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성애 반대 ✟ (Anti-Homosexual)/①교황 베네딕토 16세-'신에 대한 궁극적인 반역이다'

3-1.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 바오로께서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 중에는 동성애자로서 행동하는 자가 목록에 있다’

성 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2020. 11. 14. 19:42

These Last Days News - 2020.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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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교황 베네딕토 16: 성 바오로께서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 중에는 동성애자로서 행동하는 자가 목록에 있다

 

 

 

 

 

사제

"나는 나의 사제들 중에 동성애를 묵인하고 이를 허용하는데 나의 사제권을 쓰는 자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사제권이 파괴되고 있는 것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82. 6. 18

 

 

판단하지 않기

사제가 너희에게 이웃을 사랑하여야 하기에 다른 이들을 절대로 판단하여서는 안된다고 말하며 동성애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절대로 내지 못하게 한다면 너희는 판단하지 않을 것이냐? 너희가 친절하고 자비로운 자라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잘못을 지적하고 저들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저들의 영혼이 지옥이나 연옥으로 갈 것을 경고한다면 그 행위가 판단이겠느냐? 너희는 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야 한다. 어떤 것이 사랑이겠느냐?”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82. 6. 18

 

 

로마가 신앙을 잃을 것이고 적그리스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라 살레뜨의 성모님, 1846. 9. 19

 

 

 

 

CNSNews.com 2020. 10. 22 기사:

 

후에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되는 조셉 라트징거 추기경은 1986년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목서한을 보내며 성 바오로의 서한을 설명하였다.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 중에는 동성애자로서 행동하는 자가 목록에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6101일 이 서한을 승인하였다. 라트징거 추기경은 신앙교리성의 위원장의 자격으로 이를 작성하였다.

 

동성애라는 독특한 성향이 죄는 아니지만, 이는 크든 작든 본능적으로 도덕적인 죄악을 저지르게 되는 강한 동기로 작용한다; 따라서 성향 자체로 실제하는 문란으로 봐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목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동성애 행동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이라고 믿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건 안된다.”

 

이 편지는 어째서 동성애가 받아들일 수 없는지 성경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창세기 191-11에서 소돔의 주민들의 이야기에서 계속된 죄악으로 인해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동성애적 관계에 대해 적용되는 도덕적 판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레위기 18222013에서는 하느님께 선택된 민족에 속하는 조건을 설명하며 동성애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에서 제외된다.”

 

성 바오로는 고린도 전 69에서 신권법을 설명하면서 이에 대적하여 동성애적 성향으로 행동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명확히 하고 종말론적 관점으로 발전시켰다.”

 

이하 추기경의 서한 전문이다:

 

 

가톨릭 주교들에게 전하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목회서한

 

 

1. 동성애 이슈와 동성애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에 대한 문제가 이제 가톨릭 내에서도 점차 공론화되고 있다. 이 논쟁이 발전하여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 주장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사목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기에 우리 위원회는 동성애자들의 사목적 보살핌에 대한 문제가 충분히 심각하고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널리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이 서한을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낸다.

 

2. 당연히 이 복잡한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결 방안을 지금 내리는 것은 할 수 없지만, 가톨릭의 도덕적 관점이라는 특유의 범위 내에서 우리의 성찰을 집중시키려 한다. 적법하고 합리적인 방법론과 관찰 영역을 연구하여 보다 확실한 결론을 도출하는 자연과학의 방법에서 길을 찾아 우리의 길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가톨릭의 도덕적 관점은 신앙으로 일깨워진 인간의 이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우리 아버지이신 주 하느님의 뜻을 행하려는 열망에서 의식적으로 동기부여를 받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과학의 발견에서 배우면서도 과학의 지평을 초월하며, 보다 세계적인 비전을 가져 주 하느님과 그 아들 예수께서 은총으로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창조한 영적, 육체적 영역에서 인간의 풍요로운 현실에 보다 큰 정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동성애 현상이 매우 복잡하고, 사회와 교회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확실하므로 이 현상이 교회의 사목적 돌봄에 대한 적절한 관심사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 성직자들의 세심한 연구, 적극적인 관심과 정직하고 신학적으로 맞는 균형 잡힌 조언이 필요하다.

