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프란치스코의 라틴미사 금지(TraditionisCustodes)/①바티칸으로부터 대성당의 전통 라틴 미사 전례를 중단하라는 지시..

20-5. "사제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닌 그리스도가 중심"...

성 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2022. 11. 12. 21:04

 

These Last Days News - August 7, 2013

 

20-5. "사제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닌 그리스도가 중심"...

 

 

“하나의 보편적 세계어가 지상의 각 언어들과 어울려 함께 사용되는 것은 전능하신 성부의 뜻이었다. 라틴어라 불리는 이 보편적 세계어는 세상의 유일한 보편적 교회인 로마 가톨릭교회의 보편적 공식언어로 전능하신 성부의 선택을 받았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6. 4. 10

 

"이 사악한 악마가 나의 집 매우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너희는 나의 집을 고쳐 되돌려 놓아야 한다. 너희의 신으로 나는 너희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이 지시를 내린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76. 8. 21

 

“나의 자녀들아, 성체성사를 모시기 위해 너희 주님 앞에 서면 무릎을 꿇어야 한다. 강당에 서 있듯 아무 의미 없이 서 있지 말고, 너희 주님께 영광과 사랑을 드리며 무릎을 꿇어야 한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9. 7. 14

 

"내가 세운 교회의 전례는 진실로 그대로 남아야 한다. 흥에 겨워 제단에서 뛰어다니거나, 벤조나 기타를 연주하거나 미사 중간중간에 춤을 추는 행위들은 모두 사탄이 만든 것이다. 따라서 사탄이 이제 인간의 모습으로 완전히 변신하여 자신의 군대와 함께 들어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위장한 악마들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베드로의 자리가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 즉 나의 교회를 파괴하려는 것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89. 3. 18

 

New Liturgical Movement 2013. 8. 4 기사:

 

Dom Alcuin Reid는 7월 27일부터 8월 4일까지 리투아니아의 크라자이(Kražiai)에서 열린 제 12회 성전례 및 그레고리오 성가에 관한 연례 회의인 ‘Ad fontes 2013’에서 강연을 하였다. 다음은 리투아니아 뉴스 웹사이트인 lzinios.lt에 실린 리드와의 인터뷰를 번역한 것이다.

 

최근 몇 년 전 리투아니아에 있는 카우나스(Kaunas) 대교구에서는 모든 교회의 제단 한 가운데에 십자가 놓았습니다. 당시 세계의 수 많은 교회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요제프 라트징거 추기경이 자신의 저서 “전례의 정신”에서 설명한 생각으로 여기서 추기경은 전례 기도에서 지향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였습니다. 전례의 중심은 집전하는 사제나 공동체가 아닌 그리스도임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라트징거 추기경은 새로운 제단이 놓여진 많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계셨던 동방으로 제단을 놓고 전례를 치르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그 방법으로 제단의 한 가운데에 십자가를 놓는 방법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추기경이 2005년 교황으로 선출되자 추기경의 생각은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귀도 마리니(Guido Marini) 대주교는 교황이 참여하는 전례를 집전하게 되었고, 교황의 생각을 반영한 이날 전례는 언론을 통해 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이 현대 전례의 중심은 사제도 아니고 다른 누구도 아닌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이 훌륭한 방법을 따라하게 시작한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동안 교황은 전례에서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교황은 제단을 동방으로 향하게 하거나, 제단 중앙에 십자가를 둘 뿐 아니라, 신자들의 성체 성사를 거행할 때에도 무릎을 꿇고 혀로 전하는 전통 전례를 사용하였고, 교황이 참여하는 모든 미사는 라틴어로 거행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거행된 전례가 잘못된 것인가요? 교황께서는 이런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을까요?

