득 찬 일종의 새로운 바리사이파 같은 ‘전통주의자’들도 있다. 그들은 때때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선한 자들이고, 우리는 의로운 자들이다. 나머지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우리는 천국에 갈 것이다.” 이래서는 이단과 무엇이 다르냐. 이단들도 똑같은 말을 한다. 하늘에 계신 분들은 이런 짓거리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을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자들을 하늘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 내용 중에 미사와 교회에 관한 내용 중에 특별히 비오 5세의 미사 전례에 대하여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전통주의자’들이 자기들만이 적절한 방법으로, 그리고 필요한 모든 능력을 지니고 건전한 판단을 내리는 유일한 사람인 것처럼 여기며 자신을 스스로 현대주의자들 위에 높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책이 그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오늘날 존재하는 교회의 모든 남용 행위를 폭로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내 말을 끝맺음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꼭 말해야 한다. “그런 미사에 참여하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이 낫다”라는 말을 하는 사제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사제가 더는 미사 중 봉헌의 기도문을 믿지 않고, 바쳐야 할 봉헌의 기도도 바치지 않을 정도로 미사의 질이 떨어진다면, 사제가 더는 성체를 축성할 의지조차 갖고 있지 않다면, 그 때에 성체는 거룩한 변화를 하지 않는다. 이 말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모든 신자는 여전히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여야 한다.

 

나는 또 이것은 말해야겠다.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총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은총은 아직 남아 있다. 특히 신심이 깊은 선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헌신으로 가득한 미사와 성찬식에 나아갈 때, 천국은 “사제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으니 이곳에 줄 은총은 없다!”라고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이런 곳이라도 특정한 은총을 받는다.

 

E: 이 신자들은 주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B: 만약 신자들이 성 비오 5세 전례로 봉헌하는 미사를 참례할 수 있다면, 하늘은 그쪽을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신자들은 새로운 전례의 미사에 참례해야 한다. 라틴어로 된 성 비오 5세의 미사 전례가 가장 좋고, 다음은 각 나라의 말로 번역된 트리엔트 미사 전례가 좋다. 트리엔트 전례 미사는 모든 전례문을 다 바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다음으로 새로운 전례로 바치는 미사이다. 하지만 신자들이 이러한 진실을 알지 못하지만, 선의를 가지고 미사에 참례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의지로 주 그리스도께 대한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 된다.

반면에 신자들이 1킬로미터만 가면 성 비오 5세 전례로 바쳐지는 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음! 나한테는 너무 멀어. 거기 가지 않을 거야!”라고 한다면, 성 비오 5세의 전례로 마쳐지는 미사가 훨씬 좋음을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들은 태만으로 너무도 큰 것을 잃게 되었다. 그들은 1킬로미터를 더 갔어야 했다. 우리에게도 그 큰 은총을 준다면 우리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아느냐? (울먹이며 말한다) 아! 우리에게도 그런 기회가 있다면 우리는 지구 끝까지 달려갈 텐데!

이 말이 다른 미사들도 마찬가지로 훌륭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분이 선호하는 미사의 순서를 충분히 설명하였다.

 

우리는 많은 사제들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들을 밝히려 한다. ‘새로운 전례의 미사에 참례해서는 안 된다든가 그 미사 전례는 악마에게서 온 것이다’ 이런 말을 사람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런 행위는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내던져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그것은 정반대의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다. 그런 비난은 결코 이웃사랑이라는 망토 안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웃을 사랑하는 ‘현대주의자’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전통주의자’보다 낫다. 우리는 성찬식과 다른 주제들에 대해 말해야 하는 의무를 다했다. 덧붙이자면, 바리새이 같은 위선적 ‘전통주의자’들이 많이 있다. 이런 면 때문에 현대주의자들은 모든 ‘전통주의자’들을 하나로 묶어, 그들을 광신적이며 반항적인 광신자로 여겨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들과 싸우려 할 것이다. 이제 그만 말할 것이다. (투덜거린다)

 

E: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B: 이런 식이다. 하늘의 그분들은 비록 인간들이 큰 잘못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모든 자녀를 사랑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순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주교와 사제들의 뜻을 따른다면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사람들이 선한 신앙의 뜻으로 행한다면, 비록 지금의 상황이 매우 힘들고, 무섭고, 두려울지라도 엄한 책임을 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제와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

 

E: 사제와 관계있는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에 관한 이야기는 무엇이더냐?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명한다!

 

B: “사제와 관계있는 손으로 받는 성체성사?” 무슨 뜻이냐?

 

E: 신자가 요구하면 사제는 손에 성체를 주어도 되느냐?

 

B: 어떤 상황이라도 절대로 안 된다! 너희는 사제가 신자들의 꼭두각시라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사제는 지시할 권한이 있다! 이것을 추가해서 말해야겠다. 사제들이 하늘의 그분들이 원하는 대로 입에 영성체를 주려 하면 아마도 처음에는 큰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우리(악마)가 불에 기름을 끼얹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들은 미지근한 방식인 손으로 영성체를 주는 교회보다 그들의 교회에 더 많은 신심이 깊은 신자들을 갖게 될 것이다.

 

E: 그러면 만일 사제인 내가 손으로 영성체를 주는 다른 사제를 도와 성체를 나눠줘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B: 그 때에 너희는...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이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진실만을 말하여라!

 

B: 그 때에 너희는 도와줄 사제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신부님, 저는 입으로 하는 영성체가 옳다고 믿습니다. 저는 어떤 상황이든 영성체를 손에 준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이 점을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너희 사제들은 입으로 영성체를 주는 것이 기본적인 의무이다. 이렇게 해야 더 많은 축복과 은총, 그리고 성체에 대한 더 많은 공경심이 생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너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전혀 반대되는 효과도 생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은 너희에게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다. 너희에게 대들고 괴롭히는 이들은 속으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마 신부가 옳을 거야. 그는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고, 이런 장애물 정도는 헤치고 나갈 거야. 신부는 자기의 신념대로 행동하고 있어. 그의 일을 하는 방식이 아마도 옳은 방법일 거야.” 하늘에 있는 그분들은 천국을 사랑하는 사제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입으로 영성체를 영하는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보지 않고 믿는 자는 행복하다.” 그렇게 하면 지금처럼 성체를 모독하는 끔찍한 일은 더는 없었을 것이다.

 

E: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명한다. 사제라면 가장 작게 떨어진 성체 조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

 

B: 가장 좋은 방법은 성찬식 후 사제가 손에 물을 붓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성찬식을 할 때 물 한 컵을 따라놓고 손을 물에 담근 다음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셔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성체에 대한 공경심을 더 높게 가지는 것이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만 말하고 싶다!

 

 

세례성사와 대부모의 책임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바라시는 오직 진실만을 말하여라!

 

B: 세례, 세례성사

 

E: 세례성사?

 

B: 성모께서 시키신다. 세례성사... 알겠느냐? 갑자기 성모가 지시하신다. 세례성사? 하지만 그 다음은... 성모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지시를 내린다! 성모를 일곱 층 구름 위로 올렸으면 좋겠다. 우리는 정말 지겹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려는 오직 진실만을 말하여라!

 

B: 많은 성직자가 세례성사를 제대로 거행하지 않고 있다. 악한 영혼들에 대한 엄한 명령을 수반하는 완전한 의식은 더는 원래대로 치러지지 않고 있다. 종종 “나는 끊어버립니다....”는 말을 더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다.

 

E: “악마와 그의 모든 악행과 그의 모든 화려함.”

 

B: 그 말조차 이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동의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큰 행운이다. 그 말을 끊은 것은 세례를 받는 자로서는 개탄스러운 일이다. 오늘날에 세례성사가 제대로 행해지고 있지 않기에 우리가 많은 영혼을 소유하게 되었다. 우리는 말하고 싶지 않다! 말하면 안 된다! 아, 우리를 짓밟는구나!

 

E: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명한다!

 

B: 성모는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많은 일이 그래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개탄스러운 이유이다. 대부모는 세례를 받는 어린아이를 안고 아기를 대신하여 말하여야 한다. “나는 끊어버립니다. 등등..” 대부모는 아이를 대신하여 이를 말해야 한다. 대부모도 부모와 마찬가지로 일생 동안 아이가 신의 자녀로 남는 것을 도우며, 아이가 길에서 벗어나면 좋은 길로 인도하여야 하는 중요하고 엄숙하고, 그리고 훌륭한 의무를 지게 된다.

 

이런 의무에 관해 생각하는 대신에 안고 있는 아기의 아름다움에만 정신을 빼앗긴다. 머리에 씌운 것은 무엇이지? 어떤 쿠션이 되어 있는지, 수놓아져 있는지, 사제가 세례당을 아름답게 꾸며놨는지, 세례반 외에 다른 것은 없는지, 대모는 새로운 드레스를 입었는지, 평소에 입던 옷을 입었는지, 대부의 옷차림은 어떤지 같은 것에만 관심을 둔다. 그들은 더는 그들이 지게 될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이마를 따라 흐르는 성수만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볼 뿐이다. 이때 다른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이를 일반화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세례를 진정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전 대부분의 대부, 대모는 자신이 할 일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세례 하루나 이틀 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대부모들은 항상 시간을 정하여 무릎을 꿇고 대자녀를 위해 기도를 바쳤다. 그들은 자신의 역할이 지는 중대한 책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대자녀를 위해 계속 기도하였다. 그리고 자주 필요하다면 대자녀를 위해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죽음이 자신을 데려갈 때까지 이 인간적 삶에 집중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였다.

 

그들은 대자녀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어떻게 대자녀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지 항상 기도를 통해 답을 구하였다. 그리고 대자녀가 선한 길에서 벗어났을 때 그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자문하곤 하였다. 지금은 이런 대부모의 마음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금은 아무래도 다 좋다. 종종 대부모 자신이 좋은 길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다. 지금 그들은 이렇게 자문한다. “내 대자녀는 어떤 배우자를 선택했을까? 배우자와 행복할까?” 이제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B: “대자녀의 배우자는 결혼지참금을 두둑히 챙겨왔을까? 잘 어울리는 커플일까? 둘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면 예쁘겠지? 좋은 인상을 주게 옷을 깔끔하게 입으려나? 좋은 직업을 가졌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을 가졌나?” 결론은 이 대부모는 멋진 대자녀를 원한다는 것이다. 누더기를 입고 돌아다니는 하찮은 아이가 아니라. 아! 이제, 그만! 내가 이런 말까지 하게 만들다니. 우리를 너무 짓누르는구나!

 

 

성사 집전에서 전례의 완전성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더 말해다오: 사제들이 성사를 집전할 때 옛 전례를 사용해도 되느냐? 아니면 새로운 전례를 사용하여야 하느냐? 사용할 권리가 있느냐? 거짓은 말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여라!

 

B: 간략하게 줄인 것이 아닌 완전한 옛 전례를 사용하여야 한다. 새로운 전례는 우리(아래를 바라본다)와 프리메이슨이 손을 잡고 만들어 낸 것이다. 프리메이슨은 추기경들을 조종하는 데 성공하였고 때때로 상황을 빨리 깨닫지 못하는 교황까지도 조종하는데 성공하였다. 바뀐 모든 성사에는 배신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우리 계획의 결과물이다. 병자성사까지 포함하여 말이다.