 

3. 이 문제에 대한 명시적인 해법은 19751229일 본 위원회에서 성 윤리 관련 특정 문제에 대한 선언을 발표하며 제시하였다. 이 문서에서 동성애의 문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하지만 동성애 행위의 판단은 신중하여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동시에 위원회에서는 동성애 기질과 경향 그리고 개인의 동성애 행위 사이에서 드러나는 차이점에 주목하였다. 이것들은 최종적으로 본질적이고도 필수적인 것들을 빼앗고 본질적으로 무질서한것으로 어떠한 경우라도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명시하였다.

 

하지만 이 선언문이 발표된 이후 논의 과정에서 동성애 상태 자체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해석을 하며, 일부는 이 상태를 중립적으로 보거나 심지어 좋다고 하기도 하였다. 동성애라는 독특한 성향이 죄는 아니지만, 이는 크든 작든 본능적으로 도덕적인 죄악을 저지르게 되는 강한 동기로 작용한다; 따라서 성향 자체로 실제하는 문란으로 봐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목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동성애 행동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이라고 믿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건 안된다.

 

4. 사목적 돌봄의 본질적인 관점은 교회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발생한 혼란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하나는 성경에서 동성애의 주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거나 암묵적으로 승인하였다거나, 또는 성경에서 금지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 문화를 억압하여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들은 심각한 오류를 지니고 있으며, 특별한 주의를 하여야 한다.

 

5. 성서 문헌 속 다양한 사상과 표현의 유형은 대부분 기록한 당시의 시대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다(Dei Verbum 12). 오늘날의 교회는 초창기의 교회보다 많은 부분에서 달라진 세상에 복음을 전한다. 예를 들어 신약이 기록될 당시의 세상은 히브리인이 구약을 기록하였던 세상과는 이미 상당히 달라진 세상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처럼 현저한 다양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성서에는 동성애 행위라는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일관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교회의 교리는 변하기 쉽고 가벼운 신학적 논쟁에 기반을 두어서는 안되며 일관성 있고 변함없는 성서의 증명에 견고한 기반을 두어야 한다. 오늘날의 신앙의 공동체도 고대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유대교 공동체나 초기 성교회 공동체와 단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진 영속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같은 성경으로 그때와 같은 말씀의 진리의 성신의 인도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성경이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과 모순되는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합당하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인식하여야 한다. 성경의 해석이 전통과 실질적으로 일치하는 것이 합당하다.

 

계시헌장10(Dei Verbum 10)에 들어 있는 바티칸 2공의회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최고로 준비하여 마련해 놓으신 신성한 전통과 성서, 그리고 교회의 교학권은 서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고 연관되어 있어서 무엇 하나라도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성신의 인도로 각각은 따로 또는 같이 영혼의 구원을 위해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는 성서의 가르침을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6. 동성애에 대한 이 모든 논의의 기초는 창세기에서 볼 수 있는 창조신학에 있다. 하느님은 무한한 지혜와 사랑을 가지고 당신의 선함을 깃들여 모든 존재하는 것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자신과 꼭 닮은 모습으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의 작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성별의 구분은 하느님의 의도로 구분되어 진 것이다. 이로써 인간은 생명을 전달하는 놀라운 방식으로 자신을 상대방과 상호 의탁하여 협력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창세기 3장에서 사람은 하느님의 형상이라는 진리가 원죄로 인해 가려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연적으로 사람들은 서로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결합한다는 언약에 대한 인식의 상실이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었다. 인간의 몸은 결혼의 중대성을 간직하고 있지만, 이제는 죄악으로 그 의미가 흐려지고 있다. 창세기 191-11에 소돔은 죄로 인해 악하게 변한다. 동성애 관계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레위기 18222013에는 선택된 백성에 필요한 조건들을 나열하면서 동성애 경향을 보이는 자들을 하느님의 백성에서 제외했다.