 

교황의 전례는 많은 경우 세상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황이 단순히 작은 교구나 교회에 해당하는 전례를 거행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교황 베네딕토는 교황 교서 ‘Sacramentum Caritatis’에서 설명하였듯이 주요 국제 행사에서 교회의 언어가 사용되어, 모든 사람들이 이탈리아어를 듣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대신, 사도신경이라든가 영광송 같은 미사의 일반적인 부분과 관련하여 같이 노래하고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전 세계 사람들이 더욱 교회에 친숙하게 될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무릎을 꿇는 것에 대해 귀도 마리니 대주교는 성체성사를 받기 위해 무릎을 꿇는 것은 로마의 전통 전례, 심지어 현대 전례에서도 지켜야 할 규범임을 상기시키기 위해 시행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손으로 성체성사를 받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리투아니아에서는 한 번도 손으로 받는 성찬례가 허용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리투아니아의 표준입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사람들이 성체를 영접할 때, 충분한 고민이나 성찰없이 손으로 성체를 받아 가만히 서서 영하게 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무릎을 꿇고 혀로 받는 성찬례는 그 자체로 숭배와 예배의 행위임을 성체를 받는 신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어머니가 우리를 먹여 살리 듯 교회도 우리 영혼을 먹여 살린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영할 전병을 직접 가져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우리에게 성찬을 제공하고 영적인 자녀로 양육되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렇기에 성찬례에서의 그런 모습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베네딕토 교황은 사람들에게 어떤 훌륭한 문서나 강요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 전례 방식이 오늘날 중요한 우리 전통에서 유효하고 가치있는 의식이며 자세라는 것을 자신의 모범을 통해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고자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세나 일반적으로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는 방식이 교회 생활에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믿음이나, 선행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믿음과 선행은 육신과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육신과 영혼이 함께하며, 스포츠, 운동 경기 등 많은 일을 위해 육신을 훈련하여 단련합니다.

 

영혼도 육신과 마찬가지로 훈련하고 단련하여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우리는 다른 이를 존중과 관심을 가질 때 몸으로 그 마음을 표현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미사에서 그리스도를 맞을 때 우리는 특정한 몸의 표현을 하여야 합니다.

 

지금의 현대문화에서 무릎을 꿇는 행위는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전례 중에 그리스도를 맞이 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 것은 우리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성가를 부르는 것,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일상의 행동과 휴식과는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육신에게 상기시켜 주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로 교회의 전례복은 이를 입은 사람이 성직자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교회의 일을 하고 있고, 예복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신성한 법의 일부일 뿐 아니라 교회에 대한 사랑과 경배에서 나오는 인간의 전통입니다. 이런 것들은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믿음과 경배를 표현하기 위해 시도되고 시험된 수단입니다.

 

돔 알쿠인 리드 (Dom Alcuin Reid)

 

여기 크라자이(Kražiai)에서의 한 강의에서 사람들이 때로는 미사가 지루하다고 불평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불평을 해소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제들은 젊은이들에게 기타나 드럼을 가져오게 해 콘서트처럼 듣고 싶은 음악을 연주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미사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방법입니다. 우리가 미사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만 한다면, 즐겁게 해줄 아이디어는 이내 고갈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자극이 부족합니다. 미사는 즐길거리가 아닌 경배이며 예배이기에 젊은이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문화의 모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전례에 스며들어 있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미사를 나의 즐거움을 위한 어떤 형태의 자극으로 여기면 지루할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매가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그리스도 인격과의 만남을 목적으로 미사에 참여한다면 미사는 지루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주교님의 수도원은 고대의 유물을 전례로 삼았습니다. 어째서 이런 결정을 하셨습니까?