 

 

병자성사

 

B: “하느님께서 청각으로 지은 모든 죄를 사해주시기를 빕니다!”라는 기도가 있었다. 이 기도를 바치는 동안 다섯 개의 감각기관에 성유로 기름 부어지는 것을 우리는 원치 않았다. 그전에는 귀와 눈, 입, 코, 손에 특별한 주의가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더는 원치 않았다. 중병으로 죽어가는 이에게 너무 많은 은총이 베풀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했다. 만약 우리가... 이것은 정말 말하고 싶지가 않구나.

 

E: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이름과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B: 우리는 생각했다. 만약 우리가 로마의 추기경들을 움직여 손이나 이마에만 성유를 바르거나, 더는 성유를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많은 승리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제가 겉으로만 일을 하면 할수록, 죽어가는 사람들이 받는 은총은 더욱 적어질 것이다. 그리되면 아마도 우리는 무덤 가장자리에서 그의 옷자락이라도 잡으면 쉽게 끌어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였고, 이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즉 내 말은 우리는 이 일의 실현을 위해 프리메이슨과 공모하였다는 말이다.

 

1) 악마 베엘제불이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프리메이슨과 협력한 것에 대해 말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이다.

 

나는 저 위에서 내려오는 ‘작은 축복’이 남았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아직 ‘작은 축복’이 남았다. 하지만 하늘에 있는 분들에게는 이 성사들이 제대로 치러졌을 때보다 훨씬 큰 손실이 있는 것이다.

 

지금 다시 반복하여 말할 필요가 있다: 다섯 개의 감각기관에 완전하고 빠짐없이 기름 부음이 있어야 한다. 가족들은 침대 주위에 무릎을 꿇고 사제를 위해 모든 것을 빠짐없이 준비하여야 한다. 물, 기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십자가, 성수, 그리고 다섯 개의 작은 솜뭉치를 준비하여야 한다.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그를 방향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혼미하게 만들어 더는 통회할 수 없는 단계까지 끌고 갈 힘과 동력을 얻지 못한다. 이런 성사는 은총의 상태에 있지 않은 사람의 경우 특히 가치가 있다. 그리고 죽어가는 이가 다섯 감각기관에 축복을 받았다면: “네가 눈으로 범한 죄” 또는 “귀로 지은 죄” 또는 “네 입으로 범한 죄” 등 몸의 각 기관의 이름을 부르고 기름을 바르면 죽어가는 사람에게 훨씬 더 큰 은총이 깃들 것이다. 심지어 대죄의 상태에 있는 사람도 이 성사를 통해 구원받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말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원하시는 모든 말을 하여야 한다. 오직 진실만을 말하여라!

 

2) 구마 사제에게 바알제불은 (1977년 11월 7일): “성수를 너무 많이 뿌려대지 말아라. 비가 왔다고 생각하겠구나. 우리가 이 쓰레기를 피하려 우산을 들고 와야 하겠느냐? 그만 뿌려대거라!”하였다. 악마는 그 전에는 구마 의식 중에 성수는 그들을 내빼게 만든다고 말하였다.

 

3) 정확한 기도문의 명칭은 “미각과 말의 힘을 통해”이다. (평신도 매일 미사 기도서와 전례. 1962년)

 

4) 성사 집전을 위한 의식에서(미사 전례처럼 모든 부분에서) 모든 말과 몸짓, 그리고 각각의 약속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정된 만큼... 그 자체의 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작은 부분이라도 바꾸는 행위는 받을 은총을 그만큼 줄이는 것이다.

 

 

견진성사

 

B: 그리고 견진.... 이것은 또 다른 특별한 분야이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E: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명한다. 하늘이 들려주고자 하는 모든 말을 하여라. 진실만을 말하여라. 너는 말해야 한다!

 

B: 이 말을 해야 할 의무가 생긴 것은 우리가 바라던 것이다! 저 노인네(루시퍼)가 또다시 불같이 화를 낼 것이다. 루시퍼가 “너희는 지렁이다- 완전히 어리석은... 입 좀 닥칠 수 없느냐?”라면서 주위를 춤추며 돌아다니려 하고 있다. 하지만 위대한 부인(위를 가리킨다)은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 성모가 우리를 강요한다. 저 노인네는 당연히 이를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흥분하여 날뛰고 있다. 그가 우리를 괴롭힌다.

 

E: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B: (구마 사제 쪽으로 돌아서며) 우리는 너희가 들고 있는 그 십자가, 햇볕이 비치는 날이나 다른 모든 날씨에도 빛나는 광채를 뿜는 묵주에 달린 그 큰 십자가의 광채 때문에 너희를 똑바로 볼 수가 없다. 우리는 너희 중 한 사람이 이 왕관(묵주)의 끝에 매달려 있는 빛나는 십자가가 보이는 수단을 입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우리는 그런 물건이 정말 싫다. 증오한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B: 아! 견진! 견진성사! 빌어먹을 견진성사. 이것도 하나의 특별한 분야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구나!

 

E: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말 말하여라.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모든 말 그리고 우리에게 시급한 말을 하여라!

 

B: 너희는 “오소서 성신이여,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를 비추소서, 우리를 강하게 만드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려면 너희는 먼저 무릎을 꿇어야 한다. 너희가 하지 않으면 우리도 견진성사를 말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너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신께 찬미가를 바치는 것이다. 저위의 위대한 부인은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말씀하신다.

 

 

(모두 함께 찬미가를 부른다)

 

E: 오소서 성신이여, 우리를 비추소서,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이끌어 주소서; 내 영혼에 당신의 지혜를 전해 주소서.

 

B: 또 성모께서는 성신께 영광을 바치며 묵주 1단을 바칠 것을 원하신다. 더 많은 계시가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더 많은 계시가, 우리는 전혀 말하고 싶지 않은 계시가 있을 것이다.

 

(영광의 신비 3단, 사도들에게 성신이 강림하심을 기도한다)

 

B: (중간에 끼어들며) 그리고 끝나면 “성모 칠고”를 바치고, “하례하나이다, 마리아여”를 7번,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를 3번 바쳐라. 다음으로 성가 “나의 세례의 서약이 굳건히 지켜지기를”을 가능하다면 모든 절을 다 노래해라.

 

위대한 부인(성모님)께서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성모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머릿속에 가지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짜증을 내며 투덜거림)

 

(묵주의 기도 1단을 바치는 중에 “하례하나이다, 마리아여”라고 기도를 바치는 부분에서 베엘제불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복되지 않다! 성모가 축복받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저희에게 성신을 보내주소서”라는 부분에서는 “만약 그분께서 성신을 보내시지 않았더라면!”이라고 소리 지른다. (짜증을 부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어서 말하여라!

 

B: 우리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구마 사제를 향해 몸을 돌린다); 어디 다른 곳이라도 가버려라! 너희는 바지를 입은 세 개의 피조물(세 사제)일 뿐이다. 너희가 그 피조물들이다. 바지를 입은 세 개의 피조물!

 

E: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B: 그리고 저 구석에서 계속 십자성호를 긋고 있는 저 인간, 온통 십자가를 새기고 있구나. 여기에도 십자가, 저기에도 십자가 더 많은 십자가를 새기고 있구나. 그 십자성호가 우리를 가르고 있다! (한숨을 쉬며) 나는 십자성호를 싫어한다. 저 인간은 집에서 안 나왔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어째서 오늘 이곳에 기어 나왔느냐?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이제 네가 해야 할 말을 하여라!

 

B: 아! 견진성사...

 

E: 성모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이 네게 명한다. 너는 따라야 한다!

 

B: 견진성사가 제대로 된 전례에 맞춰 집전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성모께서 무엇보다도 먼저 내게 하라고 하신 말씀은 “신자가 견진성사를 받기를 원하면, 그는 몇 주 동안 자신을 잘 준비하여야 한다. 언제나 성신께 기도드리며 많은 은총을 청하여야 한다. 이런 준비가 다 되지 않으면 받아야 할 은총은 많으나, 받지 못하는 은총이 더 많게 될 것이다.” 만약 기도하지도 않고 견진에 관한 표면적인 가르침만 받고, 대부분의 경우처럼 교회로 달려가서 자리에 앉아 가끔 무릎을 꿇고, 주교에게 가볍게 어깨 두드림만 받고... 아무 생각 없이 집에 돌아간다면, 그때 얻을 수 있는 은총은 거의 없다. 그런 식으로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병사가 나올 수 없다.

 

E: 그 모든 것을 고려하면 견진에는 아직도 지울 수 없는 각인이 존재하느냐?

 

B: 물론 여전히 존재는 한다. 하지만 그래도 견진성사는 올바른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E: 현재의 전례로도 올바르게 집전할 수 있느냐?

 

B: 더는 모든 곳에서 올바르게 행해지고 있지는 않지만,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부분은 견진 후보자의 마음에서 일어난다. 내가 말했듯이 후보자는 자신을 잘 준비시켜야 한다. 몇 주 동안 견진 후보자는 자신을 잘 준비하면서, 성신과 성모, 그리고 천국의 모든 이들에게 기도하여야 한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참되고 선한 병사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여 줄 것을 간청하여야 한다.

 

E: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기도를 하여야 하느냐?

 

B: 연옥 영혼들에게 기도하여도 좋다. 연옥 영혼들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되돌려 준다. 기도를 받은 연옥 영혼은 훨씬 더 좋은 자리에 가게 되고, 그들은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준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들 모두에게 기도하여도 된다. 고해성사도 마찬가지이다. 너희는 하늘의 모든 성인과 복자, 연옥의 모든 영혼, 거룩한 천사들에게 간청하여야 한다.

 

 

수호천사

 

E: 수호천사?

 

B: 그들은 모두 너희와 함께한다. 당연히 자신의 수호천사에게 특히 간청하여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여러 명의 수호천사가 있으면 모두에게 간청하여야 한다. 특히 너희 성직자들에게는 수호천사가 한 명보다 많이 있다. 수호천사를 두세 명 같이 다니는 자들도 여럿 있다. 너희가 천사들의 일을 알고 있다면, 그들이 마쳐야 할 책임을 따라야 할 것이다. 이제 이런 말은 그만하고 싶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B: ...대부분의 경우 사제들은 서품시 두 번째 수호천사를 배당받는다. 하지만 처음의 수호천사가 위대하고 유능할 천사라면 한 명의 수호천사로 충분하다.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두 번째 수호천사를 배당받는다.

 

E: 주교들에게는 더 많은 수호천사가 배속되느냐?

 

B: 그렇다, 그들의 천사들은 역할과 그들의 직무부담의 중요성에 따라 배당된다. 모든 수호천사가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같은 보호의 힘과 보호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설명하여야겠다. 온갖 종류의 수호천사가 있다. 그리고 그 힘은 하느님의 섭리와 뜻에 달려 있다.

장성한 아이에게 배당된 수호천사가 위대한 이를 보호할 합당한 권능이나 보호력을 갖지 못한 채 수호천사로 배당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또는 반대로 너무 큰 권능을 가진 대천사가 그에 합당한 큰 시련을 겪지 않을 아이에게 배정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저 위에 계신 하느님께서 너희를 대하는 방식이다. 하느님은 너희가 가장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관장하신다. 모든 것을 지시하시고 이끄신다. 너희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의 눈으로 너희를 지켜보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는... 저 아래의 우리를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아느냐? 아! 우리는 수호천사에 관해서는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

 

E: 너는 우리에게 천사들에 관한 놀라운 사실들을 가르쳐 주었다. 이일에 관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특히 감사를 올린다.