 

이 신권법에 대한 설명의 배경을 사도 바오로는 고린도전서 69에서 종말론적 관점으로 발전시킨다. 사도 바오로는 같은 교리를 설교하며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중 동성애적 경향을 보이는 자들을 포함하였다.

 

로마서 118-32에 의하면 이때까지 사람들은 선조들의 도덕적 전통을 지키려 하지만, 당시 성교회인들과 이교도간의 대립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상황에 직면하여 사도 바오로는 인류가 이제는 버려야 할 맹신적 습관 중 하나로 동성애적 경향을 예로 든 것이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본래의 조화 대신에 우상숭배로 인한 급격한 왜곡은 온갖 도덕적 왜곡을 초래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동성애보다 더 부조화에 대한 명확한 예를 찾기가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디모테오 전서 1장에 성경과 완전히 다른 잘못된 교리를 퍼트리는 사람들을 골라내고, 10절에서 동성애 행위에 관여하는 모든 이들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7. 하느님께서는 주님께 순종하는 자들을 위해 교회를 세우고 성사를 전했다. 교회는 혼배성사를 통해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사랑과 삶을 나누는 신성한 계획을 실천한다. 성적인 관계가 도덕적으로 합당한 것은 오직 결혼 관계에 있을 때 뿐이다. 그러므로 동성애 행위를 하는 자는 부도덕한 것이다.

 

동성애를 선택한 자들은 창조주께서 세우신 성에 대한 기초계획과 목적뿐 아니라 그 행위가 의미하는 상징과 의미를 무효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성애 행위는 자손을 번식하는데 도움을 주는 행위가 아니다. 그리고 복음서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자기희생적인 삶도 좌절시킨다. 이것이 동성애자들이 관대하지도 않고 희생적이지도 않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동성애 행위를 할 때 그들은 본질적으로 제멋대로이고 무질서한 성적 성향을 확인시켜준다.

 

모든 도덕적 문란함이 그렇듯 동성애 행위도 하느님의 창조적 지혜에 맞서는 행위이므로 스스로 자신의 성취와 행복을 가로막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동성애에 관한 잘못된 의견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키려는 것이다.

 

8.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가르침은 성서적 관점과 교회가 이어 온 불변의 전통이 결합하여 유기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많은 부분에서 완전히 새롭게 변하였지만, 성교회 공동체는 믿음의 표식을 받아앞선 세대와 우리 세대를 연결하는 심오하고 지속적인 유대감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 내에서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동성애 행위를 부도덕하지 않은 행위로 받아들이고 교회가 동성애 행위자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도록 교회에 엄청난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를 주장하는 교회 내부의 사람들은 종종 같은 뜻을 가진 교회 외부의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곤 한다. 이 외부의 집단들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완전히 믿는 이들과 대척되는 비전을 지니고 인도되는 집단들이다. 그들은 완전히 의식적이진 않더라도 모든 개인에 대한 초자연적인 부름이라던가, 인간의 초월적인 본질을 부정하는 유물론적 이념을 반영하고 있다.

 

교회의 성직자들은 자신의 교구에 있는 동성애적 성향을 지닌 이들이 교회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이런 관점에 넘어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하지만 위험은 크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동성애를 반대하는 교회의 내부에 혼란을 심어 이를 이용하려는 많은 자들이 있다.

 

9. 다양한 이름과 규모의 압력집단의 형태를 취하는 교회 내부의 운동 단체들은 자신들이 교회 내 동성애자들을 대표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들여다 보면 그 단체의 구성원들은 어떻게든 교회의 가르침을 부정하거나 훼손하려고 애쓰는 자들이다. 그들은 동성애 행위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교회 내 동성애자들의 적극적인 비호 아래 모이고 있다. 저들이 구사하는 전략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그리고 그들의 행동과 생활방식에 대한 모든 비판이나 비난이 다양한 형태의 부당한 차별이라고 단순화시키며 항의하는 것이다.

