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비가노 대주교: 자의교서 ‘Traditionis Custodes’에는 총체적인 오류 덩어리로서 “불법적이고 유효하지 않다”라고 주장하였다.
“내가 보낸 성직자들은 지상에서 천국을 대신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린 자들이다. 그런 너희에게 경고한다: 너희는 지금 당장 전통적인 의식들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 너희는 무너져가고 썩어들어가는 나의 집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 너희는 파괴되고 있는 것들을 찾아 되돌려 놓아야 한다! 지금 당장!
“내가 간택한 자들 중 많은 자들이 안에서부터 멸망을 택하고 있다. 너희의 행위를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모른 척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신성함과 경건함을 가장한 잘못과 속임수와 기만들이 판을 치고 있다! 전능하신 아버지 앞에서 너희의 가면이 모두 벗겨질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기반부터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안에서부터 멸망하고 말 것이다.
“나는 나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종류의 신성모독 행위를 보고 있다. 너희가 얼마나 오랫동안 징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잠에서 깨어나거라, 나의 성직자들아! 너희는 그 누구도 속여서는 안 된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75. 11. 22
되돌려 놓아라
"이 사악한 악마가 나의 집 매우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너희는 나의 집을 고쳐 되돌려 놓아야 한다. 너희의 신으로 나는 너희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이 지시를 내린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76. 8. 21
LifeSiteNews.com 2022. 1. 3 기사:
대주교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Carlo Maria Viganò) 작성
경신성사성(the Congregation for Divine Worship)이 최근에 발간한 ‘Responsa ad Dubia’를 읽다 보니, 교회의 가장 유순하고 충실한 부분에 대한 잔인하고 무자비한 전쟁을 벌이는 로마 교황청의 이러한 비굴함이, 베르골리오를 지원하기 위해 얼마나 깊은 심연까지 떨어졌는지 의문이 들었다. 교회에 매우 심각한 위기가 있었던 지난 수십 년 동안 교회의 권위를 이처럼 단호하고 가혹하게 사용한 적이 있었는지 되짚어보게 된다. 교황청 산하 대학과 신학교에 만연한 이단에 물든 신학자들에게 이처럼 가혹한 조치가 있었는가? 성직자와 고위성직자들, 주교와 추기경들의 스캔들에도 이처럼 가혹한 조치는 취하지 않았었다. 일말의 동정심도 자비도, 포용심도 없이 단지 트리덴트 전례의 라틴 미사를 거행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신자들과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그러면서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를 목표로 하는 “Fratelli tutti(형제애)”를 외치는가?
교황 바오로 6세가 교황청 제단에 2000년을 지켜온 교회의 전통을 제물로 바치고, 위선적인 전례를 강요한 것을 제외하면, 지금 이 교황치하만큼 권위에 의한 권력 남용이 눈에 띄었던 적은 없었다. 초기 교회로부터 전해져온 전례를 치르는 것을 금지하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을 박해하는 것을 포함한 현재의 강권 조치는 세상과 동조하여 점점 세속화되는 가톨릭의 변화를 긍정적인 것으로 여기며 가톨릭의 가능성을 향상시키는데 꼭 필요한 조치라는 환상의 구실을 가지고 있다.
50년간의 끔찍한 재난과 14년 이어온 베네딕토 교황의 자의 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을 번복한 이후 그 미약한 근거마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증거에 의해 그 모순이 증명되고 있다. 공의회가 들여온 모든 새로운 관례들은 해롭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이로 인해 교회, 신학교, 수도원은 텅텅 비게 되었으며, 이것들은 교회와 거룩한 성소를 파괴하였다. 이것들은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모든 영적, 문화적, 시민으로서의 본성마저 고갈시켰다. 이것들은 그리스도 교회를 모욕하고 사회의 주변부로 밀어내어 세상을 기쁘게 하려는 서투른 시도이기에 교회를 한심한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베네딕토 16세가 전통 전례에 대한 완전한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교회를 치유하고자 시도한 이래로 성 비오 5세의 미사와 연결된 공동체가 증가했으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자의 교서인 ‘하느님의 교회(Ecclesia Dei)’를 기반으로 한 신학교와 성소가 증가하였으며, 신자들의 참여도 높았다. 신자들의 참석 빈도가 높아짐으로 많은 젊은이들과 많은 가정의 영성 생활이 크게 자극받았다.