 

B: 그렇다고 해도, 성모는 항상 우리의 계획을 망치는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

 

 

기도는 성신의 작용에 선행하고 동반되어야 한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B: 다시 견진성사로 되돌아가야 한다. 견진성사를 받으려는 후보자는 더더욱 성신께 기도하여야 한다. 후보자가 성신께 기도드리는 것을 게을리하고, 더더욱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병사가 될 수 없다. 그런 후보자는 비틀거리며 군중 속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그가 이제 성사를 받을 때, 이전에 말한 모든 기름 부음과 모든 말씀과 함께 적절하게 성사를 받더라도 훨씬 적은 은총을 받을 것이다.

후보자는 그리스도의 참된 병사가 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자신의 헌신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길을 가로막는 첫 번째 시시한 장벽에서도 겁먹고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다.

 

5) 이는 ‘그리스도의 왼편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최후의 심판 때 ‘염소’로 상징되는 하느님께 버림받은 자를 가리킨다. 사람의 아들 오른편에는 ‘양’이 왼편에는 ‘염소’가 자리 잡게 할 것이다. 그 때에 그 임금은...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마태오 25;34-41)

 

그리스도의 병사가 된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힘들어도 그리스도와 성교회 옆에 자신을 두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상황이 있기도 할 것이며, 사람들 앞에서 해야 할 것과 말해야 할 것을 굳게 지켜야 할 상황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겠다.” (마태오 10:32) 그것은 사람이 진정으로 옳은 일을 하고, 그리스도의 진정한 병사가 될 때 일어난다.

 

E: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너에게 지시하신 모든 말을 하여라! 우리에게 온전히 진실만을 말하여라!

 

B: 너희는 일생동안 결코 지울 수 없는 각인을 지니고 있음을 명심하여라. 한 사람이 견진성사를 받고 이 지울 수 없는 각인을 지녔을 때, 우리는 견진성사를 받은 것이 없는 사람보다 지옥에서 훨씬 더 심하게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악에 대적하고 선을 행할 수 있는 훨씬 더 큰 힘을 갖게 된다.

 

E: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혼인성사

 

B: 그리고 다음은 혼인이다.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약혼했고, 무슨 경우에도 결혼할 예정이므로 모든 의도와 목적에 있어서 우리를 기혼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허락된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창조된 것 아닌가?” 사람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하늘에 계신 그분은 그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약혼자와 함께 제단 위에 올라 사제와 그 자리에 있을 사람들 앞에서, 성교회와 모든 천사와 성인들 앞에서 평생을 깨지 않을 혼인을 봉인하는 그날까지 희생과 금욕이 필요하다.

 

우리가 전에 이런 말을 한 것 같은데, 자유로운 동거생활을 사는 사람들도 금욕과 희생을 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혼 생활에서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개신교 남성과 가톨릭 여성 또는 반대의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신부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해결책이 없나요? 우리는 꼭 가톨릭교회에서 결혼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이런 말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들이 개신교와의 결혼이 쉽지 않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조금만 더 생각하였다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사제는 그들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물론 저희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두 분 다 가톨릭교회로 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범 교회적인 예식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말에 사람들은 기뻐한다. 그들은 이 말을 믿는다. 특히 개신교도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것이 있다니 너무나 좋습니다.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이런 짬뽕 결혼이 가톨릭 공동체에서 어떤 은총과 축복의 상실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선한 가톨릭 신자는 개신교도와 결혼하지 않는다. 후에 어떻게 되겠느냐? 개신교 배우자 부모는 자기 종교를 주장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가톨릭 배우자가 참아내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결혼 생활에 종종 큰 어려움이 찾아온다는 것은 다 알 것이다. 갑자기 십자가가 찾아오고 부부간에 큰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 어려운 시기에 부부가 같은 종교 또는 같은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십자가는 정말 매우 무거운 십자가가 될 것이다. 또 이런 종교적 신념은 자주 논쟁과 짜증을 유발한다. 이런 결혼 생활은 매우 험난할 것이다.

 

이런 사실에 우리가 덧붙일 말이 있다. 성모(위를 가리킨다)는 모든 사람이 (젊은 남녀 모두) 배우자를 만나기 전에 또는 만나려 할 때 상대방이 어떤 종교 정파에 해당하는지 지체없이 물어봐야 한다고 말하라 하신다. 필요하다면 만남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 논리적인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인이 되도록 그 만남을 끊어야 한다.

 

E: 천국은 그런 타 종교인과의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냐?

 

B: 천국은 타 종교인과의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 참고 지켜보시기는 하나, 좋아하시지는 않는다.

 

E: 이런 일들 때문에 너희가 우리에게 성사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지금 성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너희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시지 않느냐?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B: 혼인성사는 가능한 한 진지하게 치러져야 한다. 그 옛날 그리스도는 가나에서 우선 결혼하는 부부를 위해 기도했고, 그들이 살아야 할 삶에 대해 격려하시고 조언을 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부부를 성심 안에 담아두셨다. 그리스도는 그 부부를 매우 사랑하셨다.

 

결혼식에 초대받은 사람들도 이 젊은 부부를 위해 특별히 기도할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인간이 창조된 이래 결혼은 언제나 있다. 부모와 친구 등 결혼식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은 결혼하는 그 부부가 그들의 삶의 상태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도달할 수 있도록, 죽음이 그 부부를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 배우자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혼인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E: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6) 구마 사제는 (악마 들린 여성의 태도에서) 악마가 더 말해야 할 계시를 가졌다고 감지하거나 추측하는데, 이 때문에 이 말을 반복한다.

 

 

독신 생활과 진정한 사제직

 

B: 결혼은 전혀 쉽지 않다. 우리는 가톨릭 사제들에게 속삭인다. “네가 독신 생활을 충실히 지키고, 환희의 잔을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다 마시지 않는다면, 정말 너는 많은 것을 놓치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는 사제에게 언제나 던지는 암시이다. 매시간 끈기 있게 사제가 질릴 때까지 귀에 대고 속삭인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우리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E: ‘꿈속의 여인?’

 

B: 꿈속의 여인이 사제 주위를 배회하지. 그것이 폭발하면 사제는 인내심의 바닥을 보이게 된다. 그때 우리는 다시 속삭인다. “더는 성무 일도 따위는 바치지 말아라. 시간 낭비일 뿐이다.” 만일 이런 우리의 유혹에도 그들이 계속 성무 일도를 바친다면, 우리가 유혹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잘 알고 있다.

E: 그래서, 성무 일도는 매일 바쳐야 하는 것이냐?

 

B: 만약 모든 사제들이 예전처럼 매일 한 시간씩 성무 일도를 바친다면 우리는 많은 힘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사제 중 몇 명만을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마저 이 ‘꿈속의 여인’과 결혼을 생각할 정도로 눈이 멀지는 않을 것이기에 빨리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사제들이 매일 성무 일도를 바칠 정도라면 그 전에 잘 살아왔지 않겠느냐. (짓궂게 웃는다)

 

E: 사제들을 유혹하는 여인은 누구냐?

 

B: 대개의 경우 그런 여인들은 큰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은 자신이 유혹하려는 대상이 가톨릭 사제이고, 이들이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

 

E: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원하시는 모든 말을 다 하여라!

 

B: 이 여인들은 사제가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는지, 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절대로 사제 주위를 서성거려서는 안 된다. 사제들을 유혹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대죄이며, 그에 따른 형벌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그러므로 사제들이 결혼하면... 많은 사람이 거의 동시에 불행에 빠진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 생각을 사제들의 머리 안에 심는다. “만약 네가 이 꿈속의 여인을 차지하게 된다면 천국의 한 부분을 맛보게 될 것이다!”

 

E: 천국의 한 부분?

 

B: 천국의 한 부분. 우리는 천국을 완벽하게 줄 수는 없다. 그것 우리 능력 밖의 일이다.

 

E: 그런 약속조차 못 하는 것이냐?

 

B: 누구도 완전한 천국을 약속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분이라면, 그래서 이 부분을 우리가 그들의 귀에 들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들을 그들의 머리에 집어넣는다. 그런 다음 우리는 이런 에로틱한 상상을 그의 주변에 계속 맴돌게 하며, 그의 인내심이 바닥날 때까지 계속 옥죄는 것이다!

 

그런 다음 사제가 중대한 대죄의 상태에 빠지게 되면, 사제는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아이가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도록 무슨 짓이든 한다. 그다음 우리는 다시 그에게 속삭인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 돌아갈 수 없으니, 이제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지 않으냐.” 그러면 그들은 죄악의 길을 계속 가게 된다. 수렁에 깊이 빠져 더는 앞으로든, 뒤로든 갈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죄악의 길을 따라간다.

 

E: 그들도 구원받을 수 있느냐?

 

B: 이런 모든 일을 벌이고도 그들은 여전히 모든 것이 그들에게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변덕스러운 하지만 사제를 쫓아다닌 만큼 인격이 부족한 이 여인은 결혼하면 더는 조금 남은 인격마저 갖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그 여인이 어떤 미덕을 가지고 있을 거라거나 그녀가 미덕의 천사일 거라고 믿느냐? 결혼을 하게 되면, 우선 얼굴을 감춘 가면이 떨어질 것이다. 그다음 몸을 가리던 망토가 벗겨질 것이다. 그 때에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온갖 더러운 오물뿐이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B: 많은 사제들은 곧 자신의 행동을 몹시 후회하게 될 것이며, 다툼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사제들은 신학을 공부하였고, 일정한 틀이 형성되어 있으며, 조잡한 사람이 아니기에 대부분의 경우 이런 다툼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뀔 수 없는 것이 그를 괴롭히고, 자벌레처럼 그의 심장을 갉아 먹는다. 많은 사제가 곧 깊은 후회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추가해서 말해야 한다. 영적인 모든 것, 더 높은 것, 종교와 선에 관련된 모든 것은 하늘이 땅 위에 있는 것처럼 육신의 욕심을 훨씬 초월한다. 이것이 복되신 성모다. 나를 통해 너희에게 들려주고자 하신 말씀이다. 육신은 짧은 시간 지속되고, 그 다음은..... 아! 우리는 말하고 싶지 않다!

 

E: 많은 불행한 일들!

 

B: 너희가 그것을 생각했구나. 그냥 이혼이라던가 등등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들에게 지상의 천국에 대한 밝은 전망을 보여준다. 실제로 많은 사람은 넘어야 할 끔찍한 산을 가지고 있다. 육욕은 영성 생활을 엄청난 거리만큼 아래로 떨어뜨린다. 사제들이 자기 자신에게 굴복함으로써 무엇을 잃는지 알 수 있다면, 그들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뜯고 자신을 유혹하는 여인에게서 벗어나 유혹을 피하려 수 마일을 도망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은 위대하고 강력하여, 세상의 모든 육욕과 모든 쾌락보다 더 보편적이고 더 숭고하다. 비너스와 탄호이저의 전설을 떠올려 보아라. 오늘날 많은 성직자의 설교보다 더 나은 설교를 그 전설 속에서 찾게 될 것이다. 이 남자의 깊은 뉘우침을 여전히 찾게 될 것이다. 그 탄호이저가 산에 있는 비너스 곁으로 가기 위해 몸을 내 던진 것에 대한 고통으로 몸이 거의 녹아버릴 뻔했다. 이 전설은 실제로 지금의 많은 실제 설교보다 더 나은 설교이다.