 

어떤 국가에서는 법을 바꿀 목적으로 성직자들의 선의의 지지를 얻으려 교회를 이용하려는 세력도 있다. 이 압력 단체들은 동성애가 완전히 선한 행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완전히 사회에 무해하다고 주장하며 교회를 끌어들이고 있다. 동성애의 행위가 많은 사람들의 삶과 행복을 심각하게 위협하지만, 동성애를 옹호하는 저들은 그 관련 위험의 규모를 인정하지 않고 고려하지 않고 있다.

 

교회는 절대로 이를 외면하지 못한다. 교회의 명확한 입장은 관련법의 압박이나 그 시대의 시류에 휩쓸려 교회의 교리를 수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동성애지지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많은 이들과 저들의 기만적인 주장에 마음이 흔들렸을 많은 이들을 정말로 걱정하여야 한다. 교회는 또한 동성애 행위가 부부간 사랑의 성적 표현과 같다거나 또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관점들이 가족의 본질과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이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가족의 개념을 위험에 빠트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10. 동성애자들이 말뿐 아니라 행동적으로 폭력적인 악의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폭력은 어디서든 교회의 성직자들에게 규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 폭력은 건강한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을 위협하는 일종의 타인에 대한 경시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개개인의 본질적인 존엄성은 말, 행동, 법으로 언제나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을 행한 범죄를 단죄하는 과정에서 동성애 행위가 무질서하지 않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주장이 제기되고 결과적으로 동성애 행위가 용인된다면, 또는 아무도 인정할 수 없는 권리를 보호하고자 법률이 도입된다면, 다른 왜곡된 관념과 관행이 자리를 잡고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반응이 증가할 것이며 교회나 사회 전체가 크게 놀랄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11. 더러는 동성애 성향이 자신의 의도적인 선택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동성애자는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고 믿는 저와 같은 이들은 동성애 행위를 하더라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현명한 도덕적 전통은 개별적인 사안들을 판단할 때 일반화에 휩쓸리지 않도록 경고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다. 사실 어느 경우든 개인의 과실을 줄이거나 지울 상황이 존재하며 과거에도 존재하였다; 아니면 어떤 상황은 더욱 과실이 증가되기도 한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피하여야 할 것은 동성애자들의 성적인 행위가 통제가 불가능한 본능의 영역이어서 죄가 없다는 근거없고 책임없는 가정들이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을 특징짓고 그에게 존엄성을 부여하는 근본적인 자유가 동성애자도 부여받았다는 사실이다. 악으로부터의 모든 회개가 그러하듯 동성애 행위를 포기하려면 주님의 구원 은총과 더불어 개인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합쳐져야 한다.

 

12. 그렇다면 주님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동성애자들은 무엇을 하여야 할까? 기본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성향 때문에 겪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처럼 받아들이고 희생의 삶을 통해 주님의 뜻을 행하여야 한다. 그 십자가는 죽음에서 생명과 보속을 가져다주는 신자들에게는 은혜로운 희생이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등 그리스도인으로서 고통을 감내하라는 부르심은 어떤 이들은 심한 조롱을 받게 될 것이지만, 이 길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들이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신이 신자들의 삶에 맺어 주는 것들로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은유 그리고 절제”(갈라디아서 522) 임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께 속하는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24)

 

이러한 금욕이 무의미한 노력이라고 쉽게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십자가는 자아를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에서 생명을 구하고 주님을 믿는 자들이 악을 행하는 대신 미덕을 행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다.

 

빠스카의 신비를 기념하려면 그 신비의 의미가 일상의 삶 속에 각인되어 있어야 한다. 주님의 뜻을 따르려 하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희생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구원의 기회를 걷어 차버리는 것이다. 십자가가 예수님 안에 머무는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주님 사랑의 표시이기에, 동성애를 행하는 남성과 여성이 자기 금욕과 주님의 희생과의 일치는 끊임없이 저들을 파괴하려 위협하는 삶의 방식에서 그들을 구원하는 자기희생의 근원이 될 것이다.

 

동성애자이면서 그리스도인인 이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숙한 삶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들이 주님의 개별적인 부르심의 본질을 이해하려 자신의 삶을 바치려면, 고해성사를 보다 충실하게 받아서, 자신의 삶을 주님의 길에 일치하기에 충분한 은총을 주님께 구해야 한다.

 

13. 물론 교회의 가르침을 모든 신자들과 사회 전반에 명확하고 성공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교회의 사목 성직자들의 올바른 가르침과 충실함이 크게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교구 종사자들이나 사제들보다도 주교들에게 특히나 큰 책임이 있다. 주교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온전하게 모든 이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올바른 정보와 개인적 성향마저도 알아야 한다.

 

많은 성직자들과 교회 종사자들이 동성애자들을 위한 사목적 보살핌에서 보여준 특별한 관심과 선한 의지는 존경받아야 하며, 줄어들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헌신적인 성직자들은 동성애자들에게 순결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동성애자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가치를 일깨우며 스스로가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

 

 

14. 이를 염두에 두고 본 위원회는 주교들에게 교회의 가르침을 부정하거나 바꾸도록 압력을 가할 우려가 있는 어떤 프로그램에도 특별한 주의를 기해야 한다고 경고를 보낸다. 그들이 밝히는 공개적인 입장과 추진하고 있는 활동 등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그들이 성직자들과 신자들을 잘못된 길로 끌어들이도록 기획된 모호함이 보일 것이다. 예를 들어 저들이 교학권(마지스테리움)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자신들의 정체성 형성을 위한 선택적 근원인 것처럼 보인다. 특별한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이 단체들 중 일부는 가톨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조직이나 조직원들의 정체성을 표시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교학권(마지스테리움)의 가르침을 따르거나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마지스테리움을 공개적으로 공격할 것이다. 그 단체들의 구성원 중 일부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싶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들도 예수님 교회의 가르침을 버릴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다. 이들 모순적인 행위들이 어떤 식으로든 주교들의 지지를 받아서는 안된다.

 

15. 그러므로 우리는 주교들에게 교구의 동성애자들을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사목적 돌봄을 제공할 것을 권장한다. 공인된 사목 프로그램에는 동성애 행위가 부도덕하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고 서로 모여 이룬 단체들이 절대로 포함되서는 안된다. 진정한 사목적 접근은 동성애자들에게 죄를 지을 기회를 끊어 버리는 것이 필요함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들을 피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적극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사목적 돌봄을 하려는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거나 그럼에도 침묵하는 행위는 사목도 아니고 돌봄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려 한다. 진실된 것만이 궁극적으로 사목인 것이다. 교회의 본분을 소홀히 하면 동성애 성향의 남성과 여성들이 마땅히 받아야 하고 필요한 돌봄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공인된 사목 프로그램은 모든 영적 삶의 수준에서 수시로 고백성사와 특히 기도와 상담과 개인적인 돌봄 등을 통해 동성애자들을 도울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전체 성교회 공동체는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들을 기만하거나 격리하지 않고도 저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16. 이렇듯 다각적인 방식의 접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많은 이점이 있는데 그중 최소한 하나는 동성애자가 다른 인간들처럼 여러 영역에서 많은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함을 알게 된 깨달음이다.

 

하느님의 모습과 닮게 창조된 인간은 자신의 성적 본능에 대한 환원주의(과학, 철학에서는 관찰이 불가능한 이론적 개념이나 법칙을 직접적으로 관찰이 가능한 경험명제(經驗命題)의 집합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실증주의적(實證主義的) 경향)적 언급만으로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 지상의 모든 인간은 개인적인 문제와 어려움을 안고 살고 있지만 스스로 성장하고, 강해지며 재능과 재주를 키우고 있다. 오늘날 교회는 인간을 이성애자동성애자로 구분하기를 거부하고 모든 사람이 근본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 각 인간을 돌보는데 절실히 필요한 상황을 제공한다: 은총을 입은 하느님의 피조물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자녀이자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이다.

 

17. 이 모든 문제에 주교들의 관심을 요청하며 본 위원회는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한 주님과 교회의 가르침이 모든 신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주교들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에 대해 주교들은 자신의 교구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지를 결정하여야 한다. 더불어 자신들의 조치가 유효하다고 판단되면 전국 주교회의 수준에서 더 조정된 조치를 강구할 수도 있다.

 

특히 우리는 주교들에게 자신의 재량을 동원해 동성애자들을 위한 적절한 형태의 사목적 돌봄의 개발을 지원할 것을 요청한다. 여기에는 교회의 가르침에 완전히 부합되는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의학 분야에서의 지원이 포함된다.

 

어떤 가톨릭 교리를 가르칠지는 인간의 성과 성교회적 결혼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동성애자들의 성찰을 심화할 수 있으며, 사목적 보살핌이라는 특정한 분야에서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도록 모든 가톨릭 신학자들의 도움을 요청할 것을 권장한다.

 

주교들은 자신의 높은 수준의 영적, 개인적 성숙함과 교도권(마기스테리움)에 대한 충실 함으로 동성애자들에게 진정한 봉사를 하여 그들의 건강과 복지를 최대한으로 증진할 수 있도록 사목 담당자를 선택하는 데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사명을 지닌 사목 담당자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 사목적 돌봄의 지침으로 사용할 수 없는 신학적 견해를 거부할 것이다.

 

우리는 주교들에게 교회의 가르침대로 가족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성에 대한 진리를 근거로 한 적절한 교리 프로그램을 장려할 것을 권장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동성애 문제를 잘 다룰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 지침은 동성애자뿐 아니라 그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회의 가르침을 훼손하려 하거나, 모호한 반응을 보이거나, 완전히 소홀히 하는 단체라면 모든 지원을 끊어야 한다. 그들에게 주는 지원이나 유사한 동조조차 심각하게 잘못 해석될 수 있다. 가톨릭 관련 학교나 대학도 포함하여 이런 시설을 이들 단체가 사용하거나 종교행사에 이들 단체가 참석하게 하는 것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교회의 시설물을 사용하게 하는 허가들이 정의롭고 자비롭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시설물들이 설립된 목적과 모순되게 사용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오해의 소지가 될 수도 있고 스캔들을 부르기도 한다.

 

제안된 안건들을 평가할 때 주교들은 가족들의 삶을 수호하고 장려하여야 할 책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18.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셨다.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2)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라고 원하신다. (참조: 에페소서 415) 진리이자 사랑이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를 인도하시려 모든 남자와 여자들을 교회로 부르신다. 우리가 이 서한을 주교들에게 보낸 것은 이러한 정신으로 자신의 실수로 고통만 더하지만 회개하면 진실로 가벼워질 수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함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편지를 승인하고 신앙교리성에서 이 편지를 출간하도록 명령하였다.)

 

 

 

1986 10 1 일 로마에서 제공됨.

 

 

"나는 나의 사제들 중에 동성애를 묵인하고 이를 허용하는데 나의 사제권을 쓰는 자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사제권이 파괴되고 있는 것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82. 6. 18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겠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하겠다.”

- 마태오 10:32-33

 

로마가 적 그리스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너희 세상의 인간들은 하나의 세계 정부와 하나의 세계 종교를 만들려 성자를 치워버리고 있구나. 슬프구나, 내가 전부터 너희에게 울부짖으며 말하지 않았더냐. 지금 기도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666이 영원한 신의 도시 로마에 스며들 것이며, 로마를 자신의 무리로 채울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양심과 눈을 가로막고 있는 장막을 거두거라.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녕 모르겠느냐?

나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의 자녀들아, 성자의 교회를 구할 것을 너희에게 지시한다. 너희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나의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너희는 사탄과 그의 무리들을 신뢰하지 말아라. 이 영들의 전쟁에서 다른 이가 너를 대신해줄 것이라 기대하지 말아라. 양심을 아는 나이가 된 모든 이들은 진리와 빛의 전달자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의 자녀들아, 옛 예언자들이 말하고 적은 그날이 바로 지금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7. 12. 7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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