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신학자들은 바티칸 뉴스가 Fiducia Supplicans를 방어하기 위해 라칭거, 요한 바오로 2세를 이용하는 것을 비난하였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사제들, 주교들, 추기경들, 너희의 성직자들을 위해 끊임없는 철야의 기도를 하여라. 그들이 큰 시험에 있다. 그들의 용기와 성교회에 대한 그들의 충실함을 시험하기 위해 그들 중에 큰 현혹이 심어졌다! 너희 어머니로서 나의 성심이 슬프고도 슬프구나. 우리가 지금 너희 세상 곳곳을 두루 다니고 있는데, 성자의 집에 참된 사제가 백 명이라도 남았다고 너희가 말할 수 있겠느냐?”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9. 5. 23
한 명의 영혼
"추기경들아, 주교들아, 잠에서 깨어나거라! 무거운 손이 세상에 가해질 것이다. 단 한 영혼이라도 천국을 잃는 것에 대한 너희의 책임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77. 11. 21
“지금 너희 나라에서 동성애가 큰 화젯거리가 되고 있구나. 그 동성애가 지금 미카엘의 저울 위에 올려졌다. 너희 나라에서 이 죄악을 치우고, 동성애의 확산을 막을 합당한 법을 만들어 시행하지 않는다면 너희 또한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동안 말했지만, 다시 말한다: 한 나라가 부도덕과 육신의 쾌락, 그리고 육신을 가증스런 짓거리들에 자신을 던져버리면 그 나라는 무너져 내릴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가 나를 믿지 못한다면, 너희에게 이른다: 너희는 역사책을 들고 읽어라. 그러면 너희는 소돔과 고모라를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더러운 도시 소돔을 어찌했겠느냐? 파괴해 버렸다! 그러면 우리가 고모라는 어찌했겠느냐? 파괴해 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저들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따르지 않는 자들 또한 모두 파괴해 버렸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85. 11. 1
LifeSiteNews.com, 2024. 2. 29 기사
마이클 헤인즈 Michael Hayne 작성
신학자들은 Fiducia Supplicans가 제안한 논란의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글을 인용하여 정당화시키려는 바티칸 내부 뉴스 서비스 편집국장의 기고문을 비난하며 이는 '명백한 오류'이며 거부해야 하는 생각이라고 일축했습니다.
토르니엘리(Tornielli)가 페르난데스(Fernández)를 옹호하다
2월 27일, 바티칸 뉴스는 Fiducia Supplicans 선언문에 들어 있는 동성 커플의 축복 제안을 옹호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로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바티칸 뉴스의 편집장인 안드레아 토르니엘리(Andrea Tornielli)가 쓴 이 기사는 Fiducia Supplicans(FS)에서 주장한 전례적 또는 사목적 축복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빅토르 마누엘 페르난데스(Victor Manuel Fernández) 추기경은 동성 커플에게 축복을 주는 것을 옹호하면서 '전례적' 축복과 소위 '사목적' 축복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그는 이 선언이 사제들에게 '전례적 또는 의식화'된 축복과 '자발적 또는 사목적' 축복이라는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축복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수많은 이단성 주장으로부터 이 선언을 옹호했습니다.
실제로 페르난데스는 1월 4일자 성명과 Fiducia Supplicans에서 축복에 관한 이 문서의 가르침이 '교도권과 교회의 공식 문서에서 언급된 축복에 관해 실제적인 발전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게르하르트 뮐러 추기경은 이에 대해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이라고 지적했으며, 로버트 사라 추기경도 뮐러 추기경에 동조하는 비판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교황의 대변인이자 보도 관련 홍보관련 보좌관을 맡고 있는 토르니엘리는 페르난데스와 FS에 대한 이해하기 어려운 변론문을 발표했습니다. 토르니엘리는 '전례적 축복'이 이해될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에 대해 말했습니다. 하나는 성직을 받은 성직자가 드리는 모든 기도가 전례적이라는 광의의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협의의 의미로서 사람들을 위한 기도나 요청은 '의식적으로, 더 정확하게는 교회 당국이 승인한 경우에 근거할 때만 전례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토르니엘리는 이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앙교리성의 2000년 문서 '치유를 위한 기도에 관한 지침'에 나오는 전례와 비전례 사이의 중요한 선례를 언급했습니다. 당시 요셉 라칭거(Joseph Ratzinger) 추기경이 작성하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승인한 이 문서의 특정 부분에는 Fiducia Supplicans에서 사목적 축복과는 다른 전례적 축복을 정의하기 위해 사용된 전례적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확실히 새로운 발전이지만 지난 수십 년간 교도권의 틀 안에 삽입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토르니엘리는 주장했습니다.
그는 징계 규범 조항의 2조와 3조를 인용했는데, 그 중 2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치유를 위한 기도는 교회의 관할 기관에서 승인한 전례서에 포함된 경우 전례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전례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명백한 오류’
결정적으로 토르니엘리의 주장은 Fiducia Supplicans가 요구하는 축복의 주제와 신앙교리성의 지침이 강조하는 기도의 주제를 교묘하게 뒤섞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기도는 축복의 종류와 형태가 다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한 도미니카 신학자가 LifeSiteNews에 제공한 토르니엘리의 주장에 대한 반박 기사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주장에는 전례적 기도와 비전례적 기도가 있듯이 축복도 전례적인 것과 비전례적인 축복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금 상태로는 명백한 오류입니다. 따라서 비전례 제단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나을 정도입니다."
“기도와 축복의 한 가지 차이점은 축복은 항상 어떤 식으로든 권위를 행사하는 행위이므로 언제나 성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8:2 참조)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 모든 축복은 전례적인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 도미니카의 신학자는 "만일 여러분이 전례를 책에 의한 규제로 정의하고 싶다면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결국 이것은 다툴 가치가 없는 정의의 문제입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축복을 이해하는 개념에 대한 논쟁의 측면은 선언에 내재된 더 큰 문제에 대한 부차적인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Fiducia Supplicans에 대한 진정한 반대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즉, 그러한 축복이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스캔들, 즉 그 특징이 무엇이든간에 'Fiducia Supplicans는 사제나 부제에게 다가오는 비정상적인 부부에게 사목적 또는 자발적 축복을 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두 사람의 결합을 승인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나타낼 수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는 토르니엘레의 주장은 무책임하며 명백한 거짓입니다. FS는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명백히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이라고 명확히 밝힐 수는 없습니다!
‘축복은 축복이다’
신학자이자 전례주의자인 피터 크바스니에프스키(Peter Kwasniewski) 박사도 토르니엘리의 주장에 반대하며 "(근본적으로) 사제가 자신의 사제직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므로 형식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교회와 관련이 있고 전례적인 것이라는 이 생각은 거부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사제적 축복이 아니라 형식적 인사"임을 의미합니다.
크바스니에프스키 박사는 LifeSiteNews에 발표하고 온라인에 발표한 성명에서 "다른 사람이 '전례 축복과 비전례 축복'을 구분했다고 해서 그 구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더 이상 사실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신앙교리성의 2000년 문서가 Fiducia Supplicans의 근거의 배후라면 신앙교리성의 11월 선언문에서 인용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크바스니에프스키 박사는 "사제의 인격과 그의 공식적인 신권 행사 사이의 이혼"이라는 오류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축복의 기도는 사제가 10초가 걸리든 10분이 걸리든, 스톨을 입든 후드티를 입든, 전례서를 읽든 자유롭게 하든 상관없이 축복은 축복입니다.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주는 축복이 아니라면, 그래서 이미 어떤 의미에서 전례적(전례는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한 사람이 아는 일이라는 뜻이므로)인 것이라면 그것은 헛되고 미신적인 말입니다.
도미니카 신학자와 마찬가지로 크바스니에프스키 박사도 Fiducia Supplicans의 더 큰 문제를 지적하면서 바티칸의 선언문은 "성공회가 동성 결혼의 축복을 승인하면서도 '결혼'이라고 부르지 않은 것처럼 가톨릭 교회에 동성애를 위한 안전한 공간을 열어주려는 시도"라고 주장했습니다.
기도가 죄악을 용인하기 위해 이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두 신학자의 이러한 주장은 지난 1월 초 로버트 사라 추기경이 Fiducia Supplicans에 대해 강력한 비판과 같습니다.
사라 추기경은 축복의 형태를 구분하려는 시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축복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헛된 논쟁에 빠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죄인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고, 하느님께 그의 회심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조금씩 하느님께로 돌아와 겸손하게 자신의 삶에 참되고 근본적인 변화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을 축복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교회의 기도는 누구에게도 거부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의 정당화, 죄의 구조, 심지어 임박한 죄의 기회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거룩함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통회하고 참회하는 마음은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회심하지 않고 굳어진 마음 앞에서는 성 바오로의 입에서 어떤 축복의 말도 나오지 않고 오히려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이 나왔음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마음이 완고해서 회개할 생각도 하지 않으니 이런 자는 하느님의 공정한 심판이 내릴 진노의 날에 자기가 받을 벌을 쌓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로마서 2:5-6)
실제로 Daily Compass의 루이젤라 스크로사티(Luisella Scrosati)는 토르니엘리의 주장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마술사이자 정신분석가인 토르니엘리가 라칭거 추기경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언급으로 누군가를 속일 생각을 했다면 그의 환상 예술이 다소 녹슬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기사는 페르난데스와 같은 자질도 없는 신학자를 신앙교리성 장관에 임명하는 것은 현재 이 교황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합니다."
“너희가 눈이 멀어 너희 가운데에 죄악이 빠르게 퍼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느냐? 살인, 도적질, 온갖 대량 학살행위, 어린 영혼의 파괴, 낙태, 동성애, 전능하신 성부께서 태초부터 싫어하셨던 행위들. 이제는 이런 죄악들이 생활의 한 방편이 되었구나. 지금 죄악은 너희의 나라와 지상의 온 나라에서 최고 재판관에 의해 용인되고 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죄악은 영혼 뿐 아니라 육신의 죽음이기도 하다. 전쟁은 인간의 죄악과 욕심과 탐욕에 대한 징벌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81. 8. 14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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