 

7) 바그너의 가극 ‘탄호이저’(1845). 비너스의 팔 안에서 파멸을 가져왔기 때문에 탄호이저는 자신의 구원을 청하기 위해 로마에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탄호이저를 사면할 것을 거부하는 교황의 저주가 따라다녀, 탄호이저는 다시 비너스를 찾는다. 그 때에 청순한 소리가 들려 온다. 그것은 죄인을 구하고자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엘리사벳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뉘우친 탄호이저는 약혼자 곁에 무릎 꿇고 그녀와 함께 죽는다. 그런데 한편 하느님의 자비가 한 가지 기적으로 나타난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천국에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시간은 영원한 지금이다. 이 모든 것이 지금도 유효하다. 이 모든 것이 여전히 남아있다. 저 밑뿐 아니라 하늘 높은 곳에서도 완전한 타당성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은 훨씬 쉬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지만, 그 바라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다. 그러면서 그런 것에 대해 이제는 엄격하게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라고 믿겠지만 하늘에서는 그렇지 않다. 하늘에 계시는 분은 너희와 완전히 다른 생각과 견해를 가지고 있다.

 

E: 하나는 여기 지상에, 또 하나는 저쪽 하늘에, 두 개의 천국이 있다는 것은 아니겠지?

 

B: 너희가 정곡을 찔렀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저 위에 있는 분들은 많은 십자가와 금욕을 통해 천국에 공로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제들과 평신도들은 이 점을 다시 깨우쳐야 한다. 그 모든 달콤함과 장엄함을 가진 천국은 무거운 십자가와 희생, 금욕과 자신의 본능을 억제하고 그에 거스르는 모든 행위를 통해서만 보답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공로가 가치를 발할 때, 좁은 길을 따라가는 모든 사람에게 무한한 아름다움과 존엄을 가져다준다.

 

 

1977. 6. 18 (결론)

 

온 나라의 여인

 

E: 예수의 이름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제대 위 지극히 은혜로운 성체성사의 이름으로 명한다. 우리에게 하여야 할 모든 말을 다 하여라!

 

B: (한숨을 쉬며) 책이 하나 있다. 이미 몇 년 전에 세상에 나온 책이다. 그 책의 제목은 “The Lady of All Nations (온 나라의 여인)”(1)이다. 우리는 그 책은 영광스러운 영혼으로부터 유래되었으며, 더욱이 많은 고통을 견뎌낸 영혼이 펴낸 책이라고 홍보한다. 우리는 그 책에 특히나 기아와 전쟁 그리고 재앙에 대한 많은 좋은 말들을 섞어 놓았다. 프리메이슨은 남은 사람들을 홀리기 위해 십자가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성모는 ‘이제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며, 시대의 필요에 따라야 하고, 하늘은 그런 것을 원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1) 네덜란드에서 출판된 책이며, 원제목은 “De Vrouwe van alle Volkeren”이다.

 

이 책은 암스테르담에서 발간되었다.(2) 한 번쯤 읽어보아라. 그 책에 함께 수록된 작은 그림들이 여러 곳의 교회에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문구를 항상 넣는다 “주님의 성신을 보내주소서. 등등” 그리고 끝부분에 “일찍이 마리아라 불리던 온 나라의 여인이시여, 우리의 중재자가 되어 주소서.” 이 마지막 구절에 많은 의도가 숨겨져 있다. “전에 누구였다고? 그럼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인가?” 우리가 프리메이슨과 함께 이 구절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그 책을 만든 이들은 비슷한 것으로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성인들의 특정한 삶을 그대로 베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교회가 모더니즘과 더욱 친밀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게다가 우리는 교회의 공식적인 허가를 받아 이 책을 출판하는 것도 성공하였다.(3) (웃음을 웃는다) 하하하! 우리는 정말로 대단했지!

 

2) 마이클 서반트(Michel Servant)는 암스테르담의 메시지에 대한 조사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였다: “암스테르담의 진실은 사악한 자의 교활한 책략에 그 기원이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많은 사람이 함정에 빠지고 있다.” (1971. 10월 작성, 1972. 5월 발행)

 

3)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다른 거룩한 메시지들(케리지넨, 가라반달, 산 다미아노 등등)은 모두 교회의 출판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 하늘의 메시지는 바티칸이 아닌 주교단에 의해 거부되었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거의 항상 “신의 어머니”라든가 그 비슷한 의미의 호칭이 아닌 “여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림에는 “예전에 마리아라 불렸던”이라고 하였다. 하하하! 이제 동정 마리아에 의문을 품은 교회는 “예전에 마리아라 불리었을”뿐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성모는 그랬었다. 성모의 처녀성에 의심을 품은 인간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원치 않았던 사람들에게 성모는 예전에 그랬을 뿐이다. 그들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종종 너희가 교회를 위해 하는 일을 흉내 낸다. 그리고 또 종종 우리는 영광스러운 영혼들도 흉내 낸다. 현명한 두뇌로 우리는 많은 일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추가된 참조 사항 (프랑스판에서)

 

구마식이 진행되는 도중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악마가 프리메이슨을 악의에 찬 비밀 조직으로서 조작과 선동으로 반 가톨릭 전선의 최선봉에 서고 있다고 비난해 온 것을 주목하자. 그것은 실로 비밀스런 고위 프리메이슨 조직을 가리키고 있다. 고위 프리메이슨 조직이 하는 일은 일반 조직원조차 그들의 존재를 어슴푸레 느끼고는 있으나, 실상은 전혀 모르고 있다.

 

이 신비한 권력 우리는 이들을 SYNARCHY라 부르는데, 이 뜻은 그리스어로 SYN=함께, ARKHE=권력 의 합성어이다. 즉 공동권력체라는 의미이다. 이 조직은 피라미드의 꼭지점에 있는 9명으로 구성된 최고 평의회가 전 세계 조직을 장악하고 있다. 이 평의회의 중심에는 최고위 프리메이슨들, 개별적으로 참여한 자본가들, 고위직 공산당원들이 오직 하느님과 성교회에 대해 한결같은 증오심으로 교회를 파멸시키려는 일념으로 모여 노력하고 있다. 지금 교회를 파면시키기 위해 성교회를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려 하고 있으며(교회 내부의 고위 성직자를 포섭해 실제로 완성되고 있다) 또 교황을 꼭두각시화(지금 진행중이다)하려 한다.

여기서 그들의 목표는 분명하다. 저항하려는 바오로 6세의 의지를 꺽어, 그를 항복의 지경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짜 교황은 필요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바오로 6세는 잘 버티고 있다. 우리의 열렬한 기도와 아낌없는 희생으로 그를 끔찍한 순교에서 구해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로써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황과 그의 측근의 속임수를 구별하고 교황을 돕는 수단으로 기도와 죄의 보속이라는 신성한 무기를 사용하는 대신에 교황 바오로 6세에 대한 비난과 비판 그리고 고발이라는 아무 성과도 없고 불길한 무기를 사용하면서 이는 모두 교황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그 본질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성교회에 대하여 준비하여온 이 음모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여야 한다.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와 “지옥에서 온 경고”

 

E: “지옥에서 온 경고” 출판은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바라신 것이더냐?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답하여라!

 

B: 그래, 그렇다. 위대한 부인께서는 원하시면 어떤 장애물도 뚫고 반드시 이루신다. 성모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필요한 만큼 움직이신다. 어쨌든, 하늘에 계신 저분들은 자신만의 수단이 있다. 이제는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만 말해야겠다. 우리는 책의 출판이 늦춰지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었다.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이 더럽고 구역질 나는 쓰레기 같은 책은 모든 어려움을 뚫고 세상에 나왔다. 이 모든 것이 하늘의 저분들이 원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쓰레기 같은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아아! 이 쓰레기 같은 책이 나왔다니! 이는 우리의 처참한 패배이다. 이 싸구려 쓰레기가 우리를 미치게 만들 것이다!

 

(빛처럼 빠른 속도록 베엘제불은 한 사제에게서 스톨(망토)을 벗겨낸다.)

 

E: 그 스톨(망토)은 내 것이다. 네 것이 아니다!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계속 말하여라!

 

 

지옥은 사제의 스톨(겉옷)을 미워한다

 

B: 단지 악마의 쾌락을 위해 이 스톨을 잡아당겼다고 생각하느냐? 이 스톨을 지옥으로 가져가 태워버리고 싶구나! 우리가 모든 스톨과 사제들의 모자를 무더기로 불에 던져 태워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기쁘게 춤을 출지 너희는 상상이 가느냐? 우리가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악마들은 같은 시간에 구석구석에서 그것들을 불 질렀을 것이다! 그것들이 타는 연기는 지옥을 뚫고 땅에까지 치솟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기뻐서 잔치를 열었을 것이다!

 

 

1977. 6. 29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E= 구마 사제

 

B= 베엘제불

 

 

주께서 약속하셨으니 취소되지 않으리라:

 

“너는 멜키세덱의 법통을 이은 영원한 사제이다.” (시편 110:4)

 

주님은 아론과 영원한 계약을 맺으시고 그에게 백성의 사제직을 주셨다.

또 그에게 훌륭한 제복을 내리시어 영광의 옷을 입혀 주셨다. (집회서 45:7)

 

 

신품성사

 

E: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신품성사에 대해 우리에게 하여야 할 말을 어서 하여라!

 

B: 우리가 성사에 대해 말하는 것은 반드시 그 책에 포함되어야 한다.

 

E: 지극히 전능하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명한다. 자 이제 말하여라!

 

B: 이 말을 듣기 전에 너희는 “눈물의 묵주기도” 한 꾸러미를 바치고, “거룩한 대천사 미카엘...”을 세 번 부르고, “하례하나이다” 한 번, 그리고 성 베드로와 바오로 그리고 열두 사도를 각각 호칭하여야 한다. 이 기도가 다 끝난 다음에야 우리가 성사에 대해 말할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말하게 하려면, 너희는 성모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기도를 하여야 한다.

 

(요청한 기도가 한마음으로 울려 퍼진다)

 

E: 티 없는 잉태의 이름으로 명한다. 이제 진실을 말하여라!

 

 

신품성사를 치르기 위한 새로운 전례

 

B: 하늘의 위대한 부인은 지금 시행하고 있는 사제 서품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늘의 저분들은 새로운 전례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의 새로운 서품 전례는 하느님과 그분의 권위를 위하기보다 사람들을 생각하여 만든 전례이다. 사제 서품을 위한 전례는 과거의 것으로 되돌아가야 하며, 사제는 전능하고 유일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신을 따라 가장 높으신 분을 대리하는 제사장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례에서나 봉헌에서나 하느님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더 많이 신경 쓰고 있다. 이 때문에 받을 은총이 훨씬 적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사제들이 훗날 선과 악에 대한 이해력이 모자라게 될 것이다. 사제 서품 전례가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성신에 대한 이해와 선과 악에 대한 이해가 훨씬 더 깊어질 것이다. 그것은 서품받는 그 순간에 다 이루어진다. 견진성사때 일어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E: 전능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B: 사제의 서품식이 더는 정확하게 시행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더는 충분히 많은 은총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완전한 서품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가르치고, 미사를 합당하게 봉헌하며, 성사를 합당하게 집전하고 축복하고 봉헌하는 것이 사제의 사명이다.

 

E: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신품성사의 성격 또는 지워지지 않는 표식

 

B: 사제의 서품은 정말 위대하고 매우 고귀한 보편적인 성사이며, 그 앞에서는 우리처럼 아래에 있는 나머지 인간들(악마)은 무릎을 꿇어야 한다. 또 이 성사는 영혼에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새긴다. 사제가 자신의 사명을 잘못 수행하고, 악한 삶을 살다가 지옥에 오면 우리는 그를 훨씬 더 괴롭힐 수 있다.