마르셀 르페브레(Marcel Lefebvre) 몬시뇰도 언급했던 이 ‘전통의 실험’에서 무슨 교훈을 얻었는가? 가장 단순하지만 동시에 가장 명확한 교훈은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신 것은 영원히 승리하여 남아 있도록 운명지어졌으며, 인간이 교회에 덧붙인 것은 항상 처참하게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이념적 분노에 눈이 멀지 않은 영혼이라면 잘못을 인정하고, 그동안 파괴된 것을 복구하며, 버려졌던 것을 복구하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겸손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긍정적 견해,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필요하다. 더불어 성직자들은 자신이 주인이 아니고 주님의 곳간을 지키는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주님의 것을 양도하거나, 숨기거나, 자신의 물건과 바꿀 수 있는 권리가 없다. 그들은 모든 양과 자신이 맡은 양 떼의 모든 어린 양들에 대해 하느님 앞에서 응답해야 한다는 책임을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되며, 양들을 보호하고 신실한 이들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제한하여야 한다. 사도들이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Hic iam quæritur inter dispensatóres, ut fidélis quis inveniátur” - “관리인에게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은 주인에 대한 충성입니다.” (고린도 1, 4:2)
The Responsa ad Dubia는 교황청의 자의 교서인 Traditionis Custodes와 일치하며, 우리 주님께서 거룩한 성직자와 그의 대리자로 구성되었던 것과 정반대의 목적을 얻기 위해 교회의 최고 권력을 찬탈한 이 “교황 정권”의 전복적 성격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것은 교회를 세우신 분에 맞선 고집스럽고 반항적인 권력이기에 근본적으로 혁명적이고, 이단적인 원칙에 따라 ‘참 해방자’라고 믿는 권력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혁명은 언제나 혁신적이고, 전복적이고, 음모적이며, 타도하고자 하는 합법적인 권력에 반대한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는 권력이다. 제도권의 권력을 빼앗은 즉시 압제적인 권위주의로 돌변하는 것은 이 권력이 신이나 신자들의 비준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전혀 다른 두 상황 사이에 연관성을 찾아보자. 전염병의 대유행이 창궐하자, 실제로 효과적인 치료법이 해롭고 심지어 치명적일 수도 있는 쓸모없는 “백신”에 밀려 부정되는 것과 영혼의 진정한 생명수인 트리엔트 전례 미사가 매우 심각한 도덕적 역병의 순간에 신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부정되며 쓸모없는 백신과도 같은 새로운 전례 Novus Ordo의 미사로 대체된 것의 연관성을 비교해보자. 의사들은 치료가 쉽게 가능함에도 본연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며, 건강한 자든, 병든 자든 똑같은 실험 백신을 완전한 효과도 기대할 수 없으며 많은 부작용이 있다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투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영혼의 의사인 사제들은 2천 년 이상 검증된 확실한 영혼의 “생명수”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나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용을 금하고 있으며, 이미 그 효과를 본 이들이 또다시 그 생명수를 사용하여 죄악에서 치유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하고 있다. 첫 번째 경우, 제약회사에 의존하게 될 만성환자들만 만들기 위해 신체의 면역 방어가 약화되거나 사라진다. 두 번째의 경우, 세속적인 사고방식으로 고착되거나, 초자연적이고 초월적인 관점의 파괴로 인해 영혼의 면역 방어력이 크게 손상되어 악마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사회적, 정치적 위기를 함께 고려하지 않고 종교 위기를 외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대응으로 유효하다. 왜냐하면 이 공격의 양면적 특성이 이 사건을 너무나 끔찍하게 만들고 동일한 범죄 의도에 의해 유발되기 때문이다.
나는 응답서(Responsa)의 헛된 망상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 보복적이고 편협한 사람들이 만든 이념적이고 당파적인 자의 교서 ‘Traditionis Custodes’를 거부할 수 있는 입법부의 비율이 궁금할 뿐이다. 헛된 망상과 심각한 교회법 오류투성이이며, 2천 년 역사 속 수 많은 교황과 성인들이 받들었던 전례 의식을 금지하고, 그 자리에 루터교에서 베끼고 모더니스트들이 짜깁기한 가짜 전례를 채우려는 의도를 가진 자의 교서이다. 이들의 난입으로 지난 50년 동안 교회에 끔찍한 재앙을 일으켰고, 그 파괴적인 효과 때문에 어떠한 예외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거기에는 악의가 있고, 신성한 사람뿐 아니라 거룩한 율법학자들에 대한 이중적인 배신도 있다.
주교와 사제들, 수도사들, 평신도들은 다시 한번 가톨릭교회와 2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불변의 전례를 선택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오류와 세속화된 베르골리오의 전례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하는 상황에 몰려있다. 그리고 이 상황은 가톨릭교회와 교회의 모조품이 같은 고위 성직질서 안에서 공생하여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데, 신자들은 하느님의 권위에 대한 복종으로 순종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기만적이고 반체제적인 것을 분별하여 불복종하여야 하기도 한다.