 

고대의 로마 전례인 Usus antiquior는 매우 풍부합니다. 우리가 수도원 공동체의 기원을 살펴보았을 때, 이 전례가 우리의 수도원 생활을 가장 잘 지탱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매일매일의 풍부한 영적 식단입니다. 교황 교서 Summorum Pontificum에서도 말했듯이, 전례와 찬양은 오늘 그리고 내일의 교회 전체를 위한 보물입니다. 우리는 그 보물을 잘 보존하고, 다른 이들과 공유하며, 가능한 한 널리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전통 라틴 전례 미사나 이에 버금가는 경건한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가톨릭 신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그 점이 무엇보다도 교회의 사제들에게 주어진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신도, 성직자, 수도자 등 그리스도의 모든 신자들은 교황 베네딕토가 교서 Sacramentum Caritatis에서 언급한 ars celebrandi(성사주례법)로 거행되는 교회의 전례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확실히 Summorum Pontificum과 Universae Ecclesiae(초대교회 공의회 결의문집)에서는 신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거행되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전례 방식으로 미사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였습니다. 신자라면 교구 사제에게 이런 전례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영적인 보살핌을 받을 의무가 있는 주교에게 요청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권리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본당에는 열악한 전례가 존재할 뿐 아니라 실제로 나쁜 전례, 전례의 남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다시 한 번 교회의 사제들은 그것을 바로잡아야 하고, 그것을 접하는 사람들은 물론 존경스럽고 자비롭지만 그럼에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 있다면 분명히 그것을 책임지는 사제에게 말을 하여야 합니다. 이는 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전례는 우리의 영적 삶,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양분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이들이 영양 결핍이 될까 두려워 아이들에게 나쁜 음식을 먹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자들에게 나쁜 식단인 나쁜 전례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나쁜 전례는 신자들의 영혼을 기형적이고 영양 결핍으로 만들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이 훨씬 덜 지속되고, 몇몇 교황들에 의해 추진된 새로운 복음화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 중요한 일을 추진할 연료가 부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우리에게 좋은 전례를 제공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성 비오 10세 치세 이후로 실제 미사 참례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미사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먼저 말씀드릴 것은 전례는 성직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악적이거나, 전례적이거나, 전례 준비와 미사를 도울 수 있는 평신도들은 사제들에게 합당할 전례를 요청하여야 하며, 나는 그들이 모든 전례를 매우 환영할 사제들과 주교들을 찾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실제 참여라는 측면에서, 그것은 전례는 그리스도의 행동에 연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나의 양심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자세이자 성향이며, 어느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며 전례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전례를 오락거리나 사람을 즐겁게 거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미사 집전자는 온갖 놀거리와 즐길거리를 찾느라 무척 바빠질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지역에서는 사제가 어릿광대 복장을 하여 신자들에게 웃음거리와 자극을 주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것은 활동이긴 하지만, 실제 미사 참례가 아니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나 전례 활동이나 교황 비오 10세가 원했던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공의회나 교황께서 원하셨던 것은 우리가 전례에 참례하여 전례의 풍성함, 본문, 예식, 성가, 예수님의 아름다움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과 그리스도의 인격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입니다.

 

한 달 전 로마에서 국제 회의인 Sacra Liturgia 2013이 열렸습니다. 대주교님은 그 회의를 주최한 사람 중 하나였고, 많은 추기경들과 주교들이 참석했기 때문에 교회 전례의 미래를 논의할 기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교황 베네딕토가 시작한 ‘개혁의 개혁’이 어떤 식으로든 공식화될 가능성은 여전히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런 회의를 계획하고 있을 때 베네딕토 교황께서 재임 중이셨고, 우리의 회의는 교황의 가르침과 그에 의해 영감을 받아 발의하였던 것입니다. 2월에 있었던 베네딕토 교황의 사임은 충격이었지만, 우리의 회의는 원한다면 베네딕토 교황의 전례 원칙에 대한 증언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저도 틀린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황의 전례 원칙이 아니라, 전례의 중요성과 전례를 집전하는 방법, 이에 따른 적절한 내적 태도를 갖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올바른 전례 원칙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입니다.

 

추기경 때 그는 자신의 저서 “The Spirit of the Liturgy(전례의 정신)”에서 새로운 전례 운동에 대한 열망을 말한 적 있었습니다. 베네딕토 교황은 전례의 올바른 집전을 안팎으로 찾는 방법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Sacra Liturgia 2013은 베네딕토 교황의 열망에 대한 일종의 증언이 되었으며, 그의 사임으로 인해 슬프게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인도가 없이 진행되지만 그럼에도 올바른 전례 운동의 미래를 향한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개혁의 개혁을 묻는다면 그런 것들이 언제 어떻게 공식화될지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도미니크 레이 주교가 회의 중에 자주 언급하였는데, 교회 생활에서 전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짐에 따라, 역사학자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에 따른 전례의 개혁을 다시 살펴보면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필수적인 토대로서 교회의 삶에 있어서 전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 개혁의 빛과 그림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문구를 사용하면, 현대 의식의 일부는 강화가 필요하고 일부는 수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통 전례는 가치 있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말했듯이, 그러한 조치들이 언제 공식화될 것인지 정확하게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베네딕토 16세의 원칙이 단지 개인의 선호가 아니라 올바른 전례의 원칙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새로운 전례 운동은 하느님의 때에 그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여기 크라자이(Kražiai)에서 아드 폰테스(Ad fontes, 근본으로)와 같은 동기가 필요합니까?

 

그렇습니다. 새로운 전례 운동은 전례를 집전하고, 기도하며, 전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형성하고, 전례의 풍성함을 발견하도록 인도하는 많은 소그룹으로 구성됩니다. 그런 그룹들이 결코 백발의 노인들만의 모임이 아닙니다. 젊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 그룹에 모일 것이고, 이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5년 또는 10년 후에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수십 년 후에 이루어질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일어난 최악의 전례적 학대가 이제 역사의 일부로 사라졌다는 사실은 행복한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1970년대나 1980년대에 일어났던 끔찍한 전례적 학대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를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하느님 덕분입니다.

 

이 시대에 미사에 참여하는 이들은 속임수를 찾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찾아야 합니다. 새로운 전례 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전례의 풍성함 속에서 그리스도의 광채와 아름다움을 더욱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교황 베네딕토가 추기경 시절 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용기를 줄 필요가 있습니다.

 

전례를 지키려 했던 위대한 교황이 이제 은퇴하여 더 이상 교황으로서 우리를 이끄시지 못하지만, 교황의 원칙은 교회의 원칙이며, 여전히 우리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조금 더 성장해서 스스로 두 발로 걷고, 스스로 그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교황은 은퇴할 권리가 있으며, 약간의 휴식이 필요하였습니다. 교황은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고, 우리는 그 일을 마쳐야 합니다.

 

 

 

"이제 많은 자들이 주님께서 내리신 그들의 지도자, 교황에 맞서게 될 것이다. 신앙과 도덕의 문제는 그것이 주님께서 베드로의 자리를 통해 인간들에게 주신 율법이라면 바뀌어서는 안 된다. 특히나 이 잘못된 율법이 성자의 교회를 통해 지상에 전통으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9. 10. 6

 

“바빌로니아의 죄로 인한 바빌로니아의 멸망 때문에 세상에는 많은 새로운 말들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나의 자녀들아, 세상 모든 것에서 통용되는 하나의 보편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면, 너희는 자신의 모국어로 된 번역본만 있으면 외국을 방문하여 성자의 교회라면 어느 곳에 방문하더라도 성자께서 선택하신 사제들이 바치는 미사를 편안하게 바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딸아, 네가 미국을 떠나 프랑스로 간다면 프랑스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나의 딸아, 네가 라틴어를 분간할 수 있다면, 프랑스 사람들이 프랑스어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책을 가지고 성자의 교회인 로마 가톨릭교회에 불려가는 은총을 받은 모든 이들은 세상의 아름답고 공통된 언어의 유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저들이 너희에게서 이 말을 빼앗았다고 성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인간들이 모독하더라도 성자와 함께 인내하며 기다리거라.”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6. 4. 10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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