 

이 낙인은 세 가지 성사에만 적용된다. 즉, 세례성사, 견진성사, 그리고 신품성사이다. 이 세 가지 성사에는 영혼에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새기며, 이는 지옥에서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유다와 같은 가톨릭 신자들은 이러한 성사를 받은 적이 없는 인간들보다 지옥에서 훨씬 더 큰 고통을 받게 된다.

 

이 성사들은 비길 데 없는 위대한 성사로서 이 성사를 받는 사람에게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고귀한 은총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 이 은총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았을 때, 이 사제나 주교는 그 은총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끔찍한 방법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렇기에 사제가 되고자 하는 자는 자기의 양심을 더 세심히 성찰하여야 하며, 자기가 사제의 소명을 받았는지 살피기 위해 더 세심히 자신의 양심을 진지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더러는 자신이 사제의 직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믿지만, 실상은 평신도로서 다른 상태의 부름을 받은 경우가 많이 있다. (이때 루시퍼는 귀신들린 여자를 방해하고 심하게 고문한다)

 

E: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사람으로 태어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티 없는 성심과 모든 천사와 성인들의 이름으로, 오늘 축일을 맞으신 거룩한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이름으로 명한다. 거짓이 아닌 온전한 진실을 어서 말하여라.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신품성사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진실을 말하여라!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에코네(ECÔNE)는 승리할 것이다(4)

 

4)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고 예수께서 원하신 대로 당신의 교회에 세우신 것과 같이 참된 미사, 거룩한 미사의 희생에 의한 승리가 될 것이다.

 

B: 아! 빌어먹을 에코네 신학교... 그들은 승리할 것이다! 우리는 그 신학교를 무너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계획을 세우고 모든 짓을 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유일하게 진정한 사제의 본분을 지키는 곳이다.(5) 우리는 그것을 인정한다. 그 진리를 가졌기에 온갖 공격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종 승리자가 될 것이다. 그들이 정복할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이 진실이 아니며, 진정성이 없다면 우리가 이리도 미친 듯이 공격하려 하겠느냐. 에코네 신학교에서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연대와 대화를 우선시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럼에도 어째서 그들은 그(르페브레 대주교)를 내버려 두지 않을까? 왜 그를 그렇게 괴롭힐까? 그들이 저러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며, 그들이 진리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리고 교회가 다시 살아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늘의 저분들이 원하는 대로 교회가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이 되기 위해 승리하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 꼴을 보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황 바오로 6세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르페브레 대주교에 대해 미칠 듯이 큰 분노를 품게 된 것이다. 우리의 두 번째 증오는 르페브레를 향해 있다. 하지만 결국 이 둘은 다 승리할 것이다!

 

5) 그리스도께서 성체에 임하신다는 유일하고도 참된 진리를 지키기에 사제의 본분을 완전하게 채우고 있다는 의미이다.

 

E: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께서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신 신품성사에 대한 말이 남은 것이 있느냐?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이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온전히 진실만을 말하여라!

 

 

사제의 의무

 

B: 사제들은 가르쳐야 한다. 지금 너희가 제대로 하고 있느냐? 여전히 옳은 강론을 하고 있느냐? 여전히 아이들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있느냐? 너희 중 대부분의 경우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많은 것을 왜곡하고 있으며, 더는 그들이 가르쳐야 할 방식으로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은 더는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은 더는 완덕과 악덕에 대해 설교하지도 않으며, 완덕을 실천하는 방법에 관해서도 더는 설교하지 않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제가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은... 사소한 일화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인 모더니즘을 지지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의 많은 부분을 그들만의 ‘미니 시노드’에서 꺼내 쓰고 있다.

 

인간들도 더는 진리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제는 최소한의 저항이 있는 것만을 선택하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아주 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날 그들은 완덕이라든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난,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더 많은 고난...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 인간은 하늘에 계시는 분들이 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도 따르지 않으려 한다. 인간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방식만을 선호한다.

 

모든 사제가 지금도 매일 거룩한 미사를 봉헌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많은 사제는 일주일에 한두 번만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미사에 매일 가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교회들을 보아라. 그들이 모더니즘에 집착할수록 교회에 오는 신자들의 수는 줄어들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계속 말하여라!

 

 

미사 때 섬기는 것이 부족하여 은총을 잃어버리고 있다

 

B: 이제 성체 거양 때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더는 믿지 않는 사제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견진성사 때라든가 특별한 일이 있어 주교가 오면 그들은 갑자기 무릎을 꿇는 시늉을 한다. 주교 앞에서 군인처럼 뻣뻣하게 서 있기만 하면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길 것이라 염려하기 때문이다. 만약 주교가 무릎을 꿇는 것 이상의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더욱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악마)는 그들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경건한 척하고 무릎을 꿇어, 안 그러면 주교가 널 숯불 위로 끌고 갈 거야!” 우리가 그들의 귀에 속삭이기만 했을 뿐인데 주교는 그 사제들이 평상시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주교나 다른 상급자가 없다면 그들은 하늘에 계신 예수 앞에서 무릎을 꿇을 정도로 자신이 작고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느님 앞이라도 그냥 서 있는 것이 어떠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미사에 모인 신자들이 교회에 앉아 거의 관심도 없이 바라보며, 축성 중에는 파수꾼처럼 가만히 서 있는 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하늘에 계신 분이라는 생각뿐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이를 또 말해야 한다. 이 “새로운 양식”은 사제와 신자들에게 끔찍하고 치명적인 손해를 의미한다. 많은 사람이 이를 알고 있지만, 사람이 많은 경우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미사 시간 내내 계속 앉아 있을 수도 있으며, 모든 면에서 쉽고 간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신자들이 예전처럼 미사 중에 무릎을 꿇었다면, 예수께서 마땅히 받아야 할 존경심을 보이기 위해 조금만이라도 애썼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은총과 지혜를 주셨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무릎 꿇고 경건한 기도를 바치는 생활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 자신들이 보내고 있는 생활이 너무나도 쉽고 보여주기식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이는 사제들뿐 아니라 주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훌륭한 목자

 

B: 참된 사제는 독신생활을 지켜야 한다고 성모님께서 말하라 하셨다. 참된 사제는 안락한 생활과 조금이라도 거리끼는 일과 마주했을 때에는 거리를 두어 조심한다. 참된 사제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비체와 동일시하여 그들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전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바친다. 참된 사제는 그리스도께서 원하는 대로, 그분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하늘에 계신 분이 바라는 방식으로 이루지 못한다면 스스로 자책하여 죽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생각한다.

 

요즘에는 사제들이 신자들의 가정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교통수단조차 마땅하지 않아 가정방문을 위해서는 몇 시간을 허비하곤 했다. 그들은 영혼을 회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몇 시간 떨어진 곳이라도 기꺼이 방문하곤 했다. 이런 희생이 그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오늘날... 마을을 지켜 보라... 아직도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있느냐? 극소수만이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들은 단지 영혼의 평안함을 위한 사랑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사제가 방문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사제들에게 많은 교통수단이 제공되고, 편안해질수록 신자들을 만나러 나가는 일도 줄어든다. 이는 그들이 가진 은총이 적고,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더는 성무일도를 바치지 않기 때문이며, 더는 합당한 방식으로 서품을 받지 않기 때문이며, 더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참된 사제의 직분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며, 더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고난과 희생으로 상징되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된 목자는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참된 목자는 희생과 금욕을 통해 자신이 돌보는 양들 중 단 한 마리라도 가시덤불에 갇혔거나 길을 잃었다면 최선을 다해 찾아 나서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선한 목자의 비유에서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 헤매다 마침내 찾아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오면 온 하늘이 기뻐한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이런 말을 아무 근거 없이 하셨겠느냐? 예수께서는 이 말을 특히나 사제와 주교들에게 들려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 가르침은 변할 수 없는 것으로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더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분들은 자기가 맡은 양을 찾으러 가는 것을 꺼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만 하는 사제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E: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명한다. 계속 말하여라!

 

 

거룩한 아르스(Ars)의 사제

 

B: 아르스의 본당 사제인 성 비안네가 했던 것처럼 희생이 필요하다. 그는 자신의 신자 중에 전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는 양이 있다는 것을 알면 밤새도록 기도하곤 하였다. 그는 모든 것을 바쳤고 모든 것을 희생하였다. 그는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도 마다하였다. 종종 그는 제대 앞에서 몇 시간 동안 기도하곤 하였다. 때로는 한 영혼만을 구원하기 위해 그렇게 하였다.

 

그는 아래에 있는 우리로부터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종종 단 한 명의 영혼 때문에... 그렇듯 그는 전혀 영리하지도 않았고, 신학과 라틴어에도 매우 약했다. 오늘날 사제들은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혜로운 박사들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최후의 심판 때 저 하늘에 계신 분들은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저분들은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지, 그의 뇌 속에 무엇이 있는지, 그가 철학과 수학에 관해 잘 알고 있는지 같은 것은 관심이 없다. 저분들은 무엇보다 이것을 생각한다. 그는 참된 목자였나? 그는 양을 찾으러 다니며,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과 가진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나? 그런 것을 하늘에 계신 분들은 보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가장 큰 악은 이 시대의 제사장들이 더는 하늘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르스의 사제와 카타리나 에머리히에 대해 다시 설교하여야 한다. 카타리나는 고통의 침대에서 성교회를 위해 기꺼이 고통을 견디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른 많은 성인도 그렇게 살아왔다. 비오 신부는 교회와 죄인을 위해 정말 많은 수난을 겪었다. 박사 학위를 받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 낫다는 것을 저 높은 곳에서 강론하여야 한다.

 

그런 박사 중 몇몇은 정말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철학이나 수학, 신학 등을 공부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많은 사람은 밤의 절반을 기도하고 성신께 청하며 지내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티 없는 성심과 예수의 성심에 완전히 신뢰를 바치고 참답게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과 성 그리뇽 드 몽포르의 마리아의 가르침에 사는 것, ⋯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늘에 계신 저분들이 바라고 있는 것을 정확히 행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런 것이 단순히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몇 시간이고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도록 어떻게 강요받았는지 아느냐? (소리지른다) 내가 어떤 강요를 받았는지 너희가 아느냐!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B: 예를 들면 러시아 혁명의 아버지인 레닌은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밤낮을 모두 바쳐야 한다고 하였다. 많은 성직자는 이런 무신론자들이 하는 일조차 하지 않는다. 레닌은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혁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하지만 성모께서는 오늘날의 사제들은 더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하신다.

 

누군가 자신을 희생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많이 그들의 반대편에서 싸운다는 점을 사제들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이 비안네 신부의 방식이었다. 우리는 그의 방에 불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하늘에 계신 분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슨 짓을 하든 하늘에 계신 분들과 성모께서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참된 사제의 직분을 꾸준히 수행하는 성직자들은 비할 데 없는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어떤 박사 칭호나 다른 영예로운 직함도 여전히 영혼과 인간에 관해서 참된 이해를 하고 있으며, 각 사람의 걸맞은 자리에 자신을 둘 줄 아는 성직자들이 행한 선과 비교될 수 없다. 그들은 자신에게 질문한다. “내가 이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설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무엇일까? 신자들이 성사를 실천하는 삶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히 그들에게 하늘의 축복을 더하기 위해서는 전통 예식에 따른 올바른 전례로 성사를 집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하늘은 그들에게 하늘의 축복을 내릴 것이다. 사제들이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더러는 자신의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천국은 고난을 통해야 얻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가장 완전하고 가장 순수하고 가장 비할 데 없는 방법으로 참된 사제의 직분을 보여주셨다. 그리스도의 사도들도 그런 모범을 보였다. 그들은 감옥에 가두어져도, 순교를 당하여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다. 반면에 우리 사제들은 주교들이 명하는 데로 정확히 수행하지 않으면 직위를 잃을까 두려워한다. 물론 그런 행위는 진리가 아니며, 하늘에 계신 분들이 볼 때 순명도 아니다. 전에 말했듯이 명령이 옳지 않으면 따를 필요가 없다. 아, 우리가 미쳤다! 이런 말을 너희에게 하다니!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사람에게 순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명하는 것이 낫다는 말 아니냐?

 

B: 하느님은 언제나 인간보다 앞서야 한다! 사도들이 인간을, 로마인이나 다른 누군가를 두려워하더냐? 그들은 용기가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옥에 갇혔으며, 순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의 그리스도인 중 견진성사를 받고 이마에 그리스도 병사의 표식을 받은 이들은 다 어디에 갔느냐?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이 표식을 지니고 있다. 사제들은 이에 더하여 사제 봉헌의 표식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을 도울 천사들이 있다. 어째서 사제들은 하늘의 사랑 때문에 보내진 거룩한 천사에게 기도하지 않는 것이냐? 어째서 사제들은 자신의 주보 성인을 부르지 않는 것이냐?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는? 모든 교회의 사도들과 박사들은 부르지 않느냐? 그들에게 청을 한다면 어떠한 일이라도 사제들에게 가르치고 도와줄 것인데! 그리고 누구보다도 먼저 성신에게도!

 

사도들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로서는 그 무엇도 큰 대가를 치른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합당하게 성사를 집행하였고, 성사를 매우 존중하였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본받아야 할 최초의 사도들의 직분을 수행하는 방법이었다. 뒤에 온 너희 사제들은 사도들의 본을 따라 살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자들을 본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평범한 자, 부정적인 자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 언제나 최고인 자와 그 최고인 자가 행한 일을 본받아야 한다. 만약 너희가 이 말을 따른다면 다시는 이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 사람들이나 옛날 그 사람들이나 다 잘 살았구나. 지금 방법도 괜찮다.” 이는 터무니 없이 잘못된 생각이다.

 

아아! 우리가 얼마나 아르스의 사제를 미워했는지! 우리는 그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그는 정말 멍청해서 라틴어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가 없었다면 지옥에 가야 했을 그토록 많은 영혼을 누가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있었겠느냐?

 

아! 성모께서 나에게 이 말을 시키신다. “이 비안네 같은 본당 사제가 더 많이 있었더라면!” 중요한 것은 돈도, 재산도 지성도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제들이 무엇을 하는지, 그들의 영혼의 상태가 어떤지, 그들이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이다. 비록 사제들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 가장 하찮게 보이고, 아무런 중요성도 없으며, 가장 낮은 지위를 가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앞서 말한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제들은 하늘에 계신 분이 보시기에 훨씬 더 위대한 존재들이다. 그 어떤 주교나 추기경의 모자보다도, 또는 너희가 좋아하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늘에 계신 분이 보기에 너희가 훨씬 위대하다. 아! 어떻게 이런 말까지 너희에게 해야 한단 말이냐!

 

 

사목의 부담에 따른 큰 책임

 

B: 이 주제에 대해 다시 한번 말해야겠다. 많은 주교와 추기경들은 자신의 책임을 형편없이 관리하고 보잘것없는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평신도로 남아 그런 높은 책임을 지는 자리에 가지 않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끔찍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이 지옥에 온다면 우리는 훨씬 더 괴롭힐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자는 차라리 평신도로 있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높은 지위는 곧 무거운 책임을 의미한다. 많은 고위 성직자들은 아르스의 본당 사제처럼 밤새워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계신 분들이 원하는 것만을 행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평신도로 남아 있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만약 주교와 추기경들이 어리석게도 순례지를 금지하기 전에, 또는 그들의 주교 대리 또는 다른 누군가의 조언에 따라 행동하기 전에 지혜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성신께 기도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비록 그것이 그들의 평판을 나쁘게 만들 수 있겠지만, 성신으로부터 오지 않은 하급자들의 생각과 관점에 반대를 표하며,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관점과 생각을 앞세워야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하급자들을 멀리 보내는 것이 낫다. “미안하네, 하지만 나는 내 영혼과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하겠네.” 비할 데 없는 용기를 보인 거룩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처럼 용기를 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도 얼마나 큰 용기를 보이셨던가!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바리새인들의 공격과 괴롭힘으로 고통받으셨다. 이런 것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포기하셨느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겠느냐? “저들의 공격이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나는 이 사명을 포기할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죽은 다음에 사람들은 더 이상 나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따르지 않을 것도 이미 예견하셨다. 그것만으로도 예수의 용기를 꺽는 데는 충분하였을 것이다.

 

확실히 그분은 신이셨다. 하지만 올리브 동산에서 그분은 단지 인간이셨다. 어쩐 일인지 그리스도의 신성이 그때는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져 있었다. 예수께서는 단지 인간의 성품으로만 이 나약함과 두려움과 외로움을 견뎌내셔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끝까지 굳건히 계셨고, 사도들도 그런 예수를 본받게 된 것이다. 사도들이 언제 “우리가 이와 같은 공격을 계속 받는다면, 이런 공격을 예상하지도 못했지만, 더는 굳건히 서 있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 그들은 절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굳건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본받게 하시려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내놓으셨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특히 사제의 직을 가진 자들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주교들아, 추기경들아, 사제들아, 성모께서 나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어디로 가고 있느냐? 너희가 따르는 모더니즘은 너희를 어디로 이끄느냐?

 

E: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사제들의 모범이 인간들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

 

B: 네로 황제 치하의 초기 성교회 교인 중에는 자신의 피를 뿌리며 고문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죽음마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교인들은 사제의 본보기를 보며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 사제들이 더는 신자들의 모범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신자들의 눈치를 보며 안전한 길만을 가고 있다.

 

만약 신자들이 자신의 양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칠 각오와 열망이 있고, 그 열망으로 자신 앞의 온갖 희생을 피하지 않는 사제들, 그 사제들이 크든, 작든, 어렵든지 자신의 기도가 필요한 일에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기도하는 그런 사제들을 본다면, 그 사제들은 큰 존경과 경의를 받을 것이다. 악은 맨 먼저 성직자 중에 들어가 있다.

 

만약 신자들이 다시 한번 사제에게 의지할 수 있다면, 신자들이 다시 합당한 강론을 들을 수 있다면, 성사의 전례가 다시 한번 합당한 공경심을 가지고 집전된다면, 사제들이 이러한 능력을 보인다면, 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향한 길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제들에게는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은총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이 필요하고, 지옥으로 미끄러지기 쉬운 넓은 길을 따라가지 않으려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수천의 영혼들이 천국으로 행하는 좁은 길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천국을 얻을 방법은 희생과 금욕이라고 말했었다. 천국은 자동차나 텔레비전, 피조물의 안락하고 방탕하며 사치하는 생활로는 얻을 수 없다. 금욕과 금식,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이 필요하다. 더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느냐!

 

예를 들면, 장-마리 비안네 신부는 먹는 것에 전혀 연연하지 않았다. 금식하고 기도하기 때문에 많은 양이 은총을 얻었다. 그는 자기기 먹는 감자 요리가 쓴 것도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는 단지 가진 것만 먹었다. 배가 고픈 것도 모를 때가 많았다. 물론 사제들에게 먹는 것을 중단하라는 말이 아니다. 먹는 것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며, 방탕한 생활과 탐식으로 빠져서는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해 이 말을 해야겠다. (고통스런 목소리로 외친다): 너희 사제들아, 너희 주교들아, 너희 추기경들아, 완덕에 대해 다시 강론하여야 한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야 한다! 원죄 없는 성심으로 피하여라! 거룩한 천사에게 청하여라! 특히 큰 힘을 가지신 성신께 기도하여라!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완덕에 대해, 십자가에 대해 강론하여라!

 

E: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하느님의 정당한 진노의 날

 

B: 제발! 너희 사제들은 십자가의 길로 돌아와야 한다. 너희가 더는 올바른 길로 양 떼를 인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라! 위대한 부인께서 나에게 이런 말을 시키신다. 주교들아, 추기경들아, 사제들아, 평신도들아 이제 때가 되었음을 깨달아라! 지금은 정오를 지난 지 5분이나 10분 정도 되었다. 성모가 나에게 큰소리를 지르게 한 것은 정오를 갓 지날 때였다.(6)

 

6) “정오 5분 전이다” ⋯ 마이켈 서반트는 1972년에 그 책에 부제를 달았다.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는 “정오 5분 지났다”라고 1977년에 말씀하셨다. 이는 잔이 넘치고 있다는 뜻이며, 징벌의 때가 이미 와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모의 한 없는 자비로 최종적인 징벌의 집행이 연기되어 있고 그것이 기적처럼 하느님의 진노를 막고 있는 유일한 것임을 의미하고 있다.

 

성모께서 이렇게 말하라고 시키신다. 완덕과 십자가의 길을 따라야 한다. 너희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너희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너희가 더는 알지 못하는구나. 회개하고 기도하여라. 가능하다면 밤낮으로 기도하고 회개하여라.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친다) 하느님의 정당하신 진노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너희가 양 떼를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면, 너희를 짓눌러 치워버릴 분 그 누구겠느냐?

너희 평신도들은 더는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너희 성직자를 위해 기도하고 보속하여라! 너희의 모든 힘과 능력을 다해 기도하고 보속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수천의 영혼들이, 아니 더 많은 영혼이 길을 잃을 것이다!

 

주교들아, 사제들아, 평신도들아 너희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야 한다. 보아라, 한밤중이 된 지 오래됐다. 이는 하늘에서 주는 마지막 경고 중 하나이며, 사람들이 분명히 보고 회개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것이다.

 

너희가 어떤 길에 있는지 알 수 있다면! 너희가 지옥에서의 시간을 안다면 지금 당장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을 것이다. 너희는 자신을 순교자로 만들어 지옥의 저주를 받지 않기 위해 참회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연옥의 시간을 단 몇 년만 줄일 수 있다면.

 

이것이 위대하신 성모께서 나를 통해 너희에게 전하는 말이다. 하늘에 계신 분들이 몇 번이고 반복해 너희에게 하는 말이다.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에서 이것이 마지막 메시지이다. 회개하고, 기도하고, 자신을 변화시켜라. 너희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진노가 너희 인간들을 파멸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한숨을 쉰다)

 

위대한 성모께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자녀와 사제들, 주교, 추기경들의 눈이 멀고 분명하게 현 상황을 보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쓰디쓴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성모가 나를 통해 너희에게 말한다. 천국의 사랑으로 너희에게 보내는 장막 저편에서의 마지막 경고를 새겨듣고, 성모께서 바라시는 대로 행하여라. 하느님께 은총을 간구하여라. 너무 늦기 전에, 하느님의 진노가 너희에게 떨어지기 전에. 성모께서 너희에게 떨어질 징벌을 든 예수의 손을 더는 붙잡지 못하게 되기 전에!

 

우리는 말하고, 또 말했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우리는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에 들어갈 마지막 말까지 다 했다. 성모의 명령 때문에 우리가 이런 말까지 하게 되었다! (가슴을 쥐어짜며 운다)

 

 

 

1977년 6월 18일

 

성찬식 전 금식

 

E: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진실을 말하여라!

 

B: 여기 그 방법이 있다: 원래의 성사는 전혀 바뀌지 말았어야 했다. 이런 일들은 부분적으로는 프리메이슨의 계략으로 이루어졌다.(1) 반면, 예를 들어 성체성사의 경우 교황은 사람들에게 밤새도록 금식을 강요하는 엄격한 법이라고 말하였다. 특히 선교지에서는 정오까지, 심지어 저녁까지 금식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이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1) 그 시류에 편승한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나머지를 해냈다.

 

그래도 이 금식을 통해 매우 귀중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금식을 통해 사람들은 보속을 해야 했고, 매우 큰 희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수천 명의 영혼을 구하는 매우 보편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희생과 고난을 통해 매우 많은 영혼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갔다. 그래서 하늘은 성찬식 전 금식의 규율이 바뀌지 않는 것을 더 원했을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 교황인지, 추기경인지,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 누군가 이 지점에서 이제는 멈출 수 없다. 평신도들을 모이게 하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이다.(2) 이런 이유로 율법은 처음에는 성찬식 전 3시간, 그다음 단계로 1시간으로 단축되었다. 완벽한 금식의 율법; 전에는 우유나 그 비슷한 음료도 금지되었었다. 심지어 물도 허용되지 않았었다. 이는 보속의 행위이며, 하늘은 이를 승인하였었다. 하늘은 이 규율을 지금 시행하는 것보다 좋아했다. 추기경들과 교황은 이러한 이유로 율법이 완화되면 많은 신자가 성찬식에 모여들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처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영성체를 모시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성찬식 전 금식의 율법이 바뀌기 전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지금은 훨씬 더 적은 수의 신자들이 성찬식에, 그리고 영성체를 영하러 나온다. 모든 경우에서 공의회가 율법을 바꾸기 전보다 은총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이 줄었다.(3) 이제 상황은 처참하게 바뀌었고, 하늘에 있는 분들이(위쪽을 가리킨다) 전혀 기뻐하지 않는 일이 하나 더 있다.

 

2) 사람을 모이게 하려 하느님을 버리는 결말이다.

 

3) 금식의 조건은 이전에는 영성체 전 자정부터 완전한 금식이 이루어져야 했다. 이제 교황청은 음료와 관련한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영성체 전 1시간으로 금식 시간을 대폭 줄였다.

 

이 율법이 지금껏 유지되었다면, 금식해야 하고 이 금식을 통해 많은 희생을 하여야 하기에 많은 자의 경건함이 훨씬 깊어졌을 것이고 은총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영성체를 영하러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세 시간, 한 시간만 금식해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희생이 아니다.

 

대체로 이 성찬식 전 금식에 대해 많은 사람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교황께서 율법을 만들어 금식을 하루 종일에서 3시간으로, 그리고 이제 1시간으로 줄일 수 있었으니, 이 율법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거다. 지금이 영성체하기 전 15분 전이니 뭐 좀 먹어야겠다. 이제 금식은 더는 중요한 율법이 아니다. 이제 모든 것이 더 쉬워졌다. 무엇을 하든지 더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일은 낙태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고, 지금은 모든 것이 다 이런 식이다. 교황은 이런 일을 예상했어야 했다. 성찬식 전 금식이 존재했을 때가 훨씬 더 나았다. 더는 희생하지 않고, 더는 금욕하지 않을 때, 하늘에서 주는 축복도 훨씬 적어지고, 은총도 훨씬 적어진다. 그리고 인간들은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지난 일에 대해서는 훨씬 덜 생각한다.

 

예전에는 언제나 이런 생각을 해야 했다: “나는 지금 먹을 수 없다. 오늘 내 마음으로 누가 오시는가?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그분의 위엄과 위대함은 어떤 인간도 감히 얻을 수 없는 분이 오신다.” 인간들은 언제나 이런 생각을 했고, 전날 밤부터 미리 기도하였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하고 있지만, 이전만큼 많지 않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해보면, 이 율법을 풀어주기 이전에 더 많은 신의 축복이 있었다. 이 같은 일은 고백성사도 마찬가지이다.

 

 

초대교회에서의 손으로 받는 영성체(4)

 

(4) 이 부분에서 우리가 놀랍다기 보다는 교회의 여명기 시대부터 지옥이 준비한 성교회를 파괴하기 위한 음모가 적용된 한 가지 사례라는 점이 더 놀라웠다.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교회의 초창기에 손으로 받는 영성체에 관한 말은 무엇이냐?

 

B: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빵을 떼실 때 그 떼어진 빵을 사도들의 손에 주지 않으셨다. 이는 우리가 직접 보았다. 이 이야기는 더는 하고 싶지 않구나! 더 이상은 하면 안 돼!

 

E: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B: 우리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지금 이 시기에 이 말을 해서는 안 된다!

 

E: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B: 최후의 만찬 때 그리스도께서 “이는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빵을 떼어 사도들의 입에 직접 넣으셨다.(5) 보혈에 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사도들은 그것을 받아 마셨지만 먼저 그것을 손에 쥐지 않았다.

 

(5) 이 부분과 관련하여 트렌트 공의회에서 결의된 다음 문구와 비교할 수 있다. (세션 13, 8장) 성체성사를 받을 때, 하느님의 교회(즉 로마 가톨릭뿐 아니라 보편 교회)에서의 관습은 언제나 평신도는 사제의 손을 통해서만 받는다. 그리고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는 성체를 자신에게 준다. 그런 까닭에 교회의 관습은 언제나 성체는 사제에서 평신도에게로, 그리고 집전자는 직접 받는다는 관습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이 말은 평신도는 성체를 입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만약 사제가 평신도의 손으로 성체를 준다는 것은 성체를 평신도가 직접 자신에게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냐는 의미이다. 트렌트 공의회에서 다시 확인한 이러한 구분에 다른 이유는 없다. 공의회는 명확한 해석을 위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이 관습은 사도적 전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당한 이유를 가지며 올바르게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의회 결의의 이 마지막 부분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다. 교회의 첫 세기 동안 확립된 관습, 즉 손으로 성체를 받는 관습(깨끗하고 하얀 천으로 손을 감싸고 사제는 그 위에 성체를 놓으며 신자는 그것을 손을 대지 않고 입으로 곧바로 가져간다)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관습은 사도적 행동 방식 뿐아니라 그리스도의 생각과 뜻에도 어긋났기에 정당화되지 않는다. 또 우리는 이제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께서 사도들과 함께 하신 방식을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사도들은 결코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입으로 성체와 성혈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중에라도 이 성체와 성혈을 손으로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후에 그들이 이 성체와 성혈을 손으로 받았다면 그들은 이 성찬식에 대해 그릇된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절대로 손으로 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이 성체와 성혈을 입으로 직접 넣으셨다. 심지어 동정 성모조차 이 성사를 다른 방법으로 받은 적이 없다. 언제나 무릎을 꿇고 깊이 허리를 숙이고... 아! 우리가 이런 말까지 하다니!

 

성모가 영성체를 할 때마다 우리는 성모에 대한 분노가 끓어 올랐다. 성모는 최후의 만찬에서 일어난 모든 신비를 체험하셨다. 성모는 거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성모가 교회를 인도할 운명이었던 거다. 사도들도 이런 운명이었지만, 하지만 성모는 사도들과 일할 때 매우 큰 역할을 가지고 계셨다.

 

이미 전에 우리가 말했었다: 성모는 그리스도 교회의 모든 일이 잘되도록 사도들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릎을 꿇고(6) 기도하였었다. 최후의 만찬에 참석했던 사도들은 입으로 성체를 주는 것 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주지 않았다. 후에 다른 변형이 일어난 것은 사도들의 잘못이 아니다. 예수도 그의 어머니도 성찬식 관습을 변경하는 것에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으셨다. 하늘의 그분들은 이에 관해 다른 계획이나 바라시는 것이 없었다. 지금의 상황은 절대로 그분들의 뜻이 아니다.

 

(6) 고대 교회에서 기도를 위한 일반적인 자세는 서서하는 것이었다.(참조 루카 18;11-13, “바리사이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서서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기도와 경배가 끝나고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하는 것조차 모르지는 않았다. 아마도 무릎을 꿇는다는 성모의 예를 통해서 훗날 성교회가 갖게 될 특권적인 지위를 준 것은 매우 겸손하신 성모마리아였을 것이다.

 

E: 그럼 누가 손으로 받는 성찬식을 들여왔느냐?

 

B: 너희가 그런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E: 전능하신 성부의 이름으로 명한다!

 

B: 그것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은 우리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했다. 만약 우리가 초기 교인들 사이에 손으로 성체성사를 받는 선례가 있다면, 후에 “초기 교회 시대에도 손으로 성체를 받았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로 인해 이를 들여온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초기 교인들은 손으로 성체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관습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최초의 그리스도교인들이며,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실 때에도 가까이 있던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관습은 절대로 죄가 될 수 없습니다.”

 

확실히 그들은 이 행위가 하느님께서 절대로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몰랐다. 바로 그 순간에도 우리는 ‘만일 우리가 그 일을 일어나게 할 수 있더라도, 그 결과는 어쩌면 미지근할지도 모른다.’라고 자신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다 교회에는 입으로 성체성사를 받는 관습이 자리를 잡았다. 거룩한 영혼들과 매우 위대한 교회의 교부들은 이 관습이 어디로 인도되는지 분명히 보았고, 하늘에 계신 분들도 입으로 성체를 받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할 것이며, 너무 긴 손톱을 하거나 더럽고 씻지도 않은 손으로 성체를 받아 영하는 것보다, 사제의 손에서 입으로 직접 전달하는 것이 훨씬 더 좋고 성체에 대한 존경심이 훨씬 더 많이 생길 것이라 믿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는 없다. 어딘가에는 하루종일 손도 씻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은데... 정말 그것은 무서운 신성모독이다.

 

하느님을 그 정도로 깊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개신교도들처럼 어디를 가도 상징을 바라본다. 처음에 공의회에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후에 개신교와 다른 사람들을 향해 다가서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 결정은 일종의 연대였다. 이는 선함이었고 그리스도교의 자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이용해 프리메이슨을 끌어들여 다음과 같은 단계에 이르렀다. “자애를 베풀고, 이웃과 화해하여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서로 대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침내 모든 것이 유약해져 조금만 이끌어도 바뀔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고, 우리는 모든 것을 원래의 가치와 깊은 의미를 잃어버리는 방식으로 재배치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중요한 은총이 군중에 휩쓸려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귀신들린 여인에 관한 기록(7)

 

(7) 우리는 독자, 특히나 성직자 및 의료 종사자들이 이 설명을 매우 주의 깊게 읽을 것을 원한다. 당사자의 삶은 그녀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악마의 간섭을 받은 것이 특징이며, 이에 대해 부적절하기에 무의미한 치료법으로 희생자의 참을 수 없는 고통만을 강요하는 치료가 유일하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계획이 있으셨다.

 

저자의 요청으로 귀신 들렸던 여인은 자신의 이력을 제출하였고, 그중에 다음 구절을 인용한다. 우리의 재량으로 장소에 관한 이름은 생략했으며, 간결함을 위해 자세한 설명은 자제하였다.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은 조그마한 농장에서 사셨다. 그곳은 매우 고립된 장소였다. 나는 1937년 거룩한 스카풀라 주일에 스위스의 독일어 지역에서 태어났다. 나는 그 주 목요일에 세례를 받았다.”

 

“어머니께서 내가 아기였을 때 너무 많이 울었고, 잠도 거의 자지 않았다고 말해 주었다. 내 상태는 그 시절부터 이미 우려할 만한 지경이었던 것 같다.”

 

“1944년 봄부터 나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아이였다. 나는 빨리 배웠다. 특히 읽기와 쓰기, 숫자 세기는 자신 있었다.”

 

실제로 이 여인은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졌으며, 활발한 정신활동과 좋은 기억력을 가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풀과 꽃이 언제나 있는 강둑이었다. 내 친구와 나는 종종 천국과 지옥, 연옥과 같은 주제에 대해 긴 토론을 하곤 하였다.”

 

“1946년에 나는 첫영성체를 했다. 나는 이 첫영성체를 진지하게 생각하여 최선을 다해 준비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밭에 나가 일하며 쓸모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남동생들을 보살피는데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첫영성체를 받은 다음부터 나는 거의 매일 미사와 영성체에 참여하였다. 미사 전례를 부주의하게 지나가거나 평소보다 기도를 덜하게 되면 은총이 적다는 것을 느꼈다.”

 

“미사 때 성가대의 성가 소리와 꽃으로 장식된 제단, 그리고 피워놓은 향의 냄새가 성당을 가득 채우면, 교회에 있는 우리가 천국과 매우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성당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하였다.”

 

 

암흑의 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1951년에 나에게 시련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고뇌와 초조함이 내 영혼을 잠식하였다.”

 

“고통은 끔찍하게 불안한 방식으로 계속되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나의 본심과 하느님을 대하는 태도는 변함이 없었지만, 내 정신세계 전체가 비틀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깊은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내 판단력은 무뎌졌고, 내적 분별력도 사라졌다. 반면 병마와 고통은 나를 산산조각 낼 듯이 바늘처럼 찔러댔다. 생각도 오락가락해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나는 전혀 빛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나쁜 것은 이런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흐릿하고 멀어져만 갔다.”

 

“15세가 되던 1952년에 나를 누르던 고통은 너무 커져 더는 침실에 혼자 있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방을 바꿔주어서 나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어머니가 바로 옆에 있었어도 고통과 공포는 내 목을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내 심장 소리가 내 머리에 울려 퍼졌다. 나는 거의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끝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고통과 공포 때문에 나의 한 시간은 거의 영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영혼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이러한 고난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고통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이 암흑의 시기에 이 고통을 받아들이라고 재촉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불면의 시작에 불과했고, 가장 쉬운 일은 그것을 신의 뜻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훗날 나는 이 잔인한 암흑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뒤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고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의 전부였고,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었다.”

 

이 불쌍한 아이는 15세 무렵부터 순교자처럼 가혹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녀는 그 후 몇 년간 가정도우미로 일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일은 병원에서의 치료 때문에 중단되곤 하였다.

 

그녀가 받는 이런 고통이 충분치 않다는 듯, 그녀는 자신의 치아가 그녀의 고통의 원인이라고 믿는 주치의의 명령에 따라 아름다운 치아를 뽑아야 했다. 하지만 이런 치료는 추가적인 고통만 가져올 뿐 이 불쌍한 여인의 상태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 후 하느님은 그녀에게 정말 어울리는 점잖은 남자를 보내줬다. 1963년 그녀가 25세 되던 해 그녀는 결혼하였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결혼을 만류하였다.

 

올해로 40세가 된 이 부인은 네명의 아름다운 아이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 임신과 분만의 시간 때에도 그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히려 훨씬 쇠약해져 다시 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여야 했다. 하지만 어떤 저명한 정신과 전문의들도 그녀의 정신을 설명하지 못하고 돌려보냈다.

 

주사와 전기 충격 요법 및 치료로 그녀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순식간에 한 줄기 빛에 부서지듯 사라졌다.

 

35세가 되던 1972년에 약간의 차도가 있었다. 그녀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연한 기회에 나는 인의 부족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8) 나는 여러 가지 치료를 받았고 그 결과 전반적인 상태가 크게 호전되었다. 나는 약간의 인만을 보충하였을 뿐인데, 내가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하느님의 뜻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여러분이 잠이라고 부를만한 잠은 거의 자질 못 했는데, 컨디션이 올라가면 적어도 조금은 잘 수 있었다. 고통의 상태도 점점 약해졌다. 나는 다시 웃을 수 있었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다시 한번 나는 집안일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8) 이 인의 결핍이 악마적인 힘에 기생하는 작용 때문에 비롯될 수 있을까? 인을 뜻하는 단어 ‘Phosphorus’는 ‘시작’을 뜻하는 사탄의 다른 이름 중 하나이다.

 

“남편이 누구보다도 좋아하였지만, 나만큼 이 상황에 안도한 이는 없을 것이다. 다시 어린 두 아이를 돌볼 수 있게 되어서 크게 기뻤다. 나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겪은 이 고통을 은총으로 이해했고, 아니 이해한다고 믿었고, 그 고통은 말 그대로 힘들고 나를 억눌렀으며, 나는 하느님이 왜 나를 이 어둠 속으로 이끌었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구마 의식과 계시

 

1974년에 심각하게 재발 되었다: “나의 여동생은 이전에 큰 도움이 되었던 이에게 나를 데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팔을 가만히 두었는데 갑자기 내 팔이 멋대로 홱 움직이는 경험을 했다. 그 남자는 갑자기 울먹이면서 ‘당신은 악마가 들린 것 같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래서 나는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구마 의식을 행하는 사제에게 갔다. 사제는 나를 보고는 악마 들린 징후가 있다고 선언하였다.”

 

결국 힘든 예식과 오랜 기도 끝에 경험 많은 구마 사제가 돌파구를 마련하였다. 계속되는 구마 의식 후에, 천사와 악마들이 차례로 자신을 드러냈다. 잠시 해방의 기쁨도 있었지만, 악마들은 곧 다시 돌아와 내 몸을 차지했다. 주교가 그 책임을 지는 공식적인 구마 의식을 할 수 있도록 주교의 승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1975년 12월 8일, 다섯 명의 구마 사제가 참석하여 큰 구마 의식을 치렀다.(9) 그 뒤에 치러지는 구마 의식은 좀 더 제한적으로 치렀다.

 

(9) 이 구마 의식은 이탈리아의 몬티키아리에서 치렀다. 이날 이후 구마 사제는 레오 13세의 구마경을 사용하였다. 악마의 수는 19이었다.(1977년 11월 7일 구마 의식 기준) 그들 모두에게 이름이 주어졌다.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의 명령을 받고 악마들이 위급한 상황에 놓인 교회를 위해 한 계시가 담긴 책이 출판되었다. “Warnings from the Beyond, Confessions from Hell.(장막 너머에서 온 경고, 지옥의 고해성사”

 

 

현재 상황

 

이 악마 들린 여인은 아직 그 일이 끝나지 않아서인지 자유롭지 못하다. 그녀의 부모도 고통받는 딸과 마찬가지로 1974년까지는 병의 원인을 알지 못했다. 부모는 그녀의 치료를 위해 의학을 통해서든, 정신과를 통해서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시도하였다. 하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고,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다.

 

그녀의 부모에 관한 놀라운 점은 그들이 지극히 순수하여, 경이로운 것에 대한 어떤 욕망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딸의 고통의 근원은 설명할 수 없으며, 그들은 기도와 조용한 확신으로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지혜에 기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수많은 문서: 구마 의식 중에 찍은 사진, 테이프의 녹음, 편지 등은 교회에서 조사를 목적으로 제한 없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책에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고통받는 여인과 그녀의 가족들에게 수많은 방문과 소란이 가해지지 않도록 그녀의 이름이나 장소, 그림도 없으며, 그녀의 친구나 이웃들조차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을 밝히며 이해를 구한다. 그녀의 빙의는 그녀의 내적 삶에서만 나타났다. 그녀는 밤새도록 처절하게 괴로워하였으나 낮에는 집안일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해냈다.

 

 

하느님의 계획

 

이 여인이 이토록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속죄의 고통, 특히 구마 의식을 받은 후 며칠 동안 그녀가 견뎌야 했던 내적 고통과 완전한 외로움 등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결합되어 영혼의 구원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속죄하는 영혼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신의 실수 때문에 온 지상과 하늘의 여왕의 명령으로 악마들이 우리 시대를 위해 계시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나약함이나 태만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을 영혼들이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였다.

 

 

증언

 

아래에 서명한 리무(LIMOUX) 병원 정신과 수석 의사인 미셀 무레(MICHEL MOURET) 박사는 이 여인을 진찰한 후 스위스의 R.B.에서 1978년 4월 26일 참석하여 4명의 사제 앞에서 3시간 30분 동안 그녀와 관련한 구마 의식에 참석하였다고 증언하였다. 그리고 환자에 대해 광적인 정신병이나 히스테리의 징후는 없었다고 증언하였다. 따라서 두 가지 진단은 제거되어야 한다. 여기에 교회가 빙의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일시적이긴 하지만 그 징후는 있었다.

- 마이클 가브리엘 무레 박사

 

 

 

관찰 중

 

“누가 내 부르짖음을 싫어하는가? 나는 잠들어 있어 잔인한 짐승에게 먹히려 하는 목자를 깨우려 하는 어린양이다.”

- 성 베르나르

 

파리 대교구의 아메트 추기경이 ‘제2의 아르스 큐레’라고 일컬었던 파리 교회의 라 쿠르뇌브(La Courneuve)의 성스러운 교구 사제 라미(Lamy. 1931년 사망) 신부는 복되신 동정 성모마리아와 거룩한 천사들과의 여러 차례 대화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한다.

 

“그가 성모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돌아서서 뒤에 있던 악마에게 말하였다. ‘여기서 뭐 하느냐?’ 그러자 악마는 성모님께 다음과 같은 특별한 말을 하였다.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성당과 공소에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불의 글로써(틀림없이) 새겨야 한다고 하였다:

 

“내가 언제나 성모님 뒤에 있다는 것을 성모님께서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성모님을 지나가도록 허락할 때마다, 그들이 거기서 찾는 것은 바로 저입니다.”

 

 

영원한 지옥은 실재하는가? 하느님께서는 뭐라 하시는가?

 

“나는 야훼라, 나는 변하지 않는다.” (말라기 3:6)

 

지옥은 존재하며 영원한 곳이다. 성 마태오는 최후의 심판에 관한 자신의 기록에서 이렇게 썼다: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마태오 25:41)

 

다음과 같은 말로 설교를 마치신 거룩한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벌 받는 곳으로 쫓겨날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마태오 25:46)

 

성 바오로는 이 불경하고 고집 센 ‘저주받은 자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주께서는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하느님을 거부한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처벌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서 쫓겨나 영원히 멸망하는 벌을 받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카 2서 1:7-9)

 

그리고 성 요한은 생의 마지막에 묵시록의 묘사를 완성한다: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불과 유황의 연기가 그 구덩이에서 영원토록 올라올 것이며 그 짐승과 그 우상에게 절을 하고 그 이름의 낙인을 받는 자는 밤에도 낮에도 휴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요한 묵시록 14:11)

 

지옥은 있고 지옥은 영원하다는 것을 단언한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는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되풀이했을 뿐이다: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갈라디아 6:7)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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