폭군에게 불복종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폭군의 보복은 무자비하고 잔인하다. 생각나는 보복으로는 아리우스주의, 성상파괴주의, 이단 루터교, 크롬웰의 청교도, 프랑스와 멕시코의 프리메이슨 세속주의, 소련 공산주의, 스페인 내전, 중국과 캄보디아 등에서 수 세기 동안 겪어야 했던 박해들이다. 얼마나 많은 주교들과 성직자들이 순교하고, 투옥되었으며, 추방되었던가?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학살당했던가? 얼마나 많은 교회가 신성모독을 당하였던가? 얼마나 많은 제단이 파괴되었는가? 어째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거룩한 성직자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려 주신 가장 귀한 보배인 거룩한 미사를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거행하도록 직접 가르치신 미사이며, 사도들이 후계자들에게 직접 전한 미사이며, 교황들이 지키고 거행한 미사이며, 그리스도와 교회의 적들에 대한 영원한 증오의 중심에 있는 미사이기 때문이다. 개신교 국가 및 이교도의 나라에 파견되었던 선교사들, 감옥에 갇힌 사제들이 목숨을 걸고 바쳤던 그 미사를 오늘날 교황청이 금지한다는 것은 고난과 추문의 원인일 뿐 아니라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미사를 지킨 순교자들에 대한 모욕이다. 이 미사의 가치는 믿는 자, 사랑하는 자, 소망하는 자만이 알 수 있다. 오직 하느님을 향한 삶을 사는 자만이 알 수 있다.
Traditionis Custodes와 Responsa의 비판을 표현하는 것을 유보하거나 참는 자들은 적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불법적이고 무효인 법의 정당성을 서서히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의결된 규정을 누구도 반대하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을 때, 큰소리로 반대를 한 ‘전통 전례 주의자’들에게 앙심을 품고, 교회와 신자들 앞에서 그들을 모욕하기 위해 규제를 한 것이고 세상에 공표한 것이다. 이 규제는 베르골리오 교황청을 상징하게 되었다. Traditionis Custodes와 Responsa는 단순히 무시하고 만든 이들에게 되돌려 보내야 한다. 신실한 가톨릭 신자들을 처벌하고, 그들의 모임을 해산시키고, 신앙을 모두 없애려 만든 것이 분명하기에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나는 베르골리오를 기쁘게 하려 하느님께서 주신 권리와 자신의 보호에 맡겨진 영혼들을 조금의 고심도 없이 짓밟으며, 자신은 대중의 찬사와 바티칸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전통 전례 미사’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는 너무나 많은 추기경과 주교들의 비굴함을 보면서 마음이 찢어진다. 주님께서 그런 자들에게 하는 말씀이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옳은 체를 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마음보를 다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떠받들리는 것이 하느님께서는 가증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루카 16:15)
교회 권위의 폭압적인 행동을 직면할 때 우리가 취할 일관되고 용기있는 대응은 허용할 수 없는 교회 권위에 대한 저항과 불복종뿐이다. 이 엄중한 압제를 체념하며 받아들인다는 것은 지금까지 묵인하여 받고 있는 오랜 학대에 또 다른 선례만을 더할 뿐이며, 스스로 비굴한 복종을 선택함으로 현상 유지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책임을 지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교회의 쿠데타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체(교회)의 수장으로서 그리스도께 순종과 충성으로 자신들의 신성한 권위를 행사하여야 한다. 교황의 명예도 이런 권위를 필요로 하는데, 현재에는 베드로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자에 의해 불명예와 굴욕을 당하고 있다. 선한 영혼들은 이를 필요로 하며, 영혼의 구원은 교회의 으뜸가는 가치이다. 하느님의 영광이 신성한 권위를 요구하며, 그와 관련하여 어떠한 타협도 용납하시지 않는다.
폴란드 대주교 얀 파웰 렌가(Jan Paweł Lenga) 몬시뇰은 교회가 용병들과 반역자들의 이단적 관습과 악덕으로 가라앉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이 가톨릭 반혁명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Non prævalebunt(저승의 세력도 감히 이기지 못할 반석 위의 교회)의 약속도 최소한의 용기와 확고한 행동이 있어야 한다. 교회는 참여와 교회에서의 그들의 역할에 대한 어리석은 호소만을 요구하며, 한 번도 주인공으로 대접받은 적이 없는 주교와 사제,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그러한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주목할 점: 위선적으로 낙인찍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의 “교황직” 아래에서 성직주의는 정점에 도달했다.
"이제 많은 자들이 주님께서 내리신 그들의 지도자, 교황에 맞서게 될 것이다. 신앙과 도덕의 문제는 그것이 주님께서 베드로의 자리를 통해 인간들에게 주신 율법이라면 바뀌어서는 안 된다. 특히나 이 잘못된 율법이 성자의 교회를 통해 지상에 전통으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9. 10. 6
“바빌로니아의 죄로 인한 바빌로니아의 멸망 때문에 세상에는 많은 새로운 말들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나의 자녀들아, 세상 모든 것에서 통용되는 하나의 보편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면, 너희는 자신의 모국어로 된 번역본만 있으면 외국을 방문하여 성자의 교회라면 어느 곳에 방문하더라도 성자께서 선택하신 사제들이 바치는 미사를 편안하게 바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딸아, 네가 미국을 떠나 프랑스로 간다면 프랑스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나의 딸아, 네가 라틴어를 분간할 수 있다면, 프랑스 사람들이 프랑스어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책을 가지고 성자의 교회인 로마 가톨릭교회에 불려가는 은총을 받은 모든 이들은 세상의 아름답고 공통된 언어의 유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저들이 너희에게서 이 말을 빼앗았다고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인간들이 모독하더라도 성자와 함께 인내하며 기다리거라.”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6. 4. 